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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숙 목사] 훈제(燻製) 고구마를 먹어 보았는가?
성경을 영안으로 자세히 보면 잠언 32:1(?)에 “훈제 고구마를 먹어 보지 못하고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훈제(燻製)란 말은 한자로 “연기 훈(燻)” 자를 넣어 음식의 재료를 연기와 열에 노출시켜 수분을 제거하고 향을 입히며 보존성을 높이는 조리 방법을 말한다. 훈제의 기원은 언제부터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옛날 시골에 불을 때는 아궁이나 모닥불 또는 동굴 속에서 고기나 생선을 훈제하면 맛이 있고 오래 보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자연히 유행된 조리법이다. 요즘에는 고급 요리법으로 오리 훈제, 연어 훈제 등 다양하게 훈제 음식들이 소개되고 있다. 훈제하면 대부분 육류 훈제, 아니면 생선 훈제를 떠올린다. 그러나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훈제 고구마를 직접 만들어 먹었다. 그것도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에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궁금해 할 것이다. 지금은 문화가 발달해서 어린이들이 노는 문화가 고급화되고 수준이 높지만 옛날 50~60년대(그 이전에도 그렇게 놀았겠지만) 시골 아이들은 노는 곳이 뻔했다. 논, 밭, 들, 산, 바다... 특히 가을 고구마밭에서 생고구마를 캐서 날것으로 씹어 먹었다. 그렇게 먹고 나면 입술은 새까맣게 물들어 있고 고구마에서 나오는 진(sap, resin)은 옷에 다 묻고 정말 장난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이 개구쟁이처럼 놀면서 단순히 생고구마를 먹을 것이 아니라 색다른 고구마를 만들어 보자는 발상을 했었다. 방법은 빈 밭 공터에 땅을 파고 나뭇가지를 갖다가 불을 피우고 열기가 올라갈 때 그 위에 생소나무 가지를 덮으면 연기가 피어오른다. 소나무 가지 위에 떡갈잎을 펼치고 고구마를 올려놓고 연기 나는 상태에서 흙으로 덮어버리면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속에서 연기와 열기 속에 고구마는 익게 된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훈제 고구마이다. 말도 안 되는 것이라 반박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필자의 어린 시절 경험이요 팩트(fact)다. 훈제 고구마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목회를 하면서 가끔 훈제 고구마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훈제 고구마는 자신을 희생하여 아이들에게 간식거리가 되었다. 불과 연기를 통과한 고구마가 진한 향기를 내어 유익한 존재가 되듯이 우리 인생도 불과 연기를 통한 인내의 연단이 있어야 정금 같이 나오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흙 속에 묻혀있는 고구마처럼 답답하고 질식할 것 같은 삶이지만 그 과정이 연기의 아름다운 향이 고구마에 배이듯 나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가 몸에 배이는 시간이고 신앙 인격이 다듬어지는 시간인 것이다. 훈제 고구마를 만들면서 또 깨달은 것이 있다. 불에 너무 오래 두면 타버린다는 것과 덮은 흙을 너무 일찍 제거하면 고구마가 익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빨리 먹고 싶은 욕심에 아이들이 너무 일찍 흙을 파헤치고 먹으려다 실패한 적이 많다. 인생에게 기다림의 시간이 꼭 필요한 이유는, 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라 성숙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너무 조급해도 안 되며 너무 지체해도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늘 빠름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기다림은 손해처럼 느껴지고, 빠른 속도는 능력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빠름’이 답이 아니라 ‘바름’이 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잘 익은 훈제 고구마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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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승 목사] 이군불사(二君不仕)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저 주일에 예배에 참석하는 종교인 말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또한 십자가를 지고 좁을 길을 걷는다는 것은 엄청난 자기부인과 희생이 따른다. (마태복음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라고 말씀한다. 한 발은 교회에, 또 다른 한 발은 세상에 양다리를 걸쳐놓고 기회를 보면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성도가 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지도자 여호수아는 신앙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결단을 촉구한 적이 있다. (여호수아24:15)에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당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라고 말씀한다. 이렇듯 신앙에 있어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옛날 표현으로 하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이군불사(二君不仕)’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한국선비의 근본사상을 풀이하는데 충(忠)이란 말뜻의 풀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글자를 뜯어보면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의 합성어임을 알게 된다. 중(中)이란 한복판을 뜻하지만 아울러 가운데가 가득찬 상태, 가슴 속이 꽉 차 빈틈이 없는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허위가 없는 충실한 참 마음이 중심이요, 충이다. 이 빈틈없는 참마음은 단지 나라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투사체가 달라짐에 따라 가치 또한 달라진다. 이를테면 의로운 일에 투사되었을 때는 절(節)이라 부르고, 부모에게 투사되었을 때는 효(孝)가 되며, 다른 사람에게 투사되었을 때는 인(仁)이 되고, 도덕적 규범에 투사되었을 때는 예(禮)가 된다. 옛 선비 중에 이군불사(二君不仕)의 귀감이 되는 한 선비가 있는데 바로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이다. 많은 무고한 선비가 죽어갔던 갑자사화 때 그 화에 말려든 대제학 홍언충이란 선비가 있었다. 그는 혹독한 고문을 받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옥문 밖에 버려져 있었다. 그 옥문 앞을 때마침 김안로(金安老)가 지나갔다. 이 두 사람은 어릴 적 글 공부를 같이 한 막역한 사이다. 이 처참한 꼴을 본 김안로가 ‘참혹하다. 이게 웬일인가’, 이에 피범벅이 된 홍언충은 ‘홍문관의 물이 묻어 그렇네’ 라고 대답했다. 홍문관은 글 읽는 학교다. 곧 홍문관의 물이라면 학문에서 익힌 의리를 홍문관의 물로 비긴 것이다. 바꿔 말하면 홍문관에서 익힌 의리를 굽힐 수 없어 이 처절한 꼴을 당했으며 고문을 당하고 범벅이 된 피고 곧 홍문관의 물이란 뜻이다. 결국 홍언충은 진보 땅으로 귀양하게 되었다. 당시 연산군은 사람을 죽일 때 귀양을 보내 놓고 귀양가는 도중에 사약을 내려 죽이는 것이 상투적인 수법이다. 그러기에 홍언충은 금부도사가 오늘 내려오려나 내일 내려오려나 하면서 귀양길을 가고 있었다.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품속에 미리 묘비 문까지 지니고 있었다. ‘한평생 우활하고 옹졸함은 학문의 공이라. 서른 두 살에 세상을 마치니 명이 어찌 그다지 짧으며 뜻은 어지 그다지 긴고. 천추만세 뒤에 누기 이 들판을 지날는지 이곳을 가리키고 배회하며 슬퍼하는 사람이 있을지어다’ 라는 내용의 비문이다. 이 같은 비문을 지니고 문경새재를 넘어 대탄원에서 쉬고 있는데 기다리고 있던 사신행렬이 뒤따라 달려왔다. 사약을 들고 오는 금부도사인줄 알았더니 의외로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종이 반정했다는 소식과 새 조정에서 급히 돌아오라는 매우 기쁜 전갈이었다. 죽음의 길이 영광의 길로 돌변한 것이다. 한데 홍언충은 이 기쁜 소식을 듣고 마냥 구슬피 울었다. 새 임금을 위해서 우는 기쁜 울음이 아니라 옛 임금을 위해 우는 슬픈 울음이었다. 홍언충은 영광의 길을 등지고 귀양길을 택한다. 그리고 고향에 가서 지내며 거듭된 조정의 부르심을 거절하였다. 이 선비의 행동은 현대인에게는 쉽게 납득은커녕 이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의를 위해 가혹한 고난을 당해가며 불의와 싸워 이겨놓고는 승자의 개선길을 등지고 패자의 길을 택하는 이 선비의 소행을 무엇으로 풀이할 수 있겠는가? 홍문관의 물을 피보다 진하다고 했다. 홍언충에게는 또 다른 대의, 바로 이군불사(二君不仕) 정신이 있었다. 홍언충은 낙향한 이후에도 연산군이 유배되어 있는 강화도를 향해 매일 절을 올렸다고 한다. 거듭되는 조정의 입사를 끝내 거절하고, 그를 죽이려 했던 연산군을 향해 절개를 지키다 죽어갔다. 오늘날 한국의 목회자에게 꼭 필요한 한 가지를 들라면 나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홍언충과 같은 이군불사(二君不仕) 정신이라고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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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 연말, 연시 용어3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의 유래와 의미
1. 서언(序言) 새해가 되면 우리는 흔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로 서로를 축복하면서 덕담을 나눈다. 이는 신정과 구정(설날)을 함께 의미 있는 날로 지내는 우리나라의 경우, 설날이 지난 정월대보름까지 이러한 인사를 나누는 데서 잘 나타난다. 그런데 이 인사말은 단순한 덕담을 넘어 오랜 역사와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본 호에서는 이러한 한국적인 복의 개념과 더 나아가 세계 여러 나라의 인사말, 그리고 우리의 신앙적 관점은 어떠한지를 논하고자 한다. 2. 한국적인 복의 개념과 성경의 복 이 주제에 관해서는 오래전 기고에서 기술한 일이 있지만,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복(福)에 대한 관심이 유별났다. 그중에서도 다섯 가지 복인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등을 특별히 좋아했다. 이러한 복에 대한 기대 심리는 전통적인 거의 모든 종교에 영향을 주었으며, 우리의 기독교 신앙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복에 대한 성경 말씀을 찾아보면 총 32,569번이나 기록될 정도로 아주 많은 말씀이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러한 신년의 덕담과 인사는 교인이든 아니든 아주 좋은 새해 인사라고 볼 수 있다. 3. 우리나라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말의 유래 복에 대한 개념과 기대는 신년이 되면 더욱 커지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 유래를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1)고려시대 : 이러한 새해 인사는 대략 고려시대부터로 추정하고 있다. 이때에는 새해가 되면 왕이 신하들에게 복을 내리는 의미에서 상을 내리는 행사가 있었고, 백성들도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사용한 데서 시작되었다. 2) 조선 시대 : 고려시대보다 좀 더 널리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는 조선 시대의 유교적 예절이 새해에는 왕과 신하들의 군신 관계 속에서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상례화되면서 더욱 일반 국민에게까지 중요한 의례적인 인사로 덕담을 나누게 되었기 때문이다. 3) 현대의 의미 : 이러한 새해 인사는 현대에 이르러 스마트폰 등의 다양한 기기의 발달과 현대적 문화의 현실 속에서 여러 형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연하장을 비롯해 카카오톡 인사, 각종 이모티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4. 여러 나라의 새해 인사말 신년에 덕담을 나누는 인사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거의 비슷한 유형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각 나라의 새해 인사와 새해 풍습 및 행위를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다만 지면 관계상 몇 나라만 소개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하의 원문과 내용은 AI 자료에 의거했음을 먼저 밝혀둔다. 1) 중국: 춘절인 새해의 인사말은 ‘新年快乐’이며, 춘절은 중국의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대청소로 집을 정리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교자나 만두, 어묵 등 특색 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또한 홍바오라 불리는 빨간 봉투에 돈을 넣어 아이들에게 주며 행운과 번영을 기원한다. 폭죽과 불꽃놀이로 악귀를 쫓고, 사자춤 등 새해 공연도 열린다. 2) 영국과 미국 등의 영어권 나라: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Happy New Year’로 서로 인사한다. 송구영신의 의미로 12월 31일 자정에 카운트다운 이벤트를 하며, 불꽃놀이 등의 거리 축제와 샴페인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새로운 결심을 한다. 3) 스페인: 영어권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송구영신 시간에 종을 울리며 포도 12알을 차례로 먹으면서 소원을 빌고 ‘¡Feliz Año Nuevo!’라는 새해 인사를 한다. 4) 인도: 새해 인사말은 ‘नया साल मुबारक हो (Naya Saal Mubarak Ho)’이다. 축하 방식은 지역과 종교(힌두교, 시크교 등)에 따라 새해 축하 방식이 조금씩 다르며 매우 다양하다. 남인도에서는 새해 첫날 집을 청소하고 코코넛이나 쌀과 같은 전통 음식을 나누며, 도시 지역에서는 서구식 새해 카운트다운 파티와 불꽃놀이 등 일반적인 행사를 하기도 한다. 5. 신앙적 의미와 결론 및 제언 이상에서 살펴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새해 인사에 대한 각 나라와 우리나라의 전통과 의미를 볼 때, 이는 우리 기독교적 의미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덕담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복이 새해에도 임하시기를 바라는 기도가 이 인사말 속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나친 기복적 의미와 기대를 담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이러한 우려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새해에 하나님의 복을 기원하는 이러한 덕담의 인사말은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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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 배우 안성기가 남긴 ‘세상에 필요한건 착한사람’
