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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기독 문화유산을 지키자(5) - 진해 경화교회 최초 당회록
창원특례시 진해구 경화동 117번지에 우뚝 선 십자가 아래 경화교회의 큰 간판이 있다. 장복산을 등에 업고 진해군항을 바라보며 도심 정중앙에 위치한 경화교회는 지난 1905년에 설립된 진해 최초의 개신교회이다. 당시 시대 상황은 조선 말 대한제국 고종 47년이었다. 전년 1904년,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이듬해 러일전쟁에서도 승기를 잡고 있었다. 대한제국이 위기를 맞았다. 한반도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세워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해간 을사늑약이 체결된 때이다. 진해 지역의 상황도 일본이 밀고 들어오는 때였다. 1904년 일본은 거제도를 통해 ‘진해만 요새사령부’를 설치, 일본군항을 세울 계획이었다. 이렇게 나라의 사정이 위란지경이었을 때 복음의 생명 기운이 진해로 전파됐다. 1905년 11월 8일로부터 경화교회의 복음 태동 소리가 생겨났다. 당시 생생한 일기는 초대 당회서기로 장립된 안정순 장로가 기록한 당회록이 지금껏 경화교회에서 숨 쉬고 있다. 대부분 초기 개신교 교회들은 이즈음 당회록 등 기록이 유실되거나 보관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경화교회는 이 보물 같은 최초 당회 기록이 당회실에 경외롭게 관리되고 있었다. 최초의 경화교회 당회록은 1920년 2월 1일, 경화교회가 우여곡절 끝에 당시 경남노회(당시 노회장 라대벽 선교사)의 허락을 받고 안정순 장로가 초대 장로로 장립되면서 작성됐다. 안 장로는 이전 경화교회 태동 시기인 1905년부터 정식 당회가 조직되기까지의 15년 역사를 이때 상세히 당회록에 기록하는 큰 공로를 세웠다. 그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 당시 위란의 시대에 교회가 설립되는 눈물겨운 사실(史實)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감동이었다. 살아 있는 고귀한 기독교 문화유산, 보호돼야 할 생명록이었다. 당시 15년 역사의 이야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경화교회 100년사 29페이지에 기록된 대로 옮겨본다. “예수를 믿으시오. 예수를 믿으면 군항 토지를 내줘도 보상비를 많이 타 지금 여러분이 사는 것보다 훨씬 잘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많이 믿어서 교회당을 크게 짓고 십자가를 높이 세우면 저 일본 놈들의 군항도 꼼짝없이 물러갈 줄 압니다. 여러분 한숨만 푹푹 쉬지 말고 예수 믿고 희망을 가집시다.” 1905년 11월 8일이라고 기록돼 있는 해, 통영에서 최한주라는 전도자가 진해에 와서 전파하고 안정순 등 신도들이 모여 이곳에서 예배를 시작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안정순 장로가 15년 후 초창기 기록을 상세히 정식 교회 조직 후 기록한 사실도 중요하고, 그 기록이 지금껏 교회 자체적으로 잘 관리돼 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교회 당회실에 함께 취재 갔던 박시영 부경기독교역사연구회 회장도 감탄했다. 안내해 준 경화교회 천영철 선임장로, 그리고 경남기독문화원 원장 이상칠 장로는 함께 기록물의 권위 앞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회실 기록물을 살펴본 후 1층 카페에서 차를 들면서 눈에 들어오는 코너에 서 있는 범상한 종에 눈길이 갔다. 안내해 준 선임장로 또한 보기 드문 동(銅)으로 제조된 종의 연혁을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120년 교회 역사 속에 언제 이 구리로 제조된 종이 교회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역사학자 박시영 목사는 일정 시대에 들여온 유물일 것 같다며 감정 기관에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진해 경화교회는 지난해 창립 120주년 기념일을 보냈다. 초기부터 당회록을 한 점도 유실하지 않고 관리하고 있는 점 또한 교회를 칭찬하고 싶었다. 글. 박동철서머나교회은퇴장로 자문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 박시영 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 회장 천명철 경화교회 선임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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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아름다운교회(42)
아름다운교회(정정권 목사)는 경남 창원시 성산구 가음로 68번 길 1에 있다. 이 교회는 1991년 6월 2일 창원시 상남동 상업지구 4B 2L에서 정정권 목사에 의해서 개척 설립되었다. 고려파교회의 아픔이라고 하면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 문제로 한국장로교회에서 축출당한 일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평온할 때 이전에 받은 은혜를 망각하고 “신자 간에 법정 소송 문제”로 소위 고소측과 반고소측이 분립하는 또 한 번의 아픔을 경험하게 되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는 1976년 26회 총회에서 '신자 간 사회 법정에서 소송이 가능하다'는 안이 가결하자, 여기에 반대하는 이들이 총회를 탈퇴하여 고려총회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교회는 경남(법통)노회 제154회(2001.4.2.-3, 창원교회당) 때 고려측에서 돌아와 다시 가입하게 되었다. 정정권 목사는 1986년 고려신학대학원 40회기로 졸업하고 목사 안수받은 후 창원에서 개척했다. 1991년 아름다운 교회를 개척한 이후로 초심을 잃지 않고 오늘까지 34년이 넘게 한 교회만을 섬겨 온 신실한 개척자이다. 정 목사는 예배가 경건하면서도 축제와 같은 은혜로운 예배 인도자이다. 오늘 예배의 진행도 인도자와 회중이 함께 하는 은혜로운 분위기였다. 그리고 오후에 드리는 예배는 삼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로 오늘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때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 삼대가 한 자리에서 드리는 예배는 계약교회의 언약 사상에 기초한 것으로 철저하게 말씀 중심의 교회이다. 나아가 온 교회가 하나의 공동체로 가족 같은 분위기로 교회 모든 광고는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있었다. 건강한 교회는 행복한 성도로서 날마다 환희가 넘치는 황홀한 교회 공동체였다. 금주 말씀의 제목은 “이런 부모가 되게 하소서”(창 28:1-5)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거처하는 집 곧 고향이 있다. 사람이 정든 고향을 떠날 때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주로 자녀 교육을 위해, 혹은 남편 직장이나 여러 가지 목적으로 고향을 떠난다. 떠날 때는 모든 면에서 철저히 준비하나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여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야곱이 고향인 아버지 집을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고향을 떠나면서 수많은 위기를 직면했다. 그러면 그 같은 위기를 그는 어떻게 극복했는가? 먼저 그는 형의 원한을 피하여 집을 떠남에서 위기를 경험했다. 그는 고향 브엘세바에서 외삼촌이 사는 밧단 아람인 하란으로 떠났다. 한 번도 집 밖으로 외출이나 외박을 해 보지 않은 그가 전혀 낫설은 곳에서 밤을 세워야 했다. 그때 두려움이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그는 루스 들판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창 28:12-15). 그때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한다는 임마누엘의 역사를 체험했다. 주님은 구원사명을 다 이루고 떠날 때 제자들을 버려두지 않고 보혜사 성령으로 그들과 함께했다(요 14:16-17).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하셨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가서도 그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 신앙으로 살았다(창 39:9). 이와 같이 야곱 역시 고난의 위기가 하나님이 함께하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 그는 너무도 감격해서 자신이 배게한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단을 쌓고 이제 후로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만을 섬기고 내가 만일 돌아오면 이곳에서 단을 쌓고 내 얻은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야곱의 이 같은 믿음은 그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오늘날 부모 세대는 자녀들에게 이같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 다음, 외삼촌 집에서 속임을 당하면서 위기를 경험했다. 창세기 29장에서 31장까지 20년간 밧단아람에서 외삼촌께 속임 당하고 종노릇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인 댓가를 외삼촌 댁에서 톡톡히 그 값을 치렀다. 그는 외삼촌이자 장인에게 속임을 당하고는 처자와 가축을 이끌고 야간도주를 한다. 그가 외삼촌께 속임 당하여 야간 도주하다 결국 외삼촌에게 붙잡히게 된다. 야곱의 하는 소행을 보면 화를 면치 못할 것이나 의로운 하나님이 그를 지켜 주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창 39:13) 야곱의 상황이나 그가 한 소행을 보면 도무지 용서받지 못할 언행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윤리적인 행위 이전에 언약을 더 중히 여겼다. 야곱은 이 같은 위기 가운데서도 벧엘의 하나님이 주켜 주심을 체험했다. 우리가 때로는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실수하여 넘어져도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 이전에 언약을 보신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엡 2;8-9). 마지막, 야곱은 얍폭나루에서 인생 최고의 위기를 경험한다. 지금 야곱은 얍폭 강가에서 형에게 전령을 보내어 상황을 파악해 돌아오라고 했다. 그들이 돌아와서 한 보고가 형이 400군대를 거느리고 야곱을 잡으러 온다고 헀다. 뒤를 돌아보니 외삼촌의 군대가 있어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졌다. 처음에는 얄팍한 인간적인 머리로 위기를 피해 보려고 했다. 가축떼를 보내 형의 마음을 얻어 보려고 했고, 그것도 안 되면 자신이 낳은 자식들과 아내를 보내어 인간의 정으로 호소하려고 했다. 이렇게 하여 야곱은 결국 강가에 홀로 남게 되었다. 그는 강가에 혼자 있을 때 천사와 씨름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천사와 씨름하다가 환도뼈가 위골 되어 인간 장애자가 되었으나 그때 형의 마음을 녹이는 일생일대 최대 위기가 최고의 축복 기회가 되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성도 여러분! 야곱의 이 같은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바꾼 비결이 무엇인가? 그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믿음에서 온 것이다.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많은 것을 유산으로 물러 주려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자녀들이 위기에 직면할 때 부모의 믿음을 본받을 수 있는 그러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 이 한 주간도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임마누엘과 그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기도함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마흔두 번째로 아름다운 교회를 찾았다. 밀알교회와 가까운 곳에 있기에 아무런 생각 없이 T-map이 인도하는 대로 가다 보니 토월동에 있는 아름다운교회로 가서 순간 당황했다. 급히 서둘러 주소를 확인하여 가니 예배 시작 10분 전이었다. 예배는 찬양과 목회기도, 봉헌예물, 그리고 말씀 선포로 은혜로웠다. 안내를 담당한 분들이 교회를 처음 출입하는 분들의 자리에 찾아와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월간 큐티 집을 가져다주고 컵에 물까지 준비해 주었다. 새 가족을 위하여 배려하는 마음이 감동적이었다. 목사님의 설교에 많은 은혜를 받고 광고 시간에 고려파교회연구소 사역 소개와 함께 축도까지 맡겨 주어 귀한 환대를 받았다. 예배 후 목양실에서 정 목사님과 간단한 차담을 나눈 후 바쁜 목회 일정을 확인하고 오후 헌신예배 인도할 진영시찰 신천교회로 떠났다. 2024년 11월 3일 주일 오전 11시 예배 고려파교회연구소장 교육학박사 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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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선교보고] 빗줄기도 막지 못한 복음의 행진, "다음 세대, 세계를 품다"
지난 2015년, 다음 세대를 향한 작은 씨앗 하나가 필리핀 땅에 심겼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26년 1월, 그 씨앗은 울창한 숲이 되어 한국과 필리핀의 청소년들을 '형제'로 묶어내고 있었다. 경남노회 남선교회 연합회(회장 전병태 장로)가 주관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제8차 단기선교 영어캠프'가 지난 1월 4일부터 1월 16일까지 12박 13일간의 일정으로 필리핀 퀘존주 룩반기독학교(Lucban Christian School)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이번 캠프에는 남선교회 회원 9명과 인솔 교사 1명, 꿈을 품은 11명의 학생 등 총 21명이 참가해 믿음의 여정을 함께했다. 이번에는 특별히 노회장 신종주 장로님과 함께하였고, 남선교회 회원들은 1월8일 귀국하기까지 4박 5일간의 짧은 단기선교이지만 은혜롭고 강렬했다. 12년의 뚝심, "오직 다음 세대를 위하여" 이번 선교 캠프는 단순한 해외여행이 아니다. 경남노회 남선교회가 '친선체육대회'와 '선교대회'를 통해 모은 기금으로 학생들의 항공료와 인솔교사는 전액 지원하는, 그야말로 '사랑의 결정체'다. 특히 2023년에는 룩반기독학교 학생들을 한국으로 초청하며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당시 한국을 다녀갔던 현지 학생들이 이제는 어엿한 시니어 고등학생(한국 고2에 해당)이 되어, 이번 8차 방문단을 뜨겁게 맞이했다. 이는 일방적인 지원을 넘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교류하는 진정한 '양방향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Day 1~2: 역사의 현장에서 선교의 현장으로 지난 1월 4일 주일 저녁, 김해공항을 출발한 선교팀은 5일 새벽 마닐라에 도착하며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했다. 톤톤(Tonton) 교장 목사의 환대 속에 시작된 이튿날은 마닐라의 역사 탐방으로 문을 열었다. 스페인 통치 400년의 흔적과 호세 리잘(Jose Rizal)의 독립 투혼이 서린 리잘 공원, 그리고 2차 대전의 상흔이 남은 유적지를 돌아보며 참가 학생들은 필리핀의 아픈 역사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했다. 이 과정에서 전병태 회장이 과학박물관 투명 유리문에 부딪히는 '열정적인(?)' 해프닝이 있었으나, 다행히 큰 부상 없이 웃음으로 넘기며 여정의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오후 6시, 룩반기독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드려진 무사도착 감사예배는 감동 그 자체였다. 특히 학생들은 현지 가정으로 흩어져 2인 1조로 홈스테이를 시작했다. 낯선 문화, 낯선 언어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드는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글로벌 리더'의 새싹이 보였다. Day 3: "우리는 하나입니다" 뜨거운 환영식 1월 6일, 룩반기독학교 교정은 200여 명 재학생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본회가 증축하여 기증한 4층 대강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은 양국의 국기가 나란히 게양된 가운데 엄숙하고도 활기차게 진행되었다. 전병태 회장과 신종주 노회장의 특별 메시지는 학생들에게 비전을 심어주었고, 이선우 안수집사가 전달한 장학금은 현지 학생들의 학구열에 불을 지폈다. 이날 오후, 비록 우천으로 인해 'Mother's Wonder Land(마더스 원더랜드)' 방문은 무산됐지만, 아름다운 정원에서의 힐링 타임은 빡빡한 일정 속 쉼표가 되어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룩반 시청을 방문하여 새로 이전 건축한 시청 내부 여러 사무실을 둘러보고 끝으로 시장을 접견하였다. Day 4: 빗속을 뚫고 울려 퍼진 "바이블 데이"의 함성 이번 선교 여행의 백미는 단연 1월 7일 'Bible Day(성경의 날)' 퍼레이드였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행사가 취소될까 우려했지만, 복음을 향한 열정을 식힐 수는 없었다. 성경의 날 퍼레이드 행사 전에 특별한 '준공식'도 있었다. 지난 해 태풍으로 룩반기독학교 채플실 지붕이 파손되어 누수가 심각하다는 소식을 접한 남선교회는, 지체 없이 약 800만 원의 긴급 복구비를 지원했었다. 말끔하게 리모델링된 채플실에서 개최된 테이프 커팅식은 단순한 건물의 복구를 넘어, 아이들의 영적 보금자리를 지켜냈다는 안도감과 감사가 교차하는 자리였다. 이어서 룩반기독학교에서 시내를 지나 행사장까지 거리 퍼레이드가 진행 되었다. 선두에 경찰차의 에스코트와 함께 제복을 입은 현지 학생들의 밴드가 웅장한 연주를 시작하자, 빗줄기는 오히려 축복의 단비처럼 느껴졌다. 멈추어 선 여러 차량과 시민들은 손을 흔들며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행사장에 도착한 후에 실내 행사는 5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하이라이트는 한국 학생들의 무대였다. 낯선 땅에서 갈고닦은 기타, 드럼, 신디사이저 연주와 합창이 울려 퍼지자 현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찬양'으로 하나 된 순간이었다. 성경의 날 행사를 모두 마치고 룩반 시내 투어로 필리핀의 성지순례로 유명한 ‘카마이 니 히수스(Kamay Ni Hisus)'에서 노아 방주와 아주 큰 예수상도 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일정의 마지막 만찬은 특별했다. 한국에서 10년간 일하고 돌아온 현지인이 운영하는 '무한리필 삼겹살' 식당. 비록 된장찌개는 없었지만, 한국의 맛을 재현하려는 현지 사장님의 정성과 'K-푸드'를 사랑하는 현지인들의 북적임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한류를 체험했다. Day 5: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기에" 1월 8일, 4박 5일간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남선교회 회원들을 배웅하는 자리는 아쉬움과 기약으로 가득 찼다. 톤톤 목사님의 환송 예배 후에 목사님 사모와 아들 소리엘 군이 공항까지 배웅해주었다. 아들 소리엘에게 알고 있는 한국어를 물으니 “감사합니다” 말 밖에는 아는 말이 없었다. 앞으로 소리엘에게 화상통화로 한국어를 가르쳐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헤어졌다. 단기선교팀 학생들을 필리핀에 남겨두고 우리 남선교회 회원만 오후3시경 마닐라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오후7시30분경에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전병태 회장의 가족들이 준비한 환영 플래카드로 반가이 우리를 맞아 주었고, 그리고 1차 선교의 주역 김종욱 장로와 3차 선교를 이끌었던 배병호 장로의 마중은 '선교의 바통 터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1차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대 회장님들의 헌신과 기도가 있었기에 오늘의 8차가 있었고, 앞으로 9차, 10차의 미래가 이어질 것이다. 경남노회 남선교회 연합회의 이 아름다운 선교사역은 앞으로 격년제 상호 방문(한국 학생 파송 ↔ 필리핀 학생 초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양국 간에 다음 세대 모두를 '글로벌 크리스천 리더'로 세우기 위한 거룩한 행진에 경남노회 산하 많은 교회의 더 많은 관심과 기도가 필요한 때다. <자료제공=경남노회 남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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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무성교회(41)
