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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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공동주택 관리법 제30조'에 근거하여 소유자에게 부과 적립하여야 하며 '시행령 제31조 8항'에서 임차인이 대신 납부한 경우 이를 돌려주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동주택 관리비 청구서에는 “장기수선충당금”이라는 항목이 있다. 건물이 노후화됨에 따라 필요비용을 미리 적립하는 것이다. 도색, 배관 수리 및 교체, 승강기 교체가 대표적인 내용이다. 워낙 큰 금액이 들기에 매달 적립을 한다. 또한 장기적인 관리 영역이라 의무자는 세대 소유자가 된다. 즉, 집주인이 납부해야 할 항목이다. 하지만 매달 집주인에게 직접 받기가 쉽지 않아 관리비에 포함해서 청구하게 된다. 그러면 조금 문제가 생긴다. 상당수의 세입자가 미래의 관리비를 주인 대신 지불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동주택 관리법에서는 세입자가 이사 갈 때 관리실에서 정산받은 내역을 기준으로 집주인이 돌려주게 되어 있다.

 

40세대 작은 아파트이기에 전출입이나 매매가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있다. 그러면 관리소장의 카리스마를 뿜으며 내역을 정리하고 설명한다. 필요 시 적당한 중재를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장기수선충당금 정산으로 큰 갈등은 한 번도 없었다. 숫자를 정리를 돕는 아내 입장에서는 조금 번거로운 일이지만 내역서를 보면 누구나 수긍하는 부분이라 마음의 고단함은 없는 업무다.

 

 

“아이고, 이사 가신다고요. 다음 가시는 곳은 조용한 집이면 좋겠습니다.”

 

 

늘 층간소음으로 고생하시던 세입자 한 분이 이사 가신다는 연락을 주셨다. 이사 가는 사유를 들어보니 층간소음은 아니고 집주인이 바뀌면서 새 주인이 직접 거주하게 되어 나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늘 술에 취해 인생 한탄하시는 독거 어른이다. 가끔 노동판에 나가 생활비를 벌어오는 것 같은데 이미 퇴근길에 얼굴이 붉다. 어느 날은 전화해서 성경책 한 권만 구해줄 수 있냐고 해서 교회에 있던 깨끗한 중고 성경책을 전해 드리기도 했다. 이래저래 정이 들었던 분이었기에 조금 섭섭한 마음도 인사를 나누었다.

 

 

“장기수선충당금? 그게 뭔 소리입니까? 당신 주택관리사 자격 없죠?”

 

 

소유자가 바뀔 때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통화가 된 집주인. 전세로 살던 입주자에게 돌려주어야 할 장기수선충당금에 관해 차근히 안내를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조롱이다. 나의 자격이나 무지함을 탓하기 시작한다. 거듭 설명을 드렸더니 본인이 세를 주는 주택이 여럿이고 부동산 중개 일을 하는데 장기수선충당금 내용은 처음 듣는다고 한다. 지금까지 3년간 전출입 간에 한 번도 이런 내용으로 분쟁이 없었기에 당황스러웠다. 내가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을까? 조롱 섞인 소리에 화가 났지만 일단 꾹 눌러 참고 통화를 마쳤다.

 

지인 중 공인중개사가 두 분 있어서 관련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그 사람은 엉터리 공인중개사이거나 돈을 세입자에게 내주기 싫어서 관리실에 으름장을 놓은 것이라고. 관련 법규를 찾아보니 장기수선충당금은 정산 후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내용이 맞다. 이제 어떻게 할까? 어차피 집 팔고 사람이기에 다시 볼 이유가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정들었던 세입자 아저씨가 분명 피해 보는 상황이다. 연체 한번 없이 냈던 관리비에서 돌려받을 수 있는 돈이다. 그 돈이면 좋아하는 술도 편하게 마실 수 있을 정도는 된다. 그리고 무시 받았다는 사실에 지금 너무 화가 난다. 전화기를 몇 번이나 들여다보며 고민이 깊어진다. 그냥 확 한번 퍼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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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작가 강신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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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조롱을 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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