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4-2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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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호숙 목사] 영적 싸움에 “VICI(이겼노라)”가 있는가?
    전쟁에는 반드시 이겨야 하듯, 영적 싸움에도 반드시 승리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의 종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로마 제국 시대 율리어스 카이사르(Jullius Caesar – 영어표기 시저. 성경표기 가이사)는 전쟁을 스포츠처럼 즐겼던 사람이다. 그가 남긴 명언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The dice(die) is cast. 주사위는 던져졌다. 폼페이우스가 로마 원로원과 음모를 꾸며 카이사르를 죽이려고 로마로 복귀할 때 루비콘강을 건너기 전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오라고 하였다. 명령을 받은 카이사르가 생각해 볼 때 가만히 있으면 자신은 파멸될 것이고, 무기를 들고 루비콘 강을 건너오면 로마의 역적이 될 것이므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 카이사르는 고민하였다. 이래도 죽을 상황이고 저래도 죽을 상황인데 “죽을 때 죽더라고 싸우고 죽자” 결단을 내리고 무기를 들고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명언을 남겼는데 “주사위는 던져졌다”고하였다. 이때부터 특별한 결단을 하여 어떤 일을 할 때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왔노라[VENI-고대 라틴 발음(웨니), 현대 라틴 발음(베니), I came] 보았노라[VIDI-고대 라틴 발음(위디), 현대 라틴 발음(비디), I saw] 이겼노라[VICI-고대 라틴 발음(위키), 현대 라틴발음(비키,비치), I conquered] 이 문구는 B.C 47년 카이사르가 소아시아 파르나케스를 격파한 후 원로원에 보냈던 전승 보고서 첫 줄이다. 이 문구를 우리 한국인들이 체육대회나 단합대회 때 원문을 약간 변경하여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로 사용하기도 한다. 어쨌든 인간적으로 카이사르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그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폭군(暴君)이 아닌 성군(聖君)의 모습으로 부하들을 다스리며 덕(德)의 정치를 했다. 카이사르의 인생철학이 있었는데 “강자에게 영예를 양보하고, 약자에게 필수품을 양보하라”였다. 인생철학 그대로 그는 전리품들을 자신이 챙기지 않고 부하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고 개인적 재산을 가지고 법률사무소, 마켓, 편의시설을 지어 제공함으로 많은 사람의 신뢰를 쌓아갔으며 자신은 검소한 삶을 살아 타인들로하여금 인정받는 지도자였다. 또한 유머 감각이 있어 부하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었고. 외부 적군들을 정복하기보다 더 힘든 내국 통치를 덕(德)의 정치로 이끌었던 지도자였다. 하지만 죄의 성향을 가진 인간들은 선한 정치를 하는 카이사르를 온전하게 두지 않았다. 카이사르와 친했던 부하 브루투스를 배신자로 만들어 음모를 꾸며 살해하도록 하였다. 믿었던 부하에게 배신당해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 마지막 남긴 말이 “브루투스 너마저...!” 인생 허무함으로 막을 내렸다. 훗날 카이사르에 대한 평가를 할 때에 일부 부정적 평가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하는데 로마에 수많은 지도자가 있었지만 카이사르를 “로마가 낳은 창조적 천재”라고 결론지었다. 신앙의 싸움을 하고 최후 주님 만나는 그날 주님께서 주신 사역의 현장인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VICI(이겼습니다)” 이렇게 승전 보고를 한다면 멋진 인생을 산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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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10-30
  • [박동철 장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다시 논하다
    지난 9월 3일 전국 신문 1면 톱뉴스를 장식한 중국 베이징에서 보내온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중국 시진핑, 러시아 푸틴, 북한 김정은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서늘한 기운으로 다가왔다. 마치 한반도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해보겠다는 음흉한 모습이랄까. 아무튼 중국 전승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답답하지만, 중국은 한 장의 사진으로 대한민국을 비롯한 서방권 제국들에게 도전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작금의 세계 정세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강한 드라이브로 관세폭탄을 세계 각국에 던지면서 ‘강한 미국’을 시현하고 있다. 이에 대한 사회주의 동맹의 이들 세 나라는 단합의 자세를 즉각 보이는 것으로,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한참 국민 정서를 흐트려놓았다. 문제는 이날 사진 한 장에서 세계는 지금 경제전쟁과 이념패권이 깊어지고 있다는 진단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의 경제력에 부단히 따라붙고 있는 중국을 미국은 본격 견제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 언론사 탐사취재팀은 오늘의 중국이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비판하면서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반면에 중국의 건재함을 진단하면서 미국의 경제력을 압도해 간다는 보도를 내기도 한다. 세계 새로운 산업 트렌드인 AI 산업시대는 중국이 세계를 이끌 것이라는 학자들의 진단도 있다. 등소평 후 개혁개방의 대전환이 이제 자본주의의 현장 미국을 넘어설 것인가. 아니면 공산사회주의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이끄는 데 한계가 왔다는 주장이 맞을 것인가. 쉽게 전망할 수 없는 형편 아니겠는가. 상황의 전개가 어찌되든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야욕에 대해 쉽게 시선을 돌릴 수 없다.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북한의 3각 대응이 우리에게는 조선 말 위기의 한반도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해방 후 좌우 대립에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가 아닌가. 주변 강대국이 새롭게 이념전쟁화하는 신냉전시대, 우리는 갈 길을 모르고 깊은 내전(內戰)에 휩싸여 있다. 필자는 얼마 전 우리의 근대사 영웅 안중근이 1907년 하얼빈에서 원수 일본 총리 이토를 쓰러뜨린 후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주창했던 이야기를 영화 《하얼빈》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다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오버랩된다.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은 이 비상하고 위험한 정세일지라도 복음의 실크로드를 열심히 닦아내는 것이다. 이 사명의 복음운동에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의 길이 열릴 것이다. 사형집행을 앞둔 차디찬 감옥 바닥에서 그는 5가지의 평화제안을 했다. 첫째, 조선·일본·청나라 3국이 연합하여 협력공존의 협력기구를 만들자. 둘째, 3국이 공동은행을 설립·운영하자. 셋째, 3국이 공동연합하여 서양 침입에 공동대처하자. 넷째, 3국의 경제개발 지혜를 일본에서 배우자. 다섯째, 상호 존중하고 평화를 유지하자. 어쩌면 굴욕 같지만 일본에 대해 조선을 식민지화하지 말고 아시아를 평화의 공동지대로 만들자는 혁신적 제안이었다. 일본에 36년간 식민지 지배를 받고 해방되어 6·25를 겪으며 처참한 빈국이 되었던 나라, 이 나라가 자유민주의 자본시장경제의 기틀에서 세계 10위 내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성공과 부흥 끝에 다가오는 또 다른 위기인가. '경제 보물섬'이 되어버린 지금의 대한민국에 대해 눈독으로 가득 찬 주변 나라들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국교회가 강력한 복음운동으로 나가야 한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동아시아에 새롭게 심도록 해야 한다는 논지이다. 먼저 동아시아 복음평화운동으로 한반도의 복음통일을 이루는 데 부단한 사명 수행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동아시아 복음평화운동에 주변 모든 나라의 교회가 연합하는 새로운 역사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약관의 나이에 오직 식민지를 꿈꾸는 적장을 총탄으로 쓰러뜨리고 위대한 동양평화론을 주창할 수 있었을까. 젊은 영웅이 피를 토하듯 던진 이 어록(語錄)을 깊게 되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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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9-22
  • [조성숙 권사] 다시 뛰게 하시는 하나님