무성교회(이수건 목사)는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무성길47번길 16-10에 있다. 이 교회는 본래 고신교회 출신으로써 덕산재건교회를 출석하여 집사로 장립 받아 섬기던 박만석 집사가 자신이 살던 동네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자기 집터 일부와 돼지를 기르던 돈사 부지를 교회 기증하여 1991년 10월 1일 창원군 동면 무성리 195-1에서 당시 가술교회 시무하던 원대연 목사의 명의로 무성교회(종교단체)로 등록하였다가 1992년 7월 2일 경남(법통)노회로부터 교회 설립을 허락받았다. 지금의 교회당은 2009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2011년에 완공하고 2013년 11월 14일에 입당감사예배를 드렸다. 교역자로는 1992년 6월 18일 이상철 목사가 부임한 이래 이학재 목사, 안영원 목사, 그리고 이한성 목사가 섬기다가 현재는 이수건 목사가 경남(법통)노회 제192회 때 전임 목사로 허락받아 2020년 5월 3일 부임하여 섬김으로 교회가 새롭게 부흥하고 있다. 이수건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45회 졸업하였고 진주노회 아름다운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청빙을 받았다. 이 목사는 부임한 이후 창원동부시찰 교역자들을 초청하여 “무성교회 과거 현재,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자신의 목회 사역을 소개했다. 지난날 교회 설립 때 가술교회(원대연 목사)를 비롯한 여러 교회가 도와주셨고, 새 예배당 건축할 때는 덕산교회(안은준 목사)를 비롯한 시찰 산하 여러 교회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무성교회는 본동의 아파트에 입주한 분들을 전도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새 예배당을 짓고 헌신적으로 섬겨 왔기에 건강한 교회로 자라가고 있다. 무성교회 미래는 초대 예루살렘교회를 본받아 닮아 가기를 소원한다. 초대교회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한 것처럼 무성교회를 설립한 분도 자신의 가옥 일부를 받침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열심인 여성도들과 헌신자 바나바와 청년 마가가 있었던 것처럼 무성교회에도 이름 없이 헌신하는 여종들과 바나바 같은 헌신자와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청년들의 섬김으로 건강한 교회로 세워가고 있다. 금주의 주신 말씀의 제목은 창세기 32장 24절로 28절 말씀으로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이다. 지금 야곱은 일생에서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한 순간이다. 그는 일생을 살면서 몇 번의 위기를 맞았다. 형의 미움을 받아 집을 떠날 때와 외삼촌의 재산을 가지고 탈출할 때,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얍복 나루에서 20년간 한을 품고 기다린 형이 400군대를 거느리고 복수하러 옴으로 진퇴양난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러한 위기를 대처하는 야곱은 어떠했는가? 우선 가축을 두 떼로 나누었다. 한 떼를 치면 다른 한 떼와 도피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부인과 아이들을 먼저 보내어 형의 마음을 풀게 하고자 했다. 그러고 보니 결국 자기 혼자만 남게 되었다. 왜 혼자 남았을까? 위기의 때 가족을 버리고 도망가기 위함인가? 형과 대면할 자신이 없는 두려움 때문인가? 물론 그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보면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였다. 성도는 위기의 때 기도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여호사밧은 아람 전투에서 위기를 직면했을 때 오직 주만 바라보았다(대하 20:12). 그는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대하 20:15) 오늘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질문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 질문과 나타난 대답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먼저, 나는 연약한 존재란 말이다. 야곱은 본래 가정에서 어머니 치마폭에서 자란 유약한 사람이다. 에서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에서는 사냥에 익숙한 들 사람이요 야성적인 사람이다. 거기에 비하면 야곱은 가정에서 어머니 그늘에서 자랐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버러지와 지렁이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사 41:4).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도와주시겠다고 했다. 날카로운 타작 기계처럼 만들어 주셨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서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같이 만들 것이라”(사 41:14-15) 야곱이 비록 지정이 같고 버러지 같은 존재이지만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열방을 다스릴 왕국으로 세움을 받았다. 다음, 나는 하나님 없이는 못 사는 존재란 말이다. 야곱은 출생 때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 야곱은 출생 때부터 형을 잡고 나와 결국 형의 장자권을 빼앗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형의 위협 앞에 하나님을 붙잡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제 하나님을 붙잡은 손을 놓는 순간 그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야곱이다’는 말은 이제 하나님의 발꿈치를 잡은 인간이라는 말이다. 전에는 사람을 붙잡고 살았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붙잡고 산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시 118:8-9) 이젠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전에는 형을 붙들고 살았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붙잡고 사는 인생이다. 마지막, 저는 불구자 인생이란 말이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위골 되었다. 하나님은 반칙을 써서 야곱의 환도뼈를 쳤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하면서 환도뼈가 위골됨으로 일평생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 장애자로 살았다. 그는 절뚝거리며 불구의 몸이 되어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었다. 이후 야곱은 완전히 변하여 형 앞으로 나아갈 때 일곱 번 절하며 나아갔다.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을 향해 하나님은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나는 야곱이니이다.” 대답했다. 이는 곧 나는 연약한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 없이 못 사는 불구자 인생이요 절름발이 인생이라는 말이다. 이 한 주간도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마흔한 번째로 무성교회를 찾았다. 주일 아침 예배 15분 전에 도착하여 예배실로 들어서니 이수건 목사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로님과 집사님들을 소개하고 앞 자석으로 안내해 주었다. 2009년도에 지은 새 예배당에 1층은 교회학교와 교육관 및 식당으로, 2층은 예배실로 잘 꾸며져 있었다. 찬양 인도가 끝나고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도 차분하게 정제되고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준비한 본문의 성구를 액정 화면에 띄우면서 모든 성도가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득력 있게 선포했다. 모두가 말씀의 은혜를 받고 예배 후 식당으로 가서 목사님과 함께 식사하면서 장로님과 집사님들, 그리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밀알교회를 섬긴 장로님의 동향을 비롯한 귀한 사역자들을 만나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었다. 이후 목사님과 교우들의 배웅 인사를 받으면서 오후 메트로 병원 선교 사역의 현장으로 돌아왔다. 2024년 10월 27일 주일 오전 11시 예배 고려파교회연구소장 교육학박사 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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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기독문화유산을 지키자(4)
부산 초량교회 초대교회 기록물·강대상·선교사 유품 빛난 모습 한국 근대화의 문이 열리고 기독교 선교사들이 첫발을 디뎠던 부산 땅. 1884년 9월 14일 알렌 선교사, 1885년 4월 3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입국함으로써 이 땅의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미국 북장로교는 1891년 9월 부산에 선교기지를 설치한다. 그 책임자가 베어드, 한국명 배위량이다. 베어드가 당시 부산 영선현(현 초량)에 세 필지의 땅을 매입함으로써 선교 거점이 시작됐다. 초기 영선현교회, 이어 영주동교회로 불리다 지금의 초량교회로 역사를 이었다. 초량교회 100년사에는 “초량교회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가 파송한 윌리엄 베어드 목사에 의해 1892년 11월에 설립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써 초량교회가 부산·경남 기독교 역사 140년을 이끌었다. 한국 남녘 땅에서 기독교 요람이 된 초량교회는 부산광역시 중구 초량동에 지금껏 자리 잡고 복음의 사역과 기독교 역사의 횃불이 되고 있다. 초량교회는 최근 교회 역사관을 단장하고, 부산의 명소가 된 장기려박사기념관이 있는 ‘부산 이바구길’ 언덕길에 아늑히 그리고 엄숙하게 세계의 관문 부산항을 바라보고 있다. 필자의 취재길에 눈에 들어온 첫 모습은 이바구길 벽에 붙어 있는 부산 출신 인물 벽의 인물 이야기들이었다. 허정 초대 정부 내각수반, 가수 나훈아, 연예인 이경규, 장기려 박사 등의 부산 인물들이 인물 조각과 함께 이야기로 벽에 붙여져 있고, 이 언덕길에 예배당과 기독 역사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가 교회 위탁을 받아 단아하게 정리한 역사관 내부를 돌아보다 감동을 받았다. 잘 정리된 초대교회 엄청난 기록물들이 쏟아져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초량교회가 항도 부산을 발전시켜 온 정신적·문화적 요람이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교회를 담임했던 기독교 역사 속 중요 영적 거장들이 초량교회를 거쳤다는 사실(史實)들이 살아 있는 듯 눈에 띄었다. 선교사로는 배위량 선교사와 호주 선교부 손안로 선교사가 초량교회를 거쳤고, 초대 한덕룡 목사, 3대 주기철 목사, 4대 이약신 목사, 6대 한상동 목사 등의 거장들이 초량교회에서 한국 기독교를 튼튼히 세웠다는 사실들이 있었다. 평신도 인물로는 초대 부산시장 양성봉 장로, 9대 부산시장 이근용 장로 등의 얼굴이 보였다. 부산의 큰 인물들을 양성한 교회가 초량교회였다. 중요한 문화유산은 이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 교회 사역의 기록물들이다. 베어드 선교사의 사모 애니 베어드 선교사가 작사한 찬송가에 수록된 ‘멀리 멀리 갔더니’, ‘나는 갈 길 모르니’ 등의 근대 유산이 될 수 있는 자료가 빛을 내고 있었다. 당시 초대 선교사들이 쓰던 피아노, 라디오, 언더우드 타자기 등 유품들도 많았다. 특히 한국 선교에 재정 후원에 공을 세운 언더우드 선교사 타자기와 이들이 쓰던 여행용 가방, 트렁크 등이 눈에 띄었다. 3대 주기철 목사가 쓰던 원목 공예의 가치가 높은 강대상도 눈에 들어왔다. 한국학 연구의 선구자였던 제임스 게일 선교사, 백산상회를 통해 임시정부와 독립군을 지원한 윤현진·윤현태 형제 집사, 이들 형제를 돕다 옥고를 치른 장덕생 목사, 한국의 조지 뮬러로 불린 고아들의 아버지 이약신 목사, 3·1운동과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선 조수옥, 손명복, 문순복 등의 발자취와 일부 손때 묻은 유품들이 있다. 근대 유산의 가치가 높은 당회록과 생명록의 빛바랜 기록물들이 숨을 쉬고 있는 듯 눈에 들어왔다. 이 중 생명록의 기록물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제적부로서 당시 성도의 제적부를 생명록이라고 적혀 있다. 이렇듯 초량교회 역사관에 소장된 근대 문화유산들이 향후 어떻게 보호되고 사료의 가치를 발할 수 있을까. 더 이상 유실되지 않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그동안 당회록은 관리의 어려움으로 일부 유실되고 없어졌다. 다행히 초량교회는 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역사관을 관리하고 있는 정충권 장로께서 설명했다. 지금도 많은 탐방객들이 역사관을 찾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숙원이 현실화되고 제도화되어서 보물 같은 기독교 문화유산이 보호되고 지켜져 가야 할 것이다. 글 │ 박동철 장로(서머나교회 은퇴) [자문]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 박시영 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 회장 정충권 초량교회 장로(기독역사관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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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교회 120주년, 일본 선교의 새로운 좌표를 세우다
설립 120주년을 맞은 은혜로교회(담임목사 김은태)가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 지역에 선교교회를 개척하며, 일본 선교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이번 선교 개척은 단순한 해외 교회 설립을 넘어, 공동체 중심·현지 체류형 선교 모델을 본격적으로 적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은태 목사는 감사예배에서 “수많은 세대가 이어온 믿음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역사가 오늘의 선교 비전을 가능하게 했다”며 “작은 시작일지라도 기도와 헌신으로 모인 손길은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도 가운데 열린 방향 전환, 일본 도코나메로 은혜로교회는 당초 러시아 연해주 북방선교를 준비해 왔으나, 전쟁과 항공편 단절로 인해 약 1년간 선교 방향을 재검토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김은태 목사는 기도 중 반복적으로 ‘도코나메’라는 지명이 떠올랐고, 실제 지도에서 해당 지역을 확인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교회가 전무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당회와 성도들에게 비전을 나누었고,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일본 선교에 동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도코나메는 나고야 국제공항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항공·산업도시로, 유동인구가 많지만 복음의 공백이 큰 지역이다. “하나님께서 올바른 선교지를 보여주셨다” 이번 선교 일정에는 김은태 목사를 비롯해 시무장로와 집사 등 총 18명이 참여했으며,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현지 부지 매입과 감사예배가 진행됐다. 서준원 장로는 “도코나메 선교지를 다시 방문하며 하나님께서 교회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깊이 느꼈다”며 “121년 전 은혜로교회를 세우신 성령님께서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심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예배 가운데 내린 비마저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정길용 장로 역시 “설립 100주년 당시 연해주에 교회를 세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120주년을 맞아 일본 땅에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게 됐다”며 “부지 계약 전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단기 방문이 아닌 ‘머무는 선교’ 공동체 체류형 선교 모델 도입 은혜로교회는 도코나메 선교를 위해 3층 규모의 예배당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1층은 예배당, 2층은 숙소로 조성해 성도들이 상시 체류하며 선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는 단기선교 중심의 방문형 사역을 넘어, 교회 공동체 전체가 선교의 주체가 되는 구조다. 김은태 목사는 “한두 사람이 감당하는 선교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함께 머물며 현지와 삶을 나누는 선교를 지향한다”며 “복음을 전하는 것을 넘어, 현지와 함께 살아가는 선교가 목표”라고 밝혔다. 김현배 장로는 “전 성도가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구조라 더욱 감사하다”며 “이번 부지 감사예배를 계기로 도코나메에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동체가 세워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상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일본 땅에 복음의 예배당이 세워지는 것은 마지막 시대를 향한 중요한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총회·노회·교회가 함께한 연합 선교 이번 도코나메 선교 개척은 은혜로교회의 단독 사역을 넘어, 고신총회 전국남전도회연합회와 부산서부노회남전도회연합회가 함께 참여하며 연합 선교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김은태 목사는 “총회와 노회, 지역 교회가 한마음으로 참여하는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상징”이라며 “도코나메 개척은 한국 교회가 연합과 협력으로 새로운 선교 모델을 세워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교회는 내년 6월 기공예배를 드리고, 2026년 11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입당예배에는 100명 이상의 성도가 현지를 방문해 전도와 봉사 사역에 참여할 계획이다. 문화·비즈니스 선교로 확장되는 비전 도코나메 지역의 특산품인 도자기 공방과 연계한 ‘문화·비즈니스 선교 모델’도 추진된다. 현지 공방 제품을 한국에서 전시·판매해 교류를 확대하고, 자립형 선교 기반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김은태 목사는 “선교는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삶과 문화를 함께 세워가는 과정”이라며 “도코나메에 세워질 교회가 아시아와 열방을 향한 복음의 통로가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은혜로교회의 이번 일본 선교 개척은 120년의 역사를 과거의 기념에 머물게 하지 않고, 다음 세대를 향한 선교의 씨앗으로 이어가려는 실천적 결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코나메에서 시작된 작은 부지는, 연합과 협력으로 새로운 선교 지평을 열어가는 한국 교회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료제공=은혜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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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권순기 경남교육감 출마예정자 서면 인터뷰
