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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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이제 일은 그만하고 사역만 집중하지 않겠니?”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나는 순종했다. 지금까지 치열하게 일하며 버텼지만, 복학 후 이제는 일하지 않고 버티기로. 어차피 버티기 인생은 매한가지다. 급할 때면 전단지 돌리기 같은 일회성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지만 일에 묶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스물둘이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교육전도사를 시작했고 작지만 사례만으로 살아보기로 결단한 것이다. 소위 생계형 전도사가 된 것이다. 일할 때도 버거웠지만 순종은 내 삶을 더 퍽퍽하게 만들었다. 생계의 위협을 더욱 체감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대학생이 된 동생과 사는 집은 두 칸의 방이 있다. 각자의 공간을 갖게 되었으니 프라이빗(private)한 거주공간을 갖게 된 듯하다. 하지만 그야말로 허름한 옛날 집이다. 입식 부엌? 현대식 주방이라고 하던데 방문을 열고 나가면 마감이 덜 된 시멘트 바닥에 수도꼭지가 있어 머리도 감고 설거지도 한다. 여름이면 큰 대야에 물을 받아 쭈그리고 앉아 샤워도 가능하다. 작은 마당을 지나 밖으로 나가면 공용화장실을 사용한다. 그다지 나쁘지 않다. 하지만 딱히 좋지도 않다.

 

 

“하나님, 이게 뭐에요.”

 

 

사역도 수업도 없는 조용한 오후. 오랜만의 여유로 빈방에 누웠다. 밖은 오지게 더운데 바닥의 서늘함이 작은 위로가 되어 바닥과 더 밀착해 본다. 나름 대학 생활 로망이 있었다. 중산층은 된다고 생각했기에 부모님이 뽑아주는 아반떼 승용차를 타고 서점에서 맘에 드는 책과 음반을 마음껏 집어 들며 살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집은 망했고 부모님은 우리 형제를 도울 여력이 전혀 없었다. 동생은 아르바이트로 용돈 벌이를 하고 나는 온갖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신세 한탄으로 생각이 많아지던 시간, 어느새 잠이 들게 된다.

 

 

「덜그럭, 덜그럭」

 

“너였구나?”

 

 

작은 소리였지만 낮잠을 깨우기에 충분했다. 현대식 주방에서 소리가 났다. 최근 주방 청소할 때 물과 함께 쓸려 내려오는 쥐똥. 남은 음식과 비누를 갉아 먹는 그 녀석. 나는 이놈에게 몹시 화가 나 있었다. 부족한 살림에 손을 대는 흉악한 녀석이다. 어렵게 얻어온 음식에 이 녀석이 먼저 입을 대면 나는 먹을 수가 없다. 비누는 왜 먹는 걸까? 쪼그려 앉아 세수할 때면 선명한