    지금, 다시 일어서야 할 누군가에게 우리는 모두 한 번쯤, 삶의 무게에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함, 그리고 말하지 못한 상처가 마음을 짓누를 때, 어디서 다시 힘을 얻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그런 때를 겪은 사람들에게도 말을 건넵니다. 이사야서 33장은 그런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주전 8세기 말, 남유다 왕국은 앗수르 제국의 위협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당대의 앗수르는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고 조공을 강요하며 공포로 지배하던 강대국이었습니다. 남유다 또한 그들의 침공 앞에서 불안에 떨고 있었고, 때때로 생존을 위해 조공을 바쳐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 위기의 시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황충의 때 같이 사람이 너희의 노략물을 모을 것이며, 메뚜기가 뛰어오름 같이 그 위로 뛰어오르리라.”(이사야 33:4) 이 구절에서 ‘사람’은 바로 회복된 하나님의 백성, 곧 지금까지는 억눌리고 침묵했던 남유다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고난을 겪고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되찾는 주체로 바뀝니다. 반대로 ‘너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앗수르 제국을 지칭합니다. 그들이 강제로 빼앗고 축적한 부와 권세는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 인해 무너지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노략질했던 것들이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회복의 선언입니다. 또한 ‘메뚜기’는 그 당시 중동에서 파괴력 있는 집단 행동의 상징이었지만, 여기서는 회복된 유다 백성의 힘찬 움직임과 생동감 있는 회복의 이미지로 사용되었습니다. 작고 연약한 메뚜기처럼 보였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다시 일어나는 존재로 변모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위’는 앗수르가 차지하고 있었던 권세와 재물, 전리품이 놓여 있던 자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위로 뛰어오른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 회복이 아니라 위치의 역전, 즉 억압에서 회복으로의 전환을 뜻하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던 자들이 결국 무너지고, 그들이 빼앗은 것들을 백성들이 되찾게 되는 회복의 약속입니다. 황충과 메뚜기, 작고 연약한 존재 같지만 그들이 몰려올 때 그 힘은 대단합니다. 하나님은 그 이미지를 사용하셔서 “나의 백성들이 마침내 일어나 다시 뛰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십니다. 혹시 지금 억울한 일을 겪고 계신가요? 말 못 할 상처나, 기대했던 것이 무너져 침묵 속의 눈물을 흘리고 계신가요? 사람들은 몰라도, 주님은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회복시키겠다. 네가 빼앗긴 것을 다시 뛰어오르게 하겠다.” 이사야 33장 4절은 단순한 문학적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회복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억압을 꺾으시고, 넘어진 자들을 다시 일으키십니다. 사람 눈에는 우리가 작은 메뚜기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우리는 회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주님, 제가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주님이 회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고백을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뛰는 날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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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18
  • [이정희 목사] 왜 7을 행운의 숫자로 보는가?
    1. 서언(序言) 오래전의 본지의 기고에서 동양권에서 주로 기피하는 숫자 4(四)와 서양권에서 기피하는 13과 13일의 금요일에 관하여 기술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기피하는 숫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행운으로 여기는 숫자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7이다. 본 호에서는 왜 7을 행운의 숫자로 보는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유래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숫자 7을 왜 행운으로 여기는 유래와 의미 (1) 고대 문명과 종교에서 유래한 신성한 숫자 1) 고대 메소포타미야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7일 주기: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보는 이곳에서 7은 매우 중요한 숫자였다. 특히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태양과 이를 자전과 공전으로 움직이는 행성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그 주기성을 통해 계절 변화와 농업에 적용했다. 이런 관계로 7행성을 신으로 여기는 동시에 하늘과 지구를 연결하는 중요한 요소로 간주했다. 또한 이 천체를 기준으로 일주일이란 시간이 나왔고, 이는 고대 이집트도 마찬가지였다. 이들도 7을 한 주간으로 삼았고, 농업과 계절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7을 좋아하고 행운의 숫자로 여긴 것이다. 2) 종교적인 상징성: 종교에서도 7은 매우 중요한 숫자였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6일간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셨으며, 요한계시록을 비롯한 성경 전반에서 7이 자주 나오며, 이를 신성함과 완전수로 여긴다. 불교에서도 석가모니가 태어날 때 7걸음을 걸었다는 전설과 칠각(七角) 등의 7을 중요시했다. 이슬람교는 하늘을 7층으로 믿었고, 메카를 도는 순례 의식도 7회로 했다. 이런 면에서 7은 종교 전반에 걸쳐 신성한 숫자로 여겨왔다. (2) 자연현상과 관련된 특별함 : 앞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야 문명과 이집트 문명에서 태양과 행성의 연관성으로 7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했는데, 이는 다른 자연현상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자연현상 속에도 7은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면, 무지개의 7가지 색깔도 그러하고, 기본적으로 음악의 7음계도 이와 연관되었으며, 인간의 감각도 7가지로 분류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자연의 질서나 구조에서 7을 완전함과 조화를 상징하는 숫자로 여겼다. (3)문화와 전통에서 7의 특별함 : 다양한 문화권에서도 7은 행운을 상징하는 숫자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를 세분화해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1) 서양 문화에서의 Lucky 7: 미국과 서양 문화에서는 7을 ‘럭키 세븐(Lucky Seven)’으로 인식하면서 7은 길흉을 결정하는 중요한 숫자로 여겼다. 슬롯머신 같은 도박에서도 777을 잭팟으로 하고 있다. 즉 7은 곧 행운과 성공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이다. 2) 동양 문화의 경우: 동양에서는 숫자 8이 주로 복을 상징하지만, 7 역시 귀신을 쫓는 행운의 숫자로 여겼다. 예를 들면 중국은 7이 하늘과 땅, 인류와 자연을 연결하는 중요한 숫자로 인식하며, 인간과 우주의 조화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한국에서는 7일장을 치른다거나, 칠석(七夕)처럼 7이 들어간 풍습이 많이 있다. (4) 7의 완벽함과 심리적인 영향 : 심리학자인 조지 밀러의 ‘매직 넘버 세븐’ 이론으로, 인간은 7개의 정보를 가장 효율적인 숫자로 여겼고, 사람의 인지능력에 가장 좋은 숫자라고 했다. 피타고라스도 7을 완벽한 숫자라고 했으며, 일반적으로 7은 시각적으로는 가장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독립적이고 특별한 느낌을 준다는 심리적 요인이 있다는 분석도 했다. 3. 기독교인으로서의 관점 및 결어 이상으로 볼 때 숫자 7이 행운의 숫자로 여기는 이유는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 심리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다시 말하면 고대 초기 메소포타미야 문명과 이집트 문명에서 시작된 태양계 행성의 주기가 실질적 생활에 좋은 영향을 주었고,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등 긍정적인 요인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면이 잘못된 종교와 문화적 인식으로 변하여서 오늘날에도 ‘행운’을 주는 주술적 숫자로 인식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특히 우리 기독교의 관점으로 볼 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숫자 7을 행운으로 여기는 일은 반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이다. 오늘날과 같은 현대 문명에서 아직도 이러한 미신적 사고가 계속된다는 점이 안타깝다. 하지만 이를 바로잡아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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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8-13
  • [박동철 장로] 선교영화 ‘무명’ 에서 받은 동북아 ‘복음평화론’
