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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블큐티[황권철 목사] 전도에 불을 붙이라
    교회는 전도함으로 존재한다 호주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 소녀가 골수염으로 두 다리를 자르게 되었는데 병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손으로 옮겨져 두 손까지 자르게 되었다. 겨우 생명은 건졌으나 죽은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두 팔과 두 다리를 잃어 몸통만 남게 된 그는 남의 도움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다. 죽고 싶으나 죽을 수도 없었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비참한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그 소녀가 복음을 받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후 새로운 생명력이 움트기 시작했다. 생명이 있는 동안 하나님을 위하여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전도편지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 날부터 그녀는 팔뚝에 연필을 매어 글쓰기를 연습했다. 피나는 연습 끝에 누워서 편지 쓰는 법을 배웠다. 그때부터 그녀는 자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시작으로 감사편지를 쓰게 되었다. 교회에 출석하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예배에 참석하도록 복음편지를 썼다. 온 몸을 다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쓴 편지에 감동받은 수많은 영혼들이 주님 앞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마가복음 6장을 함께 읽고 묵상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본문은 주님이 하신 갈릴리갈릴리 전도사역을 통해서 사명자의 전도훈련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특별히 본문은 다양한 삶의 환경에서 전도자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고향에서 선지자의 사명 예수님이 자신의 고향인 나사렛에 갔다. 이전에 자신을 잡아가려 하던 자들이 이젠 많이 변한 것 같다. 아마 버린 자식으로 체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때 주님을 따랐던 열두 제자들도 동행했다. 어찌 보면 이들은 패거리 건달과 비슷했다. 이들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바로 그곳에는 그의 친동생들과 나사렛 주변 사람들이 와 있어 그의 가르침과 권능을 보고 심히 놀랐다. 그때 그 동네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사람이 바로 목수 집안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 동생들이 지금 우리와 함께 있는데 어디서 저런 권능을 행하느냐고 했다. 그때 주님이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는 존경을 받지 못함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은 선지자가 고향과 친척과 자기 집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왜 선지자가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가? 첫째, 혈통적인 뿌리 때문이다. 고향이란 핏줄로 얽혀진 공동체이다. 나의 핏줄이고 집안이고 친척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선지자를 나와 동일시함으로 존경심이 사라진다. 그래서 주님은 구원이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둘째,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전통이 강하게 지배하는 사회일수록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강하다. 변화를 통해서 그 동안 쌓아 놓은 기득권을 상실하기 때문에 수하에 어리고 젊은 자를 선지자로 모신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이다. 셋째, 유대의 율법적인 전통 때문이다. 유대 사회에서 율법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일은 서기관이나 율법학자들의 몫으로만 알았다. 그런데 예수가 성전에서 율법을 가르치는데 그 권능이 서기관들과 비교할 수 없으니 주님을 더욱 시기했다. 그래서 주님은 그곳을 떠나 갈릴리 여러 촌으로 두루 다니면서 천국복음을 전파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기억할 사실이 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가정의 복음화가 쉬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고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 된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자에게 가장 큰 선물로 주신 것이 가정 구원의 사명이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세상을 향한 전도의 사명 주님은 제자들을 불러서 둘씩 둘씩 전도하러 보냈다. 먼저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들린 자를 내어 쫓는 권세를 주셨다. 우리는 영혼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복음을 들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우리 시대에도 그러하지만 주님이 오셨던 그 시대에는 특별히 더러운 귀신 들린 자들이 너무 많았다. 메시야가 직접 이 땅에 오셨으니 사단 권세가 발악했다. 그래서 주님은 가는 곳마다 귀신 들린 자들을 온전케 하셨다. 그러면서 주님은 전도자가 금해야 할 몇 가지를 당부했다. 양식과 돈, 그리고 두벌 옷이다. 이것은 나그네에게 의식주의 대용품으로 여행자로서 반드시 지참해야 할 최소한의 생활필수품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것을 금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도자는 이미 주님께 부름 받은 자로서 소속과 신분이 다른 자이다. 하나님은 구약에 레위 지파에게 땅의 기업을 주지 않았다. 군사로 부름을 받은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적절히 공급해 주신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통해서 수 없이 많은 이 같은 사례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면 전도자가 명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하여는 마태가 보다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 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첫째, 성에서 복음의 합당한 자를 찾는 일이다. 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지만 충성된 사명자가 있다. 전도자는 충성된 청지기를 먼저 찾아야 한다. 둘째, 어느 집이나 성으로 들어가면서 먼저 평안을 빌라. 그들이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면 은혜를 입어서 다시 베풀 것이요 거절하면 그 평안이 자신에게로 돌아와 성령의 도우시는 위로를 받게 된다. 셋째, 거절할 때는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라. 그 성이나 집이 복음을 받지 않으면 그 곳을 떠날 때 발에 먼지를 떨어버려 심판 때에 증거를 삼으라고 했다. 주님은 전도자가 금해야 할 몇 가지를 당부했다. 양식과 돈, 그리고 두벌 옷이다. 이것은 나그네에게 의식주의 대용품으로 여행자로서 반드시 지참해야 할 최소한의 생활필수품이다. 그런데 주님은 이것을 금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전도자는 이미 주님께 부름 받은 자로서 소속과 신분이 다른 자이다. 하나님은 구약에 레위 지파에게 땅의 기업을 주지 않았다. 군사로 부름을 받은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이 적절히 공급해 주신다. 바울은 전도 여행을 통해서 수 없이 많은 이 같은 사례들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면 전도자가 명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하여는 마태가 보다 더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마10:11-14) 첫째, 성에서 복음의 합당한 자를 찾는 일이다. 다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이지만 충성된 사명자가 있다. 전도자는 충성된 청지기를 먼저 찾아야 한다. 둘째, 어느 집이나 성으로 들어가면서 먼저 평안을 빌라. 그들이 그것을 받기에 합당하면 은혜를 입어서 다시 베풀 것이요 거절하면 그 평안이 자신에게로 돌아와 성령의 도우시는 위로를 받게 된다. 셋째, 거절할 때는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리라. 그 성이나 집이 복음을 받지 않으면 그 곳을 떠날 때 발에 먼지를 떨어버려 심판 때에 증거를 삼으라고 했다. 악한 세력 앞에서 순교의 사명 주님이 갈릴리 각 지역으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며 능력을 행하시니 헤롯 왕가에 이상한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세례 요한이 다시 살아서 왔다고 했다. 이 사실이 헤롯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래서 헤롯은 필요 이상의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헤롯이 듣고 이르되 내가 목 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 이것이 범죄한 죄인에게 고발하는 선한 양심의 소리이다. 세례 요한은 비록 짧게 살고 비참한 죽음을 죽었으나 가장 값지고 고귀한 삶을 살았다. 우리는 순교자 세례 요한을 통해서 전도자의 사명을 배우게 된다. 첫째, 그는 광야의 소리로 살았다. 그는 당시 세속적으로 누릴 수 있는 아주 좋은 가문에 태어나 출세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타고났다. 그러나 그는 지명예루살렘예루살렘 성과 성전과 율법적인 권위를 버리고 광야의 소리로 복음을 위해 이슬로 사라졌다. 둘째,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이다. 광야는 도시와 같이 길이 있는 곳이 아니다. 누가 만들기 전에는 걸어갈 수 없는 너무도 불편한 곳이다. 그는 주님을 위하여 친히 이 길을 닦았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헤롯 왕들은 주님의 길을 막는 세력들이다. 이런 자들과 싸워서 주님의 길을 평탄케 하셨다. 셋째, 그는 주님만이 흥하기를 소원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이 한 마디가 세례 요한의 신앙과 생활의 고백이다. 우리는 이 시대의 사명자로 세례 요한의 고백을 배워서 우리도 이런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 양 무리를 위한 긍휼의 사명 먼저 제자들은 전도의 현장에서 돌아와 주님께 사역의 보고를 한다. 보고를 받고 주님은 얼마간 쉼을 얻기 위해서 한적한 곳으로 가게 했다. 그런데 무리들이 먼저 알고 모든 고을에서 걸어서 앞서 가셨다. 주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오병이어로 장정만 오천 명을 먹였다. 이 사건은 너무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복음서 기자가 한 분도 빠트림이 없이 다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대한 영적 비밀한 계시가 무엇인가? 이 사건이 구원사역에서 주는 의미가 무엇일까? 첫째, 무리를 불쌍히 여기는 목자의 마음이다. 주님은 이들의 영적 목마름을 보셨다.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들이라고 했다. 헤롯이나 가이사 황제나 당시 대제사장들은 그들의 진정한 목자가 아니다. 그들은 양 무리의 피를 빨아먹는 이리와 같은 자들이다. 주님은 그들의 목자로 오셔서 그들만이 먹을 수 있는 비유로 천국의 비밀을 말씀해 주셨다. 둘째, 오병이어의 헌신이다. 이를 주님에게로 가져온 자는 어른도 아닌 어린 아이였다. 그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질병에서 치유함을 받았으나 정작 주님이 요구하실 때 헌신하는 무리는 없었다. 이 소년이 바친 오병이어는 그가 받은 은혜일뿐 아니라 그의 신앙고백이었다. 자신의 손에서는 오병이어이지만 주님의 손에서는 200데나리온 보다 더 풍성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셋째, 온전한 순종이다. 때가 저물고 빈들이라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나가면 반드시 기적은 일어난다. 오병이어를 주님에게 가져간 제자는 계산에 능한 빌립이 아니라 어리석게 보이는 안드레였다. 사역자의 제일가는 사명은 온전한 순종이다. 마지막 넷째, 다 배불리 먹이심이다. 주님이 베푼 잔치에는 모자람이 없다. 연회장에 준비된 가나 혼인잔치에는 포도주가 떨어졌으나 주님이 계신 곳에는 넉넉함이 있다. 모든 무리가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작이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셨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바구니에 ‘차게’거두었으며 라고 하심은 부족함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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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3-24
  • 바이블 큐티[황권철 목사] 주님은 식사할 겨를도 없었다
