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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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석 목사(마산중부교회)

   그리스도인이라 이름 하는 사람들 중에 그런 분들이 간혹 있습니다. 회사에 하루 종일 일을 하는 것은 피곤하지 않고 또 하루 종일 야외에서 놀다 오는 것은 별로 피곤하지 않은데 이상하게 주일에 교회에 다녀오면 피곤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예배를 하고 봉사를 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라면 또 다른 이유는 없는 것일까요? 우리는 교회에 오면 절대 내 단점은 보여서는 안 되고 내가 좋은 신앙의 사람이고 거룩한 사람인 것만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오면 내 원래의 모습은 감추고 가면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피곤합니다. 나의 본래의 모습이 아니라 가면을 쓴 모습으로 사람을 대하려고 하니 보통 때 느끼지 못하는 피곤함과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변화되는 것과 연기가 느는 것을 혼동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가면을 쓰고 연기한 것을 변화된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가장 경건하다고 자타가 공인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서 자주 “외식하는 자들아!”라고 말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외식’이라는 말의 원어는 “가면을 쓰다.”, “위선적 태도를 취하다.”의 뜻입니다. 말하자면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른 가면을 쓴 모습은 아무리 경건한 모습이라고 하더라도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심을 외식이라는 단어로 예수님은 표현을 하신 것입니다.

변화란 거룩한 것처럼 연기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내 중심이 새로워지고 그 중심의 변화를 따라서 내 행동과 삶이 달라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연기학원에 등록한 것이 아니고 변화의 영이신 성령님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이제 혹시 연기하는 것과 같은 가면을 쓴 모습의 신앙생활이었다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진정으로 내 중심으로부터의 변화된 모습을 열망하며 성령의 은혜를 구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연약해도 상관없습니다. 그렇게 부족하고 연약하기에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스스로 용납할 수 있는 것이 겸손의 시작입니다. 때로는 내가 너무 싫어서 속상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좋은 점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을 향한 나의 시선을 돌리지 못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내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하면 자꾸만 다른 사람에게 그것을 보이기 싫어서 가면을 쓰게 되고 그래서 외식하는 자가 되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족함과 연약함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인 교회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는 주님께서 이 죄 많은 인생들을 향하여서 그러셨던 것처럼 부족함과 연약함을 용납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부족함과 연약함을 서로 서로 내어 놓을 수 있는 편안한 공동체가 되어야 하겠고, 그리고 그것을 정죄하지 않고 오히려 보듬어 안고 어루만져주는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내 부족함과 연약함을 솔직하게 내어 놓을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그 모습 그대로 받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진정한 변화의 체험을 하게 할 것입니다. 부족함과 연약함 때문에 가면을 쓰지 마십시오.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저절로 겸손해지게 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찾게 할 것이며, 그리고 이 모습 이대로 나를 받아주시고 만나주시는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기회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성령님은 완벽한 연기자 안에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고 연약해도 내 모습 그대로 겸손히 내어놓고 은혜를 구할 줄 아는 사람 안에 역사하는 영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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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석 목사] 변화되는 것인가? 연기가 느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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