- 경남교육감 출마 할 예정인 권순기 전 경상국립대 총장은 경남교육의 기초학력 저하와 교권 붕괴, 인성교육 약화 등을 지적하며 “공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출마했다”고 밝혔다. 아래는 본지와의 질의응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Q1. 교육감 선거 출마를 결심하게 된 핵심 동기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도민들께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예정자님의 역량은 무엇입니까? A. “경남교육은 기초학력 저하, 교권 약화, 교육재정 악화 등으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저는 실용 과학자이자 교육 행정가로, 교육을 부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성장 전체’로 바라봅니다. 초·중등과 대학 교육은 끊어진 구조가 아니라 하나의 고리처럼 연결돼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교육 때문에 떠나는 경남이 아니라, 찾아오는 경남’을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 Q2. 교사의 정치·이념 성향이 교육이나 생활기록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교육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어떤 기준으로 실현하시겠습니까? A. “교육은 언제나 학생 중심이어야 합니다. 정책 판단의 기준이 ‘정치’가 아니라 ‘학생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에 있어야 합니다. 교사의 정치적 이념이 학생에게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됩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에게 이념적 색깔이 덧칠된다면 그 결과는 모두가 예상 가능하지 않습니까. 저는 ‘권한은 아래로, 책임은 위로’라는 원칙을 세우고 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하겠습니다. 자율성을 주면 현장은 스스로 바뀝니다. 또 지자체와의 연계를 통해 행정적 지원도 강화해 학생·학부모가 체감하는 변화를 만들겠습니다.” ■ Q3. 공교육에서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보시는 ‘가치교육’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기독교계 학교·단체와의 협력은 어떻게 보십니까? A. “헌법 제31조가 명시하듯 모든 학생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잘하는 학생은 더 잘하도록, 어렵고 뒤처지는 학생은 더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가치교육의 핵심입니다. 경남에는 한 명도 입학생이 없는 학교가 26곳, 한 명뿐인 학교가 33곳이나 됩니다. 작은 학교 살리기와 학교 통합은 지역 주민과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기독교적 정신으로 세워진 학교가 설립 이념을 유지하며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종교계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Q4. 학교폭력과 교사 보호가 충돌할 때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피해 학생, 가해 학생, 교사 보호 원칙을 설명해 주십시오. A. “우선순위는 명확합니다. 학생 보호가 최우선입니다. 피해 학생에게는 심리상담·일시 보호·치료·관계 회복 등 단계별 회복 정책이 필요합니다. 가해 학생은 폭력의 심각성·지속성·고의성·반성 정도에 따라 특별교육을 병행해야 합니다. 동시에 무너진 교권 회복은 시급한 과제입니다. 교사가 마음 놓고 학생을 지도할 수 있어야 교육이 제대로 됩니다. 이를 위해 저는 ‘교권 보호 플랫폼’을 구축하겠습니다. 악성 민원 대응 전담기구 설치, 법률 지원, 외부 압력에 대한 교육청의 책임 있는 대응이 포함됩니다.” ■ Q5. 학부모들은 “공교육만으로는 불안하다”며 사교육비 부담을 호소합니다. 서울과의 학력 격차를 줄이고 ‘학교 수업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 조치는 무엇입니까? A. “모든 것은 초등 기초학력부터 다시 세워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초등 학력평가는 ‘체력장’이 아니라 건강검진 개념입니다. 학생·학부모·교사만 진단 결과를 알 수 있도록 하면 학교 서열화 우려도 없습니다. 자신의 학습 위치를 모르고 상급학교로 올라가는 혼란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또 지역 특성에 맞는 좋은 학교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전국 우수 학교를 벤치마킹하고 학교 운영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겠습니다. 특히 과학고·외국어고·자사고·영재고를 잇는 ‘경남 십자형 특목고 벨트’를 조성해 경쟁력을 높이겠습니다. IB 교육 도입도 적극 검토하겠습니다. 저 역시 시골 산골 출신이지만 공교육의 힘으로 서울대와 KAIST까지 성장한 사람입니다. 공교육이 정상화되면 ‘아이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다’는 믿음을 경남에서 다시 보여주고 싶습니다.” ■ 맺음말 권순기 예비후보는 “경남교육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길은 공교육 정상화에 있다”며 “아이들이 떠나는 교육이 아니라 찾아오는 교육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약력> ■ 학력 단성초 · 진주중 · 진주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KAIST 자연과학대학 석사·박사 ■ 교육행정 분야 경상대학교 총장(9대, 11대) 경상국립대학교 총장(11대, 통합대학 초대 총장) 경상남도사회대통합위원회 교육청년분과위원장 한국대학평가원 대학기관평가인증위원회 위원장(전) 경승대학교 항공우주특성화대학원장(전) 부경항정통항공론회 공동위원장(전) ■ 실용과학 분야 MIT 연구원(전) 경남 창원산학융합원 이사장(전) 경남테크노파크 이사(전) 산자부 소재부품전략 위원장(전) 삼성디스플레이 경상대학교 OLED 센터장(전) 경남과학기술대상 수상 LG전자기술원 우수산학협력개발상 삼성휴먼테크논문지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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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권순기 경남교육감 출마예정자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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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 순방 : 반송제일교회
- 반송제일교회(이우철 목사)는 경남 창원시 성산구 원이대로 473번길 1에 있다. 이 교회는 1977년 5월 27일 민재휘 강도사에 의해 설립이 되었다. 당시 예배 처소는 마산시 내동 394-9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1983년 창원시 반송아파트 지구 30블록으로 옮겼다. 1990년 6월 14일 김도범 목사가 부임한 후 반림동 13번지에서 회집하다가 1993년 5월 2일 이인덕 목사가 부임함으로 그해 10월 반송제일교회로 교명을 변경했다. 이 교회는 1999년 10월 24일 늘빛교회와 합병하고, 2003년 6월 8일 교회 건축하는 동안 반지동 78번지 케이프타운 3층에 임시로 옮겨 예배를 드렸다. 건축을 마친 후 현 교회당으로 옮겨 이인덕 목사는 25년간 사역을 내려놓고 2017년 경남중부노회 학포교회로 이동했다. 현 당회장 이철우 목사는 2018년 4월 15일 부임하여 2019년 5월 25일 위임을 받았다. 이우철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제62회로 졸업하여 경남남부노회 거제 섬김의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본 노회 명곡교회와 전라노회 광주은광교회 부목사로 섬기다가 반송제일교회 청빙을 받았다. 이 목사는 전임교회 부목사로 있을 때 이상영 목사와 전원호 목사로부터 목회훈련을 잘 받은 전형적인 고려파교회 목사이다. 특별히 말씀 사역에 있어서 개혁주의 신학전통을 철저히 따르는 말씀중심의 사역자이다. 이 같은 것은 그가 선포하는 강단의 설교를 통해 알 수 있다. 금주 말씀은 로마서 6장 1절에서 14절 말씀으로 “운명의 끈”이란 제목의 말씀이다. 하동의 유명한 섬진강에는 유속이 빠른 급류가 흐르는 곳에 레프팅(rafting)를 즐기는 분들이 많다. 레프팅에 중요한 수칙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함께 노를 젓는 것이다. 어려운 급류로 인해 자리를 이탈하면 균형을 잃게 되고, 함께 노를 젓지 않으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전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생명의 공동체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영적으로 이와 유사한 점이 많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바르게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지성의 최고 경지에 오른 희랍의 철인 소크라테스도 그 누구의 말을 인용하여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사실상 타락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정확하게 안다는 것은 어려울 뿐 아니라 불가능한 영역이다. 여기에 대하여 오늘 본문 2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2) 바울이 말하기를 인간은 죄에 대하여 죽은 자라고 했다. 죄의 정점인 꼭대기로 가보면 하나님을 인정치 않는 교만이 자리 잡고 있다. 타락한 아담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교만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인간을 바르게 알 수 있도록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을 바르고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먼저, 나 자신을 그의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이다. 본문 6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에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서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했다.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함으로 죄의 욕망이 그의 십자가로 못 박아 죽임을 당해야 한다. 우리 자신이 그의 십자가로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 같은 끈이 곧 우리가 믿는 신앙이다. 우리가 그를 영접하여 내 자아가 신앙의 끈으로 결박이 되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이제 더 이상의 죄의 종노릇하지 않게 된다. 즉 다시 말해 죄에 끌려 다니는 삶을 살지 않는다는 말이다. 다음, 예수와 함께 세례를 받는 일이다. 본문 4절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다. 사실상 그의 십자가로 죽으심이란 세례를 두고 하는 말이다. 주님이 공생애 사역 초기에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사역 말기에 성찬을 나누면서 이 사역을 십자가 사건으로 완성하셨다. 세례란 희랍어 밥티조란 ‘잠긴다’는 ‘수장’을 말한다. 주님이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물에 푹 잠겼다. 그러므로 세례란 육적인 죄의 속성을 십자가로 장사하는 것을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권면할 때 이 같은 사실을 새롭게 지음 받은 피조물이라고 말했다(고후 5:17). 골로새교회 권면할 때는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했다(골 2:12). 마지막,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부활사건이다. 본문 9절 말씀에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다”고 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그와 함께 부활하게 된다. 우리 혼자 죽으면 죄 값으로 멸망하지만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그와 함께 죽으면 그와 더불어 다시 사는 부활신앙을 얻게 된다. 진정한 부활신앙을 소유하면 절대로 사망권세가 우리를 다스리고 주장하지 못한다. 세속 어느 종교에서 가지지 못하는 것이 부활신앙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별히 오늘 세례식에 참여하는 성도들은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여 그와 연합함으로 십자가에서 그와 함께 죽고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더불어 부활신앙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이제 다시 죄의 종노릇 하지 않고 죄가 우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진리 안에서 자유 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오늘은 경남법통노회 순방사역 스물세 번째 교회로 반송제일교회로 찾았다. 연구소에서 그리 멀지 않는 교회이지만 때마침 장마가 시작되어 이른 아침부터 계속해서 내리는 비로 인하여 조금 일찍 서둘러 출발하여 교회당 건너편 운동장 주차장에 주차하고 예배시간 25분 전에 도착했다. 입구 로비에서 윤병찬 집사가 반갑게 맞이하여 2층 휴게실로 안내하여 차를 대접해 주어 잠깐 동안 교제하고 예배실로 갔다. 오늘은 마침 세례식이 있는 날이다. 학습과 입교와 유아세례와 세례를 받는 분들이 많았고 이를 위해 대부분 젊은 사역자들의 섬김에서 교회가 새롭게 성장하고 성숙해져 가는 부흥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예배 후 최훈 장로님이 친히 식당으로 안내 해 주셨고, 김희진 장로님과 이 목사님과 함께 식탁의 교제를 나눈 후 오후예배 “고려파 특강”으로 초청 받은 자여교회(공범식 목사)로 가기 위해 당회원들의 배웅인사를 받으며 교회를 나셨다. 2024년 6월 30일 주일 오전 11시 예배 고려파교회연구소장 교육학박사 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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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 순방 : 반송제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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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중앙동교회(20)
