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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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칼국수 배달 일이 끝나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쪽잠이다. 이렇게라도 쉬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 키 168cm에 몸무게 50kg이 넘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20여 년 살아오며 한 번도 강건했던 기억이 없었기에 지금의 쓰리잡(three job)은 죽을 것 같다. 지금 청하는 쪽잠은 여유로움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다. ‘종일 자고, 좀 놀고 싶다.’ 듣는 이도 없구만 혼자 중얼거리며 베개에 머리를 누여본다.

 

한 시간 휴식 후 몸을 일으킨다. 새벽 기상보다 더 몸이 무겁다. 하지만 어렵게 얻은 야간 아르바이트를 위해 일어나야 했다. 국가에서 어려운 이들에게 제공하는 일자리, 공공근로를 신청했는데 합격 되었다. 「방범대원」 태권도 단증이 있어서 유리했다는 말도 있는데 잘 모르겠다. 면접을 통해 나의 여리여리한 몸뚱아리를 확인했다면 나는 탈락했을 것이다. 여하튼 나는 3인 한 조가 되어 매일 저녁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방범대원이 되었다. 밤 12시까지만 그렇게 버티면 일은 끝난다.

 

내가 속한 조는 우리 파출소에서 나름 ‘특공조’로 불렸다. 일단 모두가 20대이다. 겉모습은 볼 품 없지만 나는 태권도 유단자였고 함께 근무하는 형은 학창시절 태권도 선수 출신인 찬양사역자.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충남대학이라는 건실한 간판을 달고 있다. 하지만 충남대학생 형은 한량이다. 매일 여자 이야기, 클럽 이야기. 잘생긴 그의 무용담이(?) 뻥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학대학 휴학생, 국립대 휴학생, 찬양사역자.’ 우리의 조합은 파출소에서 듬직하고 건실한 그룹으로 보여지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어두운 공원 벤치에 앉아 각자의 이야기로 떠들기 시작한다. 순찰은 잠시, 우리는 이렇게 ‘짱’박혀 놀고 있다. 나와 찬양사역자 형이 사역과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견디지 못한 충남대 형이 드디어 재미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그의 연애담은 정서적으로는 불편했으나 심장을 뛰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몰래 보던 무협지의 짧은 야한 이야기 같은 느낌이랄까? 젊은 사역자 둘은 아닌척했지만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래, 이렇게라도 시간이 가면 된다.

 

“치익, 치익”

 

휴식을 깨는 요란한 무전이 날아온다. 우리 행방을 묻는다. 걸렸나? 상황을 들어보니 비상이 걸렸으니 파출소 직원들과 합류하라는 지령이다. 장기 출타로 신고된 집에 불이 켜졌으니 출동해서 외부인 침입을 확인하라는 내용이다. 이런 일에 엮이면 무조건 불편하다. 그래도 가야 했다. 현장에 적당히 서 있으면 경찰관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기에 큰 걱정 없이 출동했다. 급하게 도착한 집에는 정말 불이 켜져 있었다. 경찰관 2명과 우리 특공 방범 3인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경찰관의 지시가 떨어졌다. 모든 인원이 동시에 진입할 수 있도록 누군가는 담을 넘어 대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장 날렵하고 젊어서 당첨. 조금 당황스럽다. 억지스럽게 담장을 짚고 몸을 올리는 순간, 너무 겁이 났다. ‘도둑과 눈이 마주치진 않을까? 너머에 누가 있진 않을까?’ 무서웠다. 무사히 담을 넘어 문을 열어주었고 경찰관과 우리 대원들은 진입에 성공했다. 결과는?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희가 신고한 일정보다 휴가에서 빨리 돌아왔어요.”

 

장기간 출타를 신고했던 주인이 일정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몸에 긴장이 풀리고 기운이 빠진다. 우리의 공로가 인정되었을까? 아니면 공공근로에게 무리한 업무를 주어 미안했을까? 우리는 처음으로 조기 퇴근을 ‘명’받았다. 같이 해장국 한 그릇 하자며 퇴근하는 길, 형들의 투덜거림이 나왔다. 직원도 아닌 학생에게 담장을 넘어 들어가라고 하라는 것은 부당하지 않냐고. 나도 그리 생각한다. 세금으로 월급 받는 경찰이 들어가야지. 무장도 없는 학생을 시키다니. 여하튼 오늘도 무사히 일이 끝났다. 무조건 감사.

 

에필로그.

 

2022년.

태권도 선수 출신 찬양사역자는 나이 50이 다 된 지금까지 찬양을 부르고 있다. 그의 찬양을 들으면 지금도 좋다. 하지만 여전히 가난하다. 잘생겼던 한량 형은 더이상 가난하지 않은 것 같다. 잘나가는 법무사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 당시 형이 살던 허름한 빌라가 아직도 눈에 선한데, 잘되어서 좋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어디 공공근로 없나 기웃거리는 개척교회 목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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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삽화작가 강신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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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학생이 먼저 들어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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