    가족과 함께 선교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無名)'을 관람했다. 선교방송 CGN이 제작한 기독교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은 일제 강점기 일본 땅 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와 복음을 전한 이야기다.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욱 사랑했던 두 선교사의 예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영토 강점이란 원수지간의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복음으로 사랑과 용기를 보여준 선교사의 눈물 담긴 이야기다. 1863년 일본 마쓰야마에서 태어난 노리마츠 마사야스 선교사는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가 일본 공사 미우라에 의해 처참히 시해된 을미사변 사건을 보고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한다. 이듬해 1896년 노리마츠 선교사는 수원 땅에 들어와 조선인이 되기로 마음먹고 청년 조덕성을 만나 한글을 배우고 복음을 전했다. 지독한 핍박 속에서도 예수 사랑을 실천하며 아내 사토와 함께 경기도 수원에서 수원동신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이어갔다. 얼마나 고난의 나날이었을까. 세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오직 조선인을 사랑하는 복음 정신으로 목회를 이어갔다. 불행히도 사모 사토는 세 자녀를 낳고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러나 노리마츠 선교사는 자녀들과 함께 조선 땅에서 한평생 선교사의 삶을 살다 1921년, 58세의 일기로 소천한다. 1896년에 조선에 입국한 오다 나라지 선교사는 불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노리마츠 선교사의 조선 선교를 보고 조선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오다 선교사는 1896년에 조선 땅에 들어와 이름을 전영복이라 바꾸고 북한 땅과 호남 지역을 돌며 복음을 전했다. 오다 선교사는 특히 일본에 반하는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고 설파하고 복음을 전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연유로 체포되고 심한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정확한 연도는 모르지만 일본 땅으로 강제 추방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다 나라지 선교사는 조선인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 조선 청년 박중학이 오다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 회심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영화에 담기도 했다. 영화 무명은 국내 전국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지만 관람은 미미하다. 그러나 기독교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이 땅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를 알 수 있는 탁월한 다큐 영화였다는 느낌을 필자는 받았다. 일제 36년, 역사와 신앙 사이에서 숨겨져 있던 고뇌의 복음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는 관람의 은혜였다. 문화 선교와 미디어 복음에 사명을 감당하는 CGN방송이 광복 80주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년을 맞아 제작한 작품이다. 필자는 영화를 관람하고 크고 깊은 은혜를 받았다. 오늘날 한·중·일의 동북아 지역은 갈등이 심화된 국제 정세 속에 있다. 이 갈등의 깊은 곳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일방적 힘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예수 사랑의 복음만이 ‘평화’의 땅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살해했다. 그리고 감옥에 있으면서 일본에 보내는 ‘동양평화론’을 주창했다. 안중근은 서슬 퍼런 일본 제국이 침략 야욕을 버리고 아시아의 평화 공동체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영웅의 주창은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본이 이를 받아들일 리 있겠는가. 일본은 이듬해 을사늑약으로 조선을 삼키고 조선 찬탈에 성공, 36년간 압정을 했지만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에 의해 패망하고 말았다. 지금 동북아는 한·중·일, 그리고 북한, 미국, 러시아의 지정학적 초갈등 속에 긴장의 도는 더해 가고 있다. 날로 선교가 어려워지고 있는 일본 땅과 중국 땅에 복음의 씨를 뿌리는 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하며, 우리도 오직 예수 사랑으로 일본 두 선교사의 조선 사랑을 실천했던 것처럼 우리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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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7-16
  • [박동철 장로] 기독사학이 살아야 대한민국 미래가 있다
    교육강국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은 근대 선각자 세분을 꼽으라면 우남 이승만, 도산 안창호, 남강 이승훈 선생을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붙여 얘기할 필요가 있겠는가. 치적의 하나인 토지개혁을 단행하면서 대지주들에게 땅을 사립학교 설립에 유도하고 평생 운영을 맡겼다. 바로 대한민국 인재를 양성한 사학제도이다. 한국 공교육을 폄하하지 않는다. 한데 한국 사학들이 70년대 이후 뜨거운 교육열 속에 향학의 경쟁문화를 통해 수많은 인재양성 바로 산업일꾼들을 키워냈다. 근대역사 속에 독립 운동가이자 교육자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미국등지 유학을 통해 선진문화를 보고 조국의 교육진흥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후세들을 위해 배워야 만 살아갈 수 있다는 연설을 당시 후학들에게 설파했다. 자신의 호 도산(島山)을 지은 것도 태평양 바다 속 우뚝 솟은 하와이를 보고 교육을 상징하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신민회 조직은 물론 지금까지 이어오는 흥사단 등 독립운동과 조국의 미래를 위해 교육을 강하게 주창한 선각자이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유명한 오산학교를 설립했으며 3.1운동 33인의 한분으로 독립운동을 하신분이다. 거장 세분의 선각자는 모두 기독교 이념의 서구교육으로 조국 발전의 밑자락을 놓은 선각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학 중 광복이후에도 많은 선교사를 비롯 교회에서 기독사학을 설립했다. 그리고 건학이념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건강한 교육을 선양해왔다. 산업화 민주화과정에서도 기독사학들이 인재양성에 많은 기여를 하면서 명성 있는 사학들을 육성했다. 그리고 상시 채플시간 교목들의 복음 활동을 통해 80년대 한국기독교 부흥에 한축 기둥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독사학들이 급격히 사양의 길을 걷고 있다는 분석이 모두를 안타깝게 한다. 광역단체 교육수장들이 선출직이 되면서 다양한 교육이념의 정책이 도입되고 있다. 획일적 교과서에 다양성을 도입하고 있다. 학생인권을 우선시하는 인권시대의 권리남용이 교육현장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슬픈 현실이다. 우선 교목들의 복음채플시간이 크게 줄고 있다는 최근 비공식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전국 사립중은 632개, 사립고는 945개소이다. 이중 기독사학을 보면 기독사학중학교가 135개, 고등학교가 185개소이다. 이 중 교목을 둔 기독사학은 중학교 79개, 고등학교 139개 학교로 알려졌다. 기독사학들이 갈수록 교목을 두지 않거나 계속 줄여나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왜 일까. 진보정치성을 띤 교육수장들이 보이지 않게 기독사학들의 복음 활동을 억압하고 있다는 말이다.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학교지원예산을 들고 직간접으로 묘한 억압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기독사학의 건학 이념에 채플참여 의무시간이 있다. 이것도 자율 선택권을 두어 채플 의무시간을 자유하게 하는 추세다. 한국 기독교가 복음의 큰 사명 앞에 슬픈 현실이 되고 있다. 그동안 사학에 투자한 많은 기독사학의 주인들이 학교를 넘기거나 포기하는 사례까지 생겨나고 있다. 조국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한 교육의 원천이 되었던 기독사학들이 겪는 이 아픔이 아픔이 아니다. 기독사학이 무너지면 조국의 미래를 생각할 수 없다. 기독사학이 온 세상 구원의 지경을 확장하는 역할을 했던 것만 아니다. 중고를 비롯 대학의 현장까지 젊은이들이 가져야하는 건강한 정신을 함양하는데 기독사학들이 희생해왔다. 이러한 교육원천이 조국 대한민국의 비전이자 미래이다. 그러나 한국기독사학의 사양화는 다시말해 조국의 미래를 말할 수 없게 한다는 점이다. 모두가 한 번 더 새겨보고 강구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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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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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우승 목사]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그렇게 실천은 하지 않으면서도 인용을 하려니 부끄러운 한자말이 있다. 