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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 부산 서부노회 총대 투표의 민낯
지난 4월 13일에 있었던 부산 서부노회 제70회 정기노회의 총대 투표와 관련해, 노회 안팎에서는 수치스러운 장면들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총대 투표를 앞두고 한 노회원이 발언했다. 핵심은 총대를 파송하지 말고 자숙하자는 것이었다. 최근 교단 전체가 타격을 받은 노회 내 안타까운 사건을 깊이 염두에 둔 겸손하고 적절한 발언이었다. 한국 장로교회 어느 노회가 자숙으로 총대를 파송하지 않은 적이 있었을까? 만약, 이것이 받아들여졌다면 암울한 교회정치판에 그래도 잔잔한 감동을 남기는 이정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분위기는 난잡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수 노회원과 장로 총대들의 놀란 표정과 함께 웅성거리는 소리, 반대라는 목소리, 법이요, 투표요, 온갖 소리가 순간 터져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분명, 이 의견에 속으로 동의하는 자들도 제법 있었겠지만, 다수의 표정과 목소리에 묻혔으리라. 급히 거수로 투표에 들어갔을 때, 은퇴와 퇴임으로 비어있는 총대 자리를 노리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작전(?)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 놀라기라도 했는지에 대한 해석도 제기된다. 단상에서 겸손히 회의를 정리하고 보조해야 할 서기부 4명 중의 3명도 총대 투표를 하자는 의견에 주저주저하며 손을 들어 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의견은 압도적인 반대로 부결되었고, 결국, 멋있게 총대 투표에 들어가 28분의 품격있는 총대들이 선정되었다. 더 수치스러운 상황은 이후에 벌어졌다는 평가다. 사실, 지금 언급할 이 상황은 노회 개회와 함께 먼저 도마 위에 올랐었다. 한 시찰회가, 무슨 의견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긴급안건을 하나 올려 받아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흐름을 보니, 노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이 내용을 미리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회장이 임원들의 의견을 듣지 않으면서까지 이 안건을 반려했다는 설명이 있다. 법적인 근거도 있었다. 노회 규칙상 일반안건은 14일 전에 청원해야 했으나, 10일 전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해당 시찰회는 그걸 다시 긴급안건으로 바꾸어 올렸고, 노회원들과 장로 총대들은 이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받느냐, 받지 않느냐?”로 40분 가까이 설전을 벌여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저녁 속회 후, 이 안건은 다시 도마 위로 올라왔다. 이 안건이 공개되자 노회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안건의 핵심은 이렇다. 노회가 총대를 파송하고, 선출직 후보를 내면서 잘 살피지 못한 죄가 있으니 자숙과 회개의 의미로 일정 기간 선출직 후보를 내는 것을 자제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안건을, 한 시찰회가, 그들의 표현으로 만장일치로 작성해서 올렸다는 것이다. 이미 오후에, 불미스러운 일로 중도 하차하게 된 노회원이 노회 앞에 겸손히 사과하여 노회 장소는 다소 먹먹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교회 노회원들과 장로 총대들이 앉아 있는 자리였다. 해당 교회도 문제 해결을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중이니 조금 더 인내하며, 기도하며 지켜보자는 제안도 이미 있었다. 교회법적으로 타당한 흐름이었다. 또한, 몇 년을 겸손히 선출직 출마를 준비한 노회원과 해당 당회가 앉아 있는 자리였다. 관례상 이미 차기 총회의 회계로 섬길 장로 총대도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노회 전체의 자숙과 회개를 위해 그들 일부의 손발을 묶자는 내용의 안건이 한 시찰회의 담합으로 올라온 것이다. 제안 설명은 더 가관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해하지 마라. 어떤 사람을 겨냥한 청원이 아니다. 이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안다. 반대 의견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라. 이런 자숙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선출직 후보가 오히려 더 떳떳하게 출마할 근거가 된다. 자숙하는 것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어차피 안될 것인데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 시찰의 의견을 존중해주면 좋겠다.” 이런 식의 제안 설명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느끼겠지만 이 청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 자숙과 회개를 일종의 퍼포먼스로 만들었다. “어차피 받아들여지지 않을 내용인데, 선출직 출마자들이 떳떳하게 출마하기 위해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라는 의미를 강조했다. 총대를 보내지 말자고 한 정당한 의견에 관해서는 극렬하게 반대한 시찰이다. 정말 자숙과 회개를 생각했으면 이 안을 낼 것이 아니라, 총대를 보내지 말자는 의견을 따랐어야 했다. 후자의 의견에는 극렬히 반대했으면서 전자의 의견을 다시 내는 수치스러운 짓이었다. 둘째,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고 자숙해야 할 문제를 일부 노회원과 총대에게만 전가했다는 것이다. 성경 어디에 이런 식의 회개와 자숙이 있던가? 이 의견을 낸 시찰은 결국 5명의 총대를 보내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본인들은 무슨 자숙과 책임을 지게 되었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지라는 의견을 내고, 결정하는 것이 그들의 자숙과 회개이던가? 셋째, 노회를 기만하고, 말씀의 원리에 관한 존중이 전혀 없고, 노회를 오히려 기만한 것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안 될 줄 알고 올렸다”??? 그럼 올리지 말아야 했다. 시작부터 40분의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노회원들의 울화통을 터지게 했으며, 일부 노회원들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안기는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될 것을 알았다.”라니? “노회의 화합”을 운운했지만, 오히려 분열을 일으켰다. 여기에 형제를 배려하는 것이 있나? 보여주기식 회개가 성경적인가? 이 안건을 냈다면, 법과 절차를 따지기 전에 노회장을 비롯한 임원회는 마땅히 꾸짖어 기각이든, 반려하는 것이 교회법적 정신에 더 부합한다. 노회장 손에는 성경이 있었고, 교회법적 정신이 있었는데, 임원들 손에는 그것이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해당 시찰회의 손은 말할 것도 없다. 넷째, 형제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협잡에 지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아무리 제안 설명하며 아니라고 해도, 해당 형제들과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마음으로 아파하는 형제들이 가득 앉아 있는 자리였다는 점이 강조된다. 분명 그들 대부분은 분개하고, 부담을 느끼고, 참담함을 느꼈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 청원의 부당함에 관해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동안 그 반대 의견을 다시 반대하는 다른 시찰 회원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도 이러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언급된다. 몇 차례 높은 언성의 반대 의견이 나오고, 다시 대응하는 해당 시찰회 소속 목사들의 의견이 있고 난 뒤, 다른 시찰에 속한 한 노회원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이 의견을 반려하자고 제안했고, 이후 해당 시찰회는 모든 의견을 접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개를 두고 일각에서는 짜여진 듯한 흐름이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이런 그림은, 지금 항간에 떠도는 소문, 즉, 그 잘못과 실수를 빌미로 정치적으로 해당 목사를 완전히 무너뜨리려고 했다는 해석과 맞닿아 있다는 시각도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시찰부원 전원이 알고 했든지, 모르고 했든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번 부산 서부노회 총회 총대에는 유지재단 이사로 봉사하는 장로 총대가 낙마했다. 선배 장로이자, 그간 덕망 있고, 존경받으며, 겸손히 노회와 총회를 섬기던 장로 총대도 낙마했다. 노회원들도 잘 모르는, 어쩌면 총회로 가서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총대도 몇 사람이나 선정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총회 헌법위원이고, 노회 전입으로는 가장 오래된 노회원도 14명 중 13번으로 겨우 붙었다. 정기노회가 많이 남아 있을때부터 낙선시키자는 말까지 돌던 노회원이었다. 치열한 표 싸움과 힘 대결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건 앞에 언급한 수치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덤이다. 부산 서부노회 총대는 이제 벼슬이고, 부산 서부노회는 쇼맨십으로 노회를 운영하며, 부산 서부노회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수치스러운 노회가 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현주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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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교회의 결정, 교회가 책임진다
