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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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 목사(진해웅천교회)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를 믿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 믿는 것은 내 몸이 성전 됨을 믿는 것이다. 임마누엘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모두 청산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신 이유는 내 몸에 좌정하시기 위함이셨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다 청산하시고 나를 성전 삼으셨다. 나를 성전 삼으셨다는 말은 내 몸 안에 성령님이 계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말이다. 임마누엘이라는 말이다.

이제 실수하는 모습에 집중하지 말고, 예수님의 하신 일에 집중하여 경건의 훈련을 해야만 한다. 말씀대로 믿고 기도해 보라. 말씀과 기도의 믿음으로 거룩해 짐을 보게 될 것이다. 자신의 행함을 고쳐서 완벽해 지려는 것이 믿음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해 놓으신 것을 믿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를 고치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이 아니다. 그 분이 이루신 것을 믿는 것이 예수 믿는 것이다.

 

행위를 고치는 것이 신앙생활이 아니다. 조심하고 열심을 내면 말씀을 완벽히 지켜 낼 수 있는 줄 안다. 아니다. 속은 것이다.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롬7:9)라고 했다. 율법을 몰랐을 때는 자신이 대단한 줄 알고 살았다는 말이다. 그리스도가 살아야 하는데 율법을 모를 때는 자신이 살았다는 말이다. 계명을 알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되었다고 하는가? 죄가 살아났다고 한다. 율법을 알고 보니 죄가 살았다고 했지 그리스도가 살았다고 하지 않는다. 율법을 알게 된 결과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롬7:10)라고 한다.

율법을 지키려는 것은 불가능함을 말씀하고 있다. 율법을 아무리 지키려 해도 결과는 사망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은 속는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롬7:11)고 선언한다. 죄가 기회만 있으면 우리를 속인다. “너는 계명을 지킬 수 있어. 왜 못 지켰어. 좀 더 노력했으면 되는데. 더 노력해”라는 생각을 주는 것은 우리를 속이는 것이다. 계명을 지킬 수 없다. 지킬 수 없는 계명을 지키려 하는 것은 속는 것이다. 지킬 수 있는데 못 지켰다는 자책감과 자괴감과 죄책감은 나를 죽이는 자리로 이끈다는 말씀이다.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오래 속아 왔다. 내가 열심을 내고 인내하고, 온유를 발휘하면 선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늘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솔직히 한 번도 완벽하게 의롭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보혈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간다고 믿었지만 완벽하게 믿고 나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은혜를 많이 받고 회개가 잘 된다고 생각할 때에만 가능했다.

죄는 나를 속였다. “너는 그것 밖에 안 되는 녀석이야. 아직 멀었어, 더 자신을 수련을 해야 해.”라는 의식을 넣고 있었다. 미래의 언젠가는 더 좋아질 나를 바라보며 끝없는 수련을 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보수교단에서 성장을 했고 보수교단의 신학을 했다.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배웠다. 그래서 믿음으로만 가능함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다고만 알았던 것이다. 믿음을 말하고 믿음으로만 가능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완전히 믿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하나님께 죄송하고 아프다.

 

 

 

오늘도 좋은 날이다. 주님과 풍성함을 누린다. 임마누엘로 풍성하다. 임재 속에 있으면서도 모르고 살아온 날들이 아깝기만 하다. 오늘도 주님의 임재로 충만하다. 임마누엘의 영광이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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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 목사] 예수 믿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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