1994년 개봉되었던 베트남 전쟁사 이야기 ‘하얀전쟁’은 한국 사회에 큰 화두를 던졌다.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 남은 베트남전쟁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많이 참전했다. 전쟁이 전쟁으로 끝나지 않고 그 속에 응어리로 남는 비극이 바로 전쟁의 트라우마다. 적을 죽여야 하는 전쟁의 사명 뒤에 인간의 순수 심성이 양심을 괴롭힐 때가 많다. 그 큰 응어리는 전쟁을 치르고 나면 남는다. 그렇다고 우리의 역사 속에 전쟁 없이 살아온 인류사는 없다. 영화 하얀전쟁의 이야기는 적을 죽이는 전장에서 겪는 사람의 양심과 선한 심성에서 겪는 괴로움이 쉬 가시지 않음을 보여준다. 국민배우 고 안성기가 주연으로 이야기를 그려냈다. 사람은 누구나 착한 심성이 있지만 배우 안성기는 아역 배우에서부터 70평생 수많은 작품을 쏟아내면서 착한 심성의 캐릭터를 잃지 않았다. 국민들의 애도 속에 세상을 떠나고 나니 안성기의 심성을 남기는 어록(語錄)이 회자되고 있다. 아들이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받은 편지 속에 “아들 다빈아,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이 필요하단다”라는 말이 담겨 있다. 아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의 말이지만, 세상을 떠난 후 안성기가 남긴 말이 큰 울림이 되면서 특히 오늘의 세상을 가르치고 있다. 세상이 날로 악해지고 범죄 문화가 선함을 덮어가는 세상이 되고 있다. 급속한 발전의 뒷면에서 겪는 영악(獰惡)의 극치가 슬픈 현실로 자리 잡는 암울한 사회문화의 트렌드를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사회 각계 지도층들이 보여주고 있는 선함을 가장하고 부패의 심성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문화 속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밀려오는 때가 많다. 어떠한 범죄 윤리적 갈등 속에서도 뚜렷한 죄 앞에서 반성이 없다. 온갖 생떼를 쓰고 위기를 넘기면 사회적 예우로 회복되어 위선적 위치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파렴치한 일들을 너무 많이 보고 있다. 옛 유교문화 시대에도 사회 윤리적 작은 범죄에 처벌이 가혹했다. 그리고 신분을 다시 회복하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됐다. 성경으로 돌아가 보자. 하나님의 세상 통치의 신본문화 속에 있는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우상의 범죄는 차치하자. 일상에서 겪는 소위 세상에 넘치는 자범죄(自犯罪) 앞에서 우리는 신앙의 양심에서 회심의 단계를 겪는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가장 큰 울림이 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갚으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이러한 양심의 작동은 어디에서 나올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다. 바로 십자가의 도에서 출발하여 땅끝까지 이어지는 복음의 사명에 있다. 성도는 처음에도 선이요, 마지막에도 선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길이 진리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교회는 선과 양심의 ‘생산공장’이라고 해야 할까. 바울 선생은 디모데전서에서 아들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져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사회를 탓하기 전에 곳곳의 교회 현장에서 선함과 착함의 능력이 사라지고 세속적 다툼으로 승부를 내려는 교회 문화를 많이 볼 수 있다. 한국 사회를 일으킨 원동력은 고귀한 복음의 능력이었다. 140년 전 기라성 같은 선교사들이 캄캄한 한국 땅을 깨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실현함으로써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누렸다. 지금 세상이 필요한 것은 성경이 가르친 선한 양심의 작동 그리고 회복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날로 약해져 가는 세태를 방관하지 말고 한국 교회가 교회로 밀려오는 세속문화를 밀어내고 양심과 착함으로 불의와 부당함을 이기는 본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 사람 국민배우가 남긴 어록에 감동되는 동기도 중요하다. 더더욱 중요한 일은 교회가 더욱 세상을 리드하는 양심과 착한 문화의 생산공장이 되도록 확장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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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승 목사] 아버지와 딸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가끔 이해하기 힘든 사건을 접할 때가 있다. 그 중에서 (사사기 11장)에 등장하는 내용으로 사사 입다의 서원으로 자기 딸을 하나님께 바치는 사건이다. 암몬 왕이 입다의 말을 듣지 않자 입다는 출정을 하면서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렸다. (사사기11:30-31)에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자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라고 말씀한다. 이 얼마나 경솔한 서원인가?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데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 자신의 무남독녀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한다. (사사기11:34)에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라고 말씀한다. 이 때 입다는 자기 옷을 찢으며 말한다. (사사기11:35)에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라고 말씀한다. 그 말에 딸은 (사사기11:36)에서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라고 대답한다. 정말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그리고 입다의 딸은 한 가지 청을 올린다. 다만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처녀로 죽는 것에 대해 애곡하도록 두 달의 시간을 허락받았다. 결국 입다의 딸은 산 위에서 처녀의 죽음에 대해서 애곡하고 두 달 만에 아버지께로 돌아온 후 (사사기11:39)에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라고 딸의 죽음을 암시하는 언급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어진 아버지가 착한 딸에 죽음을 강요한 사건이 있다. 경남 하동(河東) 옥종면(玉宗面)에 종화골에서 안계골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다. ‘가마고개’로 불리우는 이 고개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구전된다. 광해군 때의 일이다. 남명(南溟) 조식(曺植)의 학통의 이어 받은 종화골의 한 명문 집안에서 딸을 출가시키고자 가마 행차를 하였다. 공교롭게도 이 때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통을 이어받은 안계골의 한 명문 집안에서도 딸을 출가시키고자 가마행차를 하였다. 이 양가(兩家)는 수백 년 동안이나 학통이 다르다는 것을 두고 다투어온 적대 가문이다. 이 적대하던 가문의 두 가마가 공교롭게 이 고갯마루에서 부딪치게 되었다. 비록 좁은 고갯길이기는 하지만 가마가 못 비켜가리만큼 좁진 않았다. 고개 아래는 낭떠러지로 남강의 지류인 덕천강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 한쪽의 가마가 비켜주거나 비켜가기만 하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한데 그들의 골수에 사무친 학통의식은 그 같은 겸양을 철저히 배제하고 대치하고만 있었다. 비켜가는 가마 쪽의 가문이 굽힌다는 의식에서 치열한 다툼이 생겼다. 그들은 무려 14일간 그 자리를 버티었고, 각기 각 학통에서 응원 온 유생들도 초막을 치고 버티기까지 하였다. 급기야 어느 학파에서도 물러날 조짐이 보이질 않았다. 그리하여 팽팽히 맞선 이 양 학파에서는 그 대결의 불씨가 된 시집가는 딸에게 각기 자결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가문과 학문의 명예를 구제하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시집을 가는 두 딸은 무거운 돌덩이를 붉은 비단 치마에 싸서 안고 덕천강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들의 신방은 바로 무덤이 되었고, 집을 나설 때는 꽃가마인데, 집에 돌아올 때는 꽃상여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자기 딸을 하나님께 바쳤던 입다의 행동이나, 타 학파에 밀리지 않겠다는 결연의 의지 때문에 딸에게 자결을 강요했던 선비의 행동에 대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경의 인물이나 우리 조상들에게서 자기가 믿는 바를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불사하는 지조와 결단력을 높이 평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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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
1. 서언(序言) 요즈음 연말연시를 기하여 한 해의 마무리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달력을 나누거나 새해의 각종 절기와 행사를 계획하기도 한다. 이런 때에 달력을 받으면 올해는 어떤 해인가에 대한 연호에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연호는 거의 다 사용하는데, 동양의 연호는 전통적인 황제 연호와 60갑자 연호이다. 2026년은 지난 호에서 기술한 대로 60갑자 연호인“병오년”(丙午年)이다. 서양의 경우는 예수님이 중심인 서력기원인 A.D와 B.C란 연호이다. 본 호에서는 이러한 연호와 그 유래와 현재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2. 동양 연호(年號)의 의의와 유래 1) 동양 연호란?: 먼저 한자의 뜻은 年은 한 해 365일을 의미하며, 號는 차례나 순서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그해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한해의 명칭으로 중국이나 한국, 일본 등의 군주제 국가 시절에는 왕의 즉위 때나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 그해에 이름을 붙여서 그 해를 원년으로 해서 이후 연도를 붙여가는 황제 연호이다. 2) 동양 연호의 유래: 최초의 연호는 중국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건원(健元)이다. 이는 황제의 권위와 국가적 정통성을 위해 시작했으며, 원칙적으로 황제만이 사용하고, 제후왕은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지 못했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일본 등에서도 사용하였으나 중국은 중화민국이 성립되면서 폐지되었고, 지금은 천황제도가 있는 일본만 사용하고 있다. 3) 우리나라의 유래: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삼국시대부터 시작하였다. 고구려는 광개토왕비에 영락(永樂)이란 연호를 사용했음을 볼 수 있으며, 백제는 칠지도(七支刀)에 태화(泰和)라는 연호가 기록되어 있다. 구체적인 연호의 제정은 신라 법흥왕 536년에 독자적으로 건원(建元)이란 연호를 사용했다. 고려시대도 연호를 세워 그 주체성을 발휘하였으며, 조선시대는 명나라의 제후국을 자처해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지 못했으나, 갑오경장 때 개국 기원을 503년으로 채택하여 연호를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연호를 사용하다가 미 군정기(1945∼1948)에는 서력기원(西紀)을 사용했다. 해방 후 1948년 정부수립 후에는 서기와 단군기원을 공용연호로 제정하였다가 국제적인 시류에 따라 1961년에 연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775호)을 공포하고 서력기원을 공용연호로 사용하고 있다. 4) 60갑자 연호의 유래와 사용: 또 하나의 연호인 60갑자 연호의 시작은 중국에서 B.C 2637년 황제시대로 추정하고 있으나 공식적인 사용은 B.C 104년 한 무제(漢武帝)때 황제 연호인 건원(健元)과 함께 사용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A.D 1444년에 세종대왕 때에 칠정산 역법(七政算曆法)을 편찬하면서 이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3. 서력기원(西曆紀元)의 의의와 유래 1) 서양의 연호 사용의 유래: 동양의 황제 연호나 60갑자 연호와 같은 별도의 명칭을 사용하기보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 등에서 왕의 등극한 해나 계절 주기 등을 기준으로 연도를 계산한 월력(月曆)을 사용했다. 대표적으로는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태양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토대로 만든 태양력(太陽曆)이었다. 그 이후 BC 46년 이집트를 정복한 쥴리아스 시저(Caius Julius Caesar)가 이를 로마에서 사용한 것이 태양의 공전주기에 맞춘 율리우스력(Julius Calendar)이다. 이를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A.D 1582년에 새롭게 개정한 그레고리우스력(Gregorius Calender)을 제정했고, 이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다. 2) 기독교적 연호(A.D) 사용의 유래 : ‘A.D’란 연호의 처음 사용은 주후 6세기경의 동로마 황제인‘저스틴 1세’부터였다. 그는 당시의 수도사였던‘디오니시우스’로 하여금 세계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연호를 연구하게 했다. 이에 그는 깊은 명상 중에 예수님 탄생의 해를 기점으로, 그 이전은 before Christ의 약자인 ‘B.C’로, 이후는 Anno Domine(주 오신후)의 약자인 ‘A.D’로 정했다. 또한 이를 황제에게 보고했고, 황제는 이를 선포하여 오늘까지 거의 세계 모든 나라들이 사용하는 연호로 확정되었다. 4. 기독교적 관점과 제언 이상에서 논한 대로 연호의 사용은 동서양 관계없이 고대로부터 그 역사성을 가지고 있고, 전 인류사에 공헌한 정말 유익한 것이었다. 단지 이러한 사용이 지도자의 권위를 위한 것이나 우상숭배와 점복(占卜)의 도구로 오용되는 일은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감사한 일은 거의 온 세계가 지금은 공용으로 예수님이 중심이 된 주전(B.C)과 주후(A.D)로 나누는 서력기원 연호를 사용하고 있는 일이다. 이는 기독교인인 우리로서는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다. 부디 이런 연호를 널리 사용함으로서 기독교적 언어 문화를 창출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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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숙 목사] 영적 싸움에 “VICI(이겼노라)”가 있는가?
