• 최종편집 2022-09-2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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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장 고신, 제72회 총회장단 합동 인터뷰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총회장 권오헌 목사, 이하 고신)의 제72회 정기총회 첫날 일정이 종료한 가운데 신임 총회장단이 기자단과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이날 총회장 권오헌 목사 부총회장 김홍석 목사, 전우수 장로, 사무총장 이영한 목사, 기독교보 사장 최정기 목사, 포도원교회 담임 김문훈 목사가 참석했으며, 인터뷰에 앞서 신임 부총회장 전우수 장로가 먼저 기도하고 시작했다. ■ 질문에 앞서 인사말씀 부탁드립니다. 권오헌 목사 : 기독신문들이 와서 취재와서 감사하고 잘 부탁드립니다. 설교에서도 말했지만, 저희 교단이 큰 교단은 아니지만 한국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잘 보여주는 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저희 교단이 사랑이 많은 교단이었고, 교단에 대한 사랑도 있었고,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한 사랑도 있었고, 조국 교회에 대한 사랑도 있었고 기도하는 시간 마다 고신대, 신학대학원, 복음병원을 위해서 늘 기도했고, 학생신앙운동에 대해서 온 교회가 협력했던 그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 세월이 복잡해지고 하니까 개교회주의나 성도들이 개인주의에 많이 빠졌는데 우리 총회부터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서로 사랑하면 좋겠다고 그런 마음이고, 그런 마음으로 교단의 다양한 의견들을 하나로 잘 모으고, 생각이 달라도 함께 사랑하면서 교단이 할 수 있는 그런 풍토를 만들 수 있다면 한걸음이라고 그렇게 애쓰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홍석 목사 : 선거 과정에서 염려하는 분들이 많이 있었고, 과열 양상을 실제로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고신 교회의 저력은 오늘 기자단이 보셨던 것처럼 ‘그것(우려했던 모습)이 우리의 수준이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총회에서 특별한 문제없이 투표 전에 특별한 문제 없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 관용하면서 아름다운 선거가 마무리하게 됐습니다. 저와 경쟁했던 후보 목사님도 우리는 싸운 것도 아니고 전투한 것도 아니고 단지 경쟁을 했을 뿐입니다. 다음 기회에 쓰임 받고 봉사할 기회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고신 교단의 저력을 보여준 총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총회장이 1년 동안 할 일은 다른 것은 없습니다. 총회장님을 열심히 도와드리고, 1년 동안 더 준비해서 총회장 때 섬기도록 하겠습니다. 전우수 장로 : 고신 총회에 관심을 가지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장로부총회장으로 72회기를 섬기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시고, 총대들이 선택해 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어쨌든 제가 SFC를 통해 훈련을 받고, 장로가 되어서도 전국장로회나 교단의 각 기관들을 섬겼습니다만은, 늘 부족함이 있고, 장로로서의 한계를 많이 느꼈습니다. 장로부총회장도 1년 이라는 짧은 기간에 봉사해야 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단이 처한 상황이 녹록치 않습니다. 학교문제, 병원문제, 총회 회관문제, 또 다음세대나 농어촌교회, 도시미래자립교회 이런 여러 도전적인 과제들이 많습니다. 장로로서 보는 시각과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1년 동안 총회장님 잘 보필하고 도우면서 섬기겠습니다. 맡은 1년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최선을 다해 할 생각입니다. 이영한 목사 : 한국교회 정체성이나 반기독교 악법이라던지 이런 것을 막기 위해 우리 총회가 최선을 다해 앞장설 생각입니다. 그리고 좋은 법이 만들어지고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하는 일에 우리 고신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역사회를 위해, 기후환경을 위해 최선을 다해 앞장서서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 권오헌 총회장님은 SFC 대표간사를 지내셨습니다. SFC 대표간사 출신으로 최초 총회장이 되셨는데, SFC 폐지안에 대한 견해와 해결책에 대한 방안을 피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권오헌 목사 : SFC가 더 잘하라는 소리인 것 같습니다. SFC가 더 잘하라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당장 폐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그러나 교단의 목회자들 가운데서는 SFC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강력하게 표현하는 것이고, 그 표현이 과한 것 아니냐는 말이 있었는데 그런 표현이 있어야 각성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신학교육부에서 잘 논의하고 처리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영한 목사 : 부연설명을 하자면 청소년 사역, 청년대학생 사역을 위해 총회에서 113명의 상근 간사들을 두고 지원해서 사역하는 총회는 우리밖에 없습니다. SFC는 다음세대를 이끌어 가기 위한 중요한 자원이고, 거기 학교와 학원 사역을 하다보니까 우리 총회 어른들이 보시기에 생각과 안 맞는 부분들이 일부 있을 수 있습니다. 총회장님 말씀대로 잘하라는 지적으로 받아드리고 앞으로 더 발전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 고신은 과거부터 고려, 합신, 순장과 교단 통합을 추진해왔고 2015년 고려와 통합을 추진했습니다. 현재 합신과 순장과의 통합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합니다. 이영한 목사 : 순장하고는 통합준비위원회로 준비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통합의 당위성에 대해서는 고신은 남한 땅에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했던 총회이고, 순장 총회는 북한 땅에서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다가 1.4 후퇴 때 같이 내려왔던 분들이기 때문에 상징성과 역사성이 많습니다. 