백절불굴(百折不屈)인데 백번 꺾어도 굴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어떠한 어려움에도 결코 뜻한 바를 굽히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한국이 낳은 순교자이신 주기철목사님께서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죽음을 던지는 굳건한 의지를 남겼다. 동음이의어가 있는데 의사(義士)와 의사(醫師)의 차이가 크다. 앞의 의사(義士)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 꿋꿋한 사람을 뜻하며, 뒤의 의사(醫師)는 자기가 가진 의술로 타인을 살리는 사람이다. 한 사람은 자기가 죽는 길이요, 또 한 사람은 남을 살리는 길이다.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의사(義士)와 의사(醫師) 중에 어떤 인물이 되기를 원하느냐고 물으면 자기 목숨을 내 놓는 의사(義士)가 되려는 청소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도 뜻한 바를 굽히지 않는 결연한 인물들이 더러 나온다. 가나안 땅의 분배를 두고 갈렙은 팔십오 세의 나이로 헤브론 땅을 달라고 요구를 한다. (여호수아14:12)에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라고 마치 출정식과도 같은 연설을 쏟아내었다. 이처럼 자기가 믿는 바를 끝까지 지켜나가는 행동은 쉽지 않다. 군산지방에서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귀암(龜岩)노인이라는 한말의 병사가 있다. 아무도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그저 귀암에서 살다 자결했기로 귀암노인이라고 불렀다. 그는 1907년 8월 1일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당한 근위 제2연대 1대대 소속 하사졸(下士卒)로 당일 해산식장에 나가기를 거부하고 항일의거에 참여한 저항군졸이다. 해산식이 있기 이전에 이미 일본군은 어깨에 견장을 떼고 은사금 명목으로 80원씩 나누어 주었다. 그는 받은 은사금을 찢어버리고 다른 군졸들과 함께 무기고를 털어 당시 서소문 안에 있었던 군영을 뛰쳐나와 남대문 근처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다. 그 길로 일본군에게 쫓겨 창의문을 거쳐 삼남지방으로 내려가 약 2년 동안 의병으로 항일운동을 했다. 1909년 전라북도 줄포싸움에서 마지막으로 패하고, 이 때의 부상으로 평생 절름발이가 된 채 숨어 살았다. 그 무렵 금강하류 군산연안에 귀암이란 마을에는 미국의 선교사들이 많이 와서 합숙을 하면서 호남지방에 선교를 하고 있었다. 쫓기던 그는 왜경들의 치외법권 지역인 이 선교사들의 숙소로 뛰어들어가 전후사정을 이야기하고 하인으로 고용해 줄 것을 애걸하였다. 이 절름발이 병사는 그날부터 여선교사들의 숙소 경호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그는 군영에 있을 때 차고 다녔던 장도(長刀)를 보배처럼 항상 간직하고 있었다. 서소문 탈영이래 한시도 몸에서 뗀 적이 없는 그 장도를 뽑아 어깨에 둘러메고 다리를 절뚝거리며 밤마다 숙사를 순찰했던 것이다. 귀암노인은 몸에 밴 군경 생활의 습성을 조금도 고치려 하지 않았다. 새벽 해 뜨기 전에 일어나 찬물을 끼얹고, 비록 절뚝거리지만 스스로의 구령에 따라 보조를 맞추었다. 또한 몸에 밴 군기 그대로 저녁에는 왕궁이 있는 북쪽을 향해 요배하는 것을 거르는 법이 없었다. 가까이 지내는 선교사들이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는 귀암노인이 급전이 필요하여 선교사에게 돈돔 빌려줄 것을 요청한다. 선교사는 이런 기회를 타서 몸에서 떼질 않는 장도를 저당으로 내놓기만 하면 돈을 빌려 주겠다고 하였다. 귀암노인은 한 사나흘 고민하다가 근 20여년 동안 잠시도 몸에서 뗀 적이 없는 장도를 선교사에게 맡겼다. 그 일이 있은 지 며칠 후에 귀암노인은 아무말 없이 행적을 감춘 것이었다. 그의 실종과 더불어 저당으로 잡아둔 장도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장도를 놓아두었던 자리에 한 통의 편지가 놓여있었는데 펴 보니 ‘무사로서 양인 밑에 천한 삶을 이어가는 것도 치욕인데 칼마저 몸에서 떼어놓게 되었으니 이제는 잠시도 살아갈 면목이 없어졌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었다. 그날 선교사들은 귀암강 강변에서 자기의 장도로 자기 목을 찌르고 죽은 노병의 시신을 발견한 것이다. 한국의 무사정신에 강동한 선교사들은 귀암강 둔덕에 노인을 묻어주고 십자기를 세워 이 강골병사의 영혼이 영생할 것을 빌어주었다고 한다. 한 평생 다리를 절은 이 노인은 브니엘에서 천사와 씨름을 한 이후 절었던 야곱이 떠오른다. (창세기32:31)에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라고 말씀한다. 야곱 역시 백절불굴의 기백이 있었다. (창세기32:26)에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라고 말씀한다. 백암노인이 만약 천국에 갔다면 함께 다리를 절었던 야곱과 함께 좋은 친구가 되었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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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5
  • [박동철 장로] 부활절에 전쟁 속 이란교회를 위한 기도
    지난 3월 17일, 이란 중심부에 미국과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폭격을 감행함으로써 발발한 이란 중동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란 지도자 하메네이와 정치 수뇌부 일부 가족이 참수되는 처참한 전쟁의 현장은, 안타깝게도 끝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란의 핵개발과 관련하여 미국과의 관계가 첨예해지면서 전쟁은 극단적인 지경에 이르렀다. 온 세계는 이란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 통행 통제에 직면했고, 미사일 폭격과 곳곳의 유전 폭파로 인해 에너지 비상시대를 맞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2026년 부활절을 맞이하면서도 종전 또는 휴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먼저 이란의 교회를 위해 기도하며, 하루빨리 전장이 평화로 변하기를 간구한다. 이란이라는 나라는 오랜 역사 속에서 성경과 깊은 관계를 지니고 있다. 이란의 옛 이름은 페르시아로, 고대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70년 동안 포로로 잡아갔던 바벨론을 정복하고 그들을 풀어주었다(BC 539년, 에스라 1장 1-3절). 성경 속 ‘고레스’로 알려진 키루스 대왕은 이스라엘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페르시아는 중동 전 지역과 인도까지 확장되는 융성한 제국으로 발전했다. 또한 BC 483년 아하수에르 왕 때에는 왕의 총애를 받던 유대인 에스더 왕후가, 유대인을 몰살시키려는 하만의 음모로부터 민족을 구하는 사건도 있었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페르시아의 후손인 이란은 오랜 기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7세기 후반 이란이 이슬람화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가 정치권력을 장악하며 직접 통치 체제로 접어들었고, 점차 과격하고 호전적인 국가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흐름은 중동 여러 국가의 친서방화와는 반대로, 이슬람 독재국가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과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이어진 원인이 되었다.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서, 페르시아 땅 이란은 한때 번창했던 기독교가 탄압받는 땅이 되어버렸다. 오늘날 이란은 북한과 함께 세계에서 교회를 가장 심하게 탄압하는 나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2026년 부활절을 맞아 우리는 이란을 깊이 묵상하게 된다. 처참한 전쟁 속에 있는 이란의 교회 형제들을 위해 한국교회는 기도한다. 여느 때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 고난주간 동안 대한민국의 교회들은 특별새벽기도로 주님의 고난을 묵상했다. 그리고 부활주일을 맞아 새벽기도와 연합예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나타난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신 지 삼일째 되는 날 새벽에 부활하셨다. 새벽은 우리 모두에게 시작과 꿈의 시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의 역사를 새벽에 시작한다. 성경의 큰 역사 또한 새벽에 일어났다. 모세의 홍해가 새벽에 갈라졌고(출애굽기 14장), 여리고 성도 새벽에 무너졌다(여호수아 6장). 인류 구원을 위한 대역사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새벽에 이루어졌다(마태복음 28장 1절). 어둠은 곧 새벽을 예견한다. 이란 전쟁이라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우리는 새벽을 기대할 수 있다. 선교사들이 쫓겨나고 기독교 탄압이 계속되고 있지만, 이란의 교회는 지하에서 성령의 역사 가운데 부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절박할 때 기적의 역사가 나타나듯, 전쟁으로 절박한 이 땅에 복음의 새벽이 임할 것을 기대한다. 2026년 부활절, 대한민국 곳곳의 교회들은 부활의 기쁨 가운데 기도했다. 이 기도는 이란의 교회를 향한 간절한 중보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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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6
  • [조희완 목사] 집착의 허상 (출16:1-3)