- 전쟁에는 반드시 이겨야 하듯, 영적 싸움에도 반드시 승리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의 종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로마 제국 시대 율리어스 카이사르(Jullius Caesar – 영어표기 시저. 성경표기 가이사)는 전쟁을 스포츠처럼 즐겼던 사람이다. 그가 남긴 명언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The dice(die) is cast. 주사위는 던져졌다. 폼페이우스가 로마 원로원과 음모를 꾸며 카이사르를 죽이려고 로마로 복귀할 때 루비콘강을 건너기 전 모든 무장을 해제하고 오라고 하였다. 명령을 받은 카이사르가 생각해 볼 때 가만히 있으면 자신은 파멸될 것이고, 무기를 들고 루비콘 강을 건너오면 로마의 역적이 될 것이므로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루비콘 강을 건너기 전 카이사르는 고민하였다. 이래도 죽을 상황이고 저래도 죽을 상황인데 “죽을 때 죽더라고 싸우고 죽자” 결단을 내리고 무기를 들고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명언을 남겼는데 “주사위는 던져졌다”고하였다. 이때부터 특별한 결단을 하여 어떤 일을 할 때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을 하게 되었다.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왔노라[VENI-고대 라틴 발음(웨니), 현대 라틴 발음(베니), I came] 보았노라[VIDI-고대 라틴 발음(위디), 현대 라틴 발음(비디), I saw] 이겼노라[VICI-고대 라틴 발음(위키), 현대 라틴발음(비키,비치), I conquered] 이 문구는 B.C 47년 카이사르가 소아시아 파르나케스를 격파한 후 원로원에 보냈던 전승 보고서 첫 줄이다. 이 문구를 우리 한국인들이 체육대회나 단합대회 때 원문을 약간 변경하여 “왔노라 싸웠노라 이겼노라”로 사용하기도 한다. 어쨌든 인간적으로 카이사르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 그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폭군(暴君)이 아닌 성군(聖君)의 모습으로 부하들을 다스리며 덕(德)의 정치를 했다. 카이사르의 인생철학이 있었는데 “강자에게 영예를 양보하고, 약자에게 필수품을 양보하라”였다. 인생철학 그대로 그는 전리품들을 자신이 챙기지 않고 부하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고 개인적 재산을 가지고 법률사무소, 마켓, 편의시설을 지어 제공함으로 많은 사람의 신뢰를 쌓아갔으며 자신은 검소한 삶을 살아 타인들로하여금 인정받는 지도자였다. 또한 유머 감각이 있어 부하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주었고. 외부 적군들을 정복하기보다 더 힘든 내국 통치를 덕(德)의 정치로 이끌었던 지도자였다. 하지만 죄의 성향을 가진 인간들은 선한 정치를 하는 카이사르를 온전하게 두지 않았다. 카이사르와 친했던 부하 브루투스를 배신자로 만들어 음모를 꾸며 살해하도록 하였다. 믿었던 부하에게 배신당해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 마지막 남긴 말이 “브루투스 너마저...!” 인생 허무함으로 막을 내렸다. 훗날 카이사르에 대한 평가를 할 때에 일부 부정적 평가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하는데 로마에 수많은 지도자가 있었지만 카이사르를 “로마가 낳은 창조적 천재”라고 결론지었다. 신앙의 싸움을 하고 최후 주님 만나는 그날 주님께서 주신 사역의 현장인 영적 전투의 현장에서 “VICI(이겼습니다)” 이렇게 승전 보고를 한다면 멋진 인생을 산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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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숙 목사] 영적 싸움에 “VICI(이겼노라)”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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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다시 논하다
- 지난 9월 3일 전국 신문 1면 톱뉴스를 장식한 중국 베이징에서 보내온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중국 전승절 8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중국 시진핑, 러시아 푸틴, 북한 김정은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서늘한 기운으로 다가왔다. 마치 한반도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해보겠다는 음흉한 모습이랄까. 아무튼 중국 전승절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답답하지만, 중국은 한 장의 사진으로 대한민국을 비롯한 서방권 제국들에게 도전하는 듯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작금의 세계 정세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강한 드라이브로 관세폭탄을 세계 각국에 던지면서 ‘강한 미국’을 시현하고 있다. 이에 대한 사회주의 동맹의 이들 세 나라는 단합의 자세를 즉각 보이는 것으로,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한참 국민 정서를 흐트려놓았다. 문제는 이날 사진 한 장에서 세계는 지금 경제전쟁과 이념패권이 깊어지고 있다는 진단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세계를 주도하는 미국의 경제력에 부단히 따라붙고 있는 중국을 미국은 본격 견제하기 시작했다. 세계 각국 언론사 탐사취재팀은 오늘의 중국이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비판하면서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반면에 중국의 건재함을 진단하면서 미국의 경제력을 압도해 간다는 보도를 내기도 한다. 세계 새로운 산업 트렌드인 AI 산업시대는 중국이 세계를 이끌 것이라는 학자들의 진단도 있다. 등소평 후 개혁개방의 대전환이 이제 자본주의의 현장 미국을 넘어설 것인가. 아니면 공산사회주의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이끄는 데 한계가 왔다는 주장이 맞을 것인가. 쉽게 전망할 수 없는 형편 아니겠는가. 상황의 전개가 어찌되든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야욕에 대해 쉽게 시선을 돌릴 수 없다.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북한의 3각 대응이 우리에게는 조선 말 위기의 한반도가 되지 않을까 걱정되지 않을 수 없다. 해방 후 좌우 대립에서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가 아닌가. 주변 강대국이 새롭게 이념전쟁화하는 신냉전시대, 우리는 갈 길을 모르고 깊은 내전(內戰)에 휩싸여 있다. 필자는 얼마 전 우리의 근대사 영웅 안중근이 1907년 하얼빈에서 원수 일본 총리 이토를 쓰러뜨린 후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주창했던 이야기를 영화 《하얼빈》을 통해 소개한 바 있다. 다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이 오버랩된다.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은 이 비상하고 위험한 정세일지라도 복음의 실크로드를 열심히 닦아내는 것이다. 이 사명의 복음운동에 동아시아의 진정한 평화의 길이 열릴 것이다. 사형집행을 앞둔 차디찬 감옥 바닥에서 그는 5가지의 평화제안을 했다. 첫째, 조선·일본·청나라 3국이 연합하여 협력공존의 협력기구를 만들자. 둘째, 3국이 공동은행을 설립·운영하자. 셋째, 3국이 공동연합하여 서양 침입에 공동대처하자. 넷째, 3국의 경제개발 지혜를 일본에서 배우자. 다섯째, 상호 존중하고 평화를 유지하자. 어쩌면 굴욕 같지만 일본에 대해 조선을 식민지화하지 말고 아시아를 평화의 공동지대로 만들자는 혁신적 제안이었다. 일본에 36년간 식민지 지배를 받고 해방되어 6·25를 겪으며 처참한 빈국이 되었던 나라, 이 나라가 자유민주의 자본시장경제의 기틀에서 세계 10위 내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성공과 부흥 끝에 다가오는 또 다른 위기인가. '경제 보물섬'이 되어버린 지금의 대한민국에 대해 눈독으로 가득 찬 주변 나라들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한국교회가 강력한 복음운동으로 나가야 한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동아시아에 새롭게 심도록 해야 한다는 논지이다. 먼저 동아시아 복음평화운동으로 한반도의 복음통일을 이루는 데 부단한 사명 수행이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동아시아 복음평화운동에 주변 모든 나라의 교회가 연합하는 새로운 역사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약관의 나이에 오직 식민지를 꿈꾸는 적장을 총탄으로 쓰러뜨리고 위대한 동양평화론을 주창할 수 있었을까. 젊은 영웅이 피를 토하듯 던진 이 어록(語錄)을 깊게 되새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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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을 다시 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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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숙 권사] 다시 뛰게 하시는 하나님
- 지금, 다시 일어서야 할 누군가에게 우리는 모두 한 번쯤, 삶의 무게에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애써도 나아지지 않는 현실, 설명할 수 없는 억울함, 그리고 말하지 못한 상처가 마음을 짓누를 때, 어디서 다시 힘을 얻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그런 때를 겪은 사람들에게도 말을 건넵니다. 이사야서 33장은 그런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주전 8세기 말, 남유다 왕국은 앗수르 제국의 위협 속에 놓여 있었습니다. 당대의 앗수르는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고 조공을 강요하며 공포로 지배하던 강대국이었습니다. 남유다 또한 그들의 침공 앞에서 불안에 떨고 있었고, 때때로 생존을 위해 조공을 바쳐야 하는 처지였습니다. 그 위기의 시기에, 이사야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황충의 때 같이 사람이 너희의 노략물을 모을 것이며, 메뚜기가 뛰어오름 같이 그 위로 뛰어오르리라.”(이사야 33:4) 이 구절에서 ‘사람’은 바로 회복된 하나님의 백성, 곧 지금까지는 억눌리고 침묵했던 남유다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고난을 겪고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되찾는 주체로 바뀝니다. 반대로 ‘너희’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앗수르 제국을 지칭합니다. 그들이 강제로 빼앗고 축적한 부와 권세는 결국 하나님의 공의로 인해 무너지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그들이 노략질했던 것들이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회복의 선언입니다. 또한 ‘메뚜기’는 그 당시 중동에서 파괴력 있는 집단 행동의 상징이었지만, 여기서는 회복된 유다 백성의 힘찬 움직임과 생동감 있는 회복의 이미지로 사용되었습니다. 작고 연약한 메뚜기처럼 보였던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다시 일어나는 존재로 변모합니다. 마지막으로 ‘그 위’는 앗수르가 차지하고 있었던 권세와 재물, 전리품이 놓여 있던 자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위로 뛰어오른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 회복이 아니라 위치의 역전, 즉 억압에서 회복으로의 전환을 뜻하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던 자들이 결국 무너지고, 그들이 빼앗은 것들을 백성들이 되찾게 되는 회복의 약속입니다. 황충과 메뚜기, 작고 연약한 존재 같지만 그들이 몰려올 때 그 힘은 대단합니다. 하나님은 그 이미지를 사용하셔서 “나의 백성들이 마침내 일어나 다시 뛰게 될 것이다”라고 약속하십니다. 혹시 지금 억울한 일을 겪고 계신가요? 말 못 할 상처나, 기대했던 것이 무너져 침묵 속의 눈물을 흘리고 계신가요? 사람들은 몰라도, 주님은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회복시키겠다. 네가 빼앗긴 것을 다시 뛰어오르게 하겠다.” 이사야 33장 4절은 단순한 문학적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와 회복의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억압을 꺾으시고, 넘어진 자들을 다시 일으키십니다. 사람 눈에는 우리가 작은 메뚜기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우리는 회복의 주인공이 됩니다. 오늘도 믿음으로 이렇게 고백해 봅시다. “주님, 제가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주님이 회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고백을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뛰는 날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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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숙 권사] 다시 뛰게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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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 왜 7을 행운의 숫자로 보는가?