    또 산에 오르사 주님은 구원역사를 위해서 어떤 구체적인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주님은 지상교회를 세우시고 가장 본질적인 목양 사역으로서 제자훈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막3:13-16) 그렇다면 제자훈련의 목적은 무엇인가? 첫째, 자신과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제자훈련은 지식을 전달하는 단순한 학습훈련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변화를 주는 인격적 사역훈련이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과 같이 있으면서 24시간 주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대로 보고 생활 속에서 삶을 배우는 인격훈련이었다. 세인들처럼 삶을 베일에 가려 놓고 교안만 가져와서 세미나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생활하면서 앞장서서 본을 보이는 모범적인 삶이었다. 둘째, 세상을 향한 파송이다. 오늘날 교회는 부르는 초청에는 관심이 많으나 세상을 향해 내어 보내는 파송에는 너무도 인색하다. 이제 우리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처 땅 끝까지 가야 한다. 목숨을 요구하는 사역의 현장에라도 가야한다. 이것이 전도자의 사명이다. 주님은 하늘보좌를 버리고 이곳까지 오셨다. 셋째, 귀신들을 내어 좇는 권세이다. 주님은 우리를 보내실 때에 거저 보내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어서 보내셨다.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주님은 우리에게 사단의 권세를 제압하는 능력을 주어서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자로 나아가면 사단의 권세가 우리 앞에 굴복하게 된다. 집에 들어가시니 마지막으로 이제 주님은 하산하여 어느 집으로 들어가셨다. 주님이 어디를 가든지 가는 곳마다 무리들이 모여 들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들은 주님을 체포하러 온 무리들이 있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주님의 친족들이다. 이들은 주님을 알기로 가정을 버리고 방랑자처럼 떠돌아다니는 미친 자로 알았다. 사실 주님의 구원사역이 얼마나 외롭고 고달픈 길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사명자의 길은 이처럼 외로운 것이다. 주님이 전도현장에서 받은 몇 가지 아픔들은 어떠했는가? 첫째, 무리들에 의한 쉼 없는 사역이다.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식사할 틈이 없을 정도로 분주한 사역이니 한 순간도 쉴 틈이 없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제자로서 목양 사역에 수종을 들다보면 때로는 밤과 낮의 구분이 안 될 때가 많다. 둘째, 친족들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다.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러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막3:21) 예수님의 어머니와 동생들 그리고 가까운 친척들이 주님을 데리려 왔다. 요셉이 일찍 세상을 떠난 때 집안의 장남인 주님이 공생애 사역으로 전도하려 나오니 이를 이해하지 못한 동생들과 친족들이 예수를 미쳤다고 오해했다. 그러나 주님은 거룩한 구원사역을 혈육의 정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다. 셋째, 성령을 훼방하는 사역이다. 주님이 이 본문에서 말씀하신 성령 훼방 죄가 무엇인가? 지금 더러운 귀신이 주님을 보는 순간에 무릎을 꿇고 항복을 하면서 하나님의 아들 됨을 고백하고 떠나간다. 그런데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도 잘 아는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단의 사역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거룩한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므로 이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죄악이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서기관들의 잘못이 우리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을 때가 많다. 아무리 하나님의 아름답고 큰 역사라도 나와 좋은 관계에 있지 아니한 자가 행한 것이면 비판하고 정죄하여 사단의 역사로 몰아붙이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지체와 동역자들의 거룩한 사역을 칭찬하고 격려하고 협력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 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의 형제와 자매 본 문단은 앞 문단과 연결되어 있다. 20-21절에서 예수의 가족이 등장한다. 그들은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들 듣고 예수를 잡으러 가버나움으로 향했다. 예수를 오해한 혈통적인 가족들이 서기관과 바알세불 논쟁을 벌이고 있는 현장에 나타났다. 그때 무리들 중에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당신을 찾는다고 했다. 주님은 자신을 찾는 가족들을 향해 참 가족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어떤 분이 가족이란 영어 단어 이니셜을 따서 이렇게 풀이 했다. “아빠 엄마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성경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주님은 구약의 율법을 사랑이란 새 계명 하나로 다 이루셨다. 십자가는 사랑의 결정체이다. 주님은 십자가라는 고통의 쓴 잔을 앞에 높고 자신의 의지가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소원했다. 저자의 허락에 의해 일부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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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2-09
  • 바이블 큐티[황권철 목사] 예수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라
    미국 하버드대학교 폴 케네디교수는 “한국이 21세기의 세계 중심국가가 될 수밖에 없는 5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째, 한의 문화이다. 한 민족은 5천년 역사 속에서 수많은 외침으로 고통을 당해왔다. 그래서 민족의 저변에 한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한이 1919년 3월 1일 태극기로 독립만세운동을 하게 했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배후에 촛불혁명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둘째, 가족 문화이다. 가족 중심의 정문화가 감수성에 예민한 민족으로 만들었다. 특별히 어머니 품에서 모유를 먹고 자란 세대는 감성이 풍부하다. 21세기를 감성의 시대라고 말한다. 이런 때 한민족의 효 문화가 세계 열방을 선도할 강점이 되었다. 셋째, 엘리트 의식이다. 한 민족은 어떤 민족보다 자부심이 강한 민족이다. 이런 자부심이 하나의 긍정적인 목적으로 작용할 때 놀라운 힘을 발휘하게 된다. 넷째, 모험정신이다. 적극적인 모험정신은 어떤 일이든 신속하게 해 낼 수 있는 최고의 경쟁력이다. 마지막 다섯째, 단일민족의 정체성이다. 단일민족 단일 언어로 뭉쳐진 공동체의 저력은 다이나믹한 폭발력을 발휘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폐쇄적일 수도 있으나 이를 긍정적인 목적을 향해 나아갈 때 쉽게 공감대를 형성하므로 폭발적인 에너지를 결집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마가복음 2장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은혜를 받고자 한다. 예수님은 모든 인생의 주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모시고 살면 고장 난 인생이 새롭게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우리에게도 이런 변화가 일어나길 바란다. 예수를 만나면 모든 문제에서 해결을 받는다. 인간은 사고뭉치이다. 중풍병자가 예수를 만남으로 참 자유를 얻었다. 마태는 세관에서 돈으로 얻을 수 없었던 참 평안을 예수를 만남으로 누렸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얽매여 억지 금식을 했으나 주님은 그들에게 금식을 통한 참된 기쁨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주님은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먹음을 보고 정죄한 바리새인들에게 참 안식이 무엇인지도 가르쳐 주셨다. 가버나움의 중풍병자 본문 1절에서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고 했다. 가버나움은 갈릴리 호수 서북 지역의 해변가에 있는 마을이다. “수 일 후에”라고 하심은 성구막 1:21막 1:21절에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가르치시고 동네에서 복음을 전한 후 갈릴리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전도했다. 그러다가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갔던 때가 다음 안식일이 이르기 전이었다. 주님이 가버나움에 온 이후로 온 동네에 대 소동이 일어났다. 열병으로 앓아 누었던 자가 일어나고, 귀신들린 자들이 온전해지고, 각색 병든 자가 와서 많은 사람이 고침을 받았다. 소문을 들은 온 동네 사람들이 주님을 기다리게 되었다. 이때 주님이 다시 오시자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까지도 들어설 자리가 없게 되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데리고 왔다. 이런 상황에 주님을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어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다. 그때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쳐 주셨다. 우리는 중풍병자를 데리고 주님에게로 나온 그들의 믿음을 배워야 한다. 그러면 그들은 어떤 믿음을 가졌는가? 첫째,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 그들은 주님이 일차 가버나움을 다녀간 이후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주님이 오셨고 그들은 병자를 침상에 메고 주님을 만나러 왔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이와 같이 사모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둘째, 불가능한 환경 앞에서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이 중풍병자를 매고 가는 사이에 벌써 사람들이 먼저 와서 꽉 들어 차 있어 문 앞까지 들어 설 틈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이런 불가능한 환경 앞에 뒤로 물러서거나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셋째, 적극적으로 길을 찾는 것이다. 동서사방으로 다 막혀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서 구멍을 내어 환자를 달아 내리기로 했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길이 열린다. 넷째, 지붕에 구멍을 뚫는 일이다. 사실 이 일은 아주 심각한 사건이다. 우선 남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가옥을 파괴하는 범죄행위가 될 수 있는 일이다. 만일 위험한 사태가 발생하면 구속도 될 수 있는 엄청난 위험부담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중풍환자를 주님에게로 지명인도인도하기 위해 어떤 희생도 감수하고자 하는 온전히 헌신된 마음이 있었다. 우리가 영혼구원을 위해서 이런 헌신과 희생을 한다면 어떤 중풍병자라도 주님에게로 지명인도인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혼연일체 된 마음이다. 그들이 지붕으로 올라갈 때도 그러했지만 최후의 순간 환자를 주님 앞으로 달아 내릴 때는 한 순간의 방심도 용납할 수 없는 초긴장 된 순간이었다. 이렇게 해서 중풍환자가 주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주님은 바로 그들이 가진 이런 믿음의 행위를 보셨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이런 중풍병자가 많이 있다. 제 발로 걸어서 주님 앞으로 나아올 수 없는 자들은 다 영적 중풍병자이다. 이들을 위해 공동체가 합동작전을 해야 한다. 땀 흘리는 수고와 함께 물질적인 헌신도 감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중풍병자를 말씀 앞으로 지명인도인도할 수 있다. 중풍병자는 주님을 만나는 순간 죄에서 자유 함을 얻고, 질병에서 고침을 받아 예수를 그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변화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세리 마태 집에서 주님은 다시 갈릴리 바닷가로 나갔다. 가버나움에서 세관을 지나가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고 “나를 따르라”고 하시니 그는 즉시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나는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가정과 직장을 한 순간에 버리고 온전히 주님을 따를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런 사건의 배후에 숨겨진 사실들을 알아야 한다. 본문 14절에 “알패오의 아들 레위”란 말씀에 주목해 보라 알패오란 분이 그의 아들의 이름을 「레위」라고 지었다. 레위는 자라서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은 세관에 앉아 사역하면서 그 마음에 수많은 영적 고민과 갈등을 겪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레위란 “하나님과 연합”이란 뜻이다. 알패오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레위라 지었을 때는 그가 하나님 앞에서 쓰임받기를 원해서 그런 이름을 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레위는 세관에 앉은 세리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으므로 세리는 로마 권력의 하수인 노릇하는 매국 행위를 행하므로 창기보다 더 추한 직업으로 여겼다. 그러므로 알패오와 그 아들 레위의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다. 그래서 레위는 언제든지 때가 되면 이 직업에서 떠날 것을 생각하고 있던 차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래서 레위는 미련 없이 세관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그와 그 아버지 알패오는 너무도 감사하여 주님을 청하여 식사를 대접했다. 이를 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증오하여 주님이 죄인과 같이 식사하는 것을 문제 삼았다. 이때 주님은 복음의 놀라운 비밀을 가르쳐 주셨다. 첫째, 나는 죄인의 구주로 이 땅에 왔다고 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주님은 세관에서 하나님과 연합하기를 소원하는 자를 부르기 위해서 오셨다. 세리와 창기와 같은 죄인들의 구주로 오셨다. 둘째, 기쁨과 감격을 주기 위한 혼인집 신랑으로 오셨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주님과 함께 하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는 금식이 필요 없다. 주님은 율법적 제약에 얽매여 있는 부자유한 신부들에게 참 자유를 주기 위해 오신 복음의 신랑이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서 신랑을 빼앗기는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이 공중 권세 잡은 자가 득세하는 이 세상의 모습이다. 이때는 금식하지 않을 수 없다. 금식의 능력으로 흉악한 결박을 풀어서 승리해야 한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주중에 2일 이상 규칙적으로 금식했다. 그러나 신랑과 함께 하는 혼인집에 가면 이런 금식의 법에서 자유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축제의 자유를 준 영적 신랑이다. 셋째, 새 가죽부대에 담긴 새 포도주로 오셨다.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당시 바리새인들이 붙들고 있는 장로들의 유전이나 랍비적인 전통은 생명력이 없으므로 변화에 신축성이 없는 묵은 포도주와 낡은 가죽부대와 같았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지명그리스의 복음은 생명력을 가진 운동하는 신축성이 있는 새 가죽부대와 새 포도주였다. 주님은 죄인의 구주로 오셨다. 죄로 인하여 병든 인생은 영적 대 의사 되신 주님 앞에 나와서 고침을 받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신랑 되신 주님을 만난 감격의 기쁨으로 축제의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생베 조각의 복음적인 가치를 낡은 구습과 전통에 붙여서는 안 된다. 