우리 총회와 순장 총회가 규모가 비슷하면 쉽게 성사되겠지만 일부 순장 쪽에서는 역사성이나 그동안 지켜왔던 것에 대해 ‘고신에 흡수되지 않느냐’ 하는 우려를 하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에 그분들이 충분히 공감하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고, 지금 공감은 거의 된 상태입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에 통합을 하려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끼리 함께하는 것이 한국교회 분열 속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합신과 대신의 경우에는 교류를 계속하고 있습니다만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교단을 서로 인정하고 현재는 정책이나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에 힘을 합해서 함께 하는 것과 협의하고 교류하는 상태에 있습니다. ■ 2019년 일산벧엘교회가 탈퇴하고 2021년 대구동일교회가 교단을 탈퇴했습니다. 통합 총회 경우에는 위원회를 구성해 탈퇴한 교회를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데, 고신 총회 차원에서 그러한 노력을 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권오헌 목사 : 당연히 있습니다. (교단 탈퇴가)신앙고백이 달라서 한 것도 아니고, 행정적이라던지 입장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니까 충분히 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벧엘교회 박광석 목사님은 저와 동기기도 하고, 또 대구는 저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어떻게든 대화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리 문제 때문에 나눠진게 아니잖아요? 가능성 있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려고 합니다. ■ 사회적인 섬김을 위해 교단 차원에 어떤 복안을 가지고 있으신지 질문 드리고 또 인구절벽 시대에 다음세대 복음화 전략이 무엇입니까? 권오헌 목사 : 저희 교회는 수십 년 전부터 장애인 사역을 해 왔고, 우리가 소문을 내지 않아서 그렇지 와서 보시는 분들은 모두 놀랍니다. 고신은 선전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신학적 입장 때문에 충분히 고민하고 한번 시작하면 꾸준히 끝까지 하는 그런 특성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학적 이슈나 사회적 변화에 빨리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고민이 많아서 충분히 하나님의 뜻인지 연구하고 고민하고 기다리기 때문일 뿐입니다. 결정되면 굉장히 열심히합니다. (서울시민교회 사례 소개). 표시를 내지 않고 떠들지 않아서 그렇지 꾸준히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대사회적인 것은 총회에서도 많이 고민하고 있지만 우리가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이번에는 예배 문제 때문에 큰 소리를 냈는데, 신사참배와 같이 신앙의 본질적인 것에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신학적 입장에서 조심스러운 입장입니다. 김홍석 목사 : 다음세대에 관해서 총회교육원에서 교재 개발이 끝나서 잘 보급되고 있고, 총회 차원에서 다음세대 교육 수립을 위한 세미나를 했었고, 내년에도 계획하고 있고 육 콘텐츠 개발 강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영한 목사 : 다음세대 관해 우리가 최선을 다해 지원을 하고 있고, ‘교회 사역 트랜드’라는 코로나 이후 시대를 대비해서 책을 썼는데, 여러 곳에서 최우수 도서로 선정되고, 많이 읽혀지고 있습니다. 다음세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굉장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인구절벽도 젊은 세대들이 아이를 갖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가 열심히 국회에 가서 이야기 하고 있고, 조금 더 좋은 법이 만들어 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산하제한 할 때에 유일하게 그 정책에 반대를 했던 것이 우리 교단입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어떻게 지원하고 어떻게 젊은이들이 아이를 갖고 편안하게 직장생활하면서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키우기 힘들 때 교회가 키워주는 방안을 연구하고 검토하고 있습니다. ■ 차별금지법에 제정 반대에 대한 입장을 계속해서 유지해 가실 예정이신가요? 권오헌 목사 : 차별금지법 제정 저지에 대해 우리 교단 대사회관계위원회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라는 말이 듣기 좋은 말이지만 법 조항에 문제가 있는 것을 계속 지적하고 있고 반대하는 활동을 하고 있고 국회의원들과 만나 면담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 중 이런 독소조항이 있는 것을 잘 모르는 분들도 계십니다. 교회는 이 사회가 좋아지는 것을 바라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치 교회가 교회의 유익을 위해 고집부리는 것처럼 비치지 않도록 섬세하게 대응해나갈 것입니다. 이영한 목사 : 부연하자면, 이미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들이 있습니다. 그런 법은 우리가 찬성을 하고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성경적으로 위배 되는 일들에 대해서는 법적으로 역차별을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작은교회와 미래자립교회에 대한 대응 방법과 작은 교회 목회자 은퇴 후 교회 소멸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권오헌 목사 : 저희 교회 같은 경우에는 ‘분립개척을 하자’라고 늘 이야기 합니다. 저희는 부목사님이 개척을 할 경우 교회를 떼 주고 빨리 자립할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제정 지원과 전문사역자를 지원하기도 합니다. 