- 1. 서언(序言) 오래전의 본지의 기고에서 동양권에서 주로 기피하는 숫자 4(四)와 서양권에서 기피하는 13과 13일의 금요일에 관하여 기술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런 기피하는 숫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행운으로 여기는 숫자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7이다. 본 호에서는 왜 7을 행운의 숫자로 보는지에 대한 역사적 배경과 문화적 유래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숫자 7을 왜 행운으로 여기는 유래와 의미 (1) 고대 문명과 종교에서 유래한 신성한 숫자 1) 고대 메소포타미야 문명과 이집트 문명의 7일 주기: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보는 이곳에서 7은 매우 중요한 숫자였다. 특히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태양과 이를 자전과 공전으로 움직이는 행성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그 주기성을 통해 계절 변화와 농업에 적용했다. 이런 관계로 7행성을 신으로 여기는 동시에 하늘과 지구를 연결하는 중요한 요소로 간주했다. 또한 이 천체를 기준으로 일주일이란 시간이 나왔고, 이는 고대 이집트도 마찬가지였다. 이들도 7을 한 주간으로 삼았고, 농업과 계절 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7을 좋아하고 행운의 숫자로 여긴 것이다. 2) 종교적인 상징성: 종교에서도 7은 매우 중요한 숫자였다. 기독교는 하나님이 6일간 세상을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셨으며, 요한계시록을 비롯한 성경 전반에서 7이 자주 나오며, 이를 신성함과 완전수로 여긴다. 불교에서도 석가모니가 태어날 때 7걸음을 걸었다는 전설과 칠각(七角) 등의 7을 중요시했다. 이슬람교는 하늘을 7층으로 믿었고, 메카를 도는 순례 의식도 7회로 했다. 이런 면에서 7은 종교 전반에 걸쳐 신성한 숫자로 여겨왔다. (2) 자연현상과 관련된 특별함 : 앞에서 고대 메소포타미야 문명과 이집트 문명에서 태양과 행성의 연관성으로 7을 중요하게 여겼다고 했는데, 이는 다른 자연현상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자연현상 속에도 7은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면, 무지개의 7가지 색깔도 그러하고, 기본적으로 음악의 7음계도 이와 연관되었으며, 인간의 감각도 7가지로 분류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자연의 질서나 구조에서 7을 완전함과 조화를 상징하는 숫자로 여겼다. (3)문화와 전통에서 7의 특별함 : 다양한 문화권에서도 7은 행운을 상징하는 숫자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를 세분화해서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1) 서양 문화에서의 Lucky 7: 미국과 서양 문화에서는 7을 ‘럭키 세븐(Lucky Seven)’으로 인식하면서 7은 길흉을 결정하는 중요한 숫자로 여겼다. 슬롯머신 같은 도박에서도 777을 잭팟으로 하고 있다. 즉 7은 곧 행운과 성공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이다. 2) 동양 문화의 경우: 동양에서는 숫자 8이 주로 복을 상징하지만, 7 역시 귀신을 쫓는 행운의 숫자로 여겼다. 예를 들면 중국은 7이 하늘과 땅, 인류와 자연을 연결하는 중요한 숫자로 인식하며, 인간과 우주의 조화를 의미한다고 보았다. 한국에서는 7일장을 치른다거나, 칠석(七夕)처럼 7이 들어간 풍습이 많이 있다. (4) 7의 완벽함과 심리적인 영향 : 심리학자인 조지 밀러의 ‘매직 넘버 세븐’ 이론으로, 인간은 7개의 정보를 가장 효율적인 숫자로 여겼고, 사람의 인지능력에 가장 좋은 숫자라고 했다. 피타고라스도 7을 완벽한 숫자라고 했으며, 일반적으로 7은 시각적으로는 가장 안정감을 주는 동시에 독립적이고 특별한 느낌을 준다는 심리적 요인이 있다는 분석도 했다. 3. 기독교인으로서의 관점 및 결어 이상으로 볼 때 숫자 7이 행운의 숫자로 여기는 이유는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 심리적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다시 말하면 고대 초기 메소포타미야 문명과 이집트 문명에서 시작된 태양계 행성의 주기가 실질적 생활에 좋은 영향을 주었고,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등 긍정적인 요인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면이 잘못된 종교와 문화적 인식으로 변하여서 오늘날에도 ‘행운’을 주는 주술적 숫자로 인식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특히 우리 기독교의 관점으로 볼 때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숫자 7을 행운으로 여기는 일은 반기독교적인 사고방식이다. 오늘날과 같은 현대 문명에서 아직도 이러한 미신적 사고가 계속된다는 점이 안타깝다. 하지만 이를 바로잡아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이를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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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 왜 7을 행운의 숫자로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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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 선교영화 ‘무명’ 에서 받은 동북아 ‘복음평화론’
- 가족과 함께 선교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無名)'을 관람했다. 선교방송 CGN이 제작한 기독교 다큐멘터리 영화 무명은 일제 강점기 일본 땅 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와 복음을 전한 이야기다.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욱 사랑했던 두 선교사의 예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영토 강점이란 원수지간의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복음으로 사랑과 용기를 보여준 선교사의 눈물 담긴 이야기다. 1863년 일본 마쓰야마에서 태어난 노리마츠 마사야스 선교사는 1895년 10월 8일, 명성황후가 일본 공사 미우라에 의해 처참히 시해된 을미사변 사건을 보고 조선 땅에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한다. 이듬해 1896년 노리마츠 선교사는 수원 땅에 들어와 조선인이 되기로 마음먹고 청년 조덕성을 만나 한글을 배우고 복음을 전했다. 지독한 핍박 속에서도 예수 사랑을 실천하며 아내 사토와 함께 경기도 수원에서 수원동신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이어갔다. 얼마나 고난의 나날이었을까. 세 자녀를 낳아 키우면서 오직 조선인을 사랑하는 복음 정신으로 목회를 이어갔다. 불행히도 사모 사토는 세 자녀를 낳고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러나 노리마츠 선교사는 자녀들과 함께 조선 땅에서 한평생 선교사의 삶을 살다 1921년, 58세의 일기로 소천한다. 1896년에 조선에 입국한 오다 나라지 선교사는 불교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노리마츠 선교사의 조선 선교를 보고 조선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오다 선교사는 1896년에 조선 땅에 들어와 이름을 전영복이라 바꾸고 북한 땅과 호남 지역을 돌며 복음을 전했다. 오다 선교사는 특히 일본에 반하는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고 설파하고 복음을 전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연유로 체포되고 심한 고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정확한 연도는 모르지만 일본 땅으로 강제 추방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다 나라지 선교사는 조선인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다. 조선 청년 박중학이 오다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 회심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영화에 담기도 했다. 영화 무명은 국내 전국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지만 관람은 미미하다. 그러나 기독교가 무엇인지, 하나님이 이 땅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를 알 수 있는 탁월한 다큐 영화였다는 느낌을 필자는 받았다. 일제 36년, 역사와 신앙 사이에서 숨겨져 있던 고뇌의 복음 이야기를 체험할 수 있는 관람의 은혜였다. 문화 선교와 미디어 복음에 사명을 감당하는 CGN방송이 광복 80주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년을 맞아 제작한 작품이다. 필자는 영화를 관람하고 크고 깊은 은혜를 받았다. 오늘날 한·중·일의 동북아 지역은 갈등이 심화된 국제 정세 속에 있다. 이 갈등의 깊은 곳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일방적 힘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예수 사랑의 복음만이 ‘평화’의 땅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살해했다. 그리고 감옥에 있으면서 일본에 보내는 ‘동양평화론’을 주창했다. 안중근은 서슬 퍼런 일본 제국이 침략 야욕을 버리고 아시아의 평화 공동체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영웅의 주창은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본이 이를 받아들일 리 있겠는가. 일본은 이듬해 을사늑약으로 조선을 삼키고 조선 찬탈에 성공, 36년간 압정을 했지만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자폭탄에 의해 패망하고 말았다. 지금 동북아는 한·중·일, 그리고 북한, 미국, 러시아의 지정학적 초갈등 속에 긴장의 도는 더해 가고 있다. 날로 선교가 어려워지고 있는 일본 땅과 중국 땅에 복음의 씨를 뿌리는 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하며, 우리도 오직 예수 사랑으로 일본 두 선교사의 조선 사랑을 실천했던 것처럼 우리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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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 선교영화 ‘무명’ 에서 받은 동북아 ‘복음평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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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 기독사학이 살아야 대한민국 미래가 있다
- 교육강국 대한민국의 초석을 놓은 근대 선각자 세분을 꼽으라면 우남 이승만, 도산 안창호, 남강 이승훈 선생을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이승만 건국 대통령에 대해서는 붙여 얘기할 필요가 있겠는가. 치적의 하나인 토지개혁을 단행하면서 대지주들에게 땅을 사립학교 설립에 유도하고 평생 운영을 맡겼다. 바로 대한민국 인재를 양성한 사학제도이다. 한국 공교육을 폄하하지 않는다. 한데 한국 사학들이 70년대 이후 뜨거운 교육열 속에 향학의 경쟁문화를 통해 수많은 인재양성 바로 산업일꾼들을 키워냈다. 근대역사 속에 독립 운동가이자 교육자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미국등지 유학을 통해 선진문화를 보고 조국의 교육진흥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후세들을 위해 배워야 만 살아갈 수 있다는 연설을 당시 후학들에게 설파했다. 자신의 호 도산(島山)을 지은 것도 태평양 바다 속 우뚝 솟은 하와이를 보고 교육을 상징하는 의미로 지었다고 한다. 신민회 조직은 물론 지금까지 이어오는 흥사단 등 독립운동과 조국의 미래를 위해 교육을 강하게 주창한 선각자이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유명한 오산학교를 설립했으며 3.1운동 33인의 한분으로 독립운동을 하신분이다. 거장 세분의 선각자는 모두 기독교 이념의 서구교육으로 조국 발전의 밑자락을 놓은 선각자이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학 중 광복이후에도 많은 선교사를 비롯 교회에서 기독사학을 설립했다. 그리고 건학이념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건강한 교육을 선양해왔다. 산업화 민주화과정에서도 기독사학들이 인재양성에 많은 기여를 하면서 명성 있는 사학들을 육성했다. 그리고 상시 채플시간 교목들의 복음 활동을 통해 80년대 한국기독교 부흥에 한축 기둥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기독사학들이 급격히 사양의 길을 걷고 있다는 분석이 모두를 안타깝게 한다. 광역단체 교육수장들이 선출직이 되면서 다양한 교육이념의 정책이 도입되고 있다. 획일적 교과서에 다양성을 도입하고 있다. 학생인권을 우선시하는 인권시대의 권리남용이 교육현장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슬픈 현실이다. 우선 교목들의 복음채플시간이 크게 줄고 있다는 최근 비공식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전국 사립중은 632개, 사립고는 945개소이다. 이중 기독사학을 보면 기독사학중학교가 135개, 고등학교가 185개소이다. 이 중 교목을 둔 기독사학은 중학교 79개, 고등학교 139개 학교로 알려졌다. 기독사학들이 갈수록 교목을 두지 않거나 계속 줄여나가고 있다는 반증이다. 왜 일까. 진보정치성을 띤 교육수장들이 보이지 않게 기독사학들의 복음 활동을 억압하고 있다는 말이다.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학교지원예산을 들고 직간접으로 묘한 억압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기독사학의 건학 이념에 채플참여 의무시간이 있다. 이것도 자율 선택권을 두어 채플 의무시간을 자유하게 하는 추세다. 한국 기독교가 복음의 큰 사명 앞에 슬픈 현실이 되고 있다. 그동안 사학에 투자한 많은 기독사학의 주인들이 학교를 넘기거나 포기하는 사례까지 생겨나고 있다. 조국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게 한 교육의 원천이 되었던 기독사학들이 겪는 이 아픔이 아픔이 아니다. 기독사학이 무너지면 조국의 미래를 생각할 수 없다. 기독사학이 온 세상 구원의 지경을 확장하는 역할을 했던 것만 아니다. 중고를 비롯 대학의 현장까지 젊은이들이 가져야하는 건강한 정신을 함양하는데 기독사학들이 희생해왔다. 이러한 교육원천이 조국 대한민국의 비전이자 미래이다. 그러나 한국기독사학의 사양화는 다시말해 조국의 미래를 말할 수 없게 한다는 점이다. 모두가 한 번 더 새겨보고 강구책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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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 기독사학이 살아야 대한민국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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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숙 목사] 훈제(燻製) 고구마를 먹어 보았는가?