새 술은 새 가죽부대에 넣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지명그리스의 생명의 복음은 어떤 언어와 문화적인 삶도 극복해 갈 수 있다. 안식일에 밀밭 가에서 안식일에 주님과 제자들이 길을 갔다. 분주하게 서두르다 보니 식사 할 때를 놓친 것 같다. 시장한 그들은 밀밭 사이로 지나가다가 밀 이삭을 손으로 잘라먹었다. 이것이 용케도 바리새인의 렌즈에 잡혔다. 요즘 같으면 그들이 신문지상에 대서특필해서 보도 했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예수님과 그 제자들이 안식을 범했다는 주장이다. 그들은 이렇게 비약해서 말씀하고 있다. 밀 이삭을 손으로 자르는 것은 추수하는 행위이며, 그 이삭을 손바닥으로 비비는 것은 정미소에서 방아 찢는 것이며, 껍질을 날리기 위해서 입으로 분 것은 타작마당에서 가라지를 날리는 키질행위라고 했다. 이 같은 일은 당시 안식일에는 행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주님은 다윗이 대제사장 아비아달의 집에서 행했던 것을 말씀하셨다. 아비아달은 사울 왕에게 쫓겨 온 다윗에게 베풀 항용 떡이 없음을 보고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는 진설 떡을 주어 먹게 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주님은 안식을 어떻게 지켰는가를 알아야 한다. 첫째,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일을 하셨다. 구약의 율법에서는 안식일을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소극적인 금지법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안식일에 적극적으로 회당과 동네를 다니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했다. 둘째, 안식의 근본정신은 사람을 위함이다.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하나님이 창조질서에서 안식일을 주신 것은 인간에게 참된 쉼을 주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안식은 철저히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 사람이 없다고 하면 안식일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셋째, 그런데 그 안식일에 주인이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 지명그리스이다.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날을 어떻게 지키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행위인가?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해야 한다. 주님은 은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죄와 사망권세에서 구원하기 위해 전도하러 오셨다. 그래서 주님은 복음전도를 위해 행하신 제자들의 행위를 정죄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농부가 추수할 때 밭이랑에 이삭 얼마를 남겨 두어 길가는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의 양식이 되게 하셨다. 주님은 친히 금식하여 주려 죽는 아픔을 체휼해 보았으므로 배고픈 자들의 아픔을 다 헤아리고 계신다. 우리는 안식일을 유대 지명유대인 전통을 계승하는 소극적인 금지법을 따를 것이 아니라 안식일에 주인 되신 주님이 기뻐하시는 전도자의 삶을 사는 복음전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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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2020-11-25
  • 바이블 큐티[황권철 목사]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신약성경 처음 4권은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 복음이다. 마태복음은 세리 마태가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한 것으로 구약에 대한 인용도 99회 정도 된다. 또한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므로 신약의 가장 서두에 편집했다. 특히 왕, 왕국이라는 말이 75회 이상 나온다. 그래서 마태복음을 왕의 복음이라고 부른다. 마가복음은 요한의 성을 가진 마가가 바울을 수종들다가 로마에서 로마인들을 위하여 종의 관점에서 기록하였기에 섬김의 관점에서 기록된 복음이다. 그의 어머니는 예루살렘 출신으로써 믿음과 덕을 갖춘 신실한 여성도로서 그 집과 다락방을 사도들의 휴식처로 제공하여 지상교회를 탄생시킨 복음의 전진기지가 되었다. 마가의 외숙부는 바울과 함께 안디옥 교회에서 파송 받아 초대 선교사로 명성을 떨친 바나바이다. 누가복음은 아수리아 안디옥 사람인 의사 누가가 당시 지성을 자랑하는 헬라문화를 지배하는 자들을 위해 오신 도성인신 한 예수님에 관해 기록한 인자의 복음이다. 마지막 요한복음은 세베대와 살로매의 아들인 야고보의 동생 요한이 쓴 책으로써 요한은 주님의 제일 어린 제자로 밧모섬에 귀향까지 간 가장 오래 살았던 제자이다. 요한은 영적으로 전 세계에 흩어진 디아스포라를 위해 공관복음에 없는 부분을 보충해서 기록한 우주적인 복음이다. 마가복음은 주후 65년 전후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바울의 전도여행에 동참했다가 중도에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나중에는 옥중에 갇힌 사도 바울의 복음전파에 끝까지 수종들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트는 마가복음을 “로마인의 복음”이라고 했다. 마태복음은 혈통을 중시하는 족보로부터 시작하지만 마가복음은 로마인에게 준 것이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로 시작된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에게까지 전파된 복음은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착념하지 않게 했다. 복음이란 ‘좋은’이란 말과 ‘철자’란 단어의 합성어로 “좋은 소식”이란 말이다. 마가복음은 총 16장으로 되어 있는데 사복음서 중에서 가장 짧은 책이다. 책의 총 제목은 종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서 핵심 성구는 마가복음 10장 45절의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이다. 광야의 사람 세례 요한 그는 선지자의 예언대로 오신 분이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사40:3절)을 보면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고 했다. 사실 이 말씀은 이사야가 유대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있다가 해방되어 올 것을 예언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이 그보다 더 큰 의미의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은 죄악의 사슬에 묶여 있는 백성을 풀어서 참된 자유를 주기 위해 메시야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올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바로 그 사역의 수종자가 세례 요한이라는 사실이다. 당시 유대인들의 삶은 당대의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하나님의 구원계획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우리가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무엇을 깨닫게 되는가? 당신에게 오늘날 주어진 삶은 또 다른 한 시대에 하나님 나라를 위한 복음의 도구가 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너무도 거시적인 동시에 구체적이고 확실한 사건이다. 그는 주의 길을 예비하러 왔다.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그는 이 땅에 인자의 몸으로 섬기려 오신 분이지만 실제는 하나님의 독생자인 왕이신 분이다. 그러므로 그분을 함부로 맞이할 수 없다.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는 하늘의 어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주님보다 먼저 오셨다. 당시 유대 사회는 왕이신 주님이 사역하기가 너무도 불편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파 놓은 함정이 많았고, 사두개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박아 놓은 돌부리들이 많아 그 첩경을 평탄하게 하지 않고는 주님이 걸어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원해서 광야의 사람이 되었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라고 했다. 그는 당시 덕망이 있는 제사장 스가랴와 엘리사벳의 가문에 태어나서 세속적으로 출세를 할 수 있는 신분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 자리를 포기하고 빈들에서 민초들과 함께 생활하는 광야의 사람이 되었다. 그곳에서 약대털옷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면서 광야의 소리로 살았다. 소리란 모양도, 빛도, 냄새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듣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 그러나 삶을 변화시키는 소리는 복음의 소리이다. 그는 가장 천한 자리에서 가장 귀하게 살았으며,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권세 있게 살았으며, 가장 어두웠던 시대에 가장 밝게 살았다. 그는 젊은 삼십대에 부름을 받아 짧은 세월을 살았으나 가장 값지고 굵게 살았다. 그 입은 헤롯 대왕도 막지 못했다. 예수님의 공생애 준비 때가 차매 주님이 오셨다. 세례 요한은 철저하게 주의 길을 준비하고 그 길을 곧게 하신 후에 소리와 같이 사라졌다.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의 인생철학을 너무도 멋있게 기록하고 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그렇다면 주님은 세례 요한의 뒤를 이어 오셔서 공생애 구원사역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가? 먼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세례란 죄사함의 표로써 공교회 앞에서 베풀어지는 예식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죄가 있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 베푸는 것을 사양했다.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그러나 주님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했다. 주님은 죄가 없지만 세상 죄를 대신 짊어지신 대속의 제물 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었다. 주님이 세례 받고 죄가 청산됨으로 하늘 문이 열리면서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다음으로 광야에서 사단으로부터 시험을 받았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주님은 공생애에 불어 닥칠 시험을 이기기 위해 먼저 성령의 인도를 받아 금식하며 기도로 준비했다. 사단권세가 주님을 넘어지게 하려고 했으나 주님은 그때마다 철저하게 기록된 말씀으로 물리쳤다.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마지막으로 제자들을 선택하셨다. 주님은 구원사역을 이루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는가? 소그룹 제자훈련을 시작하셨다. 제자훈련은 주님이 가르쳐 준 성경적인 전도방법이었다. 그러면 주님은 제자선택을 어떻게 하셨는가? 먼저 현장으로 가서 직접 확인했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주님은 책상에 앉아서 이력서만 보고 채용한 것이 아니다. 현장에서 사역하는 것을 보시고 부지런 하고 충성된 자를 선택하셨다. 그리고 이들은 그물과 배 뿐 아니라 심지어 부모와 종들까지 버려두고 쫓았다. 이것이 제자의 도이다. 주님의 하루 일과 주님의 하루 일과는 너무도 분주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래서 머리 둘 곳이 없을 정도로 성과 촌을 두루 다니시며 복음을 전파했다. 본문은 가버나움에서 안식일을 보낸 하루를 통해 주님의 하루 일과가 어떠한지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오전에는 회당에서 성경을 읽고 가르쳤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주님은 회당에 들어가서 율법을 가르쳐서 천국복음을 증거 하셨다. 그의 말씀은 서기관들과 달리 권세가 있어 뭇 사람들이 놀라고 귀신들이 항복하며 떠나가는 역사가 일어났다. 오후에는 심방을 했다.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 인명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주님은 회당에서 교육과 설교사역을 마치시고, 권찰들을 데리고 주의 종들의 집을 심방했다. 다시 말하면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확인했다. 주님의 말씀이 증거 된 복음이 가는 곳마다 치유의 역사가 일어났다. 그래서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다가 주님이 손잡고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님께 수종 들었다. 저녁에 대성회가 열렸다. “저물어 해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소문을 들은 온 동네 사람들이 그 밤에 다 몰려 왔다. 주님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각색 병든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이튿날 새벽에는 기도하러 갔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주님의 하루 사역은 한 순간도 쉴 틈이 없는 분주한 사역이다. 그러나 이튿날 새벽 미명에 기도할 곳을 찾으셨다. 새벽 기도를 놓치지 않았다. 낮 동안에 이런 사역이 가능했던 것은 한적한 곳에서 하나님과 만난 큐티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을 놓쳐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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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11-25