- 중앙동교회(전창덕 목사)는 경남 창원시 성산구 원이대로 552번길 23-4에 있다. 이 교회는 1951년 7월 17일 김덕순씨 가정에서 홍근성 전도사 인도로 예배하다가 1951년 9월 30일 산호동 465번지에서 산호교회(가칭)라는 이름으로 창립되었다. 그 후 1954년 3월 18일 석조(石造)로 예배당을 건축하였고 교회명을 제3문창교회라 불렀다. 이후 이흥제 목사, 서방문 목사, 황삼수 목사가 부임하였고, 1977년 2월 15일 최해초 목사가 부임하여 그 해 10월 4일 마산합포교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그 후 김창동 목사에 이어 1995년 4월 8일 허성동 목사가 부임하였고 이듬해 3월 창원시 중앙동 20-1번지 상남교회 예배당을 매입하여 1998년 7월 30일에 이전했다. 허 목사는 2011년 12월 18일 사임하고 마산 제일문창교회(2012년 1월 18일 위임) 청빙을 받아 가고, 2012년 2월 19일 전창덕 목사가 부임했다. 전창덕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56회로 졸업하였고 2012년 3월 2일 중앙동교회에서 위임받았다. 그는 그 동안 밀양마산교회, 중앙동교회 전도사로, 괴정제일교회, 부산북교회 부목사를 거쳐 본 교회 담임목사가 되었다. 전 목사는 숨은 은사가 많은 분이다. 먼저, 그는 옳 곧은 정통신앙의 사수자이다. 그는 거제에서 출생하였으나 함안 대산에서 자랐으며 그의 부친은 일제 강점기 때 흠 없이 살아가려고 몸부림치던 재건파 교회 출신이다. 한국교회가 일제의 어려움을 당할 때 곧게 살아보려고 노력했던 최덕지 목사와 함께 했던 교회가 재건파교회이다.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말씀중심 신앙을 물러 받았다. 다음, 그는 신실함을 사역으로 보여 준 목회자이다. 전 목사는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기 전에 본 교회에서 전도사로 섬긴바 있다. 그가 전도사로 섬겼다가 5년 만에 다시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아 온 것은 전 목사에 대한 중앙동교회의 애정과 그의 사역의 신실함을 보여 주는 좋은 사례이다. 마지막, 그는 섬김의 사역자이다. 그의 목양사역은 말할 것도 없지만 노회와 총회에서 앞서간 선배들의 아름다운 발자취를 귀하게 여겨 주님의 가르침을 섬김으로 몸소 실천하는 목회자이다. 금주 주신 말씀의 제목은 열왕기상 6장 1절로 13절에서 “진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이다. 사람은 저마다 하고 싶은 소원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저마다 오르고자 하는 목표가 있으면 거기에 걸맞은 업적을 내세우려고 한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4년 만에 성전건축을 하려 했다. 그때가 출애굽한 지 480년이 지난 때이다. 출애굽 때는 회막 중심이었으나 가나안에 정착하면서 하나님의 임재와 그와 함께 하심의 증거로 성전건축을 하려 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철연장 소리가 나지 않은 성전건축이었다. 본문 7절 말씀에 “이 성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그 뜨는 곳에서 다듬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과연 이 같은 일이 가능할까? 철제는 다듬어야 하고, 목재는 자르고 밀어야 하는데 어떻게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까? 이는 철저하게 준비하고 정성을 다해 최선을 바친 삶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한 마디로 말해 오늘날 우리가 교회를 섬김에서 이 같은 섬김이 있어야 한다. 교회는 수많은 사역들이 있다. 주보를 작성하고, 찬양대에서, 방송실에서, 주방에서... 예배를 준비하는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소리가 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섬김이 있어야 함을 가르쳐 준다. 다음, 철저하게 말씀 중심적이었다. 본문 11에서 13절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네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솔로몬이 외부 골조공사를 하고 아직 내장공사 전인데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말씀하셨다. 외장공사도 앞서 1에서 6절 말씀의 설계대로 했다.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장 공사이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말씀하신 것을 보면 “내 법도”, “내 율례”, “내 모든 계명”이라고 했다. 이를 한마디로 말하면 말씀대로 실천하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아 다윗 언약을 이루시겠다고 했다. 이것은 성전 외형의 건물보다는 하나님이 언약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말한다. 바울은 우리가 몸소 실천할 삶이 곧 성전이라고 했다(고전6:19-20). 사무엘은 몸소 순종하는 삶이 번제의 제사보다 낫다고 했다(삼상 6:22-23). 마지막, 영감으로 받은 설계도대로 지어졌다. 역대상 28장 11에서 12절에 보면 “다윗이 성전의 복도와 그 집들과 그 곳간과 다락과 골방과 속죄소의 설계도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주고, 또 그가 영감으로 받은 모든 것 곧 여호와의 성전의 뜰과 사면의 모든 방과 하나님의 성전 곳간과 성물 곳간의 설계도를 주고”라고 했다. 다윗이 비록 성전건축을 하지 못했으나 하나님으로부터 성전의 설계도를 영감으로 받았다. 그가 아들 솔로몬에게 그 받은 영감의 설계도를 주었다. 솔로몬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설계도에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건축했다. 솔로몬은 치적을 따라 좀 확장하고 변경할 수 있으나 선친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약속의 말씀대로 건축했다. 이처럼 초대교회 이후 이천년의 역사 속에 수많은 환란과 핍박이 있었으나 주님의 몸 된 교회는 하나님의 설계도대로 보존되어 오고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솔로몬의 성전은 철 연장 같은 인간의 소리가 나지 않고 최선을 다하였으며, 외형의 건물뿐 아니라 내면의 중심까지 법도와 율례와 계명인 말씀대로 지켜 행하였으며, 나아가 성전의 모든 식양과 설계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성령의 영감으로 지어진 철저한 순종의 삶이었다. 우리 중앙동교회도 이 같은 실천적 삶을 본받는 성도가 되기를 바란다. 오늘은 스무 번째 순방으로 중앙동교회를 찾았다. 이 교회는 옛 마산의 제3문창교회로 출발하여 창원의 중심부까지 온 교회이다. 고신의 뿌리 깊은 심장인 고신과 고려파의 영성이 몸에 베여 있음을 예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이는 전 목사의 설교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는 말씀 중심의 선포가 더욱 그러했다. 설교 후 필자의 출석을 확인 하고 교우들에게 인사를 시킨 후 축도까지 하게 해 주셨고, 새가족실에서 오찬을 함께 하면서 그간 목회의 덕담을 나누고 나올 때 주차장까지 배웅하면서 여비까지 챙겨 주시는 섬김의 삶이 몸에 베여 있는 목회자였다. 2024년 6월 9일 주일 오전 11시 예배 고려파교회연구소장 교육학박사 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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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중앙동교회(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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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성령의 법 세미나 - 이상관 목사 인터뷰
- - 목사님 반갑습니다. 이번 세미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번 세미나는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사는 세미나입니다(막16:20,요10:27) 오늘날 많은 세미나가 목회의 노하우와 교회 성장 또는 설교 세미나에 집중되어 있지만 신앙의 본질을 다루는 세미나는 별로 많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내가 믿는 신앙의 지식과 믿음이 온전하지 못하면 목회도 기쁨으로 할 수 없고, 교인들도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생명의 성령의 법을 만나기까지 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36년 전 광주광역시에서 사랑의 빛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교회는 신사역을 통해 1년 만에 급성자하여 천여 명의 교인들이 출석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예배당도 짓고 국내외의 여러 교회와 기도원에 매주 집회를 인도함으로 성공한 목사로 착각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척을 한지 7년 쯤 교회에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성도간에 돈 거래가 있었고, 그 거리가 잘못되어 성도 한분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계기로 관연 나는 정말 진실한 목사인가? 과연 나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안에서 살고 있는가? 나는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가 나타나(골1:27~29) 그 분을 전화고 있는가?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고 스스로 이러한 질문을 통해 나는 진실로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듣고 사는 목사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가식적인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나는 목회를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도원에서 금식기도를 하던 중, 성경 속에서 나와 같은 모습의 인물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인물이 로마서 7장에 나오는 사도 바울입니다. 로마서 7장22~23절의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 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자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라는 말씀을 보고, 로마서 8장1~2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는 말씀이 깊이 마음속에 다가왔습니다. 그 후, 십 수 년에 걸쳐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가르쳐 주심으로 마귀가 역사하는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 안에서 성령의 법으로 사시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말씀과 생명으로만(요6:63, 롬8:2) 마귀를 이길 수 있고 죄에서 벗어남으로 온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알게 되었습니다. - 앞으로의 사역에 대해 말씀 해 주십시오. 오직 복음 믿음으로. 하나님께서는 오직 복음으로 우리를 부르시고(살후2:13~14), 오직 복음을 믿는 자들만 구원하십니다(롬1:16~17). 예수께서 전하시는 복음은 하나님의 목음(막1:14) 천국복음(마4:23,9:35) 곧 하나님 나라 복음(눅4:43~44)을 전하시고 계십니다. 목음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새(두 번째)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아들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내시어 공생애를 거텨 십자가에서 모든 준비를 다 이루시고(요19:30), 부활 승천하시어 우리의 죄를 영원히 대속하시고(히9:11~12),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진리의 성령과 함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언약 곧 하나님의 복음을 믿는 자 안으로 임하시어 새 언약의 중보자로(히9:15)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애개 맹세하신 새 (두 번째) 언약 곧 하나님의 복음(롬1:1~2)을 이루어 주심으로 우리를 자기 안으로 인도하여 자기와 함께 살게 하십니다(살전5:10) '오직 복음으로'- 저는 예수님께서 전하신 천국(하나님 나라) 복음을 하는 이 사명을 내 남은 생애에 최선을 다하여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생명의 설령의 법’ 세미나를 통하여 예수님과 함께 전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믿음의 사람들이 오늘날 예수님이 전하시는 복음을 확실히 믿는다면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음성을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요10:16,요10:27~28). 만일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고후13:5)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이번 부산 세미나가 진실로 진실로 우리 생애의 최고의 축복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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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성령의 법 세미나 - 이상관 목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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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04 : 창원소명교회
- 창원소명교회(민성수 목사)는 경남 창원시 의창구 사화로 9번길 31에 있다. 이 교회는 명곡교회를 섬겼던 김정룡 목사가 분립개척이란 이름하에 2003년(70.06 & 08.21) 명서2동에서 창원샘물교회란 이름으로 개척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10여년이 지나 마산의 제일문창교회에서 나온 이기섭 장로와 강봉식 장로와 성도들 일부가 연합하여 지금 있는 이곳에서 창원소명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필자는 이 교회 당회장을 맡아 장기간 교회를 섬겨 온 바가 있기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오늘따라 다섯 번째 순방길이라 조금은 설레는 마음이 있었다. 필자의 연구소와 거리가 멀지 않은 곳이기에 집에서 10시 반에 출발하여 예배시간 15분 전에 도착하였다. 창원소명교회는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는 교회로 하나님과 세상을 감동시키는 삶을 핵심가치로 삼고 있었다. 도착할 무렵 뜨겁게 찬양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주일예배에는 말씀과 뜨거운 찬양을 통해 감격이 넘치고, 일상에서는 전도와 선교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고, 기도회 때마다 부르짖는 기도의 역사로 헌신적인 섬김을 통해 따뜻한 만남이 있는 교회였다. 이와 같은 것이 교회 사명선언문에서 잘 나타나 있었다. “나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배, 말씀, 기도, 찬양으로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선교, 섬김, 봉사로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며,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숙하고 생동하는 그리스도인으로의 사명을 다하겠습니다.”2024년도 교회 표어는 “예수사랑 예수자랑”이다. 온 교회가 예배를 통해 말씀과 신앙고백으로 예수님을 사랑하고, 이 같이 받은 구원의 은총을 세상에 전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자랑하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하여 세운 표어인 것 같다. 민성수는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54회로 졸업하고 부산지역에서 8년간 부목사로 섬기다가 거창지역에서 7년간 담임하다가 2018년 창원소명교회 위임목사로 청빙을 받았다. 민 목사는 큰 체구이나 아주 적은 것도 잘 챙기는 섬세한 목회자이다. 그의 온화한 성품이 양무리를 목양함에 있어서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려고 노력하는 목회자이다. 또한 지교회를 섬기면서 시찰과 노회를 비롯한 다양한 섬김의 사역에 헌신하고 있다. 필자가 시찰장으로 섬길 때 3년간을 시찰서기로 섬긴 바가 있다. 바쁜 목회 사역 중에서도 이웃교회를 섬기는 일에 적극적이며 헌신적이다. 민 목사는 필자를 도와 고려파교회연구소 행정국장을 맡아 잘 섬기고 있다. 간혹 시찰과 연구소를 출입을 할 때 귀한 자료가 보이면 살펴보고 수집하는 배우려고 하는 열정이 강한 목회자이다. 좋은 목회자는 학자의 혀 못지않게 주변 환경을 잘 살펴 둥지의 새끼인 양무리의 먹이감을 찾는 독수리의 안목을 가진 자이다. 오늘 설교제목은 이사야 43장 14절에서 21절 말씀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성취된 소망”이다. 언약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와 삶 이전에 하나님의 선택인 지명하여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은 이 같은 구원을 위해 원수들을 물리치고 광야에 길을 내고 사막에서 강을 내어 자기 백성을 마치 벳세다 들녘의 오병이어와 같은 무리를 먹임 같이 먹이셨다. 하나님은 후일 바벨론에서는 이방의 고레스를 통하여 언약 백성을 다시 부르셨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첫째, 구원받은 성도는 겸손해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이 땅에 그 누구도 구원 받은 은총을 자랑할 자가 없다. 그래서 2024년 표어를 “예수사랑 예수자랑”이라고 했던 것 같다. 바울은 나의 나됨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 11:29)라고 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겸손하게 주를 섬겨야 한다. 둘째,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우리의 살아가는 삶이 비록 나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범사를 감사해야 한다. 민 목사는 한 때 부산에서 부목사로 섬길 때 자기를 소개해 준 친구를 원망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보니 그때 친구를 원망했던 그 시절의 아픔이 내 목회를 온전케 하는 귀한 사역의 훈련의 기회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바울은 감사하되 형편을 가려서 할 것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다. 셋째, 충성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무한하고 변함이 없는 사랑이다. 비록 우리를 광야와 사막과 같은 곳으로 인도할지라도 원망과 불평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지각 밖에 생각 밖에 새 일을 행하실 그분을 바라보고 초심을 잃지 않고 충성해야 한다. 민 목사는 기독교가 세속종교인 우상숭배자들과 다른 점은 우리의 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한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을 말씀하셨다. 끝으로 광고시간에 필자를 불러 소개하고 따뜻한 격려의 박수를 보내 주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인생을 두 가지 유형으로 생각해 보았다. 문제가 이끌어 가는 인생과 사명이 이끌어 가는 인생이다. 문제가 인생을 끌어가는 자는 일평생 문제와 씨름하다가 삶의 종지부를 찍게 되나 사명에 이끌려 가는 인생은 아무리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방향과 목표를 잃지 않는다. 민 목사의 오늘 주신 말씀은 필자에게 큰 도전의 전환점이 되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크고 작은 비전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 같은 은혜를 받고 또 한 주간을 살아갈 만나를 주심에 감사하며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다. 2024년 2월 4일 11시 예배 순방 고려파교회연구소장 교육학박사 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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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04 : 창원소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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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 교회 순방 3 : 엘림교회 "기도를 드려야만 누리는 은혜 "