저희 교단에도 큰 교회들이 작은 교회를 돌보고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것은 노회가 목사를 선발하고 안수하는 과정에 노회를 중심으로 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이영한 목사 : 고신 총회는 미자립교회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미래자립교회라는 용어로 고치고 미래에 자립할 수 있도록 총회가 적극 지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전우수 장로 : 농어촌교회와 미래자립교회가 큰 문제가 두가지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농어촌교회는 원리 어려웠고 도시의 미래자립교회는 코로나로 많이 어려워 졌습니다. 은퇴를 몇 년 앞두고 계신 목사님들의 근본적인 고민이 은퇴 후 후임 목사를 모시기 어렵고 연속성을 가지기 어렵다는 고민입니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을 총회에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통합하거나 순회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노회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총회가 돌보는 것도 좋은 방안일거라 생각합니다. 다른 문제는 교회 재산권 문제가 가장 심각합니다. 유지재단에 가입은 하지 않았고 교회 재산은 있지만 교인들이 없거나 할 때 사유재산화 하려는 몇몇 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총회차원에서 가이드라인을 세워줄 필요가 있습니다. 노회와 시찰회도 팔고 가버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살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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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7
  • 오페라 ‘일사각오’, 감동의 주기철 목사 일대기
    ‘항일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 일대기, 일사각오’(이하 일사각오)가 지난 9월 24일(토), 창원시 성산아트홀 대극장에서 재연되며 큰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 2021년 10월 2일(토), 완성된 일사각오 오페라로 초연을 가진 창원시기독교장로총연합회(대표회장 최주철 장로, 이하 창기장총)은 다시 한번 오페라 무대를 준비해 경남과 부산지역의 성도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며, 관객도 미리 나눠준 태극기를 흔들며 호응해 극과 하나가 됐다. 창기장총과 항일독립운동가주기철 목사순교기념사업회(이사장 이정희 목사)가 공동으로 주최하고 일사각오창작오페라 조직위원회(위원장 김기준 장로)가 주관하는 오페라 일사각오는 지난 2019년 영상음악회와 2020년 갈라오페라를 거져 2021년 초연을 선보이며 3년 만에 완성된 창작오페라로 창원대 교수 김동순 장로(서머나교회)가 총감독을 맡고, 창기장총 최문욱 장로(양곡교회)가 총괄기획을 맡았다. 일제강점기 시대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르고 항일운동을 펼치다 순교한 주기철 목사의 일대기를 담아 기독교인에게 순교신앙의 감동을 선사했다. 24일 토요일, 오후 3시와 저녁 7시 두 번의 공연을 선보인 일사각오 오페라는 경남지역 뿐만아니라 부산과 울산 등에서 많은 성도들과 관객들이 참석하는 관심을 보였으며 완성도 있고 잘 만들어진 무대라는 호평을 듣기도 했다. 일사각오 오페라를 준비한 창기장총 대표회장 최주철 장로는 환영사를 통해 “일사각오 오페라가 단지 주기철 목사님의 민족을 위한 희생과 항일 정신을 알리는 무대로만 국한 될 것이 아니라, 다음세대에는 나라사랑의 정신을 고취하고 우리 모두 힘을 모으면 지방 공연 예술도 문화자산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였고 이를 계기로 창원시와 경남도의 공연 예술 브랜드 마크로 자리매김되고 문화적 가치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또 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정희 목사는 “순탄치 않은 과정속에서도 이렇게 성대한 공연의 자리까지 오게 된 것, 이 모든 과정의 산 역사를 이루어 가는 창기장총 연합회에 깊은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고 전했다. 이날 오페라 첫 공연에 참석해 자리를 빛낸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격려사를 통해 “오페라 일사각오의 공연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한다”라며 “나라사랑 오페라 공연이 성공적으로 치러지기를 바라며, 함께 자리해주신 모든 분이 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한다”라고 전했다. 또 홍남표 창원특례시장은 축사를 통해 “시민 모든 분들의 가슴속에 ‘나라사랑’의 마음이 더욱 깊이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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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7
  • [포토] 합동, 제107회 총회 신임 총회장 권순웅 목사와 경상노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총회, 제107회 정기총회에서 선출된 권순웅 신임 총회장과 경상노회 총대진이 함께 사진을 찍었다. 경상노회는 최근까지 분쟁 중에 있었으나 총회 임원회 산하 소위원회를 통해 화해 합의에 도달 했으며, 총회에 헌의한 분립 헌의의 건의안은 분립위원 5인을 선정해 분립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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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6
  • [이정희 목사] 기독교 용어 고찰 17