  • 바이블 큐티[황권철 목사] 마태가 전한 마태복음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라 주님의 마음은 온유하다. 여기 온유란 말은 ① 환자의 열이 내려진 상태를 말한다. 환자가 열이 나서 정신을 잃고 있을 때 환자에게 해열제를 써서 정상 체온을 유지하게 할 때가 파라우스한 상태이다. 마치 세속의 감정으로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자가 말씀으로 세속적인 열기가 잡혀졌을 때 온유한 사람이다. ② 이마에 흐르는 땀이 식혀 졌을 때이다. 농부가 뜨거운 뙤약볕 아래서 구슬 같은 땀을 흘리다가 갑자기 불어오는 구름이 태양을 가려 흐르는 땀이 식고 바람으로 열기가 잡혀졌을 때가 온유한 상태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구름 기둥 아래서 안식을 찾음과 같다. ③ 교육과 훈련으로 길들여진 상태이다. 조련사에 의해 야생 짐승이 훈련을 받아 길이 들어져 주인의 뜻을 헤아릴 줄 아는 것을 말한다. 집에 기르는 가축은 주인의 뜻을 잘 아나 야생 짐승은 주인의 뜻을 알리가 없다. 사단의 권세 아래서 야수와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길이 잘 들어져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이 온유한 상태다. 주님의 마음은 겸손하다. ① 주님의 탄생을 보라. 하늘보좌에서 가장 작은 나라 유대에, 가장 작은 동네 베들레헴에, 가장 추한 마구간에 오셨다. ② 주님의 사역을 보라. 주님은 선생 된 그가 친히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서 섬기는 본을 보여 주셨다. 뿐만 아니라 왕으로서 천하가 다 주님의 것이나 여우도 굴이 있고 나는 새도 둥지가 있으나 인자는 머리 둘 곳 없이 일하셨다. ③ 주님의 죽음을 보라. 최후에 죽으실 때는 좌우편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으며, 자신이 누울 굴도 없어서 남의 무덤에 누우셨다. 순종하는 마음이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다. 온유와 겸손을 하나로 묶은 단어가 순종이다. 바울은 주님에 대하여 이렇게 증거 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쉼과 참 안식을 누리라 벗어야 할 짐과 져야할 멍에가 있다. 율법의 짐을 벗어야 한다. 예수를 알기 이전에 졌던 율법의 짐을 벗어버리기 전에는 우리에게 참 자유가 없다. 율법이 우리에게 안겨 준 것은 들으면 들을수록 부담이 되고, 알면 알수록 무거운 짐이 되었으며, 행하면 행할수록 힘든 고통이었다. 그래서 주님은 당시 지혜자들인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와 같은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다. 복음의 멍에를 매어야 한다. 복음이 우리에게 안겨준 멍에는 사랑의 멍에이다. 이것은 내가 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루신 것에 동참하는 것이다. 주님이 나를 부르시고, 직분을 맡기시고 뜻을 이루셨다. 우리는 주님의 도구로서 순종할 따름이다. 이것이 사명자가 걸어가는 십자가의 도이다. 예수를 만나면 인생이 변한다. 십자가의 원리란 복음을 위하여 죽으면 살고, 잃으면 얻고, 나누어 주면은 풍성히 누리게 하신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① 수가성 여인을 보라.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라고 했다. 예수를 만나면 세속적인 가치관이 완전히 변한다. ② 세리장 삭개오를 보라.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탐욕의 종이 되어 가난한 부자였던 그가 심령의 부요함으로 누리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③ 사울의 변화를 보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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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24
  • 바이블 큐티[황권철 목사] 마태가 당신을 초대합니다. 마11:28-30
    조지 버나드 쇼는 이런 말을 했다. “기독교 교리 중 경험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한 가지 교리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원죄교리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의 모든 것을 허용하면서도 오직 선악과만은 따먹지 못하게 금하셨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여부를 알고자 함이다. 그리고 이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자각케 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 마땅히 순종해야 할 자신들의 위치를 넘어서 스스로가 자신들의 주인이기를 희망했다. 아담과 하와는 결국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말았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타락이요 죄이다. 창세기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몸을 숨겨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일어난 더 큰 변화는 하나님과 관계의 변화였다. 범죄 하기 전에는 하나님과 친구처럼 교제했는데 범죄한 후에는 하나님이 두려워 나무 사이에 숨었던 것이다. 참된 자유자는 누구인가? 톨스토이의 「돌과 두 여자」란 작품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두 여인이 한 노파를 찾아갔다. 그중 한 여인은 죄가 많다고 눈물을 흘리는가 하면 다른 여인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하였다. 노파는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일을 시켰다. 죄가 많다는 여인에게는 “크고 무거운 돌 하나를 가져오라”고 했으며, 죄가 없다는 여인에게는 “작은 돌 한 움큼만 주워 오라”고 했다. 그들이 돌을 가져왔을 때 노파는 “이제 다시 그 돌을 제자리에 갔다 놓으라”고 했다. 큰 돌을 가져온 여인은 정확하게 돌을 제 자리에 갖다 놓고 돌아왔다. 그러나 작은 돌을 주워온 여인은 그 돌을 어디서 주었는지 알 수가 없어서 서성거리다가 되돌아 왔다. 그때 노파는 말하기를 “죄가 있다고 한 자는 자기 양심의 위치를 알고 있으니 자유로운 자다”라고 했다. 주님은 세리의 기도가 바리새인의 기도보다 낫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다. 주님은 심중에 의를 사모하는 중심이 바른 창기가, 속에는 시기와 쟁투로 가득 차 있으면서 겉은 선행과 금식과 십일조로 위장한 외식하는 바리새인보다 낫다고 했다. 모든 인생은 짐을 지고 있다 인생은 다 죄인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법에 자유 하면 죄인이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 혹은 도덕이나 윤리적으로 살면 선한 사람인 줄로 착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남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자를 향해 이미 살인했다고 하며, 탐심만 가져도 도적질한 것이라고 했으며,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했다고 했다. 그래서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요한은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고 했다. 죄로 인하여 타락한 인생은 일평생 속고 속이는 삶으로 최후에 멸망의 길로 간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 하나님은 아담과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아담은 그 계약을 파괴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임하였다. 범죄한 인간에게 나타난 결과는 바로 이러했다. ① 땅이 저주를 받았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창조하셨다. 그러나 인간은 그 사명을 망각하고 포기해 버렸다. 인간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피조세계가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다. 수고하지 않고는 땅이 소산을 내지 않았으며, 에덴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말았다. ②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났다. 에덴에서 버림받은 인간은 돋아난 가시와 엉겅퀴에 찔리고 피 흘림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고통의 인생이 되어버렸다. 가시는 인생을 찌르고, 엉겅퀴는 우리를 얽어매어 세상 염려로 하나님을 등지게 하여 에덴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였다. ③ 땀 흘리는 고통을 당해야 한다. 이마에 땀이 흐르지 않고는 식물을 먹을 수 없게 했다. 학생은 땀 흘려 공부해야 하고, 사업하는 자는 땀 흘려 수고해야 하며, 정치인은 땀 흘려 경쟁해야 만이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실락원이 아니라 복락원이다. 아담이 범죄한 순간 즉시 죽지 않고 죽음에 이르는 병이 들어 고통 중에서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었다. 실낙원의 인생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이러하다. 만약 범죄한 아담이 에덴에 거하면서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멸망의 고통은 피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에서 쫓아 버리셨다. 그리고는 그 에덴을 천사들로 하여금 두루 도는 불칼로 지키게 하셨다. 아담이 에덴으로 복귀하는 데는 칼에 찔리는 피흘림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그 누구의 대속의 죽음이 없이는 에덴 진입은 불가능하다. 그 대속의 죽음을 주님은 갈보리에서 이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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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4

실시간 성경 기사

  • [황권철 목사] 마태(Matthew's Behind Stories)-언약의 사도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아 마가복음에 이어 마태복음을 쓴 사람이다. 학자들이 말하고 있듯이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을 바탕으로 기록되었다.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본명은 레위였다(막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마태는 본래 레위 지파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레위 지파가 아닌 사람이 레위라는 이름을 쓰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마태가 이 사실을 깨달았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 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 9:9). 그는 세관에서 일하는 세리이다. 당시 유대민족이 로마의 식민지 생활을 하던 때라 얼마나 살기가 어려운지 도시락 하나가 귀한 시대였다(마 14:13-21). 그렇지만 세리들은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다. 그런 그가 세관에서 앉아서 일하는 좋은 자리에서 사직서를 내고 방랑자와 같은 주님의 제자가 되기로 작정하고 따른 것은 그가 인간이 배를 불리는 빵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통치권자가 되어 천하를 호령하는 자리에 앉았어도 복음과 상관없는 시간과 물질과 권력은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엡 5:16)고 했다. 세속 풍속과 유행을 따라 고귀한 시간을 허송하지 말고 영혼을 구하고 생명을 건지는 일에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한다.   복음서를 기록한 세리 마태    마태복음의 저자는 세리 마태이다. 그런 레위가 마가의 복음서를 손에 넣게 되었다. 아마도 같은 레위 지파 출신의 마가가 그에게 사본을 전했을 수도 있다. 레위는 그의 율법 지식과 세리 특유의 치밀함으로 구약 성경에서 예언된 메시야를 예수 그리스도에 연결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마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태는 자신의 이름 레위를 헬라식 이름 마태로 고쳐서 구약의 이스라엘 시대에서 신약의 이방 시대로 들어섰음을 선언했다. 특히 그의 복음서에는 마가복음에 없는 예수 탄생의 경위와 동방 박사의 이야기가 기록되었다. 세원을 추적하는 세리 특유의 솜씨로 마리아를 인터뷰하여 그 사실을 캐냈을 것이다. 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마태는 유대인으로서 같은 동족 유대인을 위해 이 복음서를 기록했다. 이런 마태복음은 결코 구약의 참된 계시를 인본주의적이요, 패쇄적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곡해한 유대교적 오류에 물들지 않고 예수의 복음과 구약의 계시가 상호 연속성을 가진 진리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 비하여 구약의 인용이 많다. 또한 그는 당시 세리직으로 상당한 교육을 받은 자로 헬라어도 잘 구사할 줄 알았다. 그는 상당한 재산가였던 것으로 추정되며(눅 5:29), 화폐에 대한 빈번한 언급과 회계에 능한 그의 관심을 통계 수치에 밝은 직업적 기질을 그의 복음서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과 신약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하게 했다. 신약성경 27권이 정경으로 채택된 때는 주후 397년경 칼타고 회에서 이루어졌다. 그 기준은 이러하다. 첫째는 사도들의 후원을 받은 책들이다(엡 3:1-5). 둘째, 그 내용이 진실한 책이다(고후 2:17). 셋째, 성령의 영감을 받은 책이다(벧후 1;21). 그러나 이 성경을 편집할 때 연대순을 기준으로 하지 않았다. 구속계시의 성취를 이루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신약의 여러 복음서들 중에 가장 우선적으로 편집한 것이 마태복음이다. 마태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교량 역활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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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11
  • [황권철 목사] 마태(Matthew's Behind Stories)-언약의 사도