- 엘림교회(조재진 목사)는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공단 12길 36에 있다. 이 교회는 고신총회 국내전도위원회가 주관하는 3,000 교회 확장운동의 제 11 호 교회로 설립된 교회이다. 조재진 목사는 2014년 11월 첫 주에 부임할 때 필자가 당회장을 맡았기에 다른 어느 교회보다도 애정과 관심이 많은 교회이다. 엘림교회는 마산지역 옛 수출공단이 있었던 곳에서 개척을 시작하여 공단지역에 세워진 특별한 교회이다. 필자 역시 몇 차례 초청을 받아 설교를 한 적이 있었으나 주일오전 2부 11시 예배에 참석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오늘따라 남다른 은혜와 감동 받은 것을 지면으로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엘림교회 예배는 은혜와 감격이 넘치는 예배였다. 예배당이 공단지역에 있기에 주변에 민가가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교인들이 마산과 창원 지역에 흩어져 있다. 교회가 필자의 사택과 거리가 멀지 않아 예배 20분전에 도착했다. 예배 마치고 나올 때 교우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교회안 주차장에 주차하지 않고 주변의 한적한 곳을 찾아 주차했다. 마침 조 목사의 사모와 주차 하면서 마주쳐 교회로 잘 안내해 주었다. 예배실로 들어서는데 김각규 장로가 잘 맞아 주었고, 박환길 장로와 담임목사가 찾아와 인사하고 반갑게 영접해 주었다. 예배를 준비하기까지 조용하게 들려오는 찬양이 너무도 은혜로웠으며, 예배는 엄숙하면서도 강한 영적 임재를 느끼게 했다. 예배 중에 강한 임펙트를 받은 것은 ‘참회기도’시간이다. 뭔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감회와 감격의 눈물로 눈시울을 적시기에 손수건으로 몇 차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모처럼 예배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러보기는 처음인 것 같아 경건하면서도 은혜로운 성령의 임재를 느끼게 한 예배였다. 예배 중 설교는 제목에 나타난 기도라는 논지가 강력하게 선포되었다. 필자는 조 목사의 설교에서 양무리를 향한 선한 목자상을 볼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하려는 목회자의 몸부림쳐 온 모습은 양무리를 훈육하는 목회자의 애정 어린 마음에서 읽을 수 있었다. 오늘 설교본문은 마가복음 9장 14절에서 29절의 변화 산상의 말씀으로 “기도를 드려야만 누리는 은혜”라는 제목이다. 서두에 밝혀 말하기를 본문을 강해로 하기 보다는 금년 표어로 잡은 “채우실 하나님께 입을 크게 엽시다”라는 주제와 일치시키기 위하여 제목설교에 가깝게 기도에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셨다. 성도에게 기도가 얼마나 소중한가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일상에서 바쁘다는 핑계로 기도를 소홀히 하기가 쉽다. 이는 곧 우선순위에 기도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교회부흥의 열쇠는 겨자씨만한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그 믿음은 곧 목숨을 걸고 드리는 기도를 통해서 개인이 변하므로 가정이 살고 가정이 살므로 교회가 부흥한다고 했다. 오늘날 교회가 가장 소홀히 하기 쉬운 것이 기도이다. 조 목사는 기도 한 가지 주제를 강력한 영성으로 호소하는 메시지가 성도들의 신비에 새겨져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을 보고 또 한 번의 도전을 받았다. 조 목사는 지성과 영성을 고루 겸비한 균형 잡힌 목회자이다. 비교적 목회자의 소양과 자질을 잘 갖춘 준비된 목회자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감추어진 많은 잠재력을 보고 한 때 후임으로 모시려는 생각을 했으나 엘림교회 당회가 허락하지 않았다. 위대한 조각가 미켈란젤로가 한 말에 의하면 “나의 작품은 언제나 저 대리석 안에 있다”고 한 것처럼 필자는 그에게서 항상 숨은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았다. 조 목사는 고신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과정 코스윜을 마치고 논문을 준비 중에 있다. 필자의 애정 어린 권면을 한다면 시간이 많이 가기 전에 가능한 논문을 준비해 보시기 바란다. 왜냐하면 은퇴를 목전에 두고 학위공부를 해 본 경험이 있기에 한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가족이나 당회와 교회 중직자들의 많은 배려와 도움이 따라야만 한다. 필자로서 엘림교회와 조 목사에게 이 같은 권면을 드릴 수 있음은 바울에게 디모데같이, 모세에게 여호수아와 같은 마음으로 서로를 위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기에 드린 충언이다. 결론적으로 엘림에 거는 필자의 기대와 바램이다. 엘림교회는 쉼과 안식을 통한 평안의 삶을 누리는 피난처가 되기를 바란다. 마라와 같은 쓴 물의 인생이 엘림제단에 와서 단물로 변화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영육 간에 지친 심령이 엘림 강단에서 쏟아나는 생수를 먹고 종려나무 그늘 같은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 쉼을 얻는 소문난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 헨리 나우웬(Henry Nouen)은 은퇴한 자들에게 ‘희미해지는 훈련’을 하라고 했다. 작아지는 훈련, 숨는 훈련, 그리고 약해지는 훈련이다. 이 같은 삶을 적응해 가는 중 엘림교회 조 목사와 당회 장로들과 그리고 성도들의 따뜻한 사랑에 힘을 얻는다. 이 같은 환대가 다음 사역을 향한 엔돌핀이 되어 또 한 주간을 새롭게 시작한다. 당회원의 배웅을 받아 나오면서 내일부터 시작하는 새벽제단의 기도 매뉴얼에 엘림제단이 함께 올라와 풍성해 질 것을 생각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2024년 1월 21일 11시 예배 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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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 교회 순방 3 : 엘림교회 "기도를 드려야만 누리는 은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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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기독 문화유산을 지키자(5) - 진해 경화교회 최초 당회록
- 창원특례시 진해구 경화동 117번지에 우뚝 선 십자가 아래 경화교회의 큰 간판이 있다. 장복산을 등에 업고 진해군항을 바라보며 도심 정중앙에 위치한 경화교회는 지난 1905년에 설립된 진해 최초의 개신교회이다. 당시 시대 상황은 조선 말 대한제국 고종 47년이었다. 전년 1904년,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 이듬해 러일전쟁에서도 승기를 잡고 있었다. 대한제국이 위기를 맞았다. 한반도를 보호하겠다는 명분을 세워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해간 을사늑약이 체결된 때이다. 진해 지역의 상황도 일본이 밀고 들어오는 때였다. 1904년 일본은 거제도를 통해 ‘진해만 요새사령부’를 설치, 일본군항을 세울 계획이었다. 이렇게 나라의 사정이 위란지경이었을 때 복음의 생명 기운이 진해로 전파됐다. 1905년 11월 8일로부터 경화교회의 복음 태동 소리가 생겨났다. 당시 생생한 일기는 초대 당회서기로 장립된 안정순 장로가 기록한 당회록이 지금껏 경화교회에서 숨 쉬고 있다. 대부분 초기 개신교 교회들은 이즈음 당회록 등 기록이 유실되거나 보관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경화교회는 이 보물 같은 최초 당회 기록이 당회실에 경외롭게 관리되고 있었다. 최초의 경화교회 당회록은 1920년 2월 1일, 경화교회가 우여곡절 끝에 당시 경남노회(당시 노회장 라대벽 선교사)의 허락을 받고 안정순 장로가 초대 장로로 장립되면서 작성됐다. 안 장로는 이전 경화교회 태동 시기인 1905년부터 정식 당회가 조직되기까지의 15년 역사를 이때 상세히 당회록에 기록하는 큰 공로를 세웠다. 그 내용을 찬찬히 읽어보면 당시 위란의 시대에 교회가 설립되는 눈물겨운 사실(史實)을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감동이었다. 살아 있는 고귀한 기독교 문화유산, 보호돼야 할 생명록이었다. 당시 15년 역사의 이야기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경화교회 100년사 29페이지에 기록된 대로 옮겨본다. “예수를 믿으시오. 예수를 믿으면 군항 토지를 내줘도 보상비를 많이 타 지금 여러분이 사는 것보다 훨씬 잘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수를 많이 믿어서 교회당을 크게 짓고 십자가를 높이 세우면 저 일본 놈들의 군항도 꼼짝없이 물러갈 줄 압니다. 여러분 한숨만 푹푹 쉬지 말고 예수 믿고 희망을 가집시다.” 1905년 11월 8일이라고 기록돼 있는 해, 통영에서 최한주라는 전도자가 진해에 와서 전파하고 안정순 등 신도들이 모여 이곳에서 예배를 시작했던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안정순 장로가 15년 후 초창기 기록을 상세히 정식 교회 조직 후 기록한 사실도 중요하고, 그 기록이 지금껏 교회 자체적으로 잘 관리돼 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교회 당회실에 함께 취재 갔던 박시영 부경기독교역사연구회 회장도 감탄했다. 안내해 준 경화교회 천영철 선임장로, 그리고 경남기독문화원 원장 이상칠 장로는 함께 기록물의 권위 앞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회실 기록물을 살펴본 후 1층 카페에서 차를 들면서 눈에 들어오는 코너에 서 있는 범상한 종에 눈길이 갔다. 안내해 준 선임장로 또한 보기 드문 동(銅)으로 제조된 종의 연혁을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120년 교회 역사 속에 언제 이 구리로 제조된 종이 교회에 있었는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역사학자 박시영 목사는 일정 시대에 들여온 유물일 것 같다며 감정 기관에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진해 경화교회는 지난해 창립 120주년 기념일을 보냈다. 초기부터 당회록을 한 점도 유실하지 않고 관리하고 있는 점 또한 교회를 칭찬하고 싶었다. 글. 박동철서머나교회은퇴장로 자문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 박시영 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 회장 천명철 경화교회 선임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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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기독 문화유산을 지키자(5) - 진해 경화교회 최초 당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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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아름다운교회(42)
- 아름다운교회(정정권 목사)는 경남 창원시 성산구 가음로 68번 길 1에 있다. 이 교회는 1991년 6월 2일 창원시 상남동 상업지구 4B 2L에서 정정권 목사에 의해서 개척 설립되었다. 고려파교회의 아픔이라고 하면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 문제로 한국장로교회에서 축출당한 일이다. 그러나 해방 이후 평온할 때 이전에 받은 은혜를 망각하고 “신자 간에 법정 소송 문제”로 소위 고소측과 반고소측이 분립하는 또 한 번의 아픔을 경험하게 되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는 1976년 26회 총회에서 '신자 간 사회 법정에서 소송이 가능하다'는 안이 가결하자, 여기에 반대하는 이들이 총회를 탈퇴하여 고려총회를 결성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교회는 경남(법통)노회 제154회(2001.4.2.-3, 창원교회당) 때 고려측에서 돌아와 다시 가입하게 되었다. 정정권 목사는 1986년 고려신학대학원 40회기로 졸업하고 목사 안수받은 후 창원에서 개척했다. 1991년 아름다운 교회를 개척한 이후로 초심을 잃지 않고 오늘까지 34년이 넘게 한 교회만을 섬겨 온 신실한 개척자이다. 정 목사는 예배가 경건하면서도 축제와 같은 은혜로운 예배 인도자이다. 오늘 예배의 진행도 인도자와 회중이 함께 하는 은혜로운 분위기였다. 그리고 오후에 드리는 예배는 삼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로 오늘날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때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 삼대가 한 자리에서 드리는 예배는 계약교회의 언약 사상에 기초한 것으로 철저하게 말씀 중심의 교회이다. 나아가 온 교회가 하나의 공동체로 가족 같은 분위기로 교회 모든 광고는 기도의 제목으로 삼고 있었다. 건강한 교회는 행복한 성도로서 날마다 환희가 넘치는 황홀한 교회 공동체였다. 금주 말씀의 제목은 “이런 부모가 되게 하소서”(창 28:1-5)이다. 모든 사람은 자기가 거처하는 집 곧 고향이 있다. 사람이 정든 고향을 떠날 때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주로 자녀 교육을 위해, 혹은 남편 직장이나 여러 가지 목적으로 고향을 떠난다. 떠날 때는 모든 면에서 철저히 준비하나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여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오늘 본문에 보면 야곱이 고향인 아버지 집을 떠나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고향을 떠나면서 수많은 위기를 직면했다. 그러면 그 같은 위기를 그는 어떻게 극복했는가? 먼저 그는 형의 원한을 피하여 집을 떠남에서 위기를 경험했다. 그는 고향 브엘세바에서 외삼촌이 사는 밧단 아람인 하란으로 떠났다. 한 번도 집 밖으로 외출이나 외박을 해 보지 않은 그가 전혀 낫설은 곳에서 밤을 세워야 했다. 그때 두려움이란 말로 다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그는 루스 들판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창 28:12-15). 그때 그는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한다는 임마누엘의 역사를 체험했다. 주님은 구원사명을 다 이루고 떠날 때 제자들을 버려두지 않고 보혜사 성령으로 그들과 함께했다(요 14:16-17).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하셨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 가서도 그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 신앙으로 살았다(창 39:9). 이와 같이 야곱 역시 고난의 위기가 하나님이 함께하는 놀라운 체험을 했다. 그는 너무도 감격해서 자신이 배게한 돌을 세우고 기름을 붓고 하나님께 단을 쌓고 이제 후로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만을 섬기고 내가 만일 돌아오면 이곳에서 단을 쌓고 내 얻은 소득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서원했다. 야곱의 이 같은 믿음은 그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배운 것이다. 오늘날 부모 세대는 자녀들에게 이같은 부모가 되어야 한다. 다음, 외삼촌 집에서 속임을 당하면서 위기를 경험했다. 창세기 29장에서 31장까지 20년간 밧단아람에서 외삼촌께 속임 당하고 종노릇 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는 형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인 댓가를 외삼촌 댁에서 톡톡히 그 값을 치렀다. 그는 외삼촌이자 장인에게 속임을 당하고는 처자와 가축을 이끌고 야간도주를 한다. 그가 외삼촌께 속임 당하여 야간 도주하다 결국 외삼촌에게 붙잡히게 된다. 야곱의 하는 소행을 보면 화를 면치 못할 것이나 의로운 하나님이 그를 지켜 주었다.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창 39:13) 야곱의 상황이나 그가 한 소행을 보면 도무지 용서받지 못할 언행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윤리적인 행위 이전에 언약을 더 중히 여겼다. 야곱은 이 같은 위기 가운데서도 벧엘의 하나님이 주켜 주심을 체험했다. 우리가 때로는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실수하여 넘어져도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 이전에 언약을 보신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엡 2;8-9). 마지막, 야곱은 얍폭나루에서 인생 최고의 위기를 경험한다. 지금 야곱은 얍폭 강가에서 형에게 전령을 보내어 상황을 파악해 돌아오라고 했다. 그들이 돌아와서 한 보고가 형이 400군대를 거느리고 야곱을 잡으러 온다고 헀다. 뒤를 돌아보니 외삼촌의 군대가 있어 진퇴양난의 위기에 빠졌다. 처음에는 얄팍한 인간적인 머리로 위기를 피해 보려고 했다. 가축떼를 보내 형의 마음을 얻어 보려고 했고, 그것도 안 되면 자신이 낳은 자식들과 아내를 보내어 인간의 정으로 호소하려고 했다. 이렇게 하여 야곱은 결국 강가에 홀로 남게 되었다. 그는 강가에 혼자 있을 때 천사와 씨름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천사와 씨름하다가 환도뼈가 위골 되어 인간 장애자가 되었으나 그때 형의 마음을 녹이는 일생일대 최대 위기가 최고의 축복 기회가 되었다. 사랑하는 아름다운 성도 여러분! 야곱의 이 같은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바꾼 비결이 무엇인가? 그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믿음에서 온 것이다. 우리는 자녀들을 위해 기도하고 많은 것을 유산으로 물러 주려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의 자녀들이 위기에 직면할 때 부모의 믿음을 본받을 수 있는 그러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 이 한 주간도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임마누엘과 그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기도함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마흔두 번째로 아름다운 교회를 찾았다. 밀알교회와 가까운 곳에 있기에 아무런 생각 없이 T-map이 인도하는 대로 가다 보니 토월동에 있는 아름다운교회로 가서 순간 당황했다. 급히 서둘러 주소를 확인하여 가니 예배 시작 10분 전이었다. 예배는 찬양과 목회기도, 봉헌예물, 그리고 말씀 선포로 은혜로웠다. 안내를 담당한 분들이 교회를 처음 출입하는 분들의 자리에 찾아와 “아름다운 세상”이라는 월간 큐티 집을 가져다주고 컵에 물까지 준비해 주었다. 새 가족을 위하여 배려하는 마음이 감동적이었다. 목사님의 설교에 많은 은혜를 받고 광고 시간에 고려파교회연구소 사역 소개와 함께 축도까지 맡겨 주어 귀한 환대를 받았다. 예배 후 목양실에서 정 목사님과 간단한 차담을 나눈 후 바쁜 목회 일정을 확인하고 오후 헌신예배 인도할 진영시찰 신천교회로 떠났다. 2024년 11월 3일 주일 오전 11시 예배 고려파교회연구소장 교육학박사 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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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아름다운교회(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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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선교보고] 빗줄기도 막지 못한 복음의 행진, "다음 세대, 세계를 품다"