    I. 서언(序言) “복음의 메카(Mecca)는 예루살렘이다.”란 말을 어떤 칼럼에서 읽어본 적이 있다. 아무리 이해하면서 보려고 했지만 정말 이건 잘못된 말이었다. 흔히들 어떤 중심지를 말하고자 할 때 메카란 말을 많이 쓴다. 근래에 본 각 언론사에서 이 말을 사용한 것을 나열해 보면, ‘경제 문화의 메카OOO’, ‘게임의 메카’, ‘유기농 산업의 메카’, ‘패션의 메카 밀라노’등이었다. 이런 말은 이미 사회적 통용 언어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 이는 ‘나락’, ‘야누스’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독교 단체와 성도들이 사용 할 말은 아니다. 이에대하여 이 용어들의 어원을 논하고자 한다. II. ‘메카’,‘나락’,‘야누스’의 의미와 유래 1. 메카(Mecca)의 유래 : ‘메카’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도시 이름이며,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Muhammad)’의 고향인 동시에 이슬람교의 발생지이며 중심지이다. 또한 ‘무함마드’ 이전에도 메카는 다신 숭배의 중심지였다. 이런 이유로 흔히들 중심지를 말할 때는 무슬림(Muslim)들 뿐만이아니라 일반인들도 ‘메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서두에서 논한 대로 우리 기독교인들이 이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바람직하지 않는 일이다. 더군다나 ‘복음의 중심은 예루살렘이다.’라고 해야 될 것을 좀 더 유식하게 말한다고 ‘복음의 메카는 예루살렘이다.’라고 표현한 것은 너무 잘못된 말이다. 2. 나락(那落, 奈落, naraka)의 유래 : 얼마 전에 어떤 책임 있는 기독교계 방송국에서 ‘오늘날 교회의 신뢰도가 나락으로 떨어졌다.’라는 보도를 했다. 여기의 나락이란 말도 흔히 사용하는 국어사전에 등제되어 있는 용어이기 때문에 이 말을 방송용어로 사용한다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락(那落, 奈落)이란 말의 유래를 안다면, 기독교계 용어로서는 옳지 않는 말이다. 나락이란 말은 원래 인도의 산스크리트어의 ‘나라카’(naraka)를 음역한 말로, 본래 ‘밑이 없는 구멍’을 뜻하며, 지옥(地獄) 또는 괴로움을 받는 곳을 말하는 전형적인 불교 용어이다. 또 이 말은 일반적인 지옥의 의미보다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극한적인 상황을 비유해서 설명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이로 볼 때 이런 완전한 불교의 교리적 용어를 교회적인 사항을 이야기를 할 때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는 일이다. 3. 야누스(Janus)의 유래 : 오래전 ‘욕망의 두 얼굴’이란 영화가 개봉된 적이 있다. 내용은 바로이 두 얼굴의 양면성을 나타내는 ‘야누스’ 이야기이다. 그 어원을 구체적으로 논한다면, ‘야누스’는 로마의 출입문과 아치형의 다리를 지키는 신의 이름이다. 또한 이 신은 양면(兩面)의 얼굴과 머리 혹은 4개의 얼굴을 가진 형상도 있다. 하지만, 이중에서 어떤 얼굴을 보느냐에 따라 행운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불운을 주기도 한다고 믿고 있다. 또한 이 말에서 한해의 끝과 시작이라는 의미에서 'Janualy'란 1월 달의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이로 볼 때 이 말도 로마 신화에 나오는 미신적인 용어이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이 즐겨 사용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III . 결 어(結語) 이상으로 몇 가지 용어들을 논하면서 느끼는 것은 ‘왜 사람들은 단어의 뜻을 명확히 구분하지못하면서도 이런 용어들을 자주 사용할까?’라는 의문을 가져 볼 때가 많다. 그 중요한 이유 중의하나는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언어 사대주의 사상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중국의 한문을 선호해 온 것이나 현대에선 영어권이나 외래어를 선호하는 것과 아예 우리 국어를 경시하는 풍조가 이런 애매모호한 용어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타종교적인 용어들의 역사가 길게는 수천 년에 이르고, 거기에 비례해서 그 용어들이 우리말에 너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구분해서 사용한다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대로 그 유래와 뜻도 모르면서 계속 사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복음의 메카(Mecca)는 예루살렘이다.’라고 하거나, ‘오늘날 교회의 신뢰도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야누스의 두 얼굴’이란 신앙적인 용어가 아닌 말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 있는 말이 아니라면, 될 수 있는 대로 신앙적으로 알맞은 용어들을 알기 쉽게, 듣기 좋게, 보기 좋게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가장 아름답고 좋은 기독교인으로서의 언어의 품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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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인 생활용어
    2022-09-23
  • [오성한 목사] 성령충만(2/3)과 죄의 법
    믿음이 좋은 사람에게도 죄의 법은 우리에게 계명을 지킬 수 있는데 못 지켰다고 속이며 부담을 안겨 온다. 그것으로 나를 죽인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롬7:11).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강조한다. 신앙생활은 나의 행위를 고치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다. 행위를 고치려는 신앙생활에서 빨리 빠져 나와서 자유 하라. 신앙생활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믿는 것이다. 생수의 근원되신 주님을 버리고,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파선 안 된다(렘2:13). 예레미야서의 주제다. 성경 전체의 주제이기도하다. 생수의 근원되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신앙생활이지 내가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파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다. 나를 고치려고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님을 발견하라.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신앙생활임을 발견하라. 당신은 이미 성령의 임재 안에 있으며 성령충만함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생명의 풍성함을 얻는다. 참 자유를 만끽하며 능력의 삶을 산다. 자신을 보며 죄책감과 죄의식을 가지느냐,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느냐가 자신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실수할 대마다 “나의 모습이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구나!” “오늘도 나를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되겠구나! 감사하다.”는 깨달음을 가져야 한다. 