    미국에서 출간이 되어서 화제를 불러일으킨 <대통령을 기소하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의 현직 검사가 <조지 W. 부시>대통령을 법적으로 단죄해야 한다고 작심을 하고 쓴 책입니다. 그 책에서 그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일급 살인죄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이라크 전쟁을 일으켜서 4,000명이 넘는 미군 병사들과 수많은 이라크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조지 W.부시> 대통령에 대해서 또 한 가지 옳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그를 가리켜서 “휴가집착증”환자라고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조지 W.부시> 대통령은 재임기간 7년 동안 908일을 휴가로 보냈습니다. 즉 재임기간의 약 36%를 <캠프데이비드> 별장이나 <크로포트> 목장에서 휴가를 보냈는데 3일에 하루 꼴로 쉰 셈입니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그렇게 수많은 날들을 휴양지에서 휴가를 지낸 것은 무책임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고, 지도자로서 실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서 “휴가집착증”환자라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격무에 시달린 나머지 휴가를 가지는 것은 필요한 일이고 유익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국가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3일에 하루 꼴로 쉬었다는 것은 도에 지나친 것입니다. 도에 지나친 것은 좋지 않은 일입니다. - 비단 휴가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든지 정도에 지나쳐서 집착을 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어떤 일에 집착을 하면 오직 그 한 가지 그 일만을 생각을 하기 때문에 생각의 폭이 좁아지고 분별력이 없어집니다. 우리가 어떤 일에 집착을 하면 안 되는지, 그리고 집착을 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요? 첫째로, 과거에 집착하면 미래로 나아가지 못합니다.(출16:1-3) 둘째로, 재물에 집착하면 근심에 빠지게 됩니다.(마19:21-22) 셋째로, 쾌락에 집착하면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딤후3:4-5) 어지럽고 혼란한 이 시대에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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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26
  • [이정희 목사] 불교에서 유래된 용어들: 천사는 불교적 용어인가?
    1. 서언(序言) “어느 목사가 ‘대자대비하신 하나님’이란 말을 T.V에서 하는 것을 듣고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이 말은 ‘생활 속 불교 용어’란 책을 집필한 불교 칼럼리스트인 방경일의 말이다. 그에 의하면 수많은 불교 용어가 한문을 통하여 우리말에 정착되었고, 이는 기독교 상용 용어에도 많이 포함되었으며, 심지어 불교 용어가 기독교에 빼앗길 정도로 확산되어 있다고 오히려 우려를 표하였다. 하지만 역으로 필자는 이러한 불교 용어가 기독교 용어로 정착되어도 되는가라는 측면에서 ‘대자대비하신 하나님’이라는 표현에 대해 ‘눈물이 날 정도로 울고 싶다.’는 심정이다. 이에 불교에서 유래된 용어에 대해 계속 기고하면서, 본 호에서는 앞의 불교 용어 전문가가 말한 기독교화된 용어 중에서 불교와 우리 기독교에서 동일하게 사용하는 ‘천사’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2. 천사란 말은 어디에서 왔는가? 1) 사전적 의미 : 천사(天使)는 하늘 천(天)과 부릴 사(使)로서 (1) 천자(天子)의 사자(使者), (2) 기독교에서 천국에서 인간계에 파견되어 신과 인간의 중간에서 중개를 맡고,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하며 인간의 기원을 신에게 전하는 사자(使者), (3) 마음씨 곱고 선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되어 있다. 이상의 사전적 뜻을 보면 기독교계에 더 가까운 용어로 정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2) 불교 용어라는 주장 : 불교 사전에 의하면 천사는 산스크리트어(梵語)로 ‘데바’이며, 염마왕(閻魔王)의 사자(使者)로서 천연과 자연의 업도(業道)로 발생하여 세상을 경책하기 때문에 천사라고 했다. 구체적으로는 3천사(노, 병, 사)와 5천사(생, 노, 병, 사, 감옥)로 구분되며, 염라대왕의 사자로 생로병사와 감옥에 관한 일을 관장하는 동시에 하늘의 사자로서 신의 뜻을 전한다. 그래서 죽음을 다루는 천사를 저승사자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불교의 용어가 한자 문화권 속에서 정착하게 된 것은 A.D. 397년 중국에서 번역된 ‘증일아함경’에서 ‘천사경’이란 표현으로 등장했다가, 그다음 해인 A.D. 398~399년경 한문으로 번역된 ‘출요경’에 처음으로 사용됨으로써 한자 문화권에서 정착되기 시작했다. 이상과 같은 배경을 가진 불교 용어인 천사가 어떻게 기독교 용어가 되었을까? 여기에 대해 앞에서 소개한 방경일은 이렇게 주장했다. “그 이유는 기독교에서는 천사가 그들의 신이 주관하는 세계인 천국에 영혼을 인도하는 역할을 하는 가장 필요로 여기는 존재로 여기지만, 불교에서는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의 영향으로 생명체가 사후 하늘나라에 태어나도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아미타불이 세운 극락정토에 태어날 것을 권한다. 이런 이유로 야마천의 심부름꾼인 천사의 존재가 크게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면서 활용하지 않았다. 반면, 기독교는 필요에 따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기독교 용어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3) 기독교의 천사는 무엇인가? :기독교의 천사(Angelology)는 신학적 교리로 논해야 할 방대한 부분이기 때문에 본 호에서는 구체적으로 논하기는 지면의 분량상 어렵다. 단지 원어의 사전적 의미와 총론적으로 간략하게 논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천사의 단어적 정의는 히브리어로 ‘말라크’(מַלְאָךְ/Malakh)이며, 헬라어로는 ‘엥겔로스’(ἄγγελος), 영어로는 Angel이다. 뜻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메신저이자 돕는 자’로서 육체가 아닌 영적인 존재로 창조된 피조물이다. 그다음 주된 역할과 임무는 하나님의 메신저로서 인간을 보호하고 인도하며, 하나님의 군사와 예배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천사의 존재와 역할은 많은 성경적 근거와 교리로 말할 수 있으나 생략하고, 본 호에서는 ‘천사가 과연 불교적인 용어에서 온 것인가?’에 대해서만 기술하고자 한다. 3. 결론 및 제언   앞서 언급한 대로 천사의 존재에 대해서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적인 존재로서 성경과 유대 전승과 교회사 속에서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유래된 존재도 아닐 뿐 아니라 그 역할도 다르다. 단지 앞서 본 바와 같이 산스크리트어(梵語)의 ‘데바’가 한자어로 번역되면서 ‘천사’라고 했을 뿐이다.   또한 천사에 대한 불교의 존재 의미와 우리 기독교의 천사는 서로 다른 성격이지만, 번역 과정에서 같은 단어로 사용되었을 뿐이며, 불교에서 먼저 번역하여 사용했다고 해서 불교적 용어라고 하는 것은 편협한 주장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불교와 기독교 모두 같은 한자 문화권에서 용어를 사용하다 보니 각각 다른 의미임에도 함께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이상으로 볼 때 ‘천사는 불교적 용어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각각 다른 의미이지만 한자 문화권 안에서는 같은 말로 얼마든지 함께 사용할 수 있으며, 근본 의미로는 천사는 우리 기독교 용어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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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26
  • [정우승 목사] 사랑으로 행하라
    하루는 예수님 일행이 회당 안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회당 안에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발견하게 된다. 이 때 예수님을 향하여 악심을 품고 있는 한 사람이 예수님을 책잡기 위해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라고 물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12:11-12)에서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예수님께서 병자를 향하여 손을 내 밀라 하시고 마른 손을 회복시켜 주셨다. 흔히 동양의 문명을 자율문명, 서양의 문명을 타율문명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곧 한국의 전통문화와 선비정신에서 가장 핵심은 존재와 당위였다. 타율문명의 무기인 법률이 발달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법률 이전에 가치형성이 되어 있었기에 필요가 없었다. 한데 서양문명의 침투는 곧 한국인의 전통적 가치인 자율의 역량을 둔화시키거나 약화시켰다. 이 같은 서구적 실리주의와 합리주의에 젖은 현대인에게 우리의 전통적 선비요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조선 태종이 집권할 때 김덕생(金德生)이라는 명사수가 있었다. 그가 명사수였기로 태종은 궁 가까이 두어 경호의 임무를 부여하였다. 어느 날 태종이 숲이 우거진 후원에 쉬고 있는데 호랑이 한 마리가 임금 가까이로 기어들고 있는 것을 김덕생이 발견하였다. 한말까지도 경복궁 뒷길엔 금호방(禁虎榜)이 붙어 있었고, 실록에도 호랑이의 궁궐침입 기사가 잦은 것으로 보아 이 후원의 호랑이 침입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김덕생은 활을 뽑아 호랑이를 명중시킴으로써 태종이 당할 호환(虎患)을 미리 막아냈던 것이다. 