- 지난 2015년, 다음 세대를 향한 작은 씨앗 하나가 필리핀 땅에 심겼다. 그로부터 12년이 지난 2026년 1월, 그 씨앗은 울창한 숲이 되어 한국과 필리핀의 청소년들을 '형제'로 묶어내고 있었다. 경남노회 남선교회 연합회(회장 전병태 장로)가 주관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제8차 단기선교 영어캠프'가 지난 1월 4일부터 1월 16일까지 12박 13일간의 일정으로 필리핀 퀘존주 룩반기독학교(Lucban Christian School)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이번 캠프에는 남선교회 회원 9명과 인솔 교사 1명, 꿈을 품은 11명의 학생 등 총 21명이 참가해 믿음의 여정을 함께했다. 이번에는 특별히 노회장 신종주 장로님과 함께하였고, 남선교회 회원들은 1월8일 귀국하기까지 4박 5일간의 짧은 단기선교이지만 은혜롭고 강렬했다. 12년의 뚝심, "오직 다음 세대를 위하여" 이번 선교 캠프는 단순한 해외여행이 아니다. 경남노회 남선교회가 '친선체육대회'와 '선교대회'를 통해 모은 기금으로 학생들의 항공료와 인솔교사는 전액 지원하는, 그야말로 '사랑의 결정체'다. 특히 2023년에는 룩반기독학교 학생들을 한국으로 초청하며 선교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당시 한국을 다녀갔던 현지 학생들이 이제는 어엿한 시니어 고등학생(한국 고2에 해당)이 되어, 이번 8차 방문단을 뜨겁게 맞이했다. 이는 일방적인 지원을 넘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교류하는 진정한 '양방향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Day 1~2: 역사의 현장에서 선교의 현장으로 지난 1월 4일 주일 저녁, 김해공항을 출발한 선교팀은 5일 새벽 마닐라에 도착하며 본격적인 일정을 시작했다. 톤톤(Tonton) 교장 목사의 환대 속에 시작된 이튿날은 마닐라의 역사 탐방으로 문을 열었다. 스페인 통치 400년의 흔적과 호세 리잘(Jose Rizal)의 독립 투혼이 서린 리잘 공원, 그리고 2차 대전의 상흔이 남은 유적지를 돌아보며 참가 학생들은 필리핀의 아픈 역사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했다. 이 과정에서 전병태 회장이 과학박물관 투명 유리문에 부딪히는 '열정적인(?)' 해프닝이 있었으나, 다행히 큰 부상 없이 웃음으로 넘기며 여정의 활력소가 되기도 했다. 오후 6시, 룩반기독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드려진 무사도착 감사예배는 감동 그 자체였다. 특히 학생들은 현지 가정으로 흩어져 2인 1조로 홈스테이를 시작했다. 낯선 문화, 낯선 언어 속으로 겁 없이 뛰어드는 아이들의 뒷모습에서 '글로벌 리더'의 새싹이 보였다. Day 3: "우리는 하나입니다" 뜨거운 환영식 1월 6일, 룩반기독학교 교정은 200여 명 재학생들의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본회가 증축하여 기증한 4층 대강당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은 양국의 국기가 나란히 게양된 가운데 엄숙하고도 활기차게 진행되었다. 전병태 회장과 신종주 노회장의 특별 메시지는 학생들에게 비전을 심어주었고, 이선우 안수집사가 전달한 장학금은 현지 학생들의 학구열에 불을 지폈다. 이날 오후, 비록 우천으로 인해 'Mother's Wonder Land(마더스 원더랜드)' 방문은 무산됐지만, 아름다운 정원에서의 힐링 타임은 빡빡한 일정 속 쉼표가 되어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룩반 시청을 방문하여 새로 이전 건축한 시청 내부 여러 사무실을 둘러보고 끝으로 시장을 접견하였다. Day 4: 빗속을 뚫고 울려 퍼진 "바이블 데이"의 함성 이번 선교 여행의 백미는 단연 1월 7일 'Bible Day(성경의 날)' 퍼레이드였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행사가 취소될까 우려했지만, 복음을 향한 열정을 식힐 수는 없었다. 성경의 날 퍼레이드 행사 전에 특별한 '준공식'도 있었다. 지난 해 태풍으로 룩반기독학교 채플실 지붕이 파손되어 누수가 심각하다는 소식을 접한 남선교회는, 지체 없이 약 800만 원의 긴급 복구비를 지원했었다. 말끔하게 리모델링된 채플실에서 개최된 테이프 커팅식은 단순한 건물의 복구를 넘어, 아이들의 영적 보금자리를 지켜냈다는 안도감과 감사가 교차하는 자리였다. 이어서 룩반기독학교에서 시내를 지나 행사장까지 거리 퍼레이드가 진행 되었다. 선두에 경찰차의 에스코트와 함께 제복을 입은 현지 학생들의 밴드가 웅장한 연주를 시작하자, 빗줄기는 오히려 축복의 단비처럼 느껴졌다. 멈추어 선 여러 차량과 시민들은 손을 흔들며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행사장에 도착한 후에 실내 행사는 500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축제의 장이 펼쳐졌다. 하이라이트는 한국 학생들의 무대였다. 낯선 땅에서 갈고닦은 기타, 드럼, 신디사이저 연주와 합창이 울려 퍼지자 현지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찬양'으로 하나 된 순간이었다. 성경의 날 행사를 모두 마치고 룩반 시내 투어로 필리핀의 성지순례로 유명한 ‘카마이 니 히수스(Kamay Ni Hisus)'에서 노아 방주와 아주 큰 예수상도 보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일정의 마지막 만찬은 특별했다. 한국에서 10년간 일하고 돌아온 현지인이 운영하는 '무한리필 삼겹살' 식당. 비록 된장찌개는 없었지만, 한국의 맛을 재현하려는 현지 사장님의 정성과 'K-푸드'를 사랑하는 현지인들의 북적임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형태의 한류를 체험했다. Day 5: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기에" 1월 8일, 4박 5일간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떠나는 남선교회 회원들을 배웅하는 자리는 아쉬움과 기약으로 가득 찼다. 톤톤 목사님의 환송 예배 후에 목사님 사모와 아들 소리엘 군이 공항까지 배웅해주었다. 아들 소리엘에게 알고 있는 한국어를 물으니 “감사합니다” 말 밖에는 아는 말이 없었다. 앞으로 소리엘에게 화상통화로 한국어를 가르쳐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마닐라 국제공항에서 헤어졌다. 단기선교팀 학생들을 필리핀에 남겨두고 우리 남선교회 회원만 오후3시경 마닐라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오후7시30분경에 김해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전병태 회장의 가족들이 준비한 환영 플래카드로 반가이 우리를 맞아 주었고, 그리고 1차 선교의 주역 김종욱 장로와 3차 선교를 이끌었던 배병호 장로의 마중은 '선교의 바통 터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1차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역대 회장님들의 헌신과 기도가 있었기에 오늘의 8차가 있었고, 앞으로 9차, 10차의 미래가 이어질 것이다. 경남노회 남선교회 연합회의 이 아름다운 선교사역은 앞으로 격년제 상호 방문(한국 학생 파송 ↔ 필리핀 학생 초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양국 간에 다음 세대 모두를 '글로벌 크리스천 리더'로 세우기 위한 거룩한 행진에 경남노회 산하 많은 교회의 더 많은 관심과 기도가 필요한 때다. <자료제공=경남노회 남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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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선교보고] 빗줄기도 막지 못한 복음의 행진, "다음 세대, 세계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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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무성교회(41)
- 무성교회(이수건 목사)는 경남 창원시 의창구 동읍 무성길47번길 16-10에 있다. 이 교회는 본래 고신교회 출신으로써 덕산재건교회를 출석하여 집사로 장립 받아 섬기던 박만석 집사가 자신이 살던 동네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자기 집터 일부와 돼지를 기르던 돈사 부지를 교회 기증하여 1991년 10월 1일 창원군 동면 무성리 195-1에서 당시 가술교회 시무하던 원대연 목사의 명의로 무성교회(종교단체)로 등록하였다가 1992년 7월 2일 경남(법통)노회로부터 교회 설립을 허락받았다. 지금의 교회당은 2009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2011년에 완공하고 2013년 11월 14일에 입당감사예배를 드렸다. 교역자로는 1992년 6월 18일 이상철 목사가 부임한 이래 이학재 목사, 안영원 목사, 그리고 이한성 목사가 섬기다가 현재는 이수건 목사가 경남(법통)노회 제192회 때 전임 목사로 허락받아 2020년 5월 3일 부임하여 섬김으로 교회가 새롭게 부흥하고 있다. 이수건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45회 졸업하였고 진주노회 아름다운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청빙을 받았다. 이 목사는 부임한 이후 창원동부시찰 교역자들을 초청하여 “무성교회 과거 현재,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자신의 목회 사역을 소개했다. 지난날 교회 설립 때 가술교회(원대연 목사)를 비롯한 여러 교회가 도와주셨고, 새 예배당 건축할 때는 덕산교회(안은준 목사)를 비롯한 시찰 산하 여러 교회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무성교회는 본동의 아파트에 입주한 분들을 전도하여 이들을 중심으로 새 예배당을 짓고 헌신적으로 섬겨 왔기에 건강한 교회로 자라가고 있다. 무성교회 미래는 초대 예루살렘교회를 본받아 닮아 가기를 소원한다. 초대교회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시작한 것처럼 무성교회를 설립한 분도 자신의 가옥 일부를 받침으로 시작되었다. 또한 초대 예루살렘교회에 열심인 여성도들과 헌신자 바나바와 청년 마가가 있었던 것처럼 무성교회에도 이름 없이 헌신하는 여종들과 바나바 같은 헌신자와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청년들의 섬김으로 건강한 교회로 세워가고 있다. 금주의 주신 말씀의 제목은 창세기 32장 24절로 28절 말씀으로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이다. 지금 야곱은 일생에서 가장 큰 위기에 직면한 순간이다. 그는 일생을 살면서 몇 번의 위기를 맞았다. 형의 미움을 받아 집을 떠날 때와 외삼촌의 재산을 가지고 탈출할 때,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올 때 얍복 나루에서 20년간 한을 품고 기다린 형이 400군대를 거느리고 복수하러 옴으로 진퇴양난의 위기에 직면했다. 이러한 위기를 대처하는 야곱은 어떠했는가? 우선 가축을 두 떼로 나누었다. 한 떼를 치면 다른 한 떼와 도피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부인과 아이들을 먼저 보내어 형의 마음을 풀게 하고자 했다. 그러고 보니 결국 자기 혼자만 남게 되었다. 왜 혼자 남았을까? 위기의 때 가족을 버리고 도망가기 위함인가? 형과 대면할 자신이 없는 두려움 때문인가? 물론 그러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보면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였다. 성도는 위기의 때 기도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여호사밧은 아람 전투에서 위기를 직면했을 때 오직 주만 바라보았다(대하 20:12). 그는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대하 20:15) 오늘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신 질문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 질문과 나타난 대답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먼저, 나는 연약한 존재란 말이다. 야곱은 본래 가정에서 어머니 치마폭에서 자란 유약한 사람이다. 에서와 전혀 다른 사람이다. 에서는 사냥에 익숙한 들 사람이요 야성적인 사람이다. 거기에 비하면 야곱은 가정에서 어머니 그늘에서 자랐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버러지와 지렁이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사 41:4). 그러나 하나님이 그를 도와주시겠다고 했다. 날카로운 타작 기계처럼 만들어 주셨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서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같이 만들 것이라”(사 41:14-15) 야곱이 비록 지정이 같고 버러지 같은 존재이지만 하나님이 도우심으로 열방을 다스릴 왕국으로 세움을 받았다. 다음, 나는 하나님 없이는 못 사는 존재란 말이다. 야곱은 출생 때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 야곱은 출생 때부터 형을 잡고 나와 결국 형의 장자권을 빼앗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형의 위협 앞에 하나님을 붙잡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이제 하나님을 붙잡은 손을 놓는 순간 그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야곱이다’는 말은 이제 하나님의 발꿈치를 잡은 인간이라는 말이다. 전에는 사람을 붙잡고 살았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붙잡고 산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시 118:8-9) 이젠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다. 전에는 형을 붙들고 살았으나 이제는 하나님을 붙잡고 사는 인생이다. 마지막, 저는 불구자 인생이란 말이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하다가 허벅지 관절이 위골 되었다. 하나님은 반칙을 써서 야곱의 환도뼈를 쳤다. 야곱은 천사와 씨름하면서 환도뼈가 위골됨으로 일평생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 장애자로 살았다. 그는 절뚝거리며 불구의 몸이 되어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되었다. 이후 야곱은 완전히 변하여 형 앞으로 나아갈 때 일곱 번 절하며 나아갔다.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을 향해 하나님은 “너의 이름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나는 야곱이니이다.” 대답했다. 이는 곧 나는 연약한 사람이다. 나는 하나님 없이 못 사는 불구자 인생이요 절름발이 인생이라는 말이다. 이 한 주간도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마흔한 번째로 무성교회를 찾았다. 주일 아침 예배 15분 전에 도착하여 예배실로 들어서니 이수건 목사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로님과 집사님들을 소개하고 앞 자석으로 안내해 주었다. 2009년도에 지은 새 예배당에 1층은 교회학교와 교육관 및 식당으로, 2층은 예배실로 잘 꾸며져 있었다. 찬양 인도가 끝나고 예배가 시작되었다. 이 목사님의 설교는 너무도 차분하게 정제되고 논리적이며 체계적으로 준비한 본문의 성구를 액정 화면에 띄우면서 모든 성도가 쉽게 알 수 있도록 설득력 있게 선포했다. 모두가 말씀의 은혜를 받고 예배 후 식당으로 가서 목사님과 함께 식사하면서 장로님과 집사님들, 그리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밀알교회를 섬긴 장로님의 동향을 비롯한 귀한 사역자들을 만나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었다. 이후 목사님과 교우들의 배웅 인사를 받으면서 오후 메트로 병원 선교 사역의 현장으로 돌아왔다. 2024년 10월 27일 주일 오전 11시 예배 고려파교회연구소장 교육학박사 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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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무성교회(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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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기독문화유산을 지키자(4)
- 부산 초량교회 초대교회 기록물·강대상·선교사 유품 빛난 모습 한국 근대화의 문이 열리고 기독교 선교사들이 첫발을 디뎠던 부산 땅. 1884년 9월 14일 알렌 선교사, 1885년 4월 3일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입국함으로써 이 땅의 복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미국 북장로교는 1891년 9월 부산에 선교기지를 설치한다. 그 책임자가 베어드, 한국명 배위량이다. 베어드가 당시 부산 영선현(현 초량)에 세 필지의 땅을 매입함으로써 선교 거점이 시작됐다. 초기 영선현교회, 이어 영주동교회로 불리다 지금의 초량교회로 역사를 이었다. 초량교회 100년사에는 “초량교회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가 파송한 윌리엄 베어드 목사에 의해 1892년 11월에 설립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로써 초량교회가 부산·경남 기독교 역사 140년을 이끌었다. 한국 남녘 땅에서 기독교 요람이 된 초량교회는 부산광역시 중구 초량동에 지금껏 자리 잡고 복음의 사역과 기독교 역사의 횃불이 되고 있다. 초량교회는 최근 교회 역사관을 단장하고, 부산의 명소가 된 장기려박사기념관이 있는 ‘부산 이바구길’ 언덕길에 아늑히 그리고 엄숙하게 세계의 관문 부산항을 바라보고 있다. 필자의 취재길에 눈에 들어온 첫 모습은 이바구길 벽에 붙어 있는 부산 출신 인물 벽의 인물 이야기들이었다. 허정 초대 정부 내각수반, 가수 나훈아, 연예인 이경규, 장기려 박사 등의 부산 인물들이 인물 조각과 함께 이야기로 벽에 붙여져 있고, 이 언덕길에 예배당과 기독 역사관이 자리하고 있었다. 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가 교회 위탁을 받아 단아하게 정리한 역사관 내부를 돌아보다 감동을 받았다. 잘 정리된 초대교회 엄청난 기록물들이 쏟아져 한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초량교회가 항도 부산을 발전시켜 온 정신적·문화적 요람이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교회를 담임했던 기독교 역사 속 중요 영적 거장들이 초량교회를 거쳤다는 사실(史實)들이 살아 있는 듯 눈에 띄었다. 선교사로는 배위량 선교사와 호주 선교부 손안로 선교사가 초량교회를 거쳤고, 초대 한덕룡 목사, 3대 주기철 목사, 4대 이약신 목사, 6대 한상동 목사 등의 거장들이 초량교회에서 한국 기독교를 튼튼히 세웠다는 사실들이 있었다. 평신도 인물로는 초대 부산시장 양성봉 장로, 9대 부산시장 이근용 장로 등의 얼굴이 보였다. 부산의 큰 인물들을 양성한 교회가 초량교회였다. 중요한 문화유산은 이들의 손때가 묻어 있는 교회 사역의 기록물들이다. 베어드 선교사의 사모 애니 베어드 선교사가 작사한 찬송가에 수록된 ‘멀리 멀리 갔더니’, ‘나는 갈 길 모르니’ 등의 근대 유산이 될 수 있는 자료가 빛을 내고 있었다. 당시 초대 선교사들이 쓰던 피아노, 라디오, 언더우드 타자기 등 유품들도 많았다. 특히 한국 선교에 재정 후원에 공을 세운 언더우드 선교사 타자기와 이들이 쓰던 여행용 가방, 트렁크 등이 눈에 띄었다. 3대 주기철 목사가 쓰던 원목 공예의 가치가 높은 강대상도 눈에 들어왔다. 한국학 연구의 선구자였던 제임스 게일 선교사, 백산상회를 통해 임시정부와 독립군을 지원한 윤현진·윤현태 형제 집사, 이들 형제를 돕다 옥고를 치른 장덕생 목사, 한국의 조지 뮬러로 불린 고아들의 아버지 이약신 목사, 3·1운동과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선 조수옥, 손명복, 문순복 등의 발자취와 일부 손때 묻은 유품들이 있다. 근대 유산의 가치가 높은 당회록과 생명록의 빛바랜 기록물들이 숨을 쉬고 있는 듯 눈에 들어왔다. 이 중 생명록의 기록물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제적부로서 당시 성도의 제적부를 생명록이라고 적혀 있다. 이렇듯 초량교회 역사관에 소장된 근대 문화유산들이 향후 어떻게 보호되고 사료의 가치를 발할 수 있을까. 더 이상 유실되지 않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그동안 당회록은 관리의 어려움으로 일부 유실되고 없어졌다. 다행히 초량교회는 문화유산 등록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역사관을 관리하고 있는 정충권 장로께서 설명했다. 지금도 많은 탐방객들이 역사관을 찾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숙원이 현실화되고 제도화되어서 보물 같은 기독교 문화유산이 보호되고 지켜져 가야 할 것이다. 글 │ 박동철 장로(서머나교회 은퇴) [자문]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 박시영 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 회장 정충권 초량교회 장로(기독역사관 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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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기독문화유산을 지키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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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교회 120주년, 일본 선교의 새로운 좌표를 세우다