    마태는 사복음서에 의하면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다(막3:18; 마10:3; 눅6:15; 행1:13). 그는 예수를 따르기 전에 세리였다(마9:9, 10:3). 마태는 레위와 마태가 동일인임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마가와 누가는 레위와 마태를 동일인으로 간주되고 있지 않은 것 같으나 유대인들은 흔히 2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태란 이름은 예수의 제자가 된 후에 주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태가 레위였다면 그는 가버나움이나 그 근처에서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를 섬겼을 것이다. 다메섹(Damascus)과 아크레(Acre)를 잇는 도로를 통하여 수송되던 상품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들이던 것이 그의 임무였을 것이다. 또한 이 지역은 어업이나 공산품에 대한 세금 부과도 그의 임무였던 것 같다.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설교를 하셨으므로 그가 부름받기 전에 이미 많은 접촉이 있었을 것이다(막2:14).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었으며 많은 동료들이 그의 집에 많았음을 누가는 말한다(눅5:29; 막 2:15). 이는 자신이 이제 변화 받아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가버나움 출신 세리 마태 본명은 레위이다. 레위 지파가 갈릴리 지방에 거주하게 된 배경에 대하여 갈릴리 땅은 본래 스불론 지파와 납달리 지파의 지역이었다. 그런데 레위 지파의 제사장들이 갈릴리로 대거 옮겨간 것은 BC 169년 안티오쿠스 4세의 대 박해 때였다. 마카비상 1:57 “율법서를 가지고 있다가 들키거나 율법을 지키거나 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왕명에 의해 사형을 당했다” 성전을 지키던 레위 지파 사람들은 농사를 지을 줄도 몰랐고 고기를 잡는 방법도 몰랐다. 그들은 관청에 들어가 일자리를 얻기도 하고 세관에 앉아서 세금을 걷는 일에도 동원되었다. 신약시대 로마 제국을 도와서 세금을 걷어 들이는 재무기관에 속한 관리들을 세리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제도가 너무 부패했기 때문에 세리들은 모든 사람들의 미움을 샀다. 유대인 중에 세리로 로마 정부를 섬긴 사람들을 매국노, 혹은 동족에 대한 착취자로 낙인 찍혀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더욱이 이들에게 부정이 많이 따랐기 때문에 복음서에서도 세리들은 일반적으로 창기와 같이 죄인 취급했다(마21:32). 주님은 마태와 동일한 세리를 만나 주셨다. 그가 바로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Zacchaeus)이다(눅19:1-10). 삭개오란 이름의 뜻은 “순전하다, 정의롭다”는 말이다. 그는 그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직업을 가지고 유대인에게 죄인 취급을 받으며 살았다. 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를 가장 추한 창기와 같이 여겼다. 그는 평사원도 아닌 세리들을 거느린 세리장이었으니 얼마나 미움을 받았겠는가? 그러나 그 직위로 물질적으로는 부요함을 누리는 부자였다. 이런 추악한 죄인이 거하는 여리고 도성에 가장 거룩한 메시야 되신 주님이 오셨다. 주님은 당시 도덕적으로 반듯하게 사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을 찾지 않고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는 삭개오를 찾았다는 것이 그 당시 여리고 사람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을 놀라게 한다. 그래서 주님은 죄인인 우리를 초청하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네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고 했다. 삭개오는 자신의 모든 것을 토설해 내고 주님을 마음속에 구주로 영접했다. 세리 마태는 세관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제자로 부름 받은 세리 마태 마태는 결단력과 진취성을 겸비한 자이다. 그래서 알패오는 아들에게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레위의 부친도 레위지파 자손이라는 것을 감추고 살았다. 알패오라는 그는 헬라식 이름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들에게 레위란 이름을 붙여 무거운 짐을 지어 주었다. 아들의 때에는 레위 지파의 자존심을 되찾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 레위가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복음서에서도 열두 제자 중 언제나 최하위에 기록되었다. 그 자신이 예수의 이름에 누가 될까 한 염려도 있었을 것이다. 그의 모습은 언제나 제자들의 뒷전에 있었다.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아 마가복음에 이어 마태복음을 쓴 사람이다. 학자들이 말하고 있듯이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을 바탕으로 기록되었다. 마가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본명은 레위였다(막 2:14).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마태는 본래 레위 지파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레위 지파가 아닌 사람이 레위라는 이름을 쓰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마태가 이 사실을 깨달았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 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9:9). 그는 세관에서 일하는 세리이다. 당시 유대민족이 로마의 식민지 생활을 하던 때라 얼마나 살기가 어려운지 도시락 하나가 귀한 시대였다(마14:13-21). 그렇지만 세리들은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다. 그런 그가 세관에서 앉아서 일하는 좋은 자리에서 사직서를 내고 방랑자와 같은 주님의 제자가 되기로 작정하고 따른 것은 그가 인간이 배를 불리는 빵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통치권자가 되어 천하를 호령하는 자리에 앉았어도 복음과 상관없는 시간과 물질과 권력은 세월을 허송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엡 5:16)고 했다. 세속 풍속과 유행을 따라 고귀한 시간을 허송하지 말고 영혼을 구하고 생명을 건지는 일에 우리의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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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27
  • [황권철 목사] 선교지에서 순교한 도마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도마는 바벨론으로 갔다. 아마 바벨론에 최초의 기독교회를 세운 이가 도마였던 것으로 보인다. 도마는 또한 페르시아를 거쳐 인도까지 가서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했다.1 도마가 인도 남부의 케랄라에서 최초로 기독교를 전했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인도 남부 지역의 7개 초대교회는 도마가 세운 것으로 기독교 사역의 집중력을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인도에서 고난을 당하고 창에 찔려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시신은 현재 마드라스 교회 지역의 마알라토르에 묻혔다고 한다.2 도마는 두려움이 없는 전도자였으며 위대한 교회 개척자로 알려졌다. 도마가 기도하던 지하의 작은 굴 안에는 작은 바위 하나가 있었다. 그 바위에는 두 개의 작은 홈이 파져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도마가 양팔을 대고 기도하다가 생긴 홈이라고 한다.  도마는 인도 오토 릭샤로 첸나이 시가지로 20분쯤 달리면 성 토마스 마운틴(St. Tomas Mountian) 입구에 도착한다. 사도 도마가 원래 순교한 곳은 첸나이 시내와 공항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이다. 계단을 따라 한참 올라가면 모사의 순교지에 세웠다는 “도마순교기념교회”가 있다. 교회 내부는 아치형 천장으로 성당처럼 꾸며져 있는데 생각보다는 초라하다. 교회 양쪽 벽면에는 주님과 열두 제자들의 순교 장면이 그림으로 그려진 액자가 걸려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순교 했는지 기록도 있다. 교회 내부 앞 쪽에는 도마가 암석에 직접 새겼다는 돌 십자가상이 있다. 성 도마교회 안에 모셔져 있는 도마의 유해, 돌 십자가 옆에는 도마의 뼈 조각이 액자 안에 있었다. 사도 도마는 창에 찔려 순교했다. 산 정상에서 교회를 바라보면 마리나 해변의 해안선이 보이고 첸나이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1.5Km 정도 거리에 첸나이 국제공항이 있다. 무덤 교회는 순교지로부터 15분 정도 떨어져 있다. 도마의 순교지와 무덤은 다른 곳에 있었다. 무덤교회는 마리나 해변 근처로 5분 정도 거리에마리나 해변이 있었다. 순교 기념교회에 비하면 웅장한 건물이다. 흰색 고딕으로 건축된 성당 양식이다. 성전 내부에는 오래 되어서 칠한 곳이 벗겨져 있었고 군데군데 빗물이 흘러내린 흔적이 있었다. 성전에서 나와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면 단층 조그마한 건물에 유물을 전시 한 박물관이 있었다. 이곳에는 사도 도마와 함께 했던 자들의 생활도구들의 유물이 있다.  1949년 6월 10일 카이로의 프랑스 판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이 정부는 이 귀중한 문서를 찾고자 애쓰고 있다.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이것은 지금까지 이집트 땅에서 보존되어 오다가 발견된 가장 귀한 것 중 하나며, 그 학문적 중요성은 투탄카멘 왕의 무덤을 발견한 것과 같은 극적인 발견보다 더한 것이라고 한다. 위 기사가 언급한 귀중한 문서란 나그함마디 문서(Nag Hammadi Library)3를 가리킨다. 최근 신약 학계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도마복음(Gospel of Thomas)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도마복음은 나그함마디 문서가 전한 작품이다. 또한 고대 그리스어원문을 콥트어(Coptic)로 번역한 것으로 보이는 완전한 콥트어 판본이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되었다.4 비록 정경과 같이 믿을 수는 없으나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삭줍기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표적을 보고 믿었다(요 2:23). 그래서 그들은 표적 보여주기를 원했고 주님은 요나의 표적 외에 보여 줄 것이 없다고 하셨다. 표적 중에 표적이 사실 십자가의 표적인데 주님이 그것을 보여 주었을 때 그들은 정작 다 도망가 버리고 말았다. 십자가는 당대 사람들로 하여금 실족하여 넘어지게 하는 스칸달론(헬, 올무, 추문)이었다. 그러나 도마는 정면승부를 걸고 주님 앞으로 다가가서 그 현장을 확인하고자 했다. 오늘날 우리가 표적만을 구하는 신앙에 머문다면 그 표적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 신앙 또한 처참히 무너지고 말 것이다. 신앙은 지성을 희생하고서 얻은 것이 아니라 지성이 없는 믿음, 회의가 용납되지 않는 믿음이 오히려 위기를 자초하는 법이다.5 도마는 주님 앞으로 나아가 십자가 현장을 확인하려고 했으나 그는 표적에 머물지 않고 표적을 행하신 주님에게 나아가 완전한 신앙을 고백했다. 그는 의심을 통해 더욱 확실한 고백의 자리로 나아가는 정직한 고백자였다. 우리에게 도마 같은 정직한 고백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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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07
  • [황권철 목사] 도마(Thomas Behind Stories)-의심의 사도
    도마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의 한 사람이다. 신약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네 번 언급이 되는데 그 중에 도마는 항상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마10:2-4; 막3:16-19; 눅6:14-16; 행1:13). 요한복음에서 도마는 세 번 언급 되었다(요11:16, 20:24, 21:2). 그 뒤에 디두모(Didymus)라는 헬라 이름이 따라오고 있는 것으로 보아 헬라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디두모인 줄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도마란 아람어로 ‘트오마’이고, 히브리어로는 ‘트옴’인데 이것은 쌍둥이라는 뜻의 별명이다. 이 사도의 성격은 요한복음서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주님이 요단강에서 유대로 돌아오시기를 결심하셨을 때 나사로 죽음의 비유를 통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다. 그때 도마는 예수께 모든 것을 바치고 따르려고 동료 제자들에게 함께 죽음에 동참하자고 강렬한 충성과 용기 있는 결단으로 말했다(요11:7, 8, 16). 그는 주님이 하늘나라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요14:5). 그러나 주님이 부활하신 후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보고서야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요20:24-28). 우둔하나 충실한 도마 그는 주후 27-90년경에 활동했다. 아우그스투스가 죽은 후 로마제국은 티베리우스(AD 14-37), 칼리쿨라(AD 37-41), 글라디우스 그리고 네로(AD 54-68)같은 황제들이 다스렸다. 아우쿠스투스 황제 이후 최고의 황제는 글라우디우스(Claudius)였다. 도마는 갈릴리 출신의 제자였으며 주님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우둔한 제자로 나타나 있다(요14:1-5).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여 의심 많은 제자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요14:1-5). 복음전파 사역을 위해 모든것을 헌신했다. 주님은 나사로의 죽음의 현장에서 그가 다시 살아 날 것을 통해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한 것이었으나 도마는 그 의미도 모른체 주님의 죽음에 동참하는 제자로서의 희생과 용기를 드러내 보이는 우둔한 부분을 보여 주고 있다. 도마는 예수님의 수난 때도 자신의 우둔함을 드러내 보였다(요14:1-5). 주님은 자신의 죽음을 예고하고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고 하였다(요14:4). 아버지께로 돌아갈 것이고 그 길은 십자가에 못 박힘의 수치와 부활의 영광을 통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길을 주님은 제자들에게 친히 고백하며 알려 주셨다. 그러나 도마는 그 길을 알지 못했다. “우리가 어떻게 그 길을 알겠삽나이까?” 라고 묻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도 도마의 몰이해를 보게 된다. 그러나 이 사실은 도마 만 모르는 것이 아니라 다른 모든 제자들도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몰라도 아는 척 하며 말없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도마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솔직하게 물어보는 순수함이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 볼 때 지각이 없는 우둔한 사람같이 보이기는 하나 그의 질문은 솔직하고 정직한 고백이었다. 이로 인해 의심 많은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기는 했으나 이것이 도마의 약점이자 강점이었다.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표출했던 정직한 심성을 소유한 자였다. 의심자로 낙인찍힌 도마 동료 가룟 유다의 배신으로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부활하신 주님은 무덤을 찾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보이시고 먼저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다. 마침 그때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다. 후일 동료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고 했을 때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20:25). 도마는 주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는 구약의 예언을 유의하지 않았다. 자신의 손으로 만져 확인 해 보고서야 부활하신 주님을 믿을 수 있었다. 팔일 후 주님은 도마가 제자들과 집안에 있을 때 다시 나타나셨다(요20:26). 그때 주님은 도마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며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셨다. 도마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부끄럽게 여기며 바른 신앙고백을 했다 “나의 주님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0:28). 이 공개적인 고백을 그가 불신하고 의심했던 자들이 다 듣게 되었다. 이 같은 부활신앙을 경험한 것이 도마로 하여금 이방 선교로 나아갈 동기 부여가 되었다. 도마 하면 의심 많은 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의심은 의심을 위한 의심이 아니라 더 잘 믿고 더 확실히 믿으려고 가진 의심이었다. 그 결과 그는 예수님의 참된 사도로 거듭나게 되었다. 우리 가운데도 도마와 같은 자가 적지 않게 존재한다. 도마처럼 꼭 손으로 그 못자국과 발자국과 허리에 창 자국을 만져 보아야 믿겠다는 것과 같이,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아야 믿겠다고 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 가운데 불신하는 자들과 도마와 차이점이 있다면, 그것은 정직한 고백의 차이다. 도마는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몰라도 모른다고 말하지 않는다. 모르면서도 아는 것처럼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정직한 고백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같이 우리도 도마처럼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정직하게 고백할 수 있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확실한 고백을 통해 약속한 말씀위에 굳게 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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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23