보혈 앞에서는 철면피가 되어야 한다. 자신을 보면 “이래가지고 되겠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책감 죄의식 속에 사로잡히길 원하시지 않으신다. 내 속에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마음이 있다. 그러나 마음대로 잘 안 된다. 내 지체 속에는 다른 법도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죄의 법으로 항상 나를 사로잡아 온다. 죄의 법은 절망이다. 사망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라는 탄식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사망의 법에서 건짐을 받는 길을 발견하고 걸어가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죄의 법이 주는 생각을 묵상하지 않고 임마누엘을 묵상하는 것이 성령충만으로 출발하는 길이다. 당신 안에 잠자는 성령의 능력을 깨우는 길이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2-24)라고 탄식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울을 보라. 죄의 법에서 해결 받았음을 선포하며 생각하라고 한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7:25)하면서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라고 하는 환희를 보는가? 펄쩍펄쩍 뛰는 바울의 모습을 보는가? 이것이 나의 모습니다. 해방이다. 죄의 법에서 완전히 벗어남을 받아들이는 것이 성령충만으로 출발하는 삶이다. 성경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로마서 전체엔 놀라운 복음이 숨어져 있다. 로마서 전체가 그렇다. 로마서 5장에서도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고 이 은혜가 많은 사람에게 넘쳤다고 고백한다(롬5:15). 이제 은혜가 왕 노릇한다고 한다(롬5:21). 성경 전부가 이 이야기다. 율법적인 눈을 걷어 버리고 은혜의 복음, 예수의 복음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한다. 생수의 근원되신 주님을 버리고, 가둘 수 없는 터진 웅덩이를 파는 일이 예레미야 시대만의 일이 아니다. 정말 안타깝다. 통탄할 일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왔다 가셨는데 예수님께서 이루신 일이 부족하단 말인가? 우리는 주님과 하나 되어 십자가에서 함께 죽었다. 예수님과 함께 살아났다(로마서 6장). 예수님과 함께 보좌 우편에 앉혔다(엡2:6). 우리는 예수님의 승천하심을 공간의 어떤 다른 우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영의 세계는 공간과 시간과 물질의 세계가 아니다. 이해 할 수 없는 일 같지만 그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김 집사 몸에도, 박 집사 몸에도, 오 목사 몸에도 계신다. 나누어져 계신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의 모든 몸에 온전하게 계신다. 이것은 공간 계념이 아니다. 예수님의 승천을 우리가 사는 다른 우주적인 공간으로 승천하셨다고 생각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우리 몸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다. 우리 몸에 성령께서 계신다. 우리 몸에 하나님이 거하신다. 우리 몸이 성전이다. 이사야가 본 보좌가 우리 몸에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 몸이 하늘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무리 일까? 지구가 둥글기 때문에 위쪽만 하늘이 아니다. 옆쪽도 하늘이고 밑쪽도 하늘이다. 하늘이라는 개념이 3차원적인 공간 계념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면 하나님 계신 곳이 하늘이다.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면 예수님의 승천으로 우리 몸으로 승천하셨다고 이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수님의 승천이 우리 몸으로 하셨다는 말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 우편에 앉히심을 이해하기 위한 설명이라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하며 읽어 주길 바란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2:6)라는 말씀을 좀 더 생생하게 잘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아 설명해 본 것이다. 믿음은 이것을 묵상하고 믿는 것이다. 스스로의 삶을 고치려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다. 우리의 삶은 바른 복음을 알고 살 때 저절로 따라오는 열매임을 보아야만 한다. 회개는 나를 고치려는 것이 회개가 아니다. 회개는 예수님께서 해 두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나를 고치려는 신앙생활이 아니라 예수를 믿어야 한다. 우리는 전에는 어두움이었다. 이제는 빛이다. 빛의 자녀들처럼 받아들이고 행하면 된다. 우리가 실수했을 때 회개하면 된다.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이런 또 실수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의 실수로 인해 죄책감에 쌓이지 않겠습니다. 용서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새 힘을 얻습니다. 주님이 승리했습니다. 주님의 승리가 저의 승리이다. 제가 오늘도 철저히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러면서 자꾸 십자가로 돌아가면 된다. 주님과 함께 부활하여 예수님과 함께 하늘 에 앉혔음을 믿는 것이 성령충만으로 출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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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3
  • [오태열 목사] 진짜에는 눈물이 있다