포도원교회가 공동의회를 통해 김문훈 목사를 원로목사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적법한 절차와 다수의 찬성을 거쳐 내려진 이번 결정을 두고 교회 안팎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한 인사 논란으로만 볼 사안이 아니다. 이는 한 공동체가 자신들의 목회 역사와 사역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신앙적 판단이며, 동시에 교회 정치의 영역에 속한 문제다. 이미 확인된 바와 같이, 해당 공동의회는 교단 헌법과 교회 정관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되었고, 다수의 성도가 참여한 가운데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번 결정은 절차적 정당성과 공동체적 합의를 모두 갖추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이 결정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원로목사 추대는 본질적으로 누구의 권한인가. 교회의 일은 교회가 결정하는 것이 개혁교회 정치의 기본 원리다. 외부 여론이 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 더욱이 원로목사 추대는 완전무결한 인물에 대한 시상이 아니라, 한 목회자가 오랜 시간 교회를 섬긴 공로를 교회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공동체적 고백에 가깝다. 인간의 연약함이 드러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사역의 시간을 지워버리는 것이 과연 성경적 태도인가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성경은 죄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동시에 회개한 자를 향한 공동체의 태도 또한 중요하게 다룬다. 징계와 회복, 책임과 은혜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긴장 속에서 함께 서 있어야 할 진리다. 특히 교회는 세상보다 더 엄격한 공동체이면서도, 동시에 세상보다 더 깊은 관용을 보여야 하는 공동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전서 13:4-7)라는 말씀은, 죄를 덮어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회개한 자를 향한 공동체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번 포도원교회의 결정은 바로 그 지점을 보여준다. 잘못에 대한 책임은 이미 감당되었고, 그 이후의 평가는 공동체가 내렸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과거의 헌신을 기억하기로 선택했다. 물론 모든 성도가 동일한 생각을 가질 수는 없다. 반대와 기권의 의견 역시 공동체 안에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다수의 결정이 내려진 이상, 그 결정을 교회 밖에서 반복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는 건강한 교회론과는 거리가 있다. 교회는 여론으로 움직이는 기관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서, 말씀과 질서 안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공동체다. 때로는 논쟁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공동체가 스스로의 결정을 감당해 나가는 책임과, 회개한 자를 향한 공동체의 태도다.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 어디까지 정죄하고 어디서부터 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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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 김 모 목사 사건, 책임과 회복 사이에서 고신은?
최근 한 목회자의 과거 언행이 문제로 제기되었고, 그 여파로 해당 목회자가 직을 내려놓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당사자는 잘못을 인정했고 공식 사과를 발표했다. 일정 부분 책임은 분명해졌다. 목회자의 언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상처를 남겼다면 그것은 분명한 문제이며, 교회는 죄를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잘못은 지적되어야 하고, 책임은 져야 한다. 그러나 사건은 단순히 여기서 끝나는가. 보도가 확산되는 과정은 유난히 빠르고 집요했다. 자료의 전달 경로, 취재의 방향, 시점의 절묘함을 두고 교단 안팎에서 여러 해석이 오가고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추측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사건이 자연 발생적 문제 제기였다면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일정한 목적을 가진 흐름이 작동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만약 누군가의 의도와 계산이 개입된 일이라면, 그 역시 하나님 앞에서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은 오직 한 사람의 언행 문제로만 이해되어야 하는가? 회개는 한 사람만의 몫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다뤄야 한다. 죄를 책망하되, 회개를 외면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돌이키고 책임을 인정했다면, 교회는 그 다음을 고민해야 한다. 회복의 길을 열 것인가, 아니면 완전한 배제를 선택할 것인가. 잘못이 드러난 자도 하나님 앞에 서야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다른 목적을 품고 이 일을 움직였다면 그 또한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회는 행위뿐 아니라 동기도 살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책임은 분명히 묻되, 회개하는 자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허락하는 것. 그것이 교회의 방식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한 번의 잘못으로 남은 사역의 가능성까지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정의라면, 교회는 회개의 자리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분노가 아니라 더 깊은 분별이다. 죄는 책망하되, 회개는 붙드는 공동체. 그것이 복음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길이다. 김현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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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팩트체크는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봐야 한다
헌재가 2007헌마1189 결정에서 밝힌 “개방감사는 선택 여지 없이 추천 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부분은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합헌 결론을 뒷받침하는 핵심 법리로서, 여전히 유효한 기준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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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고신총회 선거운동, 세속화 우려와 필요한 균형