임금의 생명을 구한 김덕생은 다시 한 번 공신일 수가 있었다. 한데 그는 이 공로 때문에 죽음을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상한 이치에 얽매이게 된다. 이 김덕생의 시호사건은 그렇게 일대 의리논쟁을 불러 일으킨다. 곧 임금을 향해 화살을 쏜다는 것은 목적여부에 떠나서 큰 잘못이며, 이 잘못은 선례에 따라 대적죄에 해당된다는 주장인 것이다. 임금을 향하여 화살을 겨냥했다는 것은 진리에의 배반인 것이다. 결국 김덕생은 대역죄로 사형을 당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이 선조 때에도 있었다. 군비강화의 필요성을 간파해서 훈련도감을 신설하고, 신무기인 조총과 홍이포 등을 수입해온 영의정 유성룡(柳成龍, 1542-1607)은 이 신무기의 위력을 임금일 비롯, 대신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어전방포를 하였다. 한데 이 어전방포를 두고 다시 의리논쟁이 붙었다. 임금 앞에서 살상의 흉물인 화약을 터뜨리는 것이 비리이며, 무관이 아닌 영의정이 발포했다는 것은 나라의 체면을 손상시켰다는 상소문이 날아왔던 것이다. 이 상소문의 주도한 인물이 영남선비인 박동현(朴東賢, 1544-1594)이었다. 이에 유성룡은 이 상소문이 정당하다고 판단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정승에서 사임한 이후에 낙향함으로써 일단락이 지어졌다. 성경 안에는 수많은 율법조항과 복잡한 안식일 규례가 있다.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다 지킬 수 없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하나의 상위법이 있다.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정신이다. (마태복음22:37-39)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묵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라고 말씀한다. 그리고는 위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해서 요약을 하신다. (마태복음22:40)에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라고 말씀한다. 바울 역시 예수님의 계명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한다. (로마서13:10)에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라고 못을 박고 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16:14)에서도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라고 말씀한다. 613개나 되는 성경의 계명을 일일이 다 지킬 수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정신에 어긋하지 않게 산다면 그 사람은 나름 하나님 앞에 충성된 일군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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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26
  • [오성한 목사] ‘노력하는 신앙’에서 ‘누리는 신앙’으로
    복음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신앙생활을 오래 한 성도일수록 자주 던지는 질문이 있다. “하나님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질문은 매우 진지해 보이지만, 동시에 신앙을 가장 쉽게 왜곡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해야 할 것들의 목록’으로 이해한다. 더 기도해야 하고, 더 헌신해야 하고, 더 성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복음은 이 질문 자체를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보다, 무엇이 이미 이루어졌는가를 먼저 보라고 말한다.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의 참뜻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종종 “더 열심히 의롭게 살아라”, “더 죄 없이 살라”는 도덕적 권면으로 오해된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의’는 인간의 도덕적 성취가 아니다. 바울은 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장 요지) 성경적 의는 내가 쌓아 올리는 결과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의가 믿는 자에게 전가(轉嫁)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은 더 애써서 의로워지라는 요구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의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라는 초청이다. 복음은 언제나 인간의 노력보다 하나님의 선물을 먼저 말한다. 십자가는 약함의 상징이 아니라 능력의 출발점이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은 복음의 역설을 분명히 보여준다. 십자가는 세상의 눈으로 보면 패배와 무능, 실패의 상징이다. 그러나 성경은 단호하게 선언한다. 십자가는 구원을 얻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사람은 강해져야 능력이 나온다고 믿는다. 준비가 되어야 쓰임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일하신다. 약함에서 능력이 시작되고, 가만히 있는 자리에서 구원이 드러나며, 붙잡고 있던 것을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복음은 언제나 인간의 자랑이 설 자리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은혜만 남겨둔다. 그래서 십자가는 미련해 보이지만,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나는 주님과 하나 되었다”는 고백의 실제적 능력 이 복음 시리즈의 결론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나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존재다.” 이 고백이 교리로 머물 때와, 믿음으로 받아들여질 때의 차이는 매우 크다. 이 고백이 실제가 되면 신앙의 무게 중심이 달라진다. 신앙은 더 이상 부담이 아니라, 관계가 된다. 기도는 하나님께 잘 보이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이미 함께 계신 주님과의 대화가 된다. 예배는 의무가 아니라, 임재를 누리는 기쁨이 된다. 순종도 억지가 아니라, 생명이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열매가 된다. 성경은 이런 삶을 “영으로 사는 삶”, “은혜 아래 있는 삶”이라고 부른다. 이는 나태한 신앙이 아니라, 가장 깊이 복음을 이해한 자리에서만 가능한 삶이다. 복음은 결국 ‘누리는 삶’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노력해서 그분께 도달하기를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통해 일하고 계신다. 이것이 복음의 결정적인 차별성이다. 그래서 복음의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다. 하나님은 이미 앞서 행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 안에 계신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사용하고 계신다. 우리는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누리며 살아가면 된다. 신앙이 무거워질수록 우리는 더 노력하려 하지만, 복음은 언제나 우리를 ‘쉼’으로 초대한다. 노력하는 신앙에서 누리는 신앙으로 옮겨갈 때, 비로소 복음은 교회 안의 언어를 넘어 우리의 일상 속에서 기쁨과 능력으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것이 복음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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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26
  • [박봉석 목사] 제티슨(Jettison)
    제티슨(Jettison)이라는 말을 아십니까? 해상운송 중에 짐을 실은 배가 풍랑, 좌초, 화재 등으로 인해서 더 이상 항해를 지속할 수 없는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에 짐을 버려 배를 가볍게 만드는 행위를 뜻하는 전문용어입니다. 배만이 아니라 항공기 또한 위기에 처했을 때에는 극약처방으로 승객을 제외한 아무리 값비싼 물건이라도 버리는 게 원칙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짐을 버릴 때는 무가치한 것부터 순차적으로 버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짐을 버렸기 때문에 가벼워진 배나 비행기는 위기상황을 최대한 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제티슨의 장면이 성경에도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 요나서를 보면,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을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그 배를 맹렬한 풍랑을 만나게 합니다. 그때 배의 사공들은 두려워서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하여 배의 물건들을 바다에 던집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요나 선지자가 풍랑의 원인임을 알고 그를 바다에 던져버립니다. 그 제티슨의 장면이 신약성경 사도행전에도 나옵니다. 바울이 배를 타고 로마로 압송되는 중에 유라굴로라는 광풍을 만났을 때에 선원들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짐을 바다에 버리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자 결국에는 배의 기구까지 버립니다. 