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5-0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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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밀알교회)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 유대의 최고 권력 기관은 산헤드린 공회였다. 이 법정은 제사장들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그리고 탁월한 서기관들과 율법의 석학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당시 성전에서 상당히 실력행사를 했던 랍비 곧 교사들이었다. 유대는 로마의 식민지 국가이지만 사형 집행권을 제외하고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다 집행한다. 그들이 비록 사형이 없었으나 예수를 사형에 처하도록 주도적인 역할을 행했다. 그 당시 종교적으로는 여러 분파가 있었다.

 첫째, 바리새파이다. 이는 헬라시대에 생겼으며 마카비를 지지했으나 요한 힐카누스 때에 그들과 분리하게 되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거룩한 무리(Holy one)로 알려졌으나 후에는 바리새파(분리주의자)로 불려졌다. 왜냐하면 힐카누스가 지지하는 로마 정부에 대항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당시 자유주의(사두개파)와 다른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고 율법의 가르침을 준수했으나 율법 속에 잠재되어 있는 율법의 정신을 바로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율법의 외형적 가르침에만 치중한 바리새인들의 유형을 탈무드에서는 7가지로 지적했다. 어깨 형(shoulder), 잠깐 기다리게 하는 형(wait a little), 피 흘리기 형(bleeding), 채색 형(painted),계산 형(reckoning) 공포 형(fearing), 그리고 사랑 형(love) 바리새인이 있다고 했는데 이중에 사랑 형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위선과 외식적인 종교행위에 불과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의 외식을 책망했다.

 둘째, 사두개파이다. 이들은 바리새파의 대적자로 수적으로는 적었으나 영향력은 대단했다. 재산이나 지명도나 정치적인 세력을 가진 세속적인 면에서 위대한 분들이 많았다. 이들의 출현은 고레스 왕 때에 유대인의 귀환이 있은 후 로마황제와 관계를 친숙히 한 유대인이 대제사장이 되었다는데서 생긴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들의 지위는 대제사장들과 같았으며 이들은 성민의 율법을 세속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헬라문화가 지배했을 때는 헬라문화 보급을 위해 앞장섰으며, 로마가 지배할 때는 로마와 친숙하게 지냈다. 그들의 신앙은 현실적이며 세속적이었으므로 경건생활이나 부활신앙을 인정하지 않았다.

 셋째, 엣센 파이다. 이들은 일종의 금욕주의자들이라고 부른다. 세속적인 삶에 얽매이지 않기 위해 그들은 재산을 공동으로 관리했으며 농경생활로 금소하게 생활하면서 전쟁과 노예제도 및 상업을 거부하고 일정한 목적을 세워 놓고 엄격한 규율 속에 자신들을 묶어 두었다.

 넷째, 헤롯파이다. 이들은 헤롯 왕가를 지지하는 자들이다. 당시 로마 정부에 소속한 헤롯 군대를 지지하여 현실적 이권에 얽매여 있는 자들이다. 세리들이 주로 여기에 속해 있었다. 이들은 로마인들의 하수 노릇을 하면서 유대인들의 피를 빨아 먹는 매국노와 같이 취급을 받은 친로마파 권력형들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세롯 파인 열심당이다. 일명 이들은 유대 민족주의자들이며 애국주의자들로 극소의 무리들이다. 이들은 지나친 애국운동으로 반민족주의자들을 대적하고 저격하므로 일명 테러분자로까지 낙인이 찍혀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다대오 유다와 가나안인 시몬이 여기에 속한 자들이었다.

 

열심당원 시몬

 

 세롯 시몬은 가나안 사람이었다(마 10:4; 막 3:18; 눅 6:15).5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12제자가 되었다. 오순절과 감람산에서 주님의 승천하는 현장에도 직접 참여했다(행1:13). 세롯(헬라어 제로테스)이란 ‘열심당’, ‘열광자’란 뜻이다. 이는 아람어에서 유래된 말로 셀롯당 즉 열심 당원으로 이스라엘 독립을 위한 비밀 결사대인 일종의 테러리스트이다. 이들은 유대의 반대 세력들을 살해와 테러로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저지르는 극열한 민족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품속에 언제나 반달 같은 검을 품고 다니다가 매국노 로마인들을 만나면 죽이기를 망설이지 않는 극렬 테러리스트였다. 그랬던 그들이 갈릴리 가버나움에 본거지를 두고 활동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시몬은 전에 스스로 자신을 일컬어 로마의 팔레스타인 통치에 대한 광적인 반대파로 즉, 열심당원이라고 했기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불리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는 예수께 부름을 받아 사도가 되었으나 사도의 반열에 올린 이름 외에는 성경 어디에도 그의 관한 기사를 찾아 볼 수 없다. 당시 이런 신분을 가진 자들은 공직은 물론 사회활동을 할 수 없는 신분의 많은 제약을 받고 살았다. 헤게십푸스(Euseb., Hist., Ⅲ. 11, 32)에 의하면 시몬은 야고보의 뒤를 이어 예루살렘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 나라는 언약 공동체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의 사상이나 이념 공동체가 아닌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정치적인 성향이나 지리적인 감정, 세속적인 신분에따라 언약을 배반하면 안 된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았을 때 본토와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갔고, 후일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에 번제를 드리러 간 것도 언약에 기초한 삶이었다. 언약의 율법을 받은 모세는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내어 밀 때, 홍해가 갈라졌고 반석이 쪼개지며 구름기둥 불기둥의 역사가 일어났다. 바벨론 포로 시절 다니엘은 이방 왕궁에서도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여 언약 중심으로 살았던 신실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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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세롯인 시몬(Simon's Behind Stories)-침묵의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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