고신 총회의 선거를 두고 내부에서 “세속 정치의 축소판”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후보자의 출마 소견 발표와 지지 연설, 그리고 노회별 조직 활동이 과열되면서 교단 초창기의 순결한 정신에서 멀어졌다는 우려다. 실제로 권력 다툼처럼 비치는 장면들이 신앙 공동체의 거룩함을 흐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문제 제기는 경청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해법으로 제시되는 대안—경쟁 선거를 없애고 ‘청빙형 구조’로 전환하거나, 모든 선거운동을 전면 금지하고, 오직 기도만으로 지도자를 세우자는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교단이 수천 교회와 수만 성도를 아우르는 규모로 성장한 상황에서,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다면 총대들의 올바른 분별이 어려워진다. 선거운동을 막는 것이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밑 인맥 정치와 폐쇄적 추천 구조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 □ 맛디아 선출의 성경적 교훈 흔히 ‘세속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맛디아를 뽑듯”이라며 하나님의 뜻에 의탁해 지도자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성경 본문을 면밀히 살펴보면, 맛디아 선출은 단순한 영적 의탁만이 아니라 분명한 절차와 기도가 함께 작동한 사건이었다. 사도행전 1장은 네 단계로 분명히 전개된다. 1. 자격 기준 설정: 베드로는 예수님의 세례부터 승천까지 동행한 자만이 사도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행 1:21-22). 이는 오늘날의 후보 자격 심사와 같다. 2. 후보 추천: 공동체는 요셉(바사바, 유스도)과 맛디아 두 사람을 후보로 세웠다(행 1:23). 이는 공동체적 검증의 절차였다. 3. 기도: 사도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누가 주님의 택하신 자인지 보이소서”라고 간구했다(행 1:24-25). 4. 제비뽑기: 공동체는 제비뽑기를 통해 최종 결정을 내렸다(행 1:26). 이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공정성과 하나님의 뜻을 함께 드러내는 제도적 장치였다. 즉, 맛디아 선출은 기도+기준+절차가 어우러진 사건이었다. 단순한 초자연적 계시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규칙을 정하고 사람을 세운 후,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오늘날 교단 선거 제도가 후보 자격 심사, 소견 발표, 기도, 투표를 거쳐 지도자를 세우는 과정과 원리적으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맛디아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오히려 현행 선거 제도를 정당화하는 성경적 근거가 될 수 있다. □ 민주적 절차의 성경적 정당성 맛디아 사건뿐 아니라, 사도행전 6장의 집사 선출도 교회의 민주적 절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본문이다.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소외되자 사도들은 온 회중을 불러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너희 가운데서 택하라”(행 6:3)고 요청했다. 공동체는 직접 참여하여 일곱 사람을 선택했고, 사도들은 기도하며 안수했다. 이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공정성을 보장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적 행위였다. 사도 바울 또한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고 교훈했다. 교회의 질서와 절차를 존중하는 것이 곧 성경적 원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교회 정치에서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는 것은 세속화가 아니라, 성경이 보여준 질서와 공동체 참여 원리를 오늘날에 구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회의 거룩성은 절차 자체를 거부하는 데 있지 않고, 절차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공정하게 운영하는 것에 있다. □ 정체성 회복, 구호로는 부족하다 정체성 회복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고신이다”라는 구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사참배 거부와 교단 분립의 정신을 오늘에 계승하려면,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 속에서 제도적 정직성과 투명성을 구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부 결속만 강화하고 실제 개혁은 이루지 못하는 공허한 구호에 머물 위험이 있다. □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태도 결국 문제는 제도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운용하는 태도와 방식에 있다. 과열 경쟁과 파벌주의를 경계하는 한편, 후보자의 비전과 신앙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선거운동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절제되게 운영하는 것이다. 고신은 초창기부터 세상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복음의 순결을 지켜온 저항 공동체였다. 그 전통을 오늘에 적용한다는 것은 곧 기도와 제도를 함께 붙들고, 어떤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정직한 태도로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다. 총회 직분은 권력이 아니라 섬김의 자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때, 고신은 다시 신뢰받는 교단으로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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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학교법인 고려학원 개방감사 선임이 세 차례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방감사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분을 고려학원 이사회가 표결로 두 차례나 부결시켰고, 한 차례는 아예 안건으로 상정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올해 1월, 추천위원회로부터 추천받은 분이 올해 총회를 위한 선거 활동이 이미 시작된 현시점까지도 일하지 못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개방감사제도는 학교법인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좋은 사회적 제도이다. 개방 감사가 제대로 일을 해야 사립학교 법인의 운영이 투명해진다. 개방 감사는 그야말로 '개방'이다. 학교법인 이사회 외에 ‘외부’ 전문가나 관련 분야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감사로 선임하여 학교법인 이사회 구석구석을 살핀다. 이사회의 운영, 재정 상황 등을 살펴 투명성을 확보한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난다면 외부 기관이나 이해관계자가 조처할 수 있도록 정보를 '개방(?)'한다. 이런 중요성이 있기에 개방 감사 추천 시 준비된 전문가를 추천하고, 결격 사유가 있는지를 자세히 살피는 것이다. 특별히 학교법인 고려학원은 여타 사립학교와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신학과 신앙에 기초하고, 교회의 대사회적 책무라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어떤 사립학교보다 더 공공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하지 않은가? 왜 개방 감사 선임을 의도적으로 막고, 또 미루고 있는가? 심지어 1월에 모였던 추천위원회에는 고려학원 이사회에서 파송한 위원이 3명이나 있지 않았는가? 그 추천위원회 위원장도 이사였다. 이사회에서 7명의 추천위에 3명의 이사를 파송한 것 자체가 추천위의 결정을 받아들이겠다는 선 결정이다. 그래서 학원이사회가 존속한 오늘까지 추천위에서 결정된 개방 이사를 박수로 받아 왔던 것이다. 자기 부정도 이런 부정이 없다. 무엇이 갑자기 "두려워 숨고"(창3:10) 있냐는 것이다. 특히, 이 시대는 소통의 시대, 원활한 대화의 시대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 학교법인 고려학원은 소통이 막혀있고, 대화가 단절된 듯하다. 내부적으로만 전전긍긍하는 자기들만의 소통만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심을 지울 수 없게끔 만든다. 이사회의 이런 행보는 교회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행위이다. 개방 감사 미선임은 사립학교법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과거 고려학원은 부도났었다. 관선 이사 체제로 운영되는 수치를 겪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나은가? 무엇이 두려워 숨었나? 이사장도 개방 감사 본인에게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다고 몇 차례나 말했고 당연히 선임될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한다. 결국 이사장은 수차례에 걸쳐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거짓말했다. 그렇다면 부결로 선임을 막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이 두려워 숨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가? 글. 김현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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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 부산 서부노회 총대 투표의 민낯