    세상에는 진짜가 있으면 가짜가 있기 마련이다. 실체와 그림자, 알곡과 가라지가 쌍생하듯, 진짜와 가짜는 항상 쌍생한다. 진짜가 가짜처럼, 가짜가 진짜처럼 보일 때가 참으로 많다. 가짜는 진짜처럼 흉내 낼 수는 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곧 탄로 나고 만다. 그러나 진짜는 끝까지 간다. 가짜는 언제까지 속일 수가 없다. 왜냐면 시간이 지나면 가짜인 열매가 맺히기 때문이다. 진짜와 가짜의 열매는 각각 다르다. 신앙에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 진짜 성도인지 가짜 성도인지의 구별은 눈물의 기도에 있다. 진실한 신앙인에게는 눈물의 기도가 있지만, 가짜 성도에게는 눈물의 기도가 없다. 눈물의 기도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눈물을 흘리는 척은 할 수 있으나 지속적인 눈물의 기도는 할 수 없다. 가짜라 해도 지속적인 눈물의 기도가 있다면 진짜가 된다. 지속적인 눈물은 절대로 가짜로 만들어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게 어느 순간부터 눈물의 기도가 사라졌다면 가짜 성도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께 눈물로 부르짖는 지속적인 기도가 있는 사람은 진실 된 신앙인이다. 다니엘은 평탄할 때도, 사자 굴에 들어가는 위기 앞에서도 정한 시간 습관에 따라 하루 세 번씩 기도하였다. 이 일로 사자 굴에 던져진 다니엘이 무사함으로 그의 신앙이 진실임을 보여준다. 예레미야 선지자 당시에는 애국, 애족한다는 가짜 선지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에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눈물의 기도가 없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눈물의 기도를 통하여 애국, 애족의 선지자임을 보여주었다. 예레미야애가 3:48-49절에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라고 하였다. 교회를 사랑하며 위한다고 말하면서 교회가 교회답지 못함을 비난한다. 현재 교회에 대한 실망으로 가나안 교인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교회를 위한 눈물의 기도가 없다는 것이다. 정말 교회를 위하고 사랑한다면 교회를 위한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한다. 불신자의 가족, 친척, 친구들의 영혼을 위하여 뜨거운 눈물의 기도가 있을 때, 그 영혼을 구원시킬 수 있다. 진짜 신앙인의 눈에는 영혼의 가련함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라야지 군중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 부모가 자식을 위하여 기도할 때 두루뭉실 기도하지 않는다. 이름을 부르며 구구절절이 간절히 기도한다. 전도의 대상자를 놓고 그렇게 기도해야 한다. 전도할 때 앵무새처럼 달달 외워서 전할 것이 아니라 영혼을 사랑하는 뜨거운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말로서 전해야 한다. 전도에는 예수 믿고 체험한 구원의 즐거움과 변화된 나의 삶, 받은 축복 등, 자기만의 간증이 있어야 한다. 진짜와 가짜가 확연히 나타나는 열매 맺는 계절이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7:18절에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하시고 20절에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안다’ 하였다. 나는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가? 내 신앙과 애국 애족, 교회 사랑과 영혼 사랑이 진짜인가 가짜인가? 맺고 있는 열매가 진위를 증명하여 준다. 진짜가 되어야 한다. 눈물의 기도가 꼭 있어야 한다. 눈물의 기도가 없다면 내 신앙과 교회와 영혼 사랑, 애국 애족도 모두 가짜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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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3
  • [박봉석 목사] 가로등을 끄는 이유
    미국에는 팜 스프링스라는 사막 지역의 도시가 있습니다. 이곳은 많은 노인들이 사는 실버타운으로서 유명한 휴양 도시입니다. 그런데 이곳을 가보면 이 도시만의 특별한 것을 경험하게 되는 데 그것은 특별한 구간을 제외하고는 밤에 모든 가로등의 불빛을 끈다는 것입니다. 아니 얼마든지 가로등을 환하게 켤 수 있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인데 왜 캄캄한 밤에 가로등을 끄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막 지대의 가장 아름다운 자연은 밤하늘입니다. 밤하늘에 아름답게 수놓은 별들을 선명하게 보기 위해서 이곳 주민들은 모두의 합의 하에 그렇게 가로등을 끄는 것입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은 그곳 주민들의 그런 결단을 듣고는 모두가 놀란다고 합니다. 높은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잘 보기 위해서 그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있는 가로등을 끄는 불편을 감수하는 주민들의 결단이 결코 예사로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정의를 할 수 있지만 이런 정의는 어떻습니까?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해서 낮은 가치를 포기할 줄 아는 사람” 바로 이 정의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가치이동’을 한 사람입니다.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해서 그보다 낮은 가치를 버릴 줄 아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높은 가치를 위해서 나의 이익과 명예를 기꺼이 포기할 줄 압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물질도 시간도 포기하고 내 위신과 자존심도 버릴 줄 압니다. 사도 바울이 성경 빌립보서 3장 7-8절에서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해서 그보다 낮은 가치를 포기하는 결단을 말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영혼 구원을 위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그리고 주님 말씀을 따르기 위해서 무엇을 포기했습니까? 낮은 가치를 포기하고 높은 가치를 선택할 줄 아는 사람, 땅의 것을 포기해서 하늘의 것을 얻기를 기뻐하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기꺼이 마구간 말구유에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사람입니다. 봄이 되면 비슷한 시기에 피는 꽃이 있는데 벚꽃과 목련꽃입니다. 그 중에 벚꽃은 활짝 만개했다가도 질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나무 가지에서 다 떨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목련꽃은 시들어서 색깔이 변해서 거무칙칙한 색을 띠기까지 나무 가지에 매달려 있습니다. 