- 설립 120주년을 맞은 은혜로교회(담임목사 김은태)가 일본 아이치현 도코나메 지역에 선교교회를 개척하며, 일본 선교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했다. 이번 선교 개척은 단순한 해외 교회 설립을 넘어, 공동체 중심·현지 체류형 선교 모델을 본격적으로 적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김은태 목사는 감사예배에서 “수많은 세대가 이어온 믿음의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역사가 오늘의 선교 비전을 가능하게 했다”며 “작은 시작일지라도 기도와 헌신으로 모인 손길은 반드시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도 가운데 열린 방향 전환, 일본 도코나메로 은혜로교회는 당초 러시아 연해주 북방선교를 준비해 왔으나, 전쟁과 항공편 단절로 인해 약 1년간 선교 방향을 재검토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김은태 목사는 기도 중 반복적으로 ‘도코나메’라는 지명이 떠올랐고, 실제 지도에서 해당 지역을 확인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확신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교회가 전무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뒤 당회와 성도들에게 비전을 나누었고, 모두가 같은 마음으로 일본 선교에 동참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도코나메는 나고야 국제공항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항공·산업도시로, 유동인구가 많지만 복음의 공백이 큰 지역이다. “하나님께서 올바른 선교지를 보여주셨다” 이번 선교 일정에는 김은태 목사를 비롯해 시무장로와 집사 등 총 18명이 참여했으며,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현지 부지 매입과 감사예배가 진행됐다. 서준원 장로는 “도코나메 선교지를 다시 방문하며 하나님께서 교회를 바른 길로 인도하고 계심을 깊이 느꼈다”며 “121년 전 은혜로교회를 세우신 성령님께서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계심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감사예배 가운데 내린 비마저도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들였다”고 덧붙였다. 정길용 장로 역시 “설립 100주년 당시 연해주에 교회를 세웠던 경험을 바탕으로, 120주년을 맞아 일본 땅에 또 하나의 교회를 세우게 됐다”며 “부지 계약 전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단기 방문이 아닌 ‘머무는 선교’ 공동체 체류형 선교 모델 도입 은혜로교회는 도코나메 선교를 위해 3층 규모의 예배당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1층은 예배당, 2층은 숙소로 조성해 성도들이 상시 체류하며 선교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는 단기선교 중심의 방문형 사역을 넘어, 교회 공동체 전체가 선교의 주체가 되는 구조다. 김은태 목사는 “한두 사람이 감당하는 선교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함께 머물며 현지와 삶을 나누는 선교를 지향한다”며 “복음을 전하는 것을 넘어, 현지와 함께 살아가는 선교가 목표”라고 밝혔다. 김현배 장로는 “전 성도가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구조라 더욱 감사하다”며 “이번 부지 감사예배를 계기로 도코나메에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공동체가 세워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상 문화가 깊게 뿌리내린 일본 땅에 복음의 예배당이 세워지는 것은 마지막 시대를 향한 중요한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총회·노회·교회가 함께한 연합 선교 이번 도코나메 선교 개척은 은혜로교회의 단독 사역을 넘어, 고신총회 전국남전도회연합회와 부산서부노회남전도회연합회가 함께 참여하며 연합 선교의 모델을 보여주었다. 김은태 목사는 “총회와 노회, 지역 교회가 한마음으로 참여하는 선교는 하나님의 선교가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상징”이라며 “도코나메 개척은 한국 교회가 연합과 협력으로 새로운 선교 모델을 세워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교회는 내년 6월 기공예배를 드리고, 2026년 11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입당예배에는 100명 이상의 성도가 현지를 방문해 전도와 봉사 사역에 참여할 계획이다. 문화·비즈니스 선교로 확장되는 비전 도코나메 지역의 특산품인 도자기 공방과 연계한 ‘문화·비즈니스 선교 모델’도 추진된다. 현지 공방 제품을 한국에서 전시·판매해 교류를 확대하고, 자립형 선교 기반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김은태 목사는 “선교는 단순한 전달이 아니라, 삶과 문화를 함께 세워가는 과정”이라며 “도코나메에 세워질 교회가 아시아와 열방을 향한 복음의 통로가 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은혜로교회의 이번 일본 선교 개척은 120년의 역사를 과거의 기념에 머물게 하지 않고, 다음 세대를 향한 선교의 씨앗으로 이어가려는 실천적 결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도코나메에서 시작된 작은 부지는, 연합과 협력으로 새로운 선교 지평을 열어가는 한국 교회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자료제공=은혜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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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교회 120주년, 일본 선교의 새로운 좌표를 세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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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선한열매교회(40)
- 선한열매교회(남일우 목사)는 경남 창원시 의창구 중동 중앙로 99-6에 있다. 이 교회는 마산성막교회(윤진구 목사)에서 1992년 10월 4일에 창원시 대방동 대동상가 314호(28평) 곽성식 강도사를 교역자로 파송하면서 개척된 교회이다. 이듬해 1993년 10월 5일에 경남(법통)노회로부터 교회 설립을 허락받게 되었다. 이후 강인환 목사가 사역했고, 1998년 5월 1일 남일우 목사가 부임하여 2000년 12월 26일에 창원시 대방동 345-7에 174평의 대지를 구입하여 2001년 3월 8일에 연건평 340평 규모의 예배당 건축을 시작하여 11월 27일에 준공하고 2002년 3월 27일에 봉헌 예배를 드렸다. 2017년 4월 9일 건강한교회와 통합 인수하여 2018년 12월 30일에 교회 명칭을 선한열매교회로 변경한 후 코로나가 지속되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현 위치에 대지 482평에 건축면적 226평 규모의 본당 600석에 달하는 연건평 1,070평 예배당을 건축했다. 남일우 목사는 군목 출신으로 고려신학대학원 제43회로 졸업하고 서울 서문교회에서 부목으로 사역하다가 창원성막교회 청빙을 받았다. 그간 두 차례의 예배당을 건축하고 교회 명칭을 선한열매교회로 변경하여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다. 남 목사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남다른 직관력을 소유한 분이다. 건강한 교회와 합병, 성산구에서 의창구로 이전하고 한창 코로나가 계속되는 가운데 교회당 건축을 시작한 것은 평범한 목회자로는 추진하기 어려운 일이다. 다음으로 남 목사는 소신 있는 목회자이다. 상황 앞에 좌고우면하지 않고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진언하는 것이 남 목사의 캐릭터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개혁주의 신학을 가진 영성의 소유자이다. 고려파 신학을 소유한 개혁주의 신학에 뜨거운 영성을 겸한 균형 잡힌 목회자이다. 금주 주신 말씀의 제목은 “꿈(비전)이 이루어지기까지”(행 19:21-41)이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꿈과 생의 목적이 분명하면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된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이후에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다. 그는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이 가장 고상한 지식으로 알아 그리스도만을 위한 삶의 목적을 가졌다. 그는 제1차 선교여행은 구브로 섬 바보와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여 많은 영혼이 주께 돌아옴으로 선한 열매를 많이 거두었다. 제2차 선교여행 때는 성령께서 아시아 선교를 막아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마게도냐지역으로 가서 빌립보교회를 개척하고, 데살로니가로 가서 회당에서 성경을 강론하고 박해로 인하여 베뢰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고 종교성이 많은 우상의 도시 아덴에 복음을 전하고 고린도로 갔다. 제3차 전도여행은 2차선교지를 돌아보면서 양무리를 더욱 굳게 세우고 에베소로 와서 장기간 머물면서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서 더 전진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안고 내가 예루살렘에 갔다가 후에 반드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고 했다. 바울의 로마 비전은 세계선교의 비전이다.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21) 이 말은 바울의 세계선교를 위한 비전이다. 그는 지금 더 이상 전진할 수 없는 정황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만 거기 갔다가 반드시 로마를 보고야 말겠다는 비전이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도시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다. 바울의 로마 선교에 대하여 여러 차례 길이 막혔으나 그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로마에서 거치지 않고 그 당시 세계 끝이라고 생각한 스바나(스페인)까지 가기를 소원했다. 이것이 바울의 세계선교에 나타난 열정이다.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롬 15:22-23) 선교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른다는 사실이다. “그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돈벌이를 하게 하더니”(23-24) 바울이 이 도를 전함으로 소동 곧 분란이 일어났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이 넘게 목회했다. 여기 은장색이란 은으로 세공품을 만들어 파는 일종의 우상 장사인데 이들은 바울이 전하는 도의 말씀 곧 복음을 받고 주께로 돌아오니 우상장사가 망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 일에 총책임을 맡은 데메드리오가 바울을 죽이려고 대소동이 일어났다. 이것이 전도와 선교를 할 때 일어나는 고난의 댓가다. 바울의 선교는 절대로 평안한 가운데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가는 곳마다 온갖 고난과 고통과 핍박을 다 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고난 가운데서도 풍성한 선한 열매를 주셨다. 후에 바울이 예루살렘 공회에 잡혀 갔을 때 그날 밤에 주님이 곁에서 그에게 담대하라고 했다. 절대로 너를 죽이지 못할 것이며 너는 반드시 로마 황제 앞에 설것을 말씀하셨다.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 23:11) 말씀이 전파되는 곳에 변화의 역사가 일어난다.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26) 바울이 에베소에서 장기간 복음을 전파하니 우상의 점포가 문을 닫는 집단적인 변화의 역사가 일어났다. 마치 사람의 손으로 우상을 만들어 파는 범신론적 사상이며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종교다원주의 자들의 망상을 깨트리게 되었다. 십자가의 도인 복음의 능력은 사람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역사를 일으킨다. 우리는 모든 것이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낙심해서는 안된다. 반면에 악인이 득세하는 것을 보고 부러워해도 안 된다. 시편 기자는 우리가 주의 성소에 들어갈 때 그들의 종말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시 73:17). 사랑하는 선한 열매 공동체 여러분! 주님의 산상수훈에서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다, 바울 같이 선교의 비전을 품고 복음을 전할 때 반드시 소동이 일어나고 분란이 생긴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드시 선한 열매로 갚아 주실 것이다. 이 한 주간도 하나님의 비전이 이루어지기까지 영혼 구하고 생명 건지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경남법통노회 사십 번째 순방교회로 선한열매교회를 찾았다. 창원 39사단 이전으로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 곳에 주변 환경에 걸맞게 아름다운 예배당을 건축하고 전도와 선교에 남다른 안목을 가진 선한열매교회의 아름다운 부흥의 역사를 보고 감사했다. 예배 부름의 찬양과 사죄의 기도가 있은 후 남 목사의 강력한 설교에 쉼 없이 아멘으로 화답하는 거룩한 영성을 소유한 젊은이들을 보고 교회 부흥의 역사를 볼 수 있었다. 예배를 마치고 가까운 사화공원에 야외 예배를 나온 밀알교회 성도들을 문안하기 위해 점심 식사 교제를 뒤로하고 남 목사의 인사를 받고 교회를 나섰다. 2024년 10월 20일 주일 오전 11시 예배 고려파교회연구소장 교육학박사 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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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선한열매교회(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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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은혜와평강교회(39)
- 은혜와평강교회(변성규 목사)는 경남 김해시 관동로 27번 길 101에 있다. 이 교회는 경남(법통)노회 백주년기념 교회이자 고신총회 3000교회 운동 제282호 교회로 2017년 6월 5일 설립된 교회이다. 경남(법통)노회는 백주년을 맞이하여 기념교회를 세우면서 당시 신촌교회를 시무하던 변성규 목사를 파송했다. 노회 산하 모든 교회가 참여하여 대지를 구입하고 교회당을 건축하기까지 재정적 어려움이 있었으나 변성규 목사의 적극적인 헌신으로 설립과 동시에 입당 감사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교회 설립 7주년을 맞이할 즈음에 조직교회로 부흥하게 됨은 교회 이름대로 하나님의 은혜요 평강이며 교회는 물론 경남(법통)노회의 기쁨이요 가장 자랑스러운 일이다. 변성규 목사는 고신대학교와 신대원을 41회로 졸업하여 두 번째 개척에 소명 받았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전도사로 부산 수영교회와 서마산교회를 섬겼고, 신대원을 졸업하고 강도사 시절 거제 신명교회를 섬겼다. 목사 안수받고 경남노회 70주년 즈음에 진해시찰 후원으로 창원신촌교회를 개척하였으며, 100주년을 맞이하여 은혜와 평강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그래서 변 목사는 개척에 대한 남다른 소명을 가지고 있다. 변 목사는 다양한 은사를 골고루 갖춘 원만한 목회자이다. 먼저 그는 개척의 목회자이다. 창원신촌교회를 개척하여 원로에 가까운 이십여 년이 되어갈 무렵 노회 부름을 받아 백주년기념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필자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대단한 용기와 결단이었다. 다음으로 그는 가르치는 은사를 가진 목사이다. 신학교를 졸업 한 이후로 모교에서 25년간 헬라어 교수로 섬겼으니 목회와 교수 사역을 겸한 특히 가르침에 있어서 학자의 혀를 가진 분이다. 셋째, 그는 많은 책을 집필한 저술가이다. 글이란 자신의 내면세계 생각을 문자에 옷을 입혀 내는 것이다. 이것이 거듭될수록 단순한 생각이 모여 하나의 사상을 만들어 간다. 목사로서 남길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라면 다음세대 영혼을 위해 글 쓰는 일이라 생각한다. 넷째, 그는 행정 능력이 탁월한 전략가이다. 노회에서 노회장과 전권위원을 비롯한 여러 상비부를 섬겼으며, 총회에서도 고려학원 이사와 은급재단 이사로 그 외 주요 상임위를 많이 섬김으로 탁월한 행정력을 겸비한 전략가이다. 다섯째, 그는 섭외 활동을 잘하는 공동체 맨이다. 제41회 동기회 상임 총무로, 고신대 동창회와 후원회장을 맡아 잘 섬기고 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소개하면 그는 만능 스포츠 맨이다. 테니스와 탁구는 프로급이며, 그 밖에 축구와 골프 등 운동을 통해 체력을 단련하고 건강을 관리하면서 대인관계를 잘하여 사역의 지평을 넓혀가는 목회자이다. 금주의 주신 말씀의 제목은 “영적 구별(신 22:9-12)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특별한 백성이다.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높이고 그에게 영광 돌려야 할 고귀한 사명을 받은 자이다.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래로 이웃을 사랑하여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 이방과 구별함을 받은 특별하게 선택받은 백성이다. 그래서 주변의 가나안과 이방의 족속들과 다르게 살도록 구별함을 받았다. 먼저, 식물의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다 빼앗길까 하노라”(9) 농사를 지음에 있어서 두 종자를 섞어서 뿌리지 말라고 했다.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을 빼앗긴다고 했다. 비록 소출을 많이 얻는다고 해도 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지 않는다. 비록 소출이 적어도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법으로 생활해야 한다. 목적이 좋으면 방법까지도 선하고 아름다워야 한다. 이는 혼합주의를 경계하는 영적인 거룩함을 나타내게 하는 말씀이다. 