- 지난 4월 13일에 있었던 부산 서부노회 제70회 정기노회의 총대 투표와 관련해, 노회 안팎에서는 수치스러운 장면들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총대 투표를 앞두고 한 노회원이 발언했다. 핵심은 총대를 파송하지 말고 자숙하자는 것이었다. 최근 교단 전체가 타격을 받은 노회 내 안타까운 사건을 깊이 염두에 둔 겸손하고 적절한 발언이었다. 한국 장로교회 어느 노회가 자숙으로 총대를 파송하지 않은 적이 있었을까? 만약, 이것이 받아들여졌다면 암울한 교회정치판에 그래도 잔잔한 감동을 남기는 이정표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분위기는 난잡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다수 노회원과 장로 총대들의 놀란 표정과 함께 웅성거리는 소리, 반대라는 목소리, 법이요, 투표요, 온갖 소리가 순간 터져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분명, 이 의견에 속으로 동의하는 자들도 제법 있었겠지만, 다수의 표정과 목소리에 묻혔으리라. 급히 거수로 투표에 들어갔을 때, 은퇴와 퇴임으로 비어있는 총대 자리를 노리기라도 했는지, 아니면, 작전(?)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에 놀라기라도 했는지에 대한 해석도 제기된다. 단상에서 겸손히 회의를 정리하고 보조해야 할 서기부 4명 중의 3명도 총대 투표를 하자는 의견에 주저주저하며 손을 들어 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의견은 압도적인 반대로 부결되었고, 결국, 멋있게 총대 투표에 들어가 28분의 품격있는 총대들이 선정되었다. 더 수치스러운 상황은 이후에 벌어졌다는 평가다. 사실, 지금 언급할 이 상황은 노회 개회와 함께 먼저 도마 위에 올랐었다. 한 시찰회가, 무슨 의견인지는 밝히지 않은 채, 긴급안건을 하나 올려 받아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흐름을 보니, 노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이 내용을 미리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회장이 임원들의 의견을 듣지 않으면서까지 이 안건을 반려했다는 설명이 있다. 법적인 근거도 있었다. 노회 규칙상 일반안건은 14일 전에 청원해야 했으나, 10일 전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해당 시찰회는 그걸 다시 긴급안건으로 바꾸어 올렸고, 노회원들과 장로 총대들은 이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받느냐, 받지 않느냐?”로 40분 가까이 설전을 벌여야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저녁 속회 후, 이 안건은 다시 도마 위로 올라왔다. 이 안건이 공개되자 노회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안건의 핵심은 이렇다. 노회가 총대를 파송하고, 선출직 후보를 내면서 잘 살피지 못한 죄가 있으니 자숙과 회개의 의미로 일정 기간 선출직 후보를 내는 것을 자제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안건을, 한 시찰회가, 그들의 표현으로 만장일치로 작성해서 올렸다는 것이다. 이미 오후에, 불미스러운 일로 중도 하차하게 된 노회원이 노회 앞에 겸손히 사과하여 노회 장소는 다소 먹먹한 분위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교회 노회원들과 장로 총대들이 앉아 있는 자리였다. 해당 교회도 문제 해결을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는 중이니 조금 더 인내하며, 기도하며 지켜보자는 제안도 이미 있었다. 교회법적으로 타당한 흐름이었다. 또한, 몇 년을 겸손히 선출직 출마를 준비한 노회원과 해당 당회가 앉아 있는 자리였다. 관례상 이미 차기 총회의 회계로 섬길 장로 총대도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노회 전체의 자숙과 회개를 위해 그들 일부의 손발을 묶자는 내용의 안건이 한 시찰회의 담합으로 올라온 것이다. 제안 설명은 더 가관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오해하지 마라. 어떤 사람을 겨냥한 청원이 아니다. 이 청원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안다. 반대 의견이 있으면 얼마든지 해라. 이런 자숙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선출직 후보가 오히려 더 떳떳하게 출마할 근거가 된다. 자숙하는 것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어차피 안될 것인데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우리 시찰의 의견을 존중해주면 좋겠다.” 이런 식의 제안 설명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느끼겠지만 이 청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 자숙과 회개를 일종의 퍼포먼스로 만들었다. “어차피 받아들여지지 않을 내용인데, 선출직 출마자들이 떳떳하게 출마하기 위해 이 과정을 거치는 것이 좋다.”라는 의미를 강조했다. 총대를 보내지 말자고 한 정당한 의견에 관해서는 극렬하게 반대한 시찰이다. 정말 자숙과 회개를 생각했으면 이 안을 낼 것이 아니라, 총대를 보내지 말자는 의견을 따랐어야 했다. 후자의 의견에는 극렬히 반대했으면서 전자의 의견을 다시 내는 수치스러운 짓이었다. 둘째,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고 자숙해야 할 문제를 일부 노회원과 총대에게만 전가했다는 것이다. 성경 어디에 이런 식의 회개와 자숙이 있던가? 이 의견을 낸 시찰은 결국 5명의 총대를 보내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본인들은 무슨 자숙과 책임을 지게 되었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지라는 의견을 내고, 결정하는 것이 그들의 자숙과 회개이던가? 셋째, 노회를 기만하고, 말씀의 원리에 관한 존중이 전혀 없고, 노회를 오히려 기만한 것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안 될 줄 알고 올렸다”??? 그럼 올리지 말아야 했다. 시작부터 40분의 시간을 허비하게 하고, 노회원들의 울화통을 터지게 했으며, 일부 노회원들에게 엄청난 부담감을 안기는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될 것을 알았다.”라니? “노회의 화합”을 운운했지만, 오히려 분열을 일으켰다. 여기에 형제를 배려하는 것이 있나? 보여주기식 회개가 성경적인가? 이 안건을 냈다면, 법과 절차를 따지기 전에 노회장을 비롯한 임원회는 마땅히 꾸짖어 기각이든, 반려하는 것이 교회법적 정신에 더 부합한다. 노회장 손에는 성경이 있었고, 교회법적 정신이 있었는데, 임원들 손에는 그것이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해당 시찰회의 손은 말할 것도 없다. 넷째, 형제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 협잡에 지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아무리 제안 설명하며 아니라고 해도, 해당 형제들과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마음으로 아파하는 형제들이 가득 앉아 있는 자리였다는 점이 강조된다. 분명 그들 대부분은 분개하고, 부담을 느끼고, 참담함을 느꼈을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이 청원의 부당함에 관해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동안 그 반대 의견을 다시 반대하는 다른 시찰 회원들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도 이러한 분위기를 보여주는 대목으로 언급된다. 몇 차례 높은 언성의 반대 의견이 나오고, 다시 대응하는 해당 시찰회 소속 목사들의 의견이 있고 난 뒤, 다른 시찰에 속한 한 노회원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와 이 의견을 반려하자고 제안했고, 이후 해당 시찰회는 모든 의견을 접고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개를 두고 일각에서는 짜여진 듯한 흐름이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이런 그림은, 지금 항간에 떠도는 소문, 즉, 그 잘못과 실수를 빌미로 정치적으로 해당 목사를 완전히 무너뜨리려고 했다는 해석과 맞닿아 있다는 시각도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시찰부원 전원이 알고 했든지, 모르고 했든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번 부산 서부노회 총회 총대에는 유지재단 이사로 봉사하는 장로 총대가 낙마했다. 선배 장로이자, 그간 덕망 있고, 존경받으며, 겸손히 노회와 총회를 섬기던 장로 총대도 낙마했다. 노회원들도 잘 모르는, 어쩌면 총회로 가서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총대도 몇 사람이나 선정되었다는 평가가 있다. 총회 헌법위원이고, 노회 전입으로는 가장 오래된 노회원도 14명 중 13번으로 겨우 붙었다. 정기노회가 많이 남아 있을때부터 낙선시키자는 말까지 돌던 노회원이었다. 치열한 표 싸움과 힘 대결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건 앞에 언급한 수치에 숟가락 하나 더 얹는 덤이다. 부산 서부노회 총대는 이제 벼슬이고, 부산 서부노회는 쇼맨십으로 노회를 운영하며, 부산 서부노회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수치스러운 노회가 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현주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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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 부산 서부노회 총대 투표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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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교회의 결정, 교회가 책임진다