실제로 꽃이 질 때쯤에 목련꽃을 가까이 가서 보면 색이 바래기 까지 시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생애가 다가도록 놓아야 할 것,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인생들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겠습니다. 파스칼은 말하기를, 인간의 마음속에는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빈 공간’이 있는데 그 공간은 오직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인간들은 그 공간마저 돈과 권력과 명예로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빈 공간은 더욱 커지며 허무와 고독으로 몸서리치게 됩니다. 이 세상 많은 인생들은 포기하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것들 때문에 더 중요하고 존귀한 것들을 놓치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많은 것을 손에 꼭 쥐고 있어서 정작 하나님이 주시려는 선물은 다 받지 못하고 사는 경우가 많이 있는 것이지요. 독자 여러분, 인생의 끄트머리까지 놓지 않고 붙들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지금 붙들고 있지 않아야 하는 데 꼭 붙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기도하며 살펴보십시오. 그 붙들고 있는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포기하면 생각지 못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 진짜 내게 필요했던 신령한 복이 내게 임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마산중부교회 박봉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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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3
  • [신재철 목사] 잘못된 만남
    잘못된 만남 복학 후 교내 크고 작은 예배 모임과 지역교회 집회에 초대받아 함께 예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 인근에 있는 대학에서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예배특강 요청을 받기도 했다. 신학대학원 학생들을 상대로 찬양 콘티 작성법과 예배 인도법에 관한 2시간짜리 특강이다. 마침 신혼여행 일정과 맞물려 고민이 되었는데 선하신 아내님의 허락으로 여행을 1주일 미루고 참여할 수 있었다. 교회 사역을 포함해서 일주일에 찬양 인도를 다섯 번 이상은 고정으로 하는 것 같다.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다니는 것인지 찬양을 섬기러 다니는 것인지 모를 정도의 일정에 고단함도 있지만 좋다. 철가방, 방범대원, 대리운전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교회 청년부예배 강사로 초대를 받았다. 찬양과 말씀을 함께 섬겨달라는 요청이다. 초청해주신 교회의 청년들과 찬양을 연습하며 집회를 준비하는데 담당 교역자가 슬며시 다가와 귓속말을 한다. 부장 집사님 집에서 간단히 식사하고 집회를 시작하자는 제안이 왔다. 강사로 사역을 섬길 때 식사 초대는 여러모로 부담이 있다. 무엇보다 시간이 여유롭지 못함이 가장 큰 이유다. 찬양팀과 맞춰야 할 시간도 부족하고, 배가 부르면 사역에 불편함이 생겨 대부분 식사는 정중히 거절한다. 하지만 난감해하는 청년부 사역자를 보며 식사 자리에 함께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부장 집사님은 이미 안면이 있는 분이다. 칼국수 집에서 일하며 철가방을 들고 다니던 시절. 대부분 배달처는 대학병원이나 사무실이었다. 가정집 배달이 있지만 얼마 되지 않았다. 그중 늘 불평이 많고 배달원을 함부로 대했던 손님. 그 집 배달 요청이 오면 늘 불편했고 인상부터 찌푸려졌다. 피하지 못해 배달을 가 현관문을 열면 ‘예수만 섬기는 집’임을 드러내는 상징이 많았다. ‘벽의 그림, 말씀 액자. 테이블에 올려둔 십자가.’ 은혜로운 셋팅과 다르게 집주인은 고약했다. 늘 음식 타박에 배달원을 무시하는 말투. “예수 믿고도 저 모양이니 예수님이 욕을 먹지.” 빈 배달통을 들고나오며 늘 혀를 찼던 기억이 난다. 배달 일을 그만둔 지가 벌써 몇 년인데 나는 그 아저씨를 기억하고 있었다. ‘아, 내가 다시 이 집에 오게 될 줄이야!’ 둘은 단박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고약한 집주인과 배달부. 아니 이제는 청년부 부장집사와 집회 강사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더 무슨 말을 할까? 형식적인 말들로 식사 자리를 채운다. 애매하고 묘한 감정을 애써 감추며 식사가 시작되었다. “요즘도 칼국수 좋아하세요?” 이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눌러 담았다. 우리는 잘못된 만남이었다. 한 상 잘 차린 식사도, 오가는 은혜로운 말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 이미 서로의 민낯을 보았기에 잔뜩 꾸며진 겉치레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집회 시작을 앞두고 잡힌 식사였기에 긴 시간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짧은 시간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예배는 시작되었고 찬양은 참 은혜로웠다. 청년들은 적극적으로 반응했고 나 역시 행복했다. 찬양, 말씀, 기도. 모든 것이 은혜였고, 행복했고, 감사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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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3
  • [조희완 목사] 봉사의 자세 (벧전4:7-11)