- 성경을 영안으로 자세히 보면 잠언 32:1(?)에 “훈제 고구마를 먹어 보지 못하고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다. 훈제(燻製)란 말은 한자로 “연기 훈(燻)” 자를 넣어 음식의 재료를 연기와 열에 노출시켜 수분을 제거하고 향을 입히며 보존성을 높이는 조리 방법을 말한다. 훈제의 기원은 언제부터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옛날 시골에 불을 때는 아궁이나 모닥불 또는 동굴 속에서 고기나 생선을 훈제하면 맛이 있고 오래 보존 가능하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자연히 유행된 조리법이다. 요즘에는 고급 요리법으로 오리 훈제, 연어 훈제 등 다양하게 훈제 음식들이 소개되고 있다. 훈제하면 대부분 육류 훈제, 아니면 생선 훈제를 떠올린다. 그러나 필자는 어린 시절부터 훈제 고구마를 직접 만들어 먹었다. 그것도 국민학교(초등학교) 시절에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궁금해 할 것이다. 지금은 문화가 발달해서 어린이들이 노는 문화가 고급화되고 수준이 높지만 옛날 50~60년대(그 이전에도 그렇게 놀았겠지만) 시골 아이들은 노는 곳이 뻔했다. 논, 밭, 들, 산, 바다... 특히 가을 고구마밭에서 생고구마를 캐서 날것으로 씹어 먹었다. 그렇게 먹고 나면 입술은 새까맣게 물들어 있고 고구마에서 나오는 진(sap, resin)은 옷에 다 묻고 정말 장난 아니었다. 동네 아이들이 개구쟁이처럼 놀면서 단순히 생고구마를 먹을 것이 아니라 색다른 고구마를 만들어 보자는 발상을 했었다. 방법은 빈 밭 공터에 땅을 파고 나뭇가지를 갖다가 불을 피우고 열기가 올라갈 때 그 위에 생소나무 가지를 덮으면 연기가 피어오른다. 소나무 가지 위에 떡갈잎을 펼치고 고구마를 올려놓고 연기 나는 상태에서 흙으로 덮어버리면 연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속에서 연기와 열기 속에 고구마는 익게 된다. 이것이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훈제 고구마이다. 말도 안 되는 것이라 반박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필자의 어린 시절 경험이요 팩트(fact)다. 훈제 고구마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목회를 하면서 가끔 훈제 고구마 생각이 떠오르기도 한다. 훈제 고구마는 자신을 희생하여 아이들에게 간식거리가 되었다. 불과 연기를 통과한 고구마가 진한 향기를 내어 유익한 존재가 되듯이 우리 인생도 불과 연기를 통한 인내의 연단이 있어야 정금 같이 나오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흙 속에 묻혀있는 고구마처럼 답답하고 질식할 것 같은 삶이지만 그 과정이 연기의 아름다운 향이 고구마에 배이듯 나에게 그리스도 예수의 향기가 몸에 배이는 시간이고 신앙 인격이 다듬어지는 시간인 것이다. 훈제 고구마를 만들면서 또 깨달은 것이 있다. 불에 너무 오래 두면 타버린다는 것과 덮은 흙을 너무 일찍 제거하면 고구마가 익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빨리 먹고 싶은 욕심에 아이들이 너무 일찍 흙을 파헤치고 먹으려다 실패한 적이 많다. 인생에게 기다림의 시간이 꼭 필요한 이유는, 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라 성숙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너무 조급해도 안 되며 너무 지체해도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늘 빠름에 익숙해 있다. 그래서 기다림은 손해처럼 느껴지고, 빠른 속도는 능력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빠름’이 답이 아니라 ‘바름’이 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잘 익은 훈제 고구마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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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숙 목사] 훈제(燻製) 고구마를 먹어 보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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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승 목사] 이군불사(二君不仕)
-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저 주일에 예배에 참석하는 종교인 말고,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또한 십자가를 지고 좁을 길을 걷는다는 것은 엄청난 자기부인과 희생이 따른다. (마태복음6:24)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라고 말씀한다. 한 발은 교회에, 또 다른 한 발은 세상에 양다리를 걸쳐놓고 기회를 보면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성도가 있다. 모세의 뒤를 이은 지도자 여호수아는 신앙의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결단을 촉구한 적이 있다. (여호수아24:15)에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당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라고 말씀한다. 이렇듯 신앙에 있어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옛날 표현으로 하면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이군불사(二君不仕)’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한국선비의 근본사상을 풀이하는데 충(忠)이란 말뜻의 풀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글자를 뜯어보면 가운데 중(中)과 마음 심(心)의 합성어임을 알게 된다. 중(中)이란 한복판을 뜻하지만 아울러 가운데가 가득찬 상태, 가슴 속이 꽉 차 빈틈이 없는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허위가 없는 충실한 참 마음이 중심이요, 충이다. 이 빈틈없는 참마음은 단지 나라에만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투사체가 달라짐에 따라 가치 또한 달라진다. 이를테면 의로운 일에 투사되었을 때는 절(節)이라 부르고, 부모에게 투사되었을 때는 효(孝)가 되며, 다른 사람에게 투사되었을 때는 인(仁)이 되고, 도덕적 규범에 투사되었을 때는 예(禮)가 된다. 옛 선비 중에 이군불사(二君不仕)의 귀감이 되는 한 선비가 있는데 바로 홍언충(洪彦忠, 1473-1508)이다. 많은 무고한 선비가 죽어갔던 갑자사화 때 그 화에 말려든 대제학 홍언충이란 선비가 있었다. 그는 혹독한 고문을 받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옥문 밖에 버려져 있었다. 그 옥문 앞을 때마침 김안로(金安老)가 지나갔다. 이 두 사람은 어릴 적 글 공부를 같이 한 막역한 사이다. 이 처참한 꼴을 본 김안로가 ‘참혹하다. 이게 웬일인가’, 이에 피범벅이 된 홍언충은 ‘홍문관의 물이 묻어 그렇네’ 라고 대답했다. 홍문관은 글 읽는 학교다. 곧 홍문관의 물이라면 학문에서 익힌 의리를 홍문관의 물로 비긴 것이다. 바꿔 말하면 홍문관에서 익힌 의리를 굽힐 수 없어 이 처절한 꼴을 당했으며 고문을 당하고 범벅이 된 피고 곧 홍문관의 물이란 뜻이다. 결국 홍언충은 진보 땅으로 귀양하게 되었다. 당시 연산군은 사람을 죽일 때 귀양을 보내 놓고 귀양가는 도중에 사약을 내려 죽이는 것이 상투적인 수법이다. 그러기에 홍언충은 금부도사가 오늘 내려오려나 내일 내려오려나 하면서 귀양길을 가고 있었다.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품속에 미리 묘비 문까지 지니고 있었다. ‘한평생 우활하고 옹졸함은 학문의 공이라. 서른 두 살에 세상을 마치니 명이 어찌 그다지 짧으며 뜻은 어지 그다지 긴고. 천추만세 뒤에 누기 이 들판을 지날는지 이곳을 가리키고 배회하며 슬퍼하는 사람이 있을지어다’ 라는 내용의 비문이다. 이 같은 비문을 지니고 문경새재를 넘어 대탄원에서 쉬고 있는데 기다리고 있던 사신행렬이 뒤따라 달려왔다. 사약을 들고 오는 금부도사인줄 알았더니 의외로 연산군이 폐위되고 중종이 반정했다는 소식과 새 조정에서 급히 돌아오라는 매우 기쁜 전갈이었다. 죽음의 길이 영광의 길로 돌변한 것이다. 한데 홍언충은 이 기쁜 소식을 듣고 마냥 구슬피 울었다. 새 임금을 위해서 우는 기쁜 울음이 아니라 옛 임금을 위해 우는 슬픈 울음이었다. 홍언충은 영광의 길을 등지고 귀양길을 택한다. 그리고 고향에 가서 지내며 거듭된 조정의 부르심을 거절하였다. 이 선비의 행동은 현대인에게는 쉽게 납득은커녕 이해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의를 위해 가혹한 고난을 당해가며 불의와 싸워 이겨놓고는 승자의 개선길을 등지고 패자의 길을 택하는 이 선비의 소행을 무엇으로 풀이할 수 있겠는가? 홍문관의 물을 피보다 진하다고 했다. 홍언충에게는 또 다른 대의, 바로 이군불사(二君不仕) 정신이 있었다. 홍언충은 낙향한 이후에도 연산군이 유배되어 있는 강화도를 향해 매일 절을 올렸다고 한다. 거듭되는 조정의 입사를 끝내 거절하고, 그를 죽이려 했던 연산군을 향해 절개를 지키다 죽어갔다. 오늘날 한국의 목회자에게 꼭 필요한 한 가지를 들라면 나는 조금도 주저함 없이 홍언충과 같은 이군불사(二君不仕) 정신이라고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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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승 목사] 이군불사(二君不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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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 연말, 연시 용어3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의 유래와 의미
- 1. 서언(序言) 새해가 되면 우리는 흔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로 서로를 축복하면서 덕담을 나눈다. 이는 신정과 구정(설날)을 함께 의미 있는 날로 지내는 우리나라의 경우, 설날이 지난 정월대보름까지 이러한 인사를 나누는 데서 잘 나타난다. 그런데 이 인사말은 단순한 덕담을 넘어 오랜 역사와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본 호에서는 이러한 한국적인 복의 개념과 더 나아가 세계 여러 나라의 인사말, 그리고 우리의 신앙적 관점은 어떠한지를 논하고자 한다. 2. 한국적인 복의 개념과 성경의 복 이 주제에 관해서는 오래전 기고에서 기술한 일이 있지만, 우리 민족은 고대로부터 복(福)에 대한 관심이 유별났다. 그중에서도 다섯 가지 복인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등을 특별히 좋아했다. 이러한 복에 대한 기대 심리는 전통적인 거의 모든 종교에 영향을 주었으며, 우리의 기독교 신앙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복에 대한 성경 말씀을 찾아보면 총 32,569번이나 기록될 정도로 아주 많은 말씀이 있다. 이렇게 볼 때 이러한 신년의 덕담과 인사는 교인이든 아니든 아주 좋은 새해 인사라고 볼 수 있다. 3. 우리나라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란 말의 유래 복에 대한 개념과 기대는 신년이 되면 더욱 커지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 유래를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1)고려시대 : 이러한 새해 인사는 대략 고려시대부터로 추정하고 있다. 이때에는 새해가 되면 왕이 신하들에게 복을 내리는 의미에서 상을 내리는 행사가 있었고, 백성들도 서로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말을 사용한 데서 시작되었다. 2) 조선 시대 : 고려시대보다 좀 더 널리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는 조선 시대의 유교적 예절이 새해에는 왕과 신하들의 군신 관계 속에서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상례화되면서 더욱 일반 국민에게까지 중요한 의례적인 인사로 덕담을 나누게 되었기 때문이다. 3) 현대의 의미 : 이러한 새해 인사는 현대에 이르러 스마트폰 등의 다양한 기기의 발달과 현대적 문화의 현실 속에서 여러 형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전통적인 연하장을 비롯해 카카오톡 인사, 각종 이모티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새해 인사를 하고 있다. 4. 여러 나라의 새해 인사말 신년에 덕담을 나누는 인사는 동서양을 불문하고 거의 비슷한 유형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에 각 나라의 새해 인사와 새해 풍습 및 행위를 기술하면 다음과 같다. 다만 지면 관계상 몇 나라만 소개하고자 한다. 아울러 이하의 원문과 내용은 AI 자료에 의거했음을 먼저 밝혀둔다. 1) 중국: 춘절인 새해의 인사말은 ‘新年快乐’이며, 춘절은 중국의 가장 중요한 명절이다. 대청소로 집을 정리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교자나 만두, 어묵 등 특색 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또한 홍바오라 불리는 빨간 봉투에 돈을 넣어 아이들에게 주며 행운과 번영을 기원한다. 폭죽과 불꽃놀이로 악귀를 쫓고, 사자춤 등 새해 공연도 열린다. 2) 영국과 미국 등의 영어권 나라: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는 ‘Happy New Year’로 서로 인사한다. 송구영신의 의미로 12월 31일 자정에 카운트다운 이벤트를 하며, 불꽃놀이 등의 거리 축제와 샴페인으로 새해를 맞이하고 새로운 결심을 한다. 3) 스페인: 영어권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송구영신 시간에 종을 울리며 포도 12알을 차례로 먹으면서 소원을 빌고 ‘¡Feliz Año Nuevo!’라는 새해 인사를 한다. 4) 인도: 새해 인사말은 ‘नया साल मुबारक हो (Naya Saal Mubarak Ho)’이다. 축하 방식은 지역과 종교(힌두교, 시크교 등)에 따라 새해 축하 방식이 조금씩 다르며 매우 다양하다. 남인도에서는 새해 첫날 집을 청소하고 코코넛이나 쌀과 같은 전통 음식을 나누며, 도시 지역에서는 서구식 새해 카운트다운 파티와 불꽃놀이 등 일반적인 행사를 하기도 한다. 5. 신앙적 의미와 결론 및 제언 이상에서 살펴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새해 인사에 대한 각 나라와 우리나라의 전통과 의미를 볼 때, 이는 우리 기독교적 의미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덕담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복이 새해에도 임하시기를 바라는 기도가 이 인사말 속에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지나친 기복적 의미와 기대를 담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이러한 우려는 거의 없다. 그러므로 새해에 하나님의 복을 기원하는 이러한 덕담의 인사말은 얼마든지 사용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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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 연말, 연시 용어3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의 유래와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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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 배우 안성기가 남긴 ‘세상에 필요한건 착한사람’