- 포도원교회가 공동의회를 통해 김문훈 목사를 원로목사로 추대하기로 결정했다. 적법한 절차와 다수의 찬성을 거쳐 내려진 이번 결정을 두고 교회 안팎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순한 인사 논란으로만 볼 사안이 아니다. 이는 한 공동체가 자신들의 목회 역사와 사역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신앙적 판단이며, 동시에 교회 정치의 영역에 속한 문제다. 이미 확인된 바와 같이, 해당 공동의회는 교단 헌법과 교회 정관에 따라 적법하게 진행되었고, 다수의 성도가 참여한 가운데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번 결정은 절차적 정당성과 공동체적 합의를 모두 갖추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에서 이 결정을 문제 삼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원로목사 추대는 본질적으로 누구의 권한인가. 교회의 일은 교회가 결정하는 것이 개혁교회 정치의 기본 원리다. 외부 여론이 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 더욱이 원로목사 추대는 완전무결한 인물에 대한 시상이 아니라, 한 목회자가 오랜 시간 교회를 섬긴 공로를 교회가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공동체적 고백에 가깝다. 인간의 연약함이 드러났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사역의 시간을 지워버리는 것이 과연 성경적 태도인가에 대해서는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성경은 죄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을 요구한다. 그러나 동시에 회개한 자를 향한 공동체의 태도 또한 중요하게 다룬다. 징계와 회복, 책임과 은혜는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긴장 속에서 함께 서 있어야 할 진리다. 특히 교회는 세상보다 더 엄격한 공동체이면서도, 동시에 세상보다 더 깊은 관용을 보여야 하는 공동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린도전서 13:4-7)라는 말씀은, 죄를 덮어버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회개한 자를 향한 공동체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이번 포도원교회의 결정은 바로 그 지점을 보여준다. 잘못에 대한 책임은 이미 감당되었고, 그 이후의 평가는 공동체가 내렸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과거의 헌신을 기억하기로 선택했다. 물론 모든 성도가 동일한 생각을 가질 수는 없다. 반대와 기권의 의견 역시 공동체 안에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다수의 결정이 내려진 이상, 그 결정을 교회 밖에서 반복적으로 부정하는 태도는 건강한 교회론과는 거리가 있다. 교회는 여론으로 움직이는 기관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서, 말씀과 질서 안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책임지는 공동체다. 때로는 논쟁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공동체가 스스로의 결정을 감당해 나가는 책임과, 회개한 자를 향한 공동체의 태도다. 우리는 과연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로서, 어디까지 정죄하고 어디서부터 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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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교회의 결정, 교회가 책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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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 김 모 목사 사건, 책임과 회복 사이에서 고신은?
- 최근 한 목회자의 과거 언행이 문제로 제기되었고, 그 여파로 해당 목회자가 직을 내려놓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당사자는 잘못을 인정했고 공식 사과를 발표했다. 일정 부분 책임은 분명해졌다. 목회자의 언어는 결코 가볍지 않다. 상처를 남겼다면 그것은 분명한 문제이며, 교회는 죄를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잘못은 지적되어야 하고, 책임은 져야 한다. 그러나 사건은 단순히 여기서 끝나는가. 보도가 확산되는 과정은 유난히 빠르고 집요했다. 자료의 전달 경로, 취재의 방향, 시점의 절묘함을 두고 교단 안팎에서 여러 해석이 오가고 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추측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이 사건이 자연 발생적 문제 제기였다면 설명되지 않는 장면들이 적지 않다. 일정한 목적을 가진 흐름이 작동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만약 누군가의 의도와 계산이 개입된 일이라면, 그 역시 하나님 앞에서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다. 이 사건은 오직 한 사람의 언행 문제로만 이해되어야 하는가? 회개는 한 사람만의 몫이 아니다. 교회는 세상과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다뤄야 한다. 죄를 책망하되, 회개를 외면하지 않는다. 당사자가 돌이키고 책임을 인정했다면, 교회는 그 다음을 고민해야 한다. 회복의 길을 열 것인가, 아니면 완전한 배제를 선택할 것인가. 잘못이 드러난 자도 하나님 앞에 서야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다른 목적을 품고 이 일을 움직였다면 그 또한 하나님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교회는 행위뿐 아니라 동기도 살피시는 하나님을 믿는다. 책임은 분명히 묻되, 회개하는 자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허락하는 것. 그것이 교회의 방식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한 번의 잘못으로 남은 사역의 가능성까지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 정의라면, 교회는 회개의 자리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분노가 아니라 더 깊은 분별이다. 죄는 책망하되, 회개는 붙드는 공동체. 그것이 복음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길이다. 김현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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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시선] 김 모 목사 사건, 책임과 회복 사이에서 고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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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팩트체크는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봐야 한다
- 헌재가 2007헌마1189 결정에서 밝힌 “개방감사는 선택 여지 없이 추천 인사를 선임해야 한다”는 부분은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합헌 결론을 뒷받침하는 핵심 법리로서, 여전히 유효한 기준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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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팩트체크는 일부가 아니라 전부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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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고신총회 선거운동, 세속화 우려와 필요한 균형