  • [황권철 목사] 나다나엘(Nathanael's Behind Stories)-정직의 사도
    나다나엘(Nathanael)이란 이름은 “하나님의 선물, 하나님께서 주심”이라는 뜻이다. 그는 갈릴리 가나 출신이다(요 21:2). 나다나엘은 정직하고 신실한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 1:47). 주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특히 바돌로매(Batholomew)라는 이름은 그의 부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바돌로매는 공관복음서에 열거된 열두 제자의 목록 중에서 빌립 다음에 나온다(마 10:3; 막 3:18; 눅 6:14).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 1:45). 그는 열두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마 10:2-3). 바돌로매는 나다나엘과 동일인물이다(마 10:3, 막 3:1, 눅 6:14, 행 1:13). 빌립의 전도를 받은 나다나엘 빌립은 갈릴리의 벳세다(Bethsaida) 사람으로 안드레(Andrew),베드로(Peter)와는 동향인이었다(요 1:44). 그는 나를 따르라는 주님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였다. 즉각적으로 응답하였다는 것은 사전에 예수에 관하여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그는 불타는 마음과 감격으로 나타나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고 전한다(요 1:45). 빌립의 이런 자세로 보아 적어도 구약성경에 대해 많이 알고 있었고 메시아를 대망하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메시야 대망 속에 있었던 차에 그가 예수를 만남으로 너무도 감격하여 하나님이 보내 주신 메시야를 친구 나다나엘에게 전했던 것이다. 빌립의 전도전략은 매우 날카로웠다, 마치 매가 사냥하는 방법과 같다. 매가 사냥을 할 때 하늘을 느린 속도로 빙글빙글 돈다. 이는 먹이 사냥을 위해 준비하는 운동이다. 그러다가 먹잇감을 발견하면 곧 바로 수직강하 하여 매섭게 낚아챈다. 나다나엘이 빌립을 만나기 전에는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율법을 읽고 있었다. 그러다가 빌립을 통해 예수를 소개받았다. 그는 나사렛이란 선입감 때문에 율법을 묵상하면서 빙빙 우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빌립이 “와서 보라”는 수직강하와 같은 한 마디에 완전히 매료당하고 말았다. 그는 바로 가서 보고 메시야임을 확인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단했다. 나다나엘은 AD 1세기 중반 이후까지 활동한 인물이다. 당시 로마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던 유대인들 사이에는 여러 형태의 종말론적인 메시야 대망 사상이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기대한 메시야는 정치적 메시야로서 이스라엘을 세계 최강국으로 만들어 행복을 누리게 할 자였다. 그러나 나다니엘과 같은 일부 경건한 사람들은 구약 성경에서 예언한 대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장차는 천국으로 인도하실 메시야를 기다렸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메시야를 기다렸다. 그는 나사렛에서 메시야가 나올 가능성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자기가 무화과나무 밑에 있는 것을 보시고 이미 그를 알고 계셨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유대인에게 무화과나무는 율법연구나 번영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초자연적 능력의 계시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고백했다. 이것은 마음에 간사함이 없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고백이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은 메시야를 이스라엘에게만 국한 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는 그에게 더 큰 일 즉, 하늘과 모든 인류를 연결시키는 인자를 보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요 1:45-51). 그는 디베랴 바닷가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목격한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요 21:2). 나사렛 출신을 불신한 나다나엘 메시야와 나사렛은 부조화이다.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던 당대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나사렛이란 지명과 메시야는 도저히 하나로 묶을 수 없는 조합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서 자란 나사렛을 비옥한 이스라엘 평원이 멀리보이는 해발 380미터 가량의 언덕 위에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이다. 메시야가 그런 촌구석에서 나올 수 없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는 나사렛이란 말에 콧방귀를 뀌고 말았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뒤 그러한 편견을 깨고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1:49)라는 놀라운 고백을 했다. 이 고백의 주인공이 바로 나다나엘이다. 처음에 그는 빌립의 예수에 대한 증거를 불신했다. 물론 그도 메시아가 오리라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나사렛과 같은 보잘 것 없는 작은 마을에서 메시야가 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나사렛에 대한 고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사렛에서 메시야가 나온다는 예언이 없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믿지 않았다. 나다나엘이 성경을 근거로 빌립의 말을 믿지 못한 것은 그가 늘 성경을 묵상하는 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은 하나님은 장소나 혈연의 관계없이 은총을 베푸신다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편 예수는 나사렛에서 자라기는 했지만, 구약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몰랐던 나다나엘의 나사렛에 대한 편견은 구약 예언에 대한 확신에서 나온 것이다. 메시야가 나사렛으로 온다는 것은 구약에서 이미 예언된 것이다. 예수님 어머니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님 탄생 예고를 전해 들었다.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으며 탄생하신 후에는 헤롯왕의 어린아이 대학살을 피해 잠시 부모님과 함께 이집트로 피신해 거기서 사셨다. 그 후에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소년 시절을 거쳐 메시야로서의 공적인 직무를 시작하시기 직전까지 그곳에 사셨다. 한편으로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메시야로서의 공적인 직무를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신 예수님과 주님의 공생애 사역을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배척하기까지 했다. 주님의 인정을 받은 나다나엘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와서 보라”고 했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직접 와서 확인해 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나다나엘은 빌립의 말대로 예수가 메시아인가를 확인하러 예수께 나아왔다. 그는 모든 행동에 있어서 신중했다. 그가 예수를 만나고자 나왔을 때 예수는 나다나엘을 가리켜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 1:47)라고 말씀하셨다.예수님은 나다나엘에 대해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셨다. 빌립의 말을 반박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나다나엘은 겸손하고 말씀에 충실하며 경건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 나다나엘은 자기를 아는 그리스도의 전능하심에 매우 놀랐다(요1:48). 나다나엘은 놀람과 겸손한 마음으로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라고 예수님께 질문했다. 예수님은 빌립이 나다나엘을 부르기 전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말씀하셨다(요1:49).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는 것은 평화와 번영의 상징일 수도 있고(왕상5:5), 율법 연구의 상징일 수도 있다.3 이 점에서 나다나엘은 열심히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과 깊이 교제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나다나엘의 지각으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사실임을 능히 알았으므로 더욱 놀란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주로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주님과 나눈 대회에서 언약사상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되었다. 비록 그가 초기에는 몇 가지 편견을 가지고 있었으나 주님을 만난 후 모든 잘못된 편견을 버릴 수 있었다. 그의 고백은 첫째, 예수를 선생님이라고 고백하였다. 이는 그리스도의 예언자적 기능에 대한 고백이다. 둘째, 그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고백했다. 이는 예수가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있으나 신의 능력을 가진 신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셋째, 예수를 이스라엘 왕이라 고백했다.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이스라엘 왕이며 오랫동안 기다렸던 메시야임을 고백하는 말이다. 나다나엘의 고백은 베드로의 고백과 동일하다(마16:16). 그가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의 사랑과 나다나엘의 준비된 신앙인의 자세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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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1
  • [황권철 목사] 빌립(Philip's Behind Stories)-전도의 사도
    정직한 고백자 빌립 그는 현실적으로 이해타산이 빠른 자이다. 주님이 벳새다 들녘에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일 때였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마 14:16; 막 6:37; 눅 9:13)고 했다. 공관복음서의 기자들은 동일한 말씀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요한은 빌립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는 “빌립을 시험고자 하심이라”(요 6:6)고 했다. 그러나 전후문맥을 자세히 살펴보면 빌립이 소극적이거나 부정적인 사고로 매도할 수 없는 사건이다. 빌립은 다른 제자들 앞서 이 무리들에게 먹일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요 6:5). 다른 제자들이 침묵하고 있을 때 빌립은 무리를 먹일 것에 대해 구체적인 걱정을 하게 되었고 그것을 계수해 보니 적어도 200데나리온의 떡이 필요함을 알았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직면할 때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계산 하는 것은 잘못 된 것이 아니다. 현명한 지각이다. 우리는 빌립의 냉철한 판단력을 배워 더 구체적인 기도로 주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는 매사에 신중하게 생각한 전략가였다. 유월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들 중에 헬라인 몇이 빌립을 찾아와서 예수를 만나보려고 하는데 주선을 좀 해 달라고 했다. 그때 그는 주님에게 바로가지 않고 안드레에게 말하여 안드레와 함께 예수께 나아갔다(요 12:20-22). 단순하게 읽어 넘기면 빌립이 굉장히 소심한 사람같이 보인다. 그러나 문맥을 자세히 살펴보고 제자들의 역학관계를 알고 나면 빌립이 대단히 지혜로운 전략가임을 알 수 있다. 첫째, 헬라인들이 빌립에게 찾아왔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빌립은 교육 수준이 비교적 높은 레벨, 상위 그룹에 속한 자임을 알 수 있다. 헬라어를 구사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주님에게는 친한 그룹이 존재했다. 일명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라는 핵심그룹이다. 다르게는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라는 선두 그룹이다. 이들은 다 같은 동네이며 혈연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무슨 일을 하려면 이 두 그룹을 거쳐야 주님에게로 접근이 가능하다. 이들을 통하지 않고 주님에게로 나아가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 했는지도 모른다. 셋째, 그 중에 안드레를 선택한 전략이다. 베드로나 야고보나 요한을 선택하면 주도권을 잃을 위험성도 있다. 그러나 안드레는 조금 다르다. 인지적 지각이나 리더십 면에서 빌립이 자기 위치를 확보하는데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음을 알았기에 안드레를 대동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빌립이 탁월한 전략가임을 알 수 있다. 