- 1994년 개봉되었던 베트남 전쟁사 이야기 ‘하얀전쟁’은 한국 사회에 큰 화두를 던졌다. 우리의 아픈 역사 속에 남은 베트남전쟁에 우리의 젊은이들이 많이 참전했다. 전쟁이 전쟁으로 끝나지 않고 그 속에 응어리로 남는 비극이 바로 전쟁의 트라우마다. 적을 죽여야 하는 전쟁의 사명 뒤에 인간의 순수 심성이 양심을 괴롭힐 때가 많다. 그 큰 응어리는 전쟁을 치르고 나면 남는다. 그렇다고 우리의 역사 속에 전쟁 없이 살아온 인류사는 없다. 영화 하얀전쟁의 이야기는 적을 죽이는 전장에서 겪는 사람의 양심과 선한 심성에서 겪는 괴로움이 쉬 가시지 않음을 보여준다. 국민배우 고 안성기가 주연으로 이야기를 그려냈다. 사람은 누구나 착한 심성이 있지만 배우 안성기는 아역 배우에서부터 70평생 수많은 작품을 쏟아내면서 착한 심성의 캐릭터를 잃지 않았다. 국민들의 애도 속에 세상을 떠나고 나니 안성기의 심성을 남기는 어록(語錄)이 회자되고 있다. 아들이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받은 편지 속에 “아들 다빈아, 이 세상은 착한 사람이 필요하단다”라는 말이 담겨 있다. 아들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는 가르침의 말이지만, 세상을 떠난 후 안성기가 남긴 말이 큰 울림이 되면서 특히 오늘의 세상을 가르치고 있다. 세상이 날로 악해지고 범죄 문화가 선함을 덮어가는 세상이 되고 있다. 급속한 발전의 뒷면에서 겪는 영악(獰惡)의 극치가 슬픈 현실로 자리 잡는 암울한 사회문화의 트렌드를 부정할 수 없다. 특히 사회 각계 지도층들이 보여주고 있는 선함을 가장하고 부패의 심성으로 권력을 행사하는 문화 속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밀려오는 때가 많다. 어떠한 범죄 윤리적 갈등 속에서도 뚜렷한 죄 앞에서 반성이 없다. 온갖 생떼를 쓰고 위기를 넘기면 사회적 예우로 회복되어 위선적 위치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파렴치한 일들을 너무 많이 보고 있다. 옛 유교문화 시대에도 사회 윤리적 작은 범죄에 처벌이 가혹했다. 그리고 신분을 다시 회복하는 데에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됐다. 성경으로 돌아가 보자. 하나님의 세상 통치의 신본문화 속에 있는 세상이 이해하지 못하는 우상의 범죄는 차치하자. 일상에서 겪는 소위 세상에 넘치는 자범죄(自犯罪) 앞에서 우리는 신앙의 양심에서 회심의 단계를 겪는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가장 큰 울림이 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갚으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이러한 양심의 작동은 어디에서 나올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왔다. 바로 십자가의 도에서 출발하여 땅끝까지 이어지는 복음의 사명에 있다. 성도는 처음에도 선이요, 마지막에도 선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길이 진리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교회는 선과 양심의 ‘생산공장’이라고 해야 할까. 바울 선생은 디모데전서에서 아들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져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사회를 탓하기 전에 곳곳의 교회 현장에서 선함과 착함의 능력이 사라지고 세속적 다툼으로 승부를 내려는 교회 문화를 많이 볼 수 있다. 한국 사회를 일으킨 원동력은 고귀한 복음의 능력이었다. 140년 전 기라성 같은 선교사들이 캄캄한 한국 땅을 깨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을 실현함으로써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는 축복을 누렸다. 지금 세상이 필요한 것은 성경이 가르친 선한 양심의 작동 그리고 회복이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날로 약해져 가는 세태를 방관하지 말고 한국 교회가 교회로 밀려오는 세속문화를 밀어내고 양심과 착함으로 불의와 부당함을 이기는 본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한 사람 국민배우가 남긴 어록에 감동되는 동기도 중요하다. 더더욱 중요한 일은 교회가 더욱 세상을 리드하는 양심과 착한 문화의 생산공장이 되도록 확장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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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 배우 안성기가 남긴 ‘세상에 필요한건 착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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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승 목사] 아버지와 딸
-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가끔 이해하기 힘든 사건을 접할 때가 있다. 그 중에서 (사사기 11장)에 등장하는 내용으로 사사 입다의 서원으로 자기 딸을 하나님께 바치는 사건이다. 암몬 왕이 입다의 말을 듣지 않자 입다는 출정을 하면서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렸다. (사사기11:30-31)에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자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라고 말씀한다. 이 얼마나 경솔한 서원인가? 결국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데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 자신의 무남독녀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한다. (사사기11:34)에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라고 말씀한다. 이 때 입다는 자기 옷을 찢으며 말한다. (사사기11:35)에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라고 말씀한다. 그 말에 딸은 (사사기11:36)에서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라고 대답한다. 정말 그 아버지에 그 딸이다. 그리고 입다의 딸은 한 가지 청을 올린다. 다만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처녀로 죽는 것에 대해 애곡하도록 두 달의 시간을 허락받았다. 결국 입다의 딸은 산 위에서 처녀의 죽음에 대해서 애곡하고 두 달 만에 아버지께로 돌아온 후 (사사기11:39)에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라고 딸의 죽음을 암시하는 언급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어진 아버지가 착한 딸에 죽음을 강요한 사건이 있다. 경남 하동(河東) 옥종면(玉宗面)에 종화골에서 안계골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다. ‘가마고개’로 불리우는 이 고개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구전된다. 광해군 때의 일이다. 남명(南溟) 조식(曺植)의 학통의 이어 받은 종화골의 한 명문 집안에서 딸을 출가시키고자 가마 행차를 하였다. 공교롭게도 이 때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학통을 이어받은 안계골의 한 명문 집안에서도 딸을 출가시키고자 가마행차를 하였다. 이 양가(兩家)는 수백 년 동안이나 학통이 다르다는 것을 두고 다투어온 적대 가문이다. 이 적대하던 가문의 두 가마가 공교롭게 이 고갯마루에서 부딪치게 되었다. 비록 좁은 고갯길이기는 하지만 가마가 못 비켜가리만큼 좁진 않았다. 고개 아래는 낭떠러지로 남강의 지류인 덕천강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 한쪽의 가마가 비켜주거나 비켜가기만 하면 아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한데 그들의 골수에 사무친 학통의식은 그 같은 겸양을 철저히 배제하고 대치하고만 있었다. 비켜가는 가마 쪽의 가문이 굽힌다는 의식에서 치열한 다툼이 생겼다. 그들은 무려 14일간 그 자리를 버티었고, 각기 각 학통에서 응원 온 유생들도 초막을 치고 버티기까지 하였다. 급기야 어느 학파에서도 물러날 조짐이 보이질 않았다. 그리하여 팽팽히 맞선 이 양 학파에서는 그 대결의 불씨가 된 시집가는 딸에게 각기 자결을 강요하는 방향으로 가문과 학문의 명예를 구제하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시집을 가는 두 딸은 무거운 돌덩이를 붉은 비단 치마에 싸서 안고 덕천강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들의 신방은 바로 무덤이 되었고, 집을 나설 때는 꽃가마인데, 집에 돌아올 때는 꽃상여가 되고 말았다. 여기서 자기 딸을 하나님께 바쳤던 입다의 행동이나, 타 학파에 밀리지 않겠다는 결연의 의지 때문에 딸에게 자결을 강요했던 선비의 행동에 대한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경의 인물이나 우리 조상들에게서 자기가 믿는 바를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불사하는 지조와 결단력을 높이 평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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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승 목사] 아버지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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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
- 1. 서언(序言) 요즈음 연말연시를 기하여 한 해의 마무리와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달력을 나누거나 새해의 각종 절기와 행사를 계획하기도 한다. 이런 때에 달력을 받으면 올해는 어떤 해인가에 대한 연호에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연호는 거의 다 사용하는데, 동양의 연호는 전통적인 황제 연호와 60갑자 연호이다. 2026년은 지난 호에서 기술한 대로 60갑자 연호인“병오년”(丙午年)이다. 서양의 경우는 예수님이 중심인 서력기원인 A.D와 B.C란 연호이다. 본 호에서는 이러한 연호와 그 유래와 현재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2. 동양 연호(年號)의 의의와 유래 1) 동양 연호란?: 먼저 한자의 뜻은 年은 한 해 365일을 의미하며, 號는 차례나 순서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그해의 이름을 말하는 것이다. 한해의 명칭으로 중국이나 한국, 일본 등의 군주제 국가 시절에는 왕의 즉위 때나 중요한 사건이 있을 때 그해에 이름을 붙여서 그 해를 원년으로 해서 이후 연도를 붙여가는 황제 연호이다. 2) 동양 연호의 유래: 최초의 연호는 중국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의 건원(健元)이다. 이는 황제의 권위와 국가적 정통성을 위해 시작했으며, 원칙적으로 황제만이 사용하고, 제후왕은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지 못했다.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일본 등에서도 사용하였으나 중국은 중화민국이 성립되면서 폐지되었고, 지금은 천황제도가 있는 일본만 사용하고 있다. 3) 우리나라의 유래: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삼국시대부터 시작하였다. 고구려는 광개토왕비에 영락(永樂)이란 연호를 사용했음을 볼 수 있으며, 백제는 칠지도(七支刀)에 태화(泰和)라는 연호가 기록되어 있다. 구체적인 연호의 제정은 신라 법흥왕 536년에 독자적으로 건원(建元)이란 연호를 사용했다. 고려시대도 연호를 세워 그 주체성을 발휘하였으며, 조선시대는 명나라의 제후국을 자처해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지 못했으나, 갑오경장 때 개국 기원을 503년으로 채택하여 연호를 사용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연호를 사용하다가 미 군정기(1945∼1948)에는 서력기원(西紀)을 사용했다. 해방 후 1948년 정부수립 후에는 서기와 단군기원을 공용연호로 제정하였다가 국제적인 시류에 따라 1961년에 연호에 관한 법률(법률 제775호)을 공포하고 서력기원을 공용연호로 사용하고 있다. 4) 60갑자 연호의 유래와 사용: 또 하나의 연호인 60갑자 연호의 시작은 중국에서 B.C 2637년 황제시대로 추정하고 있으나 공식적인 사용은 B.C 104년 한 무제(漢武帝)때 황제 연호인 건원(健元)과 함께 사용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A.D 1444년에 세종대왕 때에 칠정산 역법(七政算曆法)을 편찬하면서 이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3. 서력기원(西曆紀元)의 의의와 유래 1) 서양의 연호 사용의 유래: 동양의 황제 연호나 60갑자 연호와 같은 별도의 명칭을 사용하기보다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문명 등에서 왕의 등극한 해나 계절 주기 등을 기준으로 연도를 계산한 월력(月曆)을 사용했다. 대표적으로는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 태양의 규칙적인 움직임을 토대로 만든 태양력(太陽曆)이었다. 그 이후 BC 46년 이집트를 정복한 쥴리아스 시저(Caius Julius Caesar)가 이를 로마에서 사용한 것이 태양의 공전주기에 맞춘 율리우스력(Julius Calendar)이다. 이를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A.D 1582년에 새롭게 개정한 그레고리우스력(Gregorius Calender)을 제정했고, 이는 지금까지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용하고 있다. 2) 기독교적 연호(A.D) 사용의 유래 : ‘A.D’란 연호의 처음 사용은 주후 6세기경의 동로마 황제인‘저스틴 1세’부터였다. 그는 당시의 수도사였던‘디오니시우스’로 하여금 세계에서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연호를 연구하게 했다. 이에 그는 깊은 명상 중에 예수님 탄생의 해를 기점으로, 그 이전은 before Christ의 약자인 ‘B.C’로, 이후는 Anno Domine(주 오신후)의 약자인 ‘A.D’로 정했다. 또한 이를 황제에게 보고했고, 황제는 이를 선포하여 오늘까지 거의 세계 모든 나라들이 사용하는 연호로 확정되었다. 4. 기독교적 관점과 제언 이상에서 논한 대로 연호의 사용은 동서양 관계없이 고대로부터 그 역사성을 가지고 있고, 전 인류사에 공헌한 정말 유익한 것이었다. 단지 이러한 사용이 지도자의 권위를 위한 것이나 우상숭배와 점복(占卜)의 도구로 오용되는 일은 잘못된 일이다. 하지만 감사한 일은 거의 온 세계가 지금은 공용으로 예수님이 중심이 된 주전(B.C)과 주후(A.D)로 나누는 서력기원 연호를 사용하고 있는 일이다. 이는 기독교인인 우리로서는 대단히 자랑스러운 일이다. 부디 이런 연호를 널리 사용함으로서 기독교적 언어 문화를 창출해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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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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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 목사] 종교와 복음 사이