- 고신 총회의 선거를 두고 내부에서 “세속 정치의 축소판”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후보자의 출마 소견 발표와 지지 연설, 그리고 노회별 조직 활동이 과열되면서 교단 초창기의 순결한 정신에서 멀어졌다는 우려다. 실제로 권력 다툼처럼 비치는 장면들이 신앙 공동체의 거룩함을 흐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문제 제기는 경청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해법으로 제시되는 대안—경쟁 선거를 없애고 ‘청빙형 구조’로 전환하거나, 모든 선거운동을 전면 금지하고, 오직 기도만으로 지도자를 세우자는 주장—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교단이 수천 교회와 수만 성도를 아우르는 규모로 성장한 상황에서,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전혀 알 수 없다면 총대들의 올바른 분별이 어려워진다. 선거운동을 막는 것이 공정성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물밑 인맥 정치와 폐쇄적 추천 구조를 강화할 위험이 있다. □ 맛디아 선출의 성경적 교훈 흔히 ‘세속화’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맛디아를 뽑듯”이라며 하나님의 뜻에 의탁해 지도자를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성경 본문을 면밀히 살펴보면, 맛디아 선출은 단순한 영적 의탁만이 아니라 분명한 절차와 기도가 함께 작동한 사건이었다. 사도행전 1장은 네 단계로 분명히 전개된다. 1. 자격 기준 설정: 베드로는 예수님의 세례부터 승천까지 동행한 자만이 사도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규정했다(행 1:21-22). 이는 오늘날의 후보 자격 심사와 같다. 2. 후보 추천: 공동체는 요셉(바사바, 유스도)과 맛디아 두 사람을 후보로 세웠다(행 1:23). 이는 공동체적 검증의 절차였다. 3. 기도: 사도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누가 주님의 택하신 자인지 보이소서”라고 간구했다(행 1:24-25). 4. 제비뽑기: 공동체는 제비뽑기를 통해 최종 결정을 내렸다(행 1:26). 이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공정성과 하나님의 뜻을 함께 드러내는 제도적 장치였다. 즉, 맛디아 선출은 기도+기준+절차가 어우러진 사건이었다. 단순한 초자연적 계시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규칙을 정하고 사람을 세운 후,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오늘날 교단 선거 제도가 후보 자격 심사, 소견 발표, 기도, 투표를 거쳐 지도자를 세우는 과정과 원리적으로 다르지 않다. 따라서 “맛디아 전통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오히려 현행 선거 제도를 정당화하는 성경적 근거가 될 수 있다. □ 민주적 절차의 성경적 정당성 맛디아 사건뿐 아니라, 사도행전 6장의 집사 선출도 교회의 민주적 절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본문이다.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에서 소외되자 사도들은 온 회중을 불러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너희 가운데서 택하라”(행 6:3)고 요청했다. 공동체는 직접 참여하여 일곱 사람을 선택했고, 사도들은 기도하며 안수했다. 이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공정성을 보장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적 행위였다. 사도 바울 또한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고전 14:40)고 교훈했다. 교회의 질서와 절차를 존중하는 것이 곧 성경적 원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교회 정치에서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는 것은 세속화가 아니라, 성경이 보여준 질서와 공동체 참여 원리를 오늘날에 구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회의 거룩성은 절차 자체를 거부하는 데 있지 않고, 절차 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공정하게 운영하는 것에 있다. □ 정체성 회복, 구호로는 부족하다 정체성 회복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고신이다”라는 구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사참배 거부와 교단 분립의 정신을 오늘에 계승하려면, 단순한 과거 회귀가 아니라 오늘의 현실 속에서 제도적 정직성과 투명성을 구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부 결속만 강화하고 실제 개혁은 이루지 못하는 공허한 구호에 머물 위험이 있다. □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태도 결국 문제는 제도 그 자체라기보다, 그것을 운용하는 태도와 방식에 있다. 과열 경쟁과 파벌주의를 경계하는 한편, 후보자의 비전과 신앙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선거운동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절제되게 운영하는 것이다. 고신은 초창기부터 세상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복음의 순결을 지켜온 저항 공동체였다. 그 전통을 오늘에 적용한다는 것은 곧 기도와 제도를 함께 붙들고, 어떤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정직한 태도로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다. 총회 직분은 권력이 아니라 섬김의 자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을 때, 고신은 다시 신뢰받는 교단으로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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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고신총회 선거운동, 세속화 우려와 필요한 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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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 학교법인 고려학원 개방감사 선임이 세 차례 무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방감사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분을 고려학원 이사회가 표결로 두 차례나 부결시켰고, 한 차례는 아예 안건으로 상정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올해 1월, 추천위원회로부터 추천받은 분이 올해 총회를 위한 선거 활동이 이미 시작된 현시점까지도 일하지 못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개방감사제도는 학교법인의 공공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좋은 사회적 제도이다. 개방 감사가 제대로 일을 해야 사립학교 법인의 운영이 투명해진다. 개방 감사는 그야말로 '개방'이다. 학교법인 이사회 외에 ‘외부’ 전문가나 관련 분야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을 감사로 선임하여 학교법인 이사회 구석구석을 살핀다. 이사회의 운영, 재정 상황 등을 살펴 투명성을 확보한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난다면 외부 기관이나 이해관계자가 조처할 수 있도록 정보를 '개방(?)'한다. 이런 중요성이 있기에 개방 감사 추천 시 준비된 전문가를 추천하고, 결격 사유가 있는지를 자세히 살피는 것이다. 특별히 학교법인 고려학원은 여타 사립학교와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신학과 신앙에 기초하고, 교회의 대사회적 책무라는 사명을 짊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어떤 사립학교보다 더 공공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하지 않은가? 왜 개방 감사 선임을 의도적으로 막고, 또 미루고 있는가? 심지어 1월에 모였던 추천위원회에는 고려학원 이사회에서 파송한 위원이 3명이나 있지 않았는가? 그 추천위원회 위원장도 이사였다. 이사회에서 7명의 추천위에 3명의 이사를 파송한 것 자체가 추천위의 결정을 받아들이겠다는 선 결정이다. 그래서 학원이사회가 존속한 오늘까지 추천위에서 결정된 개방 이사를 박수로 받아 왔던 것이다. 자기 부정도 이런 부정이 없다. 무엇이 갑자기 "두려워 숨고"(창3:10) 있냐는 것이다. 특히, 이 시대는 소통의 시대, 원활한 대화의 시대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 학교법인 고려학원은 소통이 막혀있고, 대화가 단절된 듯하다. 내부적으로만 전전긍긍하는 자기들만의 소통만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심을 지울 수 없게끔 만든다. 이사회의 이런 행보는 교회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받아들여질 수 없는 행위이다. 개방 감사 미선임은 사립학교법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과거 고려학원은 부도났었다. 관선 이사 체제로 운영되는 수치를 겪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나은가? 무엇이 두려워 숨었나? 이사장도 개방 감사 본인에게 아무런 결격 사유가 없다고 몇 차례나 말했고 당연히 선임될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한다. 결국 이사장은 수차례에 걸쳐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거짓말했다. 그렇다면 부결로 선임을 막는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이 두려워 숨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이 두렵지 않은가? 글. 김현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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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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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공의 없는 회의, 노회는 누구의 것인가