그는 거룩한 의문을 가진 영성의 소유자이다. 주님은 대속제물이 될 구원사역을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아버지께로 갈 때가 다가왔다. 그때 빌립이 물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 14:8). 그 때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요 14:9)고 했다. 주님의 마지막 고별인사와도 같다. 이 때 입을 연 자가 세 제자였다. 도마가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고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라고 물었으며, 다대오가 “왜 이 일을 세상에는 알리지 않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이들 세 제자만 몰랐을까? 주님이 십자가 지는 사건 앞에 이 비밀을 안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은 주님 부활하신 이후 오순절 성령이 강림한 이후였다. 이들의 물음은 거룩한 영성을 소유한 정직한 고백이었다. 이삭줍기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빌립은 아시아에서 크게 각광 받는 자였다. 그는 두 미혼의 딸과 함께 부르기아 등지에서 선교하다가 히에라폴리스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예수님 승천 후 빌립은 제자들 중 최초로 갈릴리에서 설교하고 이적을 행하였다고 한다. 그는 그리스 지역을 광범위하게 여행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세례를 베풀었다. 또한 지금의 터키, 갈라디아 지방에서 주로 사역하다가 87세의 나이로 브루기아의 히에라볼리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히에라볼리에서 뱀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은 빌립과 나다나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 빌립은 이교도들의 회심을 위해 기도했고, 이때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 이에 놀란 이교도들은 빌립과 나다나엘(바돌로매)을 십자가에서 내렸다. 이때 나다나엘은 살았으나 빌립은 이미 죽은 뒤였다. 나다나엘은 수많은 이교도인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으며, 빌립과 함께 선교여행을 다녔던 빌립의 누이 마라안나는 히에라볼리에 빌립의 시신을 묻고 나다나엘과 함께 아르메니아로 가서 전도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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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2022-09-23
  • [황권철 목사] 빌립(Philip's Behind Stories)-전도의 사도
    빌립(Philip's Behind Stories)-전도의 사도 빌립(Philip) 사도는 베드로와 안드레와 같이 갈릴리 바다 서쪽 해안에 자리 잡고 있는 작은 어촌 마을인 벳새다(Bethsaida) 출신이다(요12:21). 초대교회는 복음전도자인 그를 빌립 집사와 구별하기 위해 사도란 명칭을 덧 붙였다(행6:5). 빌립이란 ‘말(馬)을 사랑하는 자’라 한 뜻이다. 구전에 의하면 빌립은 스불론 지파 출신이라고 하며 처음에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것 같다. 공관복음서에는 단순하게 언급하고 있지만 요한복음에서는 네 번째로 부르심을 받은 자로 나온다(요1:43). 그는 사도로서 부름 받은 후, 지극히 이성적이고 계산적이며 소심한 인격자로 비치기도 하나 이는 그의 확실한 믿음 위에 나온 철저한 책임의식 때문이다. 이제 주님의 사역 기간 동안 발생한 몇 가지 사건들을 통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율법을 묵상한 빌립 그는 주님의 부름을 받는 순간 결단했다. AD 27년경 주님의 공생애 개시 얼마 후에 제자로 부름을 받아 AD 1세기까지 활동한 인물이다. 빌립은 베드로, 안드레, 나다나엘의 친구로서 “나를 따르라”(요1:43)는 주님의 단도직입적인 명령에 무조건적으로 순종함으로 주님께 부름 받은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다. 복음서에는 주님의 간단한 부르심과 거기에 따른 신속한 응답이 매우 단순하게 묘사되어 있다. 주님의 매우 긴 요청과 더불어 대화를 통한 빌립의 결단의 내용을 복음서 기자들은 짧고 간결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 같은 압축된 소명의 현장에서 우리는 주님의 거룩하고도 위엄 있는 태도와 단순하지만 능력 있는 부르심의 말씀을 통해 빌립은 충분히 그가 메시야이심을 확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말씀으로 친구를 주께로 인도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1:45). 이 말씀은 그가 주님을 만나고 즉시로 나다나엘에게 가서 복음을 전한 사건이다. 우리는 여기서 빌립의 이면 생활을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그가 주님을 만나는 순간 메시야이심을 알아 본 것은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경건한 자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주님의 부르심에 어떤 의문도 가지지 않고 따르기로 결단했다. 이를 볼때 그는 하나님이 준비한 작정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둘째, 나다나엘을 인도한 사건이다. 나다나엘을 인도하면서 그가 율법과 선지자들의 기록한 글을 전했다. 이는 그가 날마다 율법을 묵상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말씀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셋째,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는 사실이다. 요셉의 아들로 오실 나사렛 예수이심을 알았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했을 때 빌립은 이미 선지자들의 글을 통해서 예언된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날마다 큐티 하면서 살았다. 시편 기자는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2).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다윗에게 하나님이 어디로 가든지 이기게 하셨다. 요한은 하나님의 구원계시를 마무리 하면서 이렇게 말씀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1:3). 날마다 말씀을 읽고 함께 모여 예배함으로 듣고 받은 말씀을 삶의 현장에서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했다. 빌립은 날마다 말씀을 큐티하고 묵상하므로 메시야를 만나고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 복음 전도자 빌립 그는 부름 받은 즉시 친구를 주께로 인도했다. 사도 빌립(Philip the apostle)은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복음서에서 그의 이름은 항상 다섯 번째로 등장한다(마10:3; 막3:18; 눅6:14). 그는 주님을 만난 즉시 친구 나다나엘에게 전도했다.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1:43-45). 빌립이 예수를 만난 것은 짧은 순간이다. 주님이 갈릴리로 나가려는 참에 빌립을 만났다. 빌립은 진리에 대한 확신과 깨달음이 왔을 때 즉시로 행동에 옮겼다. 복음전도의 지름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주님을 만난 즉시 마음의 불이 식어지기 전에 전해야 한다. 그의 전도방법 역시 단순했다. 그가 친구 나다나엘에게 가서 전했을 때, 나다나엘의 반응은 전혀 예외였다.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요1:46). 나다나엘 역시 날마다 율법을 묵상하는 경건한 자였다. 그런데 빌립에게 들은 말씀은 전혀 뜻밖이었다. 나사렛 예수가 메시야라고 했다. 당시 보편적인 사고로서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선지자가 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때 빌립이 한 말이 명언이다. “와서 보라”(Come and See) 딱 이 한 마디이다. 구원 전도는 이론과 공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믿음으로 하는 실천적 행함에서 이루어진다. 나다나엘은 온갖 이론과 공상의 세계를 접고 빌립의 이 한 마디에 와서 주님을 만나고 사도의 반열에 참여하게 되었다. “와서 보라”이것이 전도자가 가질 메시지이다. 우리는 빌립의 전도방법을 배워야 한다. 주님은 이 같은 빌립의 행위를 참으로 기뻐했다. 빌립의 이 같은 전도방법을 위해 주님이 이 땅에 오셨다. 주님은 친히 자신이 전도하러 오셨다고 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올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오늘도 우리 주변에 서성거리는 나다나엘을 주께로 인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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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07
  • [황권철 목사] 요한(John's Behind Stories)-사랑의 사도(2)
    사랑 받은 제자 요한    그는 주님에게 최고의 사랑을 받은 자이다. 열두 제자로 부름 받은 것도 은혜인데 언제나 예수님을 그림자처럼 수행한 핵심그룹이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항상 주님과 함께 했다. 변화산상에도 같이 갔고 겟세마네 동산에도 같이 갔다. 아마 주님에게 이 세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을 택하라고 하면 요한을 택했을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 지실 때 다 주를 버리고 도망갔지만 그래도 골고다 현장까지 따라 간 유일한 제자가 바로 요한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부탁하셨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27). 주님은 구약의 모든 율법을 사랑의 계명 하나로 요약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 가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그는 사도들 중에 가장 많은 계시를 기록했다. 요한복음과 요한 일, 이, 삼서와 요한계시록 다섯 권 중에서 요한계시록에서 만 본문 가운데서 저자가 저자의 이름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외 요한복음이나 서신서들의 저자가 요한임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요한 계시록에서는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부르고 있다(계 1:1). 요한 이서와 삼서의 서두에서 기자는 자신을 장로(the elder)라고 부른다. 그는 자신을 사도라고 부르는 대신에 장로라는 권위로 기술하고 있다. 요한 일서에는 예수의 지상 사역 기간 중 자신이 개인적으로 사랑받는 동료였음을 시사하고 있다(요일 1:1-4).  그는 공동체를 더 소중히 여겼다. 여기서 언급된 우리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논설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을 뿐이다. 요한복음에서도 기자는 자기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을 억제했다. 마지막 21장에 가서도 세배대의 아들들이라고 했고, 디베랴 바다에 일곱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도 특별히 언급을 피했다(요 21:2). 요한복음은 아람어적 배경을 갖고 있는 헬라어를 사용한 팔레스타인의 한 유대인의 증거에 기초를 두고 있다. 기자는 요한이 주님의 목격자인 것을(요 1:14, 19:35) 적극 뒷받침해 주고 있다(요 21:24). 열두 사도 중에 형제가 부름을 받은 것은 베드로와 안드레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 자신뿐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두 사람 중 이름을 밝히지 않은 사람이 요한임을 증명하는 것이다(요 1:41). 주님의 특별한 사랑받는 제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음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십자가 상에서(요 19:26)와 부활의 현장에서(요 20:2-10), 디베랴 바닷가와(요 21:7), 베드로에 관한 사건을 통해(요 21:20-23) 주님의 사랑받는 장본인임을 말하고 있다(요 21:24). 언약사상을 마감한 요한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 1, 2, 3서를 기록하고 마지막으로 계시록을 기록했다. 그가 쓴 복음서는 공관복음과 전혀 다른 각도에서 기록했다. 마태와 마가와 누가는 당시 유대와 로마와 헬라라는 시대적인 정황에서 복음서를 기록했지만 요한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기록했다. 그는 태초에서부터 언급하여 당시 유대와 지배국가 로마와 헬라 문화를 초월하여 우주적인 초자연적 복음으로 기록했다. 그러면서도 흩어진 유대의 디아스포라들에게 당시 이단자들인 영지주의 유혹에 미혹 받지 않도록 특별한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말세에 일어날 교회의 모든 환란을 이기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나아갈 천국을 소개하므로 구원역사의 언약사상을 마감한 최후의 사도였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 사상에 변함이 없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으므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 1:8-9). 그는 순교는 하지 않았으나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 순교자였다.  또한 그는 신약의 묵시록을 기록한 자이다. 신약 성경의 제일 마지막 책으로써 문학적 유형으로 보면 구약의 에스겔서, 다니엘서, 스가랴서와 대단히 흡사하다. 그 당시 기독교는 유대교와 결별한 때였고, 또 로마 제국에 의해서 독립된 운동으로 간주되었던 시기이다. 저자의 진술에 따르면 그의 이름이 요한이다.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노예)이다. 이 책의 환상들은 그리스도를 위한 신앙 때문에 유배지인 밧모섬에서 받은 것이다. 그는 아시아교회에 잘 알려진 인물이며 이미 예언자로 인정받았고(계 22:6, 9, 19), 전에도 계시적 성격을 띤 환상을 받아 왔던 사람이었다. 유스티누스(Justinus AD 150년경)는 계시록은 우리 중의 한 사람인 그리스도의 사도중 한 명인 요한에 의해 쓰여졌다고 했다. 그 외에도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AD 200년경), 오리게네스(Origenes AD 225년경) 등 2세기 중엽에서 3세기 중엽까지 요한의 저작설이 알렉산드리아를 포함한 서방교회들에 의해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삭줍기    유세비우스는 그가 에베소에 돌아와서 트라야누스(Trajanus)시대까지 살았다고 한다. 아폴로니우스(Apollonius)에 의하면 그는 에베소에서 어떤 죽은 사람을 살렸으며, 알렉산드리아의 클리멘스(Clemens of Alexandria)는 에베소 근교에서 한 강도를 갱생시켰다고 한다. 이레니우스(Irenaeus)에 의하면 이교도적 케린투스(Cerinthus)에게 항거했다고 한다. 제롬(Jerome)에 의하면 그가 만년에 기력이 없고 너무 쇠약하여 말하기조차 어려울 때 그는 사람들에게 받들려 기독교 집회에 매번 거듭해서 “어린 자녀들이여 서로 사랑하라”를 되풀이 했다고 한다. 요한이 에베소에 거주했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결정적인 증인은 이레니우스이다. 이레니우스는 요한이 에베소 지역에서 살았으며 또 거기서 일했다는 사실을 폴리갑(Polycarp)과 파피아스(Papias)를 통해서 직접 받았다고 확실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레니우스는 그가 아직 소년이었을 때 이러한 것들을 폴리갑으로부터 전해 들었음을 상세하게 진술하고 있다. 이레니우스의 증언은 교회의 용인된 전승이 되었다. 그는 한 때 밧모섬에 유배 가서 그곳에서 본 것으로 요한계시록을 썼다. 밧모 섬은 요한이 환상을 보았던 장소이다. 그가 거기서 기록했거나 아니면 후에 에베소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다. 밧모섬은 에게 해에 있는 작은 돌섬으로 여기에는 유배지가 하나 있었다. 이곳으로 정치범을 유배시키기 위해 또는 광산에서 강제노동을 시키기 위해 보냈던 것이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다”(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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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3