- 우리는 “열심히 하면”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고,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며,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증언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 깊은 곳에 이런 공식이 자리 잡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충성하면 하나님이 나를 더 사랑하신다.”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많이 읽고, 봉사를 열심히 해야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 겉으로 보면 그럴듯한 말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교회는 이런 ‘열심 있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이 복음의 중심이 아니라 종교의 언어라는 데 있습니다. 종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열심히 하면, 네가 정성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복을 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네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할 때, 하나님이 먼저 너를 위하여 행하셨다.” 우리는 흔히 ‘기독교도 종교’라고 부르지만, 복음 그 자체는 ‘인간이 하나님께 올라가려는 종교’와는 전혀 다른 길을 말합니다.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께 올라가려 하고, 복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은 오히려 반대로 말합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이렇게 하면 의로워질 수 있다”라는 길이 아니라, “너는 이렇게까지 해도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다”라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만약 우리가 율법을 통해 스스로 의롭다 할 수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굳이 십자가를 지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값없이’ 입니다. 우리는 늘 뭔가를 “치르고 얻는 방식”에 익숙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 사업을 열심히 하면 성과, 사람에게 잘하면 인정 등의 공식을 갖고 삽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대가의 구조’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신앙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옮겨 버립니다. “기도라는 영적 수고를 드려야 응답을 받는다.” “헌신이라는 영적 비용을 지불해야 복을 받는다.” “눈물과 금식을 쌓아야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기도도 쌓고, 헌신과 봉사도 쌓아야 한다”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너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 때문에 너는 이미 사랑받는 자다.” “너의 열심이 아니라, 예수님의 완전한 순종 때문에 너는 이미 받아들여진 자다.” 여기서 우리는 깊은 충돌을 경험합니다. 종교적 습관과 복음의 진리가 충돌합니다. 입으로는 “은혜로 삽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전히 “조금 더 열심히 해야…”라는 죄책감과 부담 속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이것이 게으름을 합리화해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열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열심의 동기와 방향입니다. “더 사랑받기 위해” 열심을 내는가? “이미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기쁨으로 헌신하는가? 복음은 두 번째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조금 더 해라, 그래야 사랑해 주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독생자를 주실 만큼 사랑하셨고,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제대로 알면,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오히려 종교적 강박에서 자유로워질수록, 감사와 감격 때문에 기도하고 싶고, 말씀을 보고 싶고, 섬기고 싶어집니다. “노력해야 사랑받는 신앙”에서 “가만히 있어도” 사랑받는 자이라는 생각의 전환, “이미 사랑받기에 기쁨으로 헌신하는 신앙”으로의 전환, 이것이 복음을 아는 첫 번째 회심입니다. 부담과 죄책감으로 신앙을 끌고 가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 위에 조용히 앉아 보십시오. 예수님이 이미 이루신 것들을 하나씩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나님, 제가 ‘더 해야 사랑받는다’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이제는, 이미 사랑받고 있다는 이 복음을 믿게 해 주옵소서.” 이 고백의 자리에서부터, 복음의 기쁨이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하면”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의인은 믿음으로 살고,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며,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증언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 깊은 곳에 이런 공식이 자리 잡습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충성하면 하나님이 나를 더 사랑하신다.”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을 많이 읽고, 봉사를 열심히 해야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 겉으로 보면 그럴듯한 말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교회는 이런 ‘열심 있는 사람들’에 의해 운영되기도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각이 복음의 중심이 아니라 종교의 언어라는 데 있습니다. 종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열심히 하면, 네가 정성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너에게 복을 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네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연약할 때, 하나님이 먼저 너를 위하여 행하셨다.” 우리는 흔히 ‘기독교도 종교’라고 부르지만, 복음 그 자체는 ‘인간이 하나님께 올라가려는 종교’와는 전혀 다른 길을 말합니다.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께 올라가려 하고, 복음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으로 생각하지만, 성경은 오히려 반대로 말합니다.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이렇게 하면 의로워질 수 있다”라는 길이 아니라, “너는 이렇게까지 해도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없다”라는 인간의 한계입니다. 만약 우리가 율법을 통해 스스로 의롭다 할 수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굳이 십자가를 지실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값없이’입니다. 우리는 늘 뭔가를 “치르고 얻는 방식”에 익숙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대학, 사업을 열심히 하면 성과, 사람에게 잘하면 인정 등의 공식을 갖고 삽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대가의 구조’에 너무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신앙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옮겨 버립니다. “기도라는 영적 수고를 드려야 응답을 받는다.” “헌신이라는 영적 비용을 지불해야 복을 받는다.” “눈물과 금식을 쌓아야 하나님이 움직이신다.” “기도도 쌓고, 헌신과 봉사도 쌓아야 한다.” 그러나 복음은 말합니다. “너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 때문에 너는 이미 사랑받는 자다.” “너의 열심이 아니라, 예수님의 완전한 순종 때문에 너는 이미 받아들여진 자다.” 여기서 우리는 깊은 충돌을 경험합니다. 종교적 습관과 복음의 진리가 충돌합니다. 입으로는 “은혜로 삽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여전히 “조금 더 열심히 해야…”라는 죄책감과 부담 속에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물론 이것이 게으름을 합리화해도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열심’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열심의 동기와 방향입니다. “더 사랑받기 위해” 열심을 내는가? “이미 사랑받고 있기 때문에” 기쁨으로 헌신하는가? 복음은 두 번째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조금 더 해라, 그래야 사랑해 주겠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독생자를 주실 만큼 사랑하셨고, 이미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제대로 알면,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오히려 종교적 강박에서 자유로워질수록, 감사와 감격 때문에 기도하고 싶고, 말씀을 보고 싶고, 섬기고 싶어집니다. “노력해야 사랑받는 신앙”에서 “가만히 있어도” 사랑받는 자이라는 생각의 전환, “이미 사랑받기에 기쁨으로 헌신하는 신앙”으로의 전환, 이것이 복음을 아는 첫 번째 회심입니다. 부담과 죄책감으로 신앙을 끌고 가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 위에 조용히 앉아 보십시오. 예수님이 이미 이루신 것들을 하나씩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나님, 제가 ‘더 해야 사랑받는다’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이제는, 이미 사랑받고 있다는 이 복음을 믿게 해 주옵소서.” 이 고백의 자리에서부터, 복음의 기쁨이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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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 목사] 종교와 복음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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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석 목사] 생각 잘 하기
- 미 텍사스 근교의 한 냉동 창고에서 직원이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동태처럼 꽁꽁 얼어붙어 있었고,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습니다. 병원에 옮겨져 부검한 결과 사인(死因)은 동사(凍死)로 판명되었습니다. 그 사고는 토요일 오후 늦게까지 냉동 창고 안에서 잔업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관리자가 밖에서 문을 잠가버리고 퇴근함으로써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토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오전까지 36시간을 냉동 창고에 갇혀 변을 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토요일 오후부터는 전기가 끊겨 그 냉동 창고의 냉동기가 가동되지 않았습니다. 즉 토요일 오후부터 냉동 창고는 냉방이 되지 않는 말뿐인 냉동 창고였다는 것입니다. 실제 그 직원이 시체로 발견되었던 당시 그 냉동 창고의 온도는 섭씨 13도였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죽은 것은 냉동 창고의 추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사인은 추위가 아니고 추워서 곧 죽게 될 것이라는 그의 얼어붙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생각이 그를 죽인 것입니다. 오래 전 미국의 어느 신문에 자기가 고양이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에 빠져버린 한 부인의 이야기기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아멜라라고 하는 이 부인은 20년 동안 고양이 음식을 먹고 살았습니다. 그 사연은 이랬습니다. 어느 날 이 부인이 애지중지하며 키우던 고양이가 죽어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몹시도 허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고양이를 사랑해서 미리 사 둔 고양이 사료가 집에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인은 그 고양이를 생각하며 그 사료를 한 개씩 집어먹기 시작하다가 그것이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그렇게 고양이 사료를 먹다보니까 자신이 고양이로 변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기를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진짜 고양이 행세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고양이가 그러하듯이 그렁그렁 소리를 내었습니다. 화가 날 때는 고양이가 하듯이 야옹야옹 소리를 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심지어 그 부인의 생긴 모습도 점차 고양이처럼 변해갔습니다. 실제 신문에 그 부인의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진짜 고양이 같은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이 실화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생각이 무섭다는 것입니다. 무슨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사람은 달라지고, 그래서 그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 8장 6절에서는 생각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엄청난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어느 신문에 정치인이며 교회 장로인 한 분의 이야기기 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예수님을 믿고 진리를 깨달은 후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에는 골프장에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생각의 전환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일요일에 골프장을 안가면 정치에서 소외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장로님은 그렇게 결심을 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기 속에 계신 성령님이 주일에는 골프장에 가지 않고 하나님께 예배하며 주일을 온전히 성수해야 한다고 늘 감동을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육신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령의 생각을 따르는 모습인 것이지요. 