- 장로교회는 회의체 교회이다. 당회, 노회, 총회에 이르기까지 모든 치리는 회의를 통해 이뤄진다. 그렇다면 그 회의의 질서는 곧 교회의 질서이며, 그 공정성은 곧 교회의 양심이어야 한다. 회의가 무너지면 교회의 신뢰도 함께 무너진다. 최근 경남의 예장 합동 총회 산하 한 노회 회무에서 참담한 회의 절차의 왜곡이 벌어졌다. 정식 안건 상정 없이, 임원회의 결정만으로 총회 총대 후보로서의 피선거권이 박탈되었고, 당사자는 해명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심지어 이의를 제기하거나 의사진행 발언을 요청한 다른 노회원들의 발언권마저 제한되었다. 정회 후 속회된 본회의에서 한 노회원이 여러 명의 서명이 날인된 연명부와 함께 이의를 제기하는 안건을 정식으로 상정했지만, 신임 노회장은 ‘이미 결정된 사안이며 24시간 이내에는 재논의할 수 없다’는 이의제기를 인정해 기각해버렸다. (※ 노회 규칙 또는 총회 헌법, 만국통상회의법에서 '24시간 이내 재론 불가'의 근거가 되는 조항은 찾을 수 없었다.) 임원선거를 앞두고 정회를 하기 전에는 노회장이 선거관리위원장에게 제척사유가 있다며 “파면”을 선언했다. 당시 노회장은 “선거관리위원회는 일시적인 기관이며, 선거 후 해체되는 조직이다”, “선관위가 부정을 저질렀기에 노회에서 제지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선관위원장의 직을 박탈했다. 그러나 해당 노회 규칙 제16조 5항에 따르면 선거관리위원장은 직전 노회장이 맡게 되어 있으며, 이는 임명직이 아니라 규칙으로 정해진 직책이다. 이러한 결정이 회의 결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은 절차의 정당성을 크게 훼손한 것이다. 선거의 공정성은 구성원의 신뢰로 유지되며, 위임된 권한은 결코 자의적으로 행사되어서는 안 된다. 이 두 사례는 모두 명백히 헌법과 회의법 모두에 반하는 처사다. 예장(합동) 헌법 정치편은 노회가 회의체임을 선언하고 있으며, 모든 결의는 회의 구성원의 다수결에 따라야 한다고 밝힌다. 회의의 절차는 노회 규칙을 따르며, 규칙에 명시되지 않은 미비한 부분에 있어서는 만국통상회의법(로버트의 의사규칙, Robert’s Rules of Order)을 따른다고 되어 있으며, 이는 의장이 결의 없이 독단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회의에서 총회 총대 후보의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일은 교회의 공적인 치리 행위이다. 그리고 설령 그 제한에 상당한 이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 결정의 절차적 정당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교회는 공의를 상실하게 된다. 치리회의 권위는 그 내용만이 아니라, 진실하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 비로소 정당성을 얻는다. 이러한 조치는 반드시 회의 안건으로 상정되고, 당사자의 소명 기회가 보장되며, 전체 회원의 토론과 표결을 통해 결정되어야 한다. 임원회는 단지 행정적 보조기구이지, 노회를 대신해 피선거권을 박탈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다. 더욱이 피선거권 박탈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사전 보고 없이 의장이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이의 제기조차 봉쇄한 것은 회의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었다. 이는 결국 교회의 공의를 가리는 일이며, 그 피해는 특정인만이 아니라 전체 공동체가 입게 된다. 회의는 누구의 것도 아닌 전체의 것이며,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 있는 결의의 자리여야 한다. 회중의 권리를 대리하는 총대의 피선거권이 정당한 절차 없이 침해된다면, 이는 단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 회중 전체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이다. 교회의 질서는 행정이 아니라 진리로부터 비롯되며, 그 진리는 겸손과 공의 위에 서 있어야 한다. 교회의 회의가 오만과 독선으로 흐를 때,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외면하는 길이 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언 16:18)는 말씀은 회의 자리에 앉은 모든 이들이 두려움으로 붙잡아야 할 경고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노회는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회의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진정한 회의의 회복 없이는, 교회의 개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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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공의 없는 회의, 노회는 누구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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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에반겔리아 박사학위는 무슨 돈으로? (수정)
- 교단 내 장로를 네 차례 고발한 사건에 이어 이번에는 사장의 업무상 배임 의혹으로 조사가 시작됐다. 지난 9월 24일 고신총회 총회유지재단 이사장 이취임식 후 첫 이사회에서 이같은 결의가 있었다는 전언이다. 지난해 제73회 총회에서 사장연임이 되었을 당시 사장 이력에 ‘2022년 2월 14일 에반겔리아대학교 박사과정 입학(기독교 교육학)’을 추가시키면서 불거진 이 문제는 확인결과 입학시점이 에반겔리아대학교 입학광고가 나간 2022년 1월 15일자를 시작으로 1475호 1501호 145호에 전면광고와 유관해 보인다는 의혹이 한 기독 신문에 의해 제기됐다. 이 모든 광고는 사장이 직접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에반겔리아대학교는 재정상태가 힘들어 이렇게 전면광고를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전면광고료는 1회에 5백만 원이라는데 지금까지 나간 금액만 2천만 원을 넘어섰지만 확인결과 광고료는 현재까지 입금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난 9월 24일 74회기 첫 이사회가 구성되면서 이 문제가 감사에 의해 제기됐고, 조사는 언론분과에 맡겨졌다고 한다. 에반겔리아대학과 박사학위 과정에 대한 의혹은 본인이 입학금 송금내역이나 영수증 등으로 소명할 수 있는 확실한 물증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 문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닌 형사사건으로 확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소송문제 등의 여러 의혹에 대해 묵묵부답이었던 종전 이사회 이사들이 6명이 대거 교체되면서 새 인물들로 구성되고 첫 이사회에서 나온 문제여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편 교단지 언론사의 기자(편집국장 대행)가 교단 장로를 명예훼손으로 네 차례 고발(S경찰서, 창원지방검찰청, 부산고등검찰청,부산고등법원)하고 모두 무혐의와 기각 처분을 받는 사건이 진행되었고, 74회 고신총회에서 언론사 관리감독을 책임지는 유지재단 감사보고에서 이 문제가 제기됐지만 “조사위원회를 내자”는 안도 유야무야 됐다. 고소당사자는 편집국장대행에서 내려오고, 관리책임자인 사장에게는 아무런 인사조치도 없어 솜방망이 처벌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흘러나온 바 있다. 고신총회가 정치적 이해 관계로 묵인하느냐 치리회 기능이 살아있느냐는 이번 사건의 진행방식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김현주 국장 ※ 본 기사가 나간 후 여러 반향이 있음을 밝힙니다. 기자수첩은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일어나는 폭넓은 일들을 듣고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란입니다. 본 기사가 나간 후 단어 하나로 여러 얘기가 오가는 걸로 확인했습니다. '결의한 바는 없다'는 말이라고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취재 당시 관계자에게 들은 바로는 '결의'라고 표현했으나, 이야기만 되었다는 식으로 수정하여 전해왔음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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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에반겔리아 박사학위는 무슨 돈으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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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선거 관전 후기