오늘날에는 그 제티슨이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의 대표는 기업이 부실해지거나 위기를 맞으면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원들을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생각합니다. 인간 제티슨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건비 절감만큼 비용을 확실하고 손쉽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구조조정을 할 때는 효율이나 가치를 따져서 차례로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다른 곳은 다 제티슨이 되더라도 그 제티슨이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 있는 데,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요한복음 6장 39절에서 예수님은 말씀합니다.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어느 누구도 짐처럼 버려지지 않습니다. 그 나라에는 구조조정도 없고 효율이나 가치를 따지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이라는 동일한 가치를 지닌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온 땅에 어둠이 임하였고,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을 향하여서 마태복음 27장 46절을 보니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말입니다. 이 말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사랑하는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제티슨 당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서 대속의 제물로 버림받은 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제티슨 하지 않고는 억만 죄악으로 인해서 멸망을 향해 가는 인류를 구원할 수 없었기에 그렇게 죄인인 인류를 대신하여서 사랑하는 아들을 십자가에 버리신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대속의 제물로 제티슨 되는 것이었기에 성부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라 부르지 않고 하나님이라고 부르셨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십자가에 버림받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택하신 우리 모두를 영원히 버림받지 않는 존재, 즉 영생의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38-39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그 어떤 사건도, 우리를 공격하는 그 어떤 존재들도,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일이나 앞으로 경험하게 될 그 어떤 일도, 하늘 아래 그 어떤 피조물이라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사도 바울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합니다. 한 번 나를 사랑하시기 시작한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결코 제티슨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삶의 순간순간마다 경험하는 아픔과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으로 이 세상을 꿋꿋하고 의연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산중부교회 박봉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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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26
  • [정우승 목사]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
    바울에게서 배울 것이 참으로 많다. 그 중에서도 바울은 자비량 선교를 하는 중 그의 목회에서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목회서신에서 바울은 감독과 집사의 자격에서 빼놓지 않고 말하였던 자격이 바로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딤전3:8)에서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며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디도서1:7)에서도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득을 탐하지 아니하며” 라고 말씀한다. 바울이 집사와 감독의 자격을 말하면서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그런 삶을 충실히 살았기 때문이다. 바울이 에베소 교회를 눈물로 섬긴 이후에 때가 차매 에베소 교인들과 작별을 하게 된다. 여러 작별의 말 중에서 눈에 띄는 대목이 있는데 (사도행전20:33)에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라는 구절이다. 오늘날 일부 목회자는 주의 종이라는 그럴 듯한 타이틀을 가지고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욕심내는 경우가 더러 있다. 하나님과 바울이 보기에 어떤 평가를 할까 심히 두렵다. 조선시대 서울 남산에 사는 선비들을 ‘헛가리 선비’라고 속칭하였다. 헛가리란 곧 가벽을 뜻하며, 요즈음 말로 바꿔 말하면 판자집을 뜻한다. 곧 청빈을 전통으로 하는 지역적인 풍토가 남산에 형성되어 왔던 것이다. 수백 년 동안 수만 명의 헛가리 선비가 남산에 살았으며, 이들의 청빈정신은 대단하여 ‘남산골 샌님 원 하나 못내도 떼기는 잘한다’는 속담을 남기기까지 했다. 곧 남산골의 헛가리 선비는 벼슬아치 하나 못 내지만 벼슬아치의 목을 잘 뗀다는 말이다. 남산의 헛가리 선비 중에 손순효(孫舜孝, 1427-1497)가 있다. 그는 조선전기 문신으로 1480년에 명나라 사신으로 다녀왔으며, 공조판서와 병조판서를 지냈다. 어느 날 저녁 성종 임금은 시종을 데리고 경회루를 거닐고 있었다. 지금은 고층 건물과 공해 때문에 경회루에서 남산을 제대로 볼 수 없지만 그 무렵에는 남산 숲속을 거니는 동태를 볼 수 있었다. 성종은 남산둔덕에 자리를 펴고 술잔을 주고 받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저건 분명히 손순효일 것이다. 내 말이 틀린지 가서 알아 보고 오너라’ 고 시종을 시켰다. 성종은 손순효가 무척 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건너짚은 것인데 성종의 예측이 들어맞은 것이다. ‘손순효가 분명합니다’, ‘술 안주는 뭐든가?’ ‘참외 한 개 썰어놓고 탁주를 마십니다’ 그러려니 하면서 성종은 미주와 교자상으로 술상을 하사하라고 분부하고 그 때문에 내일 사은하러 입궐하지 말라고 특별히 분부하라고 말했다. 일국의 재상이 초라한 집에서 살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는 성종의 배려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담담하게 여운을 남긴다. 고려시대에도 이런 비슷한 일화가 있다. <고려사절요>에 나오는 사건이다. 직장동정의 벼슬까지 오른 노극청(盧克淸)은 1181년(명종11) 가세 빈한하여 자신의 집을 팔려다 마침 일이 생겨서 다른 군으로 갔는데, 아내가 현덕수(玄德秀)에게 은 12근을 받고 팔았다. 노극청이 돌아와서 그것을 알고 ‘9근에 집을 사서 수년간 살면서 서까래 하나 보탠 것이 없는데 3근을 더 받는 것은 경우가 아니다’ 라고 하여 3근을 현덕수에게 돌려주려고 하였다. 현덕수 또한 받지 않으려 하자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 재물을 탐하는 것은 의가 아니니 3근을 받지 않으려거든 집을 반납하라’고 하므로 어쩔 수 없이 받았다. 그러나 현덕수 또한 ‘내가 어찌 노극청만 못한 사람이 되겠는가’ 라고 하면서 마침내 그 돈을 절에 바쳤다고 한다. 연암(燕岩) 박지원은 벼슬이 정승에 이르렀으나 받은 녹을 모두 가난한 친척에게 나누어 주어 집이 무척 가난하였다. 40년간 나라의 녹을 받으면서도 그가 작고할 때 관 값 한 푼도 마련해 놓지 않았으니 조정의 부조가 없었더라면 어떻게 하였을지 모를 일이다. 말년에 그는 책을 보다가도 잠이 오면 자는데 깨워줄 사람이 없어 어떤 때는 하루 종일 자는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사흘을 굶기도 하였다. 그의 삶이 마치 제비(燕)가 바위(岩)에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해서 그의 호가 연암(燕岩)이 된 것이다. 모든 목사와 성도는 바울을 존경하고 그의 삶을 본 받으려고 한다. 바울이 남긴 족적 중에서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이 말씀에 스스로 당당한 삶을 살면 좋겠다. 태어난 시대가 달라서 그렇지 바울과 손순효와 노극청과 박지원이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살았으면 정말 좋은 붕우(朋友)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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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1
  • [최호숙 목사] 한(恨)이 많은 인생