    옛날 러시아의 <니콜라이> 황제(1825년-1855년)가 나라를 다스리던 때 그 나라에 한 충성된 군인 장교가 있었는데 이런 저런 일로 인해서 사람들에게 많은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막사(幕舍)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갚아야 할 빚의 액수를 종이에 적어보다가 액수가 너무 많아서 자기 능력으로는 도저히 그 빚을 갚을 수가 없음을 알고 크게 낙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빚의 액수를 적은 끝에다가 “이 태산 같은 빚을 누가 갚아 줄 이가 있겠는가?”라고 탄식(歎息)하는 글귀를 적어 놓고 잠자리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니콜라이> 황제가 종종 군대를 시찰하고 다녔는데, 마침 황제가 그 부대를 시찰하다가 사병들의 막사를 둘러보던 중에 그 장교가 책상 위에 적어 놓은 탄식하는 글귀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 태산 같은 빚을 누가 갚아 줄 이가 있겠는가?”라는 글귀를 읽고 감동이 되어서 그 밑에다가 “니콜라이 황제”라고 적어 놓고 나갔습니다. 이튿날 아침 그 장교가 일어나서 종이 위에 적혀있는 황제의 이름을 보고 크게 놀랐습니다. 바로 그날 밤에 <니콜라이> 황제가 다시 그 부대를 찾아와서 그 장교가 걱정하고 탄식하던 빚을 다 갚을 만 한 돈을 하사해 주었습니다. 그 장교는 너무나 감격한 나머지 황제와 나라를 위해서 자신의 남은 생애를 다 바쳐서 충성을 했습니다. -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그 보다 더 충성된 믿음으로 헌신하고 봉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보다 더 엄청난 관심과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반드시 주님을 위해서 헌신하고 싶은 마음과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나게 됩니다. 우리가 봉사를 하되 어떻게 봉사해야 할까요? 첫째는, 겸손한 마음으로 봉사해야 합니다.(벧전4:10-11) 둘째는, 받은바 은사대로 봉사해야 합니다.(롬12:4-8) 셋째는, 믿음의 분량대로 봉사해야 합니다.(눅10:40-42) 우리 모두 봉사하는 아름다운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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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3
  • [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0
    사랑과 미움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미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자주 바뀝니다. 사랑의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미워하는 마음은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사랑하면 관계가 좋아지고 미워하면 관계가 깨집니다. 사랑하면 행복해지고 미워하면 불행해집니다. 사랑과 미움은 대조적이며 결과는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사랑하면서 사는 자는 자신이 먼저 기쁘고 감사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얻게 됩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면 마음이 부드럽고 말이 부드럽게 됩니다. 남을 미워하면 마음에 기쁨이 없게 됩니다. 미워하게 되면 마음이 거칠고 언어가 거칠게 됩니다 미움은 살인의 시작입니다. 미움으로 가득찬 리더가 있다면 공동체가 분열되고 무너지게 됩니다. 사랑의 삶을 사는 자는 인생의 마지막이 아름답게 마무리 됩니다. 미움과 시기로 가득 차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닌 사울의 마지막은 비참하게 끝이 났습니다. 사랑의 가족, 공동체 교회 공동체가 축복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사랑이 교회 성장의 비결입니다. 서로 미워하면 갈등이 일어나고, 분열되고, 다투고, 싸우게 되어 공동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랑의 마음이냐, 사단이 주는 미움의 마음이냐 분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랑은 넓은 마음입니다. 미움은 죄성이고 시기 질투입니다. 천국은 사랑만 있고 영원히 사랑하면서 사는 나라입니다. 사랑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미운 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편애하지 말고 골고루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가운데서 용납하라 사랑은 용납하는 것입니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는 것이 넉넉한 사랑입니다.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주는 마음이 사랑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죄인들까지 품으시고 받아주는 사랑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를 초청하시고 예수님께로 오면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시는 사랑의 예수님이십니다. 믿음 약한 자, 의심하는 자, 죄짓고 방황하는 자를 용납하고 받아주는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랑은 편애하거나 차별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편견을 갖지 말고, 편애하지 말고, 인종차별 하지 않아야 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자임을 알고 귀히 여기고 받아주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은 받아줍니다. 용납합 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모든 사람을 용납하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인간은 무시당하고 배척당할 때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됩니다. 이단은 받아들이지 말아야 하나 사람들은 받아주고 용납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탕자가 돌아올 때 받아주고 용납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교회 문턱을 낮추고 세상 사람들이 교회에 올 때 환영해 주고, 받아주고, 용납해 주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사랑의 마음은 넓은 마음, 인간의 영혼을 귀히 여기고 용납하고 받아주는 마음입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인간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것은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을 배척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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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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