이처럼 우리는 말과 행동에 있어서도 성도의 모범을 보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이 이교도의 세속주의에 물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오늘날 세속적인 인본주의가 자본주의와 심지어 민주주의를 잠식하여 기독교의 가치관을 훼손하고 있다, 다음,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라 “너는 소와 나귀를 겨리하여 갈지 말며”(10) 소와 나귀는 힘과 능력에 있어서 서로 다르기에 한 멍에를 매게 해서는 안 된다. 여기 ‘겨리하여’란 히브리말은 ‘야흐따우’ 영어로 ‘투게더’(together)이다. 이는 소와 나귀를 한 멍에 매워 쟁기질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은 아무와 투게더(사귐) 하지 말라는 말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소나 나귀를 사용할 수 있으나 한 멍에 아래 넣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누구라도 만날 수 있으나 교제와 사귐에 있어서 신중해야 함을 가르친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고후6:14)고 했다. 마지막으로 너는 양털과 베 실을 섞어 짜지 말라 “양털과 배실로 섞어 짠 것을 입지 말지니라”(11) 양털과 베실로 섞어 짠 것은 당시 가나안 사람들과 구별하기 위함이고 이스라엘에게 겉옷에 술을 달라고 한 것은 혼합하지 말고 이스라엘의 구별됨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이 옷 술을 크게 했다. 이것은 단순히 외형적인 옷에만 국한 시킬 것이 아니라 평소에도 삶의 전 영역에서 이 땅의 해아래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한다. 요한은 성도들의 올바른 행실이 세마포 예복이라(계 19:8)고 했다. 우리는 이 시대 제사장이요 왕이요 선지자이다. 범사에 입술로 복음을 전하면 더욱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억지로라도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 보여주며 주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래서 주님은 고난받고 빼앗기는 일이 있으면 양보함으로 하늘 상급을 바라보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했다. 모세는 결론적으로 본문 12절 말씀을 첨언하고 있다. “너희는 너희가 입는 겉옷의 네 귀에 술을 만들지니라”(12) 모세는 언약 백성이 입은 옷에 성민의 표시로 옷 술을 달라고 했다(민 15:38-41). 이것은 언약 백성의 표징이다. 세인들과 구별된 성민의 표시이다. 이 같은 외적인 표징이 연약한 우리로 더욱 경건한 삶을 살게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약 백성으로서 세속과 구별하는 섞어 뿌리지 않는 삶과 만남을 통해 깊은 교제의 삶을 분별하여 언약 백성의 옷 술의 표시가 있는 영적 구별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 돌이는 삶을 사는 은혜와 평강의 가족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경남(법통)노회 서른아홉 번째로 은혜와 평강교회를 찾았다. 김해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조금 일찍 서둘러 가서 예배 시간 15분 전에 도착했다. 이 교회는 경남(법통)노회 백주년기념교회라 남다른 감회가 새롭다. 찬양에 이어 예배가 시작되었고 온 가족이 함께 예배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변 목사의 설교는 주교생이나 중고등부 학생들도 공감할 수 있는 쉬운 설교로 생활에 적용이 가능한 실천적 메시지였다. 예배 중 주일학생들에게 성경을 암송하게 하고 달란트를 주면서 말씀을 가까이하게 함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풀어야 할 다음세대 자녀교육에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었다. 특히 은퇴하신 전영환 목사님을 배려하여 축도를 하게 함은 참으로 귀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예배 후 식당에서 김경자 권사와 최임자 집사가 섬기는 점심을 먹으면서 교제하고 변 목사님과 박용제 장로님의 배웅 인사를 받고 돌아왔다. 2024년 10월 13일 주일 오전 11시 예배 고려파교회연구소장 교육학박사 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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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은혜와평강교회(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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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권순기 경남교육감 출마예정자 서면 인터뷰
- 경남교육감 출마 할 예정인 권순기 전 경상국립대 총장은 경남교육의 기초학력 저하와 교권 붕괴, 인성교육 약화 등을 지적하며 “공교육을 바로 세우기 위해 출마했다”고 밝혔다. 아래는 본지와의 질의응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 Q1. 교육감 선거 출마를 결심하게 된 핵심 동기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도민들께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예정자님의 역량은 무엇입니까? A. “경남교육은 기초학력 저하, 교권 약화, 교육재정 악화 등으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를 정상화해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출마를 결심했습니다. 저는 실용 과학자이자 교육 행정가로, 교육을 부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성장 전체’로 바라봅니다. 초·중등과 대학 교육은 끊어진 구조가 아니라 하나의 고리처럼 연결돼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교육 때문에 떠나는 경남이 아니라, 찾아오는 경남’을 반드시 만들겠습니다.” ■ Q2. 교사의 정치·이념 성향이 교육이나 생활기록부에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교육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어떤 기준으로 실현하시겠습니까? A. “교육은 언제나 학생 중심이어야 합니다. 정책 판단의 기준이 ‘정치’가 아니라 ‘학생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에 있어야 합니다. 교사의 정치적 이념이 학생에게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됩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에게 이념적 색깔이 덧칠된다면 그 결과는 모두가 예상 가능하지 않습니까. 저는 ‘권한은 아래로, 책임은 위로’라는 원칙을 세우고 학교의 자율성을 강화하겠습니다. 자율성을 주면 현장은 스스로 바뀝니다. 또 지자체와의 연계를 통해 행정적 지원도 강화해 학생·학부모가 체감하는 변화를 만들겠습니다.” ■ Q3. 공교육에서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보시는 ‘가치교육’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기독교계 학교·단체와의 협력은 어떻게 보십니까? A. “헌법 제31조가 명시하듯 모든 학생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잘하는 학생은 더 잘하도록, 어렵고 뒤처지는 학생은 더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가치교육의 핵심입니다. 경남에는 한 명도 입학생이 없는 학교가 26곳, 한 명뿐인 학교가 33곳이나 됩니다. 작은 학교 살리기와 학교 통합은 지역 주민과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하겠습니다. 기독교적 정신으로 세워진 학교가 설립 이념을 유지하며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습니다. 종교계는 우리 공동체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 Q4. 학교폭력과 교사 보호가 충돌할 때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피해 학생, 가해 학생, 교사 보호 원칙을 설명해 주십시오. A. “우선순위는 명확합니다. 학생 보호가 최우선입니다. 피해 학생에게는 심리상담·일시 보호·치료·관계 회복 등 단계별 회복 정책이 필요합니다. 가해 학생은 폭력의 심각성·지속성·고의성·반성 정도에 따라 특별교육을 병행해야 합니다. 동시에 무너진 교권 회복은 시급한 과제입니다. 교사가 마음 놓고 학생을 지도할 수 있어야 교육이 제대로 됩니다. 이를 위해 저는 ‘교권 보호 플랫폼’을 구축하겠습니다. 악성 민원 대응 전담기구 설치, 법률 지원, 외부 압력에 대한 교육청의 책임 있는 대응이 포함됩니다.” ■ Q5. 학부모들은 “공교육만으로는 불안하다”며 사교육비 부담을 호소합니다. 서울과의 학력 격차를 줄이고 ‘학교 수업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 조치는 무엇입니까? A. “모든 것은 초등 기초학력부터 다시 세워야 합니다. 제가 말하는 초등 학력평가는 ‘체력장’이 아니라 건강검진 개념입니다. 학생·학부모·교사만 진단 결과를 알 수 있도록 하면 학교 서열화 우려도 없습니다. 자신의 학습 위치를 모르고 상급학교로 올라가는 혼란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또 지역 특성에 맞는 좋은 학교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전국 우수 학교를 벤치마킹하고 학교 운영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겠습니다. 특히 과학고·외국어고·자사고·영재고를 잇는 ‘경남 십자형 특목고 벨트’를 조성해 경쟁력을 높이겠습니다. IB 교육 도입도 적극 검토하겠습니다. 저 역시 시골 산골 출신이지만 공교육의 힘으로 서울대와 KAIST까지 성장한 사람입니다. 공교육이 정상화되면 ‘아이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다’는 믿음을 경남에서 다시 보여주고 싶습니다.” ■ 맺음말 권순기 예비후보는 “경남교육을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길은 공교육 정상화에 있다”며 “아이들이 떠나는 교육이 아니라 찾아오는 교육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약력> ■ 학력 단성초 · 진주중 · 진주고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KAIST 자연과학대학 석사·박사 ■ 교육행정 분야 경상대학교 총장(9대, 11대) 경상국립대학교 총장(11대, 통합대학 초대 총장) 경상남도사회대통합위원회 교육청년분과위원장 한국대학평가원 대학기관평가인증위원회 위원장(전) 경승대학교 항공우주특성화대학원장(전) 부경항정통항공론회 공동위원장(전) ■ 실용과학 분야 MIT 연구원(전) 경남 창원산학융합원 이사장(전) 경남테크노파크 이사(전) 산자부 소재부품전략 위원장(전) 삼성디스플레이 경상대학교 OLED 센터장(전) 경남과학기술대상 수상 LG전자기술원 우수산학협력개발상 삼성휴먼테크논문지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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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권순기 경남교육감 출마예정자 서면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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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교회순방: 우암교회(38)
- 우암교회(제기호 목사)는 경남 창원시 의창구 대산면 유등로 172에 있다. 이 교회 설립에 관한 교회의 행정록이나 노회록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고 다만 총회가 발행하는 1991년 교회 주소록에 의하면 창원군 대산면 우암리 246로 기록되어 있음이 유일한 증거 자료이다. 그 이듬해(1992) 주소록에 김광열 전도사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현재 시무하는 제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김 전도사 이전에 한 분이 사역하셨는데 기록이 있음을 보아 1989년을 전후한 것으로 본다. 제기호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제51회로 졸업하고 창원교회 부목사로 사역하다가 2009년 12월 28일 우암교회로 부임했다. 제 목사는 거제도 오비 출신으로 복음을 받고 신학 공부를 마치고 선교 단체에 몸을 담아 얼마간 봉사하면서 뉴질랜드에서 사역하던 중에 교편생활을 하는 아내의 출산 소식에 귀국하여 경남(법통)노회에서 교회 개척을 하다가 2006년 11월 5일 창원교회 부목사로 부임하여 섬기는 중에 우암교회 청빙을 받아 가서 지금까지 섬기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국가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현실인데 우암교회 제 목사는 삼남 일녀의 자녀들이 아버지를 도와 교회를 잘 섬기고 있고, 아내인 송태경 사모가 현직 초등학교 교사로 있기에 아직도 주일학교를 운영하고 있음을 보아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였다. 금주의 주신 말씀의 제목은 “주님께서 내 속에 살아야 하는 이유(갈 2:20; 요 15:7)”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내 삶을 맡기고 살면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신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말씀이지만 주님께서 왜 우리 속에 내주하고 살아 계셔야 하는지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주님이 우리 속에 살아서 역사하려면 선행되어야 할 몇 가지가 있는데 먼저는 내 육신의 자아가 죽어야 한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했다. 바울에 의하면 육신에 속한 내 자아이다. 내 육의 몸이 철저하게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장사지내야 한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가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힘을 당해야 한다. 나의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이 살아나야 한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고 했다.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장사 지낸 바 되지 않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수가 없다. 다음으로 그리스도 십자가에 대한 사랑의 믿음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보혈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이다. 이는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아버지의 계명을 지킴으로 아버지 안에 계심 같이 우리도 주님의 약속한 말씀을 지켜 행하면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이 내 안에 살아서 역사하게 된다(요 15:10). 그리하면 히브리서 기자가 말씀한 것처럼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을 주신다(히 11장).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할 때 주님의 보혈로 우리가 발 씻음을 받고 우리의 모든 무거운 죄 씻음을 받아 정결하게 된다. 진정한 회개(메타뉴스)란 죄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이 돌아섬으로 삶의 행동이 변하여 실천적 삶으로 그리스도를 기쁘시게 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할 때 우리의 상한 심령이 치유함을 받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는 역사가 일어난다(시 51:10). 베드로는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벧전 3:21)고 했다. 여기서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보면 세례를 통한 내 속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영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선한 양심을 보혜사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혹은 의에 대하여, 그리고 심판에 대하여(요 16:8) 날마다 가르치고 책망하심으로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가신다. 마지막으로 이 같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굳어지게 해야 한다.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세상의 염려와 근심과 걱정으로 인하여 낙심하고 절망할 때가 많다.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에게 이같이 권면한다. “...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1-2) 세상에서 우리를 얽어매기 쉬운 모든 죄악을 벗어버려야 한다. 이같은 모든 죄악의 발 씻음을 받고 회개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면 참된 기쁨과 자유를 주신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 그리스도 십자가 사랑의 터가 더욱 굳어지고 견고해진다. 미국의 영적 부흥 운동을 일으킨 찰스 피니는 “우리는 죽을 만큼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깊고 간절한 기도를 통해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날마다 경험해 나갈 때 그리스도의 사랑의 터가 더욱 굳어진다. 사랑하는 우암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도 데살로니가교회처럼 내 속에 그리스도가 살아서 역사하기 위하여 내 육신의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고백하면서 그 사랑의 터가 더욱 견고하게 굳어져 가는 믿음의 가정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서른여덟 번째로 우암교회를 찾았다. 우암교회는 경남(법통)노회 속한 창원지역 행정 구역으로는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낙동강 건너편은 밀양이고 좌우로 함안과 김해가 있는 창원지역으로는 외곽지역이다. 이 같은 곳에 도농 간의 복합시설로 주변에 공장들이 많이 들어서 있기에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상주해 있다. 제 목사는 선교적 차원에서 매주 이들과 축구를 하면서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필자가 예배 시간 10여분 전에 도착하여 기도하니 예배 전에 목사님의 인도로 보혈 찬양을 뜨겁게 하고 예배가 시작되었다. 목사님의 말씀은 지역 정서에 알맞은 부드럽고 소탈한 언어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은혜로운 말씀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식당에서 특별히 준비한 찜 갈비탕에 부폐 식단을 준비하여 함께 교제한 후 목사님과 성도들의 배웅 인사를 받고 돌아왔다. 2024년 10월 6일 주일 오전 11시 예배 고려파교회연구소장 교육학박사 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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