그렇지만 어느 때는 정치적인 욕심에 이끌려서 골프장을 갈 때가 있었는데, 그렇게 욕심에 이끌려서 골프장에 갔다가 오는 날이면 마음의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왠지 마음이 불안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모습이 추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장로님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끝까지 성령님의 생각을 따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부터 주일에는 아예 골프장 출입을 금했습니다. 그로부터 당장 찾아온 것이 마음의 평안이었습니다.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평안이 물밀듯이 밀려 와서 교회도 기쁜 마음으로 오게 되고 삶에서도 이전과 다른 즐거움이 생겼다고 합니다. 바로 그것이 “영(성령)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는 말씀의 중요한 의미입니다. 독자 여러분, 가끔씩 주일성수를 뒤로 하고 주일에 산이나 들로 소풍을 간 적은 없으십니까? 내 볼일 보러 간 적은 없으셨습니까? 그 때 마음이 평안하던가요? 평안하지 않은 것을 예수님을 믿는 성도라면 다 느낄 것입니다. 그것은 양심하고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내 속에 계신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므로 말미암아 내 속에 평안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이 내주하는 하나님의 자녀의 참 평안은 자신 속에 계신 성령님의 생각과 내 행동이 일치할 때에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끝까지 육신의 생각에 무너지지 않고, 내 안에 내주하셔서 나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려는 성령님의 생각을 따르는 진정한 성령의 사람이 되시기를 빕니다. 마산중부교회 박봉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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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인사]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2:14-23)
-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부르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아니하리라”(호2:16) 이 말씀은 단순히 부르는 호칭을 바꾸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의 예배가 얼마나 깊이 타락했는지를 폭로하는 말씀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끝까지 가는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1. 이스라엘 역사에 반복된 한 가지 패턴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한 가지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출애굽 직후, 시내산 아래에서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런데 그들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그들은 금송아지를 다른 신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여호와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이 우상숭배의 가장 무서운 형태입니다. □ 여호와를 버린 것이 아니라, □ 여호와를 왜곡한 것입니다. 그 이후 이스라엘 역사 속에는 수많은 이방 신들이 등장합니다. 바알, 아세라, 몰렉… 그러나 호세아 시대에 이르러서는 상황이 더 심각해집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바알’이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2. “내 바알” 이라는 말의 충격입니다. ‘바알’은 단순히 ‘주인’이라는 일반 명사가 아닙니다. 바알은 가나안의 대표적인 우상신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 바알” 이 말은 무엇입니까? □ 하나님과 바알이 혼합되었다는 말입니다. □ 참 하나님과 거짓 신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말입니다. □ 예배는 있는데, 대상이 틀린 예배입니다. 금송아지를 여호와라 부르던 그 착각이, 이제는 하나님을 바알이라 부르는 지경까지 온 것입니다. 이것은 무지한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왜곡된 예배, 섞여버린 신앙, 타락의 최종 단계입니다. 3. 이것은 옛 이스라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과연 옛 이스라엘에게만 해당되는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성도들은 교회에 나옵니다. 예배를 드립니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그 예배의 중심에 계신 분이 참 하나님이 아니라, 각자가 만들어 낸 ‘자기만의 바알’일 수 있습니다. 성공을 주는 하나님, 안전만 보장해 주는 하나님, 내 계획을 도와주는 하나님, 내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하나님. 이것은 여호와가 아닙니다. 이것은 바알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것입니다. □ 이 우상숭배는 □ 교회 밖에서가 아니라, □ 예배당 안에서, □ 하나님의 집에서, □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안방에 와서 참된 남편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외간 남편, 바알을 섬기는 예배. 이것이야말로 가장 더럽고, 가장 추하고, 가장 심각한 우상숭배입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호세아 2장 16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다시는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내 남편’이라 부르리라” 이 말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깨닫고 돌아온다는 말이 아닙니다. □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겠다는 선언입니다.\ 혼합된 예배를 정리하시고, 왜곡된 관계를 끊어내시고, 다시 언약의 관계로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로 데려가시고, 말로 위로하시고,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바꾸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2:19–20) 5.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이 약속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신을 신랑이라 부르셨고, 교회를 신부라 부르셨습니다. 십자가는 혼합된 예배를 끝내는 자리이며, 바알의 관계를 끊는 자리이며, 언약의 혼인을 다시 여는 자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더 이상 ‘내 바알’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 남편’이라 고백하는 신부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여호와를 예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낸 바알을 여호와라 착각하며 예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약속하십니다. “다시는 나를 내 바알이라 부르지 않게 하겠다.” “내가 너를 다시 내 아내로 회복시키겠다.” 혼합된 예배를 내려놓고, 참된 남편이신 하나님 앞에 정결한 신부로 다시 서는 고신의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 말씀 앞에 우리의 예배와 신앙을 다시 비추어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입술로는 주님의 이름을 불렀지만 마음으로는 주님을 바알처럼 대하며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사랑의 남편이 아니라 필요를 채워주는 대상으로, 내 뜻을 돕는 존재로 왜곡하여 불러왔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참 하나님이 아닌 우리가 만들어 낸 바알을 섬겼던 이 더럽고 추한 우상숭배를 회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끊어내지 않으시고, 광야로 데려가 다시 말씀하시며, “다시는 나를 바알이라 부르지 않게 하겠다” 약속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찬양합니다. 주님, 교회를 맡아 사역하시는 말씀 사역자, 목사님들을 주님의 강한 손으로 붙들어 주옵소서. 혼합된 예배의 시대 속에서도 타협하지 않게 하시고, 바알의 언어가 아니라 언약의 말씀만을 담대히 전하는 신실한 말씀 사역자, 목사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말씀 사역자, 목사님들의 영과 육을 지켜 주시고, 가정과 사역 위에 주님의 위로와 분별력을 날마다 더하여 주옵소서. 주님, 고신의 모든 성도들의 마음을 다시 주님께로 돌이켜 주옵소서. 익숙해진 신앙, 형식만 남은 예배, 섞여버린 가치관을 말씀의 빛으로 정결하게 씻어 주옵소서. 주님을 내 바알이 아니라 내 남편이라 부르며, 관계로 주님을 아는 신앙으로 회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육신과 마음의 질병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주님의 긍휼로 찾아가 주옵소서. 병상에서, 고통의 자리에서 주님이 여전히 언약의 남편이심을 붙들게 하시고,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그들의 몸과 마음 위에 부어 주옵소서. 주님, 오늘도 우리를 버리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라 다시 아내로 삼기 위해 부르신 줄 믿습니다. 혼합된 예배를 끊어내고, 참된 남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정결한 신부로 서게 하시며, 끝까지 신실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고신의 모든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참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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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인사]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호2: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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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숙 목사] 복(Blessing)의 본질을 찾아서
- 연말연시가 되면 기독교인들은 송구영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바르게 하여 복 받기를 원하고, 일반인들은 해돋이를 통해 태양신(?)이 주는 복을 받기를 원한다. 필자가 목회하는 통영 지역은 12월 마지막 날이 되면 해돋이를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인하여 북새통을 이룬다. 복에 해당하는 단어를 찾아보면 히브리어 아쉬레(אשרי-ashre), 바라크(ברך-barak), 헬라어 단어 중에는 εὐλογία(유로기아), 마카리오스(μακαριος) 등의 단어가 나온다. 알렉산더 대왕의 가문이 헬라 문화를 장악하고 있을 당시 헬라 문화권에서는 복의 개념으로 마카리오스를 사용하였다. 이 용어는 헬라 철학자 아리스토 텔레스가 처음 사용한 용어이다. 그러므로 헬라 사람들에게 복이란 어떤 신이든 상관없이 개인에게 이득이 주어지는 복 곧 “신들에 의해 얻어지는 부(富)나 염려 없는 평안한 삶”을 복이라 생각했다. 히브리인들에게 복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내적인 평안, 의로움, 경건함”등으로 율법을 지키고 사는 삶 그 자체가 복이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시대를 지나 바사 헬라,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이 복의 개념이 “율법을 지켜야 복을 얻고, 율법 준수가 복의 자격이 되는 철저하게 조건적인 복의 개념으로 변질되므로 바리새적인 율법주의가 출현하게 되어 복이 은혜가 아닌 인간의 노력과 성과로 받게 되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복을 뜻하는 영어 단어 ‘해피니스(Happiness)’는 '우연히 일어나다.’라는 뜻의 해픈(happen)에서 파생된 단어다. 생각지도 못한 일이 잘 풀릴 때 우리는 행복을 느낀다. 한자어 행복(幸福)이라는 단어 풀이도 그렇다. 여기서 행은 “우연히, 요행” 뜬구름 잡듯이 우연히 잡게 된 복을 말한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본질적인 복은 해피니스(Happiness)가 아닌 블레싱(Blessing)이다. 블레싱(Blessing) 단어는 “블리드(bleed-피를 흘리다)”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찾아 만들어낸 것이 해피니스라면, 신으로부터 받는 복은 블레싱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모든 복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 때문인 것처럼 말이다. 예수님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신 복은 ‘해피니스’가 아닌 ‘블레싱’이다. 행복은 우연히 살아가며 어쩌다 누리는 사건이지만, 나를 위해 피 흘리신 주님을 믿는 사람은 약속된 언약의 복이므로 일상 전체가 복인 것이다. 주님의 보혈이 이미 우리에게 임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더 이상 우연한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복음을 믿고 구원받은 순간이 최고의 복 받는 순간이다. 히브리어 “바라크”는 조건적인 복으로 “복을 받을 것이다”이며, 히브리어 “아쉬레, 헬라어 마카리오스”는 존재적 복으로 “복된 자”이다. 예수님께서 강조하는 복의 개념은 “아쉬레, 마카리오스”적 복의 개념이다. 예수님은 율법주의에 기반을 둔 조건적 복의 사상을 은혜로 주어지는 복의 원래 의미를 회복시켜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이미 복을 받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복 받은 백성답게 감사하며 영광 돌리며 사는 삶이 하나님 안에서 아름다운 삶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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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호숙 목사] 복(Blessing)의 본질을 찾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