-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점 9월은 대부분의 한국교회 교단 정기 총회가 줄줄이 열리는 이른바 ‘시즌’이다. 이 정기 총회의 꽃은 임원 선거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선거에서 임원 선출은 교단 마다 각각의 교단 헌법과 규칙에 따라 진행되고 거의 대부분이 선거관리위원회가 감시와 진행 등을 도맡는다. 각 교단의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교단 헌법과 규칙에 명시된 대로 선거를 감시하고 진행하면 그만이다. 선관위의 구성원 그 누구도 사견을 덧붙일 필요가 없다. 특별히 이번 총회 시즌에서 선관위의 역할이 돋보였던 곳은 기독교한국침례회 선관위다. 침례회는 총회 앞서 의장단 총회장 후보에 두 사람이 입후보 했다. 하지만 두 후보 모두에게 결격 사유를 발견한 선관위는 이들에게 스스로 후보직을 사퇴 할 것을 권했다. 2번의 사퇴 권고에도 불구하고 두 후보는 선거 완주를 목표로 사퇴 거부 하자 선관위는 두 후보 모두 후보 등록 무효를 선언하며 총회장 후보 없는 총회를 맞게 됐다. 하지만 두 후보는 사회법에 손을 내밀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했고, 한 후보는 가처분 신청이 인용 돼 후보 자격을 회복했다. 나머지 한 후보는 신청이 기각 돼 후보 자격을 회복하지 못했다. 결국 사회법의 간섭이 발생 했으나 침례회의 선관위는 자신의 본분을 다했다. 의장단 선출에서 총회장 후보 없이 선거를 치르게 되더라도 법과 규칙대로 행한 것이다. 침례회는 총회장 단독 후보로 선거를 치르게 됐으며, 지난 회기에도 총회장이 직무정지 당하며 리더십 부재를 경험한 침례회 총회인지라 어지간하면 찬성을 던질 만도 한데 침례회 대의원들은 단호했다. 선거 결과는 1073명의 대의원이 투표해 688명이 반대표를 던졌다. 3분의 2표가 나오지 않아 결선 투표를 진행해야 했지만 압도적인 반대표에 후보는 책임을 통감하며 후보직에서 사퇴했다. 이튿날 열린 개혁주의 신앙을 표방하는 장로회 모 교단의 총회 선거에서는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부총회장 후보로 나선 두 후보는 사전선거운동기간과 선거운동기간 잘못을 저질렀다. 두 후보 모두 선거조례 시행세칙에서 금하는 선거 운동 기간 총회 소속 목사를 교회로 초청하여 설교하게 한 위법을 저질렀고, 그 중 한 후보는 유인물 배포라는 위법 사항이 하나 더 있었다. 교단 선거법에 따르면 선거법 위반 2번이면 후보 등록이 취소된다고 한다. 그리고 선관위는 후보자가 규칙을 어겼으니 규칙대로 행하면 된다. 하지만 모 교단 선관위는 ‘특별 보고’를 통해 “목사 부총회장 후보 2인에 대한 사과 요청”을 보고 했다. 선관위는 후보 자격은 유지하고 위반 사항에 대해서 투표 전에 본 회 앞에 ‘정중하게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압권은 다음이다. 선관위 위원장은 “불법 선거 운동한 것에 대해서 온 총대들 앞에 ‘정중하게 머리 숙여’ 사과해주시길 바랍니다”라며 “두 분이 다른 하실 말씀이 있으실지 모르지만은, 선관위 입장에서는 이것이 고육지책으로 두 후보들을 위해서 최대한 배려를 한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두 분이 정말 자신들이 행하셨던 행위에 대해 온 총대들 앞에 깊이 머리 숙여 사과 인사하는 것으로 대신 하겠습니다”고 전했다. 이에 두 후보는 총대들 앞에 나와 머리를 숙여 사과하고 선관위 위원장은 “더 숙여 주십시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모른다. 머리를 더 숙이고 조아리면 위법도 무효가 된다. 성도들에게 말씀대로 살라고 가르치는 목회자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다. 더 숙여서 조아리면 더 큰 죄도 무효가 될 판이다.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죄 사함을 받듯이 현대에 와서는 머리 숙여 사과하면 위법 사항도 죄 사함 해주며,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하는 듯 했다. 이러한 ‘예수님 보혈의 은혜’를 표방한 선관위의 사례는 앞으로 입후보자가 ‘시원하게’ 총대들에게 한 턱 대접하고 ‘시원하게’ 총회 와서 사과만하면 되도록 만들었다. 물론 더 숙이고 조아려야 하기 때문에 올 해 보다는 5도 가량 더 아래로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법’ 보다 ‘배려’로 “너의 죄를 사하노라”라고 해 줄지도 모르지 않는가. 이후 선거 행태는 가관 그 자체였다. 엄숙하고 진지해야 할 총회 선거는 찾아볼 수 없고, 마치 ‘도떼기 시장’ 모습 그 자체였다.(매년 보지만 익숙해지지 않는다) 전자투표로 진행 된 단수 후보 임원 선거와 재단 및 법인 이사 선거는 어판장 경매사들의 그것이 더 진지하고 엄중하고 오히려 ‘경건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이들의 마음은 더 급해졌다. 전자투표를 설명하던 업체 대표는 총대들을 향해 ‘고민하지마시고’, ‘애먹이지 마시고’, ‘좀 빨리 눌러 달라고 할 때 빨리 눌러 달라’, ‘제발 좀 빨리 눌러 달라’고 주문했다. 그 업체에는 “‘카운트다운’ 기능이 없나” 궁금해진 대목이었다. 이심전심이라 했나 투표를 진행하는 선관위 진행도 덩달아 급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글을 맺는다. 정 그렇게 급하면 그냥 후보 등록 선착순으로 선출 하는 것도 ‘총회 시간 단축’과 ‘식사 시간 엄수’를 위한 더 나은 방법일 수도 있다. 아니면 “어제 오지 그랬슈”.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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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선거 관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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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K교단 너마저....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 질 건가?
- K교단 소속 언론사의 기자가 교단 장로를 명예훼손으로 네 차례 고발(S경찰서, 창원지방검찰청, 부산고등검찰청,부산고등법원)하고 모두 무혐의와 기각 처분을 받는 전대미문의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 그것도 ‘교단 화합의 초석’이라는 사시를 표방하는 신문이고, 고소·고발을 지양하는 교단이요 ‘정통 신앙과 생활의 순결’을 주장하는 교단이라니 참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시쳇말로 ‘골 때린다’는 말이 어울릴듯하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다는 말인가? 피고소인이 된 장로는 네 번의 고발을 참아오면서 교단 내 기관에 이의 신청과 진정을 해 왔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는 사실이 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소송 진행자는 교단 언론 이라는 강점을 가지고 계파에 편승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너무 심했다. 목사의 양심과 장로의 양심을 저버린 이상행동이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이 사건에 대해 한 인터넷 언론은 ‘이사회와 임원회의 숙고’를 요청하고, 피고소인도 다양한 이의 제기를 했지만 요지부동이다. 왜 그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가? 자기 식구 감싸기도 도를 넘는다. 그들이 주장하는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은 어디가고 이 지경까지 끌고 가고 있는지 교단의 다수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피고소인은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 피고소인은 교단 언론사 사장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시작했고, 5월 22일 서울 모 경찰청에 이 사건이 인계되어 곧 언론사 사장이 경찰 조사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그동안 교단 편집책임자와 사장은 소송 진행과 함께 교단 내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공연성이 만들어진 명예훼손 소송을 시작한 것이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그간의 고통을 받아오면서 심각한 명예훼손과 함께 부정적인 이미지가 만들어져 그 피해는 우려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고, 교단 내 다양한 이의 제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 하에서는 일반 법정에 판단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전언이다. 지금까지 상황만 보아도 그 직을 수행하는 데는 큰 결함이 보이는데, 관련 이사회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체성 혼란의 시대 ‘이 교단마저’ 세속화의 길을 걷는다니,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지는 느낌이다. 임원회와 이사회가 침묵한다면 이번 가을 총회에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정치계파는 일부이지만 그래도 양심 있는 다수의 목사 장로 총대들이 있다는 기대가 남아있다. 총회의 현명한 결정을 기대해 본다. 김현주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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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K교단 너마저.... 어디까지 나락으로 떨어 질 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