  • [황권철 목사] 요한(John's Behind Stories)-사랑의 사도
    세베대의 아들 요한은 야고보의 형제이다. 사도요한의 정보는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과 요한 서신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얻을 수 있다. 그의 관한 일반적인 자료는 그 형제 야고보를 통해 언급한 고로 그 외 부분만 기술하고자 한다. 요한은 야고보 형제로 갈릴리 벳새다 출신 어부로서 예수님 사후에 모친 마리아를 돌본 예수님의 사랑받는 제자였다. 요한복음과 요한 일, 이, 삼서와 계시록을 집필했다. 그는 소아시아 에베소에서 선교했으며 로마 황제의 기독교 박해로 밧모섬으로 유배를 갔다. 사도들 중 제일 먼저 순교했던 형 야고보와는 대조적으로 요한은 사도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역하고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또한 다른 사도들이 모두 순교를 당하거나 폭력적인 죽음을 맞이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요한은 주후 98년 경 에베소에서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했다. 초대교회 역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에베소에 거주하는 동안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를 몇 년간 모셨다고 한다. 요한이 에베소에 거주하고 있을 때 로마의 도미티안(Domitian) 황제의 핍박을 받아 밧모 섬에 유배당하게 되는데 밧모 섬에 있는 계시의 동굴에서 예수님으로부터 묵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유배에서 벗어난 후 요한은 에베소로 돌아왔으며 트라얀 황제 시대까지 살았다고 한다. 요한은 소아시아 전역에 교회를 세우고 주님이 돌아가신 후 68년을 지내다가 에베소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그러면 요한은 어떤 사람인가?   우뢰의 아들 요한    요한은 세배대와 살로메의 아들로서 야고보의 동생이다. 그는 성격이 불같아서 보아네르게(Boanerges) “천둥의 아들(Son of Thunder)”이란 별명을 가졌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그들이 주님의 출입을 허락하지 아니하자 성급한 요한이 말하기를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멸해 버리라고 했다.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마 9:54). 이 같은 요한이 사랑의 사도가 된 것은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갈 5:22-23).  요한은 형제 야고보와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는 어부였다(마 4:21-22; 막 1:19-20; 눅 5:10). 마태와 마가는 그들의 모친이 살로메(Salome)였음을 시사해 준다(마27:56; 막 15:40). 마가가 그 아버지와 품꾼들을 언급한 것을 보면 그의 가족들이 부요하게 살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마가는 그의 가족이 가버나움이나 그 근교에 거주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막 1:21). 세배대의 아들로 그를 언급할 때 두 번째로 불러짐을 보아 야고보의 동생 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와 함께 부름을 받았다. 그는 열두 제자의 한 사람이었으며(마 10:2; 막 3:17; 눅 6:14), 그는 예수와 가장 가까웠던 세 사도 중의 한 사람이었다. 때로는 두 사람이 선정될 때 요한이 부름받기도 했다. 예수께서 유월절 준비를 위하여 베드로와 요한을 함께 보냈으며 주님이 승천하신 이후 사도시대에 예루살렘 성전에 기도하러 갈 때도 베드로와 요한이 함께 갔다.  요한은 주님이 승천 하신 이후 베드로와 함께 동역했다. 사도행전에서 세 번 언급이 되는데 세 번 모두 베드로와 관련되어 있다. 예루살렘 다락방에 있었던 열한 사도들의 명단에 요한의 이름은 베드로 이름 다음에 나온다(행 1:13). 베드로와 요한이 제 9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다가 앉은뱅이 거지를 만나 예수 이름으로 고쳐 주었다. 그때 거기 모인 무리들에게 베드로가 설교한 후 베드로와 요한이 체포되었고 밤새 감옥에 갇혀 유대 지도자들의 조사와 협박을 받고 풀려났다(행 3-4장). 일곱 집사 중의 한 사람인 빌립의 사역으로 개종한 사람들의 진실함을 알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로 내려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행 8:14-25). 여기서 베드로와 요한은 사도들을 대표하는 지도자요 대변인이었다. 그 형 야고보는 헤롯 아그립바 1세(HerodAgrippaⅠ) 에 의해 처형되었다(행 12:2). 그리고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한번 언급한다(갈 2:9).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었던 기독교 지도자대회에 관하여 말하면서 기둥으로 일컬어지는 저명인사 세 사람을 언급할 때 베드로와 요한이었다. 언약사상을 마감한 요한    요한은 요한복음과 요한 1, 2, 3서를 기록하고 마지막으로 계시록을 기록했다. 그가 쓴 복음서는 공관복음과 전혀 다른 각도에서 기록했다. 마태와 마가와 누가는 당시 유대와 로마와 헬라라는 시대적인 정황에서 복음서를 기록했지만 요한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기록했다. 그는 태초에서부터 언급하여 당시 유대와 지배국가 로마와 헬라 문화를 초월하여 우주적인 초자연적 복음으로 기록했다. 그러면서도 흩어진 유대의 디아스포라들에게 당시 이단자들인 영지주의 유혹에 미혹 받지 않도록 특별한 관심을 가질 뿐만 아니라 말세에 일어날 교회의 모든 환란을 이기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나아갈 천국을 소개하므로 구원역사의 언약사상을 마감한 최후의 사도였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 사상에 변함이 없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으므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계 1:8-9). 그는 순교는 하지 않았으나 주님의 고난에 동참한 순교자였다.  또한 그는 신약의 묵시록을 기록한 자이다. 신약 성경의 제일 마지막 책으로써 문학적 유형으로 보면 구약의 에스겔서, 다니엘서, 스가랴서와 대단히 흡사하다. 그 당시 기독교는 유대교와 결별한 때였고, 또 로마 제국에 의해서 독립된 운동으로 간주되었던 시기이다. 저자의 진술에 따르면 그의 이름이 요한이다.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노예)이다. 이 책의 환상들은 그리스도를 위한 신앙 때문에 유배지인 밧모섬에서 받은 것이다. 그는 아시아교회에 잘 알려진 인물이며 이미 예언자로 인정받았고(계 22:6, 9, 19), 전에도 계시적 성격을 띤 환상을 받아 왔던 사람이었다. 유스티누스(Justinus AD 150년경)는 계시록은 우리 중의 한 사람인 그리스도의 사도중 한 명인 요한에 의해 쓰여졌다고 했다. 그 외에도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 AD 200년경), 오리게네스(Origenes AD 225년경) 등 2세기 중엽에서 3세기 중엽까지 요한의 저작설이 알렉산드리아를 포함한 서방교회들에 의해 대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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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0
  • [황권철 목사] 안드레(Andrew's Behind Stories)-실천의 사도
    순교자로서의 안드레    안드레(Andreva, Andrew)란 이름은 ‘남자다운, 용감한’이란 뜻이다. 그는 이름 그대로 성령의 권능을 받아 예수님의 증인으로 남자답게 살다가 순교했다. 안드레는 헬라와 소아시아에서 선교했다. 카프카스 산맥에서 카스피 해 지역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했고, 오늘날 터키 이스탄불에 해당하는 비잔티움에서 그리스 지경까지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는 드라게, 마케도니아까지 여행하여 남쪽으로 고린도에서 파트로스까지 이르렀다.  그는 AD 69년 11월 30일에 파스트로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3일 동안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다. 그가 받은 고통은 엄청난 것이었으나 안드레는 쉬지 않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였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기 시작했고 결국 그를 십자가에서 내려달라고 관리들에게 요청했다. 사람들의 요청을 거부하고 싶지 않았던 관리는 안드레의 몸을 감고 있던 밧줄을 끊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마지막 밧줄은 너무 강하게 매여 있었고 결국 안드레의 몸은 거의 죽게 된 상태에서 땅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안드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오 그리스도 예수여, 나를 받으소서! 나는 당신을 보았고, 당신을 사랑했고, 당신 안에서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주여! 당신의 영원한 왕국으로 내 영혼을 편안히 인도하소서!”.  그는 그리스의 항만 도시 파트라(Patra) 지방에서 총독의 부인을 안수하여 병을 고쳐 주었다. 이를 계기로 총독 부인이 기독교인이 되었고, 이 외에도 많은 이적들을 행함으로 파트라스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이를 시기한 총독이 안드레를 X자 형 십자가에 달아 처형하므로 순교했다. 당시 네로 황제 치하였던 AD 60년경이었다. 그곳에는 지금의 제일 큰 동방교회 성 안드레 성당이 세워져 있다. 성당 안에는 안드레 사도의 순교화가 그려져 있고 X자 형 십자가는 안드레 십자가로 불린다. 스코틀랜드 국기는 X자 형 십자가이다. 주후 832년경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 전쟁할 때 X형 십자가에 달린 사도 안드레가 나타나 스코틀랜드를 도와 승리했다고 한다. 안드레는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으로 불린다.   교회 전승에 나타난 안드레    그는 교회 성장에 관한 전승에서 다시 등장한다.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흑해 북부 지역인 스키티아(Scythia)는 안드레가 그의 활동지역으로 할당받은 곳으로 되어 있다. 안드레에 관해 전승되어 오는 다음과 문헌들이 있다.  안드레와 맛디아 행전(Acts of Andrew and Matthias), 사도행전의 외경(Apocryphal Acts)과 신약의 외경(Apocrypha of the New Testament)의하면 식인종들이 잡은 지 30일 째 되는 날 먹으려고 눈을 멀게 하고 매어 놓은 맛디아를 안드레가 극적으로 구출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27일 째 되는 날 예수는 안드레에게 나타나서 그의 동료를 구출할 것을 지시한다. 이에 안드레는 주님이 조종하는 배를 타고 간다. 배가 육지에 닿자 안드레는 맛디아를 구출하고 사악한 땅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고 나중에는 많은 고통을 당하다가 구출을 받는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석상에서 생겨난 물로 도시가 잠기고, 이후 구출되어 거주민들을 회개시켜 도시를 재건하고 민중들에게 세례를 베푼다. 이 이야기는 그레고리우스의 역본 뿐 아니라 헬라어와 시리아어 그리고 라틴어 역본 일부에도남아 있다.  안드레와 바울 행전(Acts of Andrew and Paul)에 등장하는 모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에는 곱트어로만 된 것이 남아 있을 뿐이다. 신약의 외경(Apocrypha of the New Testment)이라 불리는 동방행전(Oriental Acts)에 나오는 작품들이다. 바울은 바다에 뛰어 들어가 지하세계를 방문하는데 그는 돌아와서 유다를 보았다고 안드레에게 이야기 한다. 유다의 예수 배반, 그의 회개, 사단의 유혹, 예수의 직접 방문 그리고 유다의 긍극적 운명 등 많은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다. 바울이 지하세계에서 가져온 나뭇조각으로 쳤을 때 그들 앞에 잠겨져 있던 도시의 문이 사라지게 된다. 그들은 유대인들과 논쟁을 한 뒤 사기죄로 범한 약 2만 7천명을 회개시킨다.  안드레의 단편 이야기(Fragmentary Story of Andrew), 신약의 외경(Apocrypha of the New Testment) 중 하나인 사도들의 동방행전들(Oriental Acts)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현재 곱트어로 된 것만 현존할 뿐이다. 한 여자가 사막에서 그녀의 사생아를 죽여 토막내어 잘라 그것을 개의 먹이로 주었다. 안드레가 동료 빌립과 함께 그 장소에 이르렀을 때, 그는 개에게 그 여자가 저지른 일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발산에서 예수의 이적을 암시하는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살해된 어린애의 조작들이 토해져 나와 결합되고 다시 원래의 웃고 우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안드레 행전(Acts of Andrew)은 주로 사도행전 외경(Apocryphal Acts)의 형태로 취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이다. 류시우스(Leucius)가 기록한 마니교인들(Manicheans)이 정경 사도행전 대신으로 사용하는 행전 중 맨 끝의 것이다. 현재는 투르스의 그레고리우스(Gregorios of Tours, AD 538-594)가 편집한 축소된 라틴어판 몇몇 단편들이 남아 있다. 그레고리우스에 의해 생략되고 편집된 이 필사본은 안드레가 아가야 지방에서 행했던 기적뿐 만 아니라 본도 비두니아 트라키아 마게도냐 등지에서 행했던 기적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원전에 대해 최초의 증인으로 보이는 유세비우스는 그것을 위서(僞書)축에도 못 끼는 순전히 사악하고 불경스러운 이단들의 위조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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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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