    우리 민족을 한(恨)이 많은 민족이라고 한다. 한(恨)의 의미는 고통과 상실에서 오는 슬픔,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의 감정인 억울함, 화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 사랑하는 이를 애타게 기다리는 그리움이 복합적으로 쌓여 해소되지 않은 감정을 한(恨)이라고 한다. 이 복합적인 감정을 영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어서 학자들은 ‘한’을 설명할 때 그냥 “Han”으로 표기한다. (Han : a deep feeling of unresolved sorrow, resentment, and grief.-오랫동안 풀리지 않은 슬픔과 억울함이 쌓인 감정) 우리 민족이 이렇게 한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유는 역사적 사건 속에서 일어났던 외적들의 침략으로 인한 트라우마(trauma)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고조선 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약 930번의 침략을 당했다고 역사학자들은 말한다. 특히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하여 전쟁을 일으킨 사건이 있었는데 이 전쟁으로 인하여 수많은 조선의 딸들이 잡혀가서 노비, 첩, 성 접대부가 되었다. 이들이 조선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그들을 환향녀(還鄕女: 고향을 찾아 돌아온 여인)라고 불렀다. 그런데 조선은 그 환향녀들을 영접하고 이해하고 사랑으로 맞아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멸시하고 비하시켜 ‘화냥년(火娘년)’이라 불렀다. 그 이유는 유교적 사상을 가지고 유교 사상의 잣대로 재어 정조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환향녀들이 낳은 자식들을 ‘호로자식(胡虜子息)’이라고 불렀다. ‘호’는 오랑캐를 뜻하는 말로 포로로 잡혀가 오랑캐의 씨를 받아 낳은 자식이라는 뜻이다. 환향녀들은 오랑캐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았고, 고향에서 조선 사람들에 의하여 멸시와 천대를 받아 결국 자살하고 숨어 살고 신분을 감추고 눈물의 세월을 보내며 한평생 ‘한’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다. 이런 아픈 상처가 있기 때문에 문서적 용어로라도 복수하는 차원에서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한 전쟁을 ‘청조전쟁’이라 부르지 않고 “병자호란(丙子胡亂)이라고 부르는데 ‘오랑캐 호’자를 사용하여 “병자년에 청나라 오랑캐들이 일으킨 전쟁”이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환향녀뿐 아니라 일본군에게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慰安婦)들도 그렇다. 일본에 의하여 멸시 천대를 받았다. 수많은 오랑캐 침략과, 일본 왜적과 북한 공산당 침략을 통해 사람 빼앗겼고 또한 먹거리 양식들을 빼앗겼기에 빼앗기지 않게 숨기다 보니 오래 저장해서(숨겨두고) 먹을 수 있는 발효식품들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곡식들을 다 빼앗겼기에 땅에 나는 잡초들 바다에 나는 해초들을 식용으로 승화시켜 양식으로 먹었다. 그 종류가 해초 50종, 잡초 150종 약 200종의 식물을 식용으로 먹고 있다. 세계적으로 땅의 잡초, 바다의 해초를 양식으로 다양한 먹거리로 먹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계속적으로 침략을 당하고 빼앗기다 보니 민족 특성상 배고픔의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삶의 우선순위가 배를 채우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만나서 인사하는 것도 “진지 잡수셨습니까?” “밥 먹었니?”이다. 먹는 것에 집착한다. 또 사업을 하다 망해도 “말아 먹었다”는 표현을 한다. 맘에 들지 않으면 “밥맛 없다”고 한다. 이런 현상들이 우리 민족 속에 내재 되어 있는 ‘한’의 문화이다.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며 기쁨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 분 안에서 참 편안과 안식 누리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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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1
  • [오성한 목사] 하나님은 앞서 행하신다.
    출애굽기의 홍해 사건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극적이며 상징적인 장면 중 하나다. 단순히 바다가 갈라진 기적 이야기로 읽기에는 이 장면이 담고 있는 신학적 깊이가 매우 크다. 이 사건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복음 안에서 믿음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스라엘 백성은 해방의 기쁨도 잠시, 곧 홍해 앞에 서게 된다. 앞에는 바다가 가로막고 있고, 뒤에는 애굽의 군대가 추격해 온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명백한 실패의 동선이며, 이해할 수 없는 인도다. 그러나 성경은 이 모든 상황이 하나님의 계획 밖에서 벌어진 돌발 상황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은 지름길이 아닌 ‘필요한 길’로 인도하신다 출애굽기 13장과 14장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블레셋 땅의 가까운 길, 곧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 그 길이 더 빠르고 합리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전쟁을 보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이 말씀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연약함을 모르셨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잘 아셨다는 의미다. 하나님은 백성이 감당할 수 없는 길로 몰아붙이지 않으신다. 우리는 종종 빠른 결과, 즉각적인 변화, 눈에 보이는 성공을 원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성숙과 훈련을 먼저 보신다. 홍해 쪽으로 인도하신 선택은 인간의 계산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가장 적절한 길이었다. 홍해 앞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조차 하나님께는 갑작스러운 위기가 아니라, 이미 설계된 은혜의 여정이었다. 홍해 앞의 막다른 길은 실패가 아니라 기적의 무대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한 상황은 말 그대로 완벽한 ‘막다른 길’이었다. 앞은 바다요, 뒤는 애굽의 군대였다. 도망칠 길도, 협상할 길도, 싸울 힘도 없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애굽 군대의 추격을 미리 알고 계셨다고 분명히 증언한다. 하나님은 애굽 왕의 마음이 바뀔 것을 아셨고, 군대가 동원될 것을 아셨으며,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 서게 될 것도 이미 말씀하셨다. 다시 말해 홍해 앞의 위기는 하나님의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략이었다. 우리는 종종 인생의 막다른 길 앞에서 “왜 하필 여기까지 와서 이런 일을 겪게 하셨는가”라고 묻는다. 그러나 홍해 사건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느끼는 바로 그 자리에서, 당신의 구원을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가만히 있으라”는 신앙의 절정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원망한다. “우리를 이곳에서 죽게 하려고 데려왔느냐”, “애굽에서 종으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았느냐”고 외친다. 절망 앞에서 인간의 본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순간이다. 그때 모세는 뜻밖의 말을 선포한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세상은 가만히 있으면 도태된다고 말한다. 무엇이든 해야 살 길이 열린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복음은 때로 전혀 반대의 방향을 가리킨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무책임이나 체념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힘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선행적 일하심을 신뢰하라는 신앙의 요청이다.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모든 상황을 맡기는 믿음이다. 순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종 이전에 하나님이 이미 일하고 계심을 신뢰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먼저” 움직이신다 홍해가 갈라진 이유는 이스라엘의 믿음이 특별히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믿음은 오히려 불안과 원망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이 열린 것은 하나님이 먼저 계획하셨고, 먼저 움직이셨으며, 먼저 구원을 준비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복음의 본질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문제를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 이미 해결을 예비하시는 분이다. 우리의 인생에도 수많은 홍해가 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뒤는 막혀 있으며, 어디로도 움직일 수 없는 순간들이다. 그러나 홍해 사건은 우리에게 선언한다. 그 자리는 무너짐의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무대가 될 수 있다고.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백성보다 한 걸음 앞서 행하신다. 그리고 그 앞서 가심이 바로, 우리가 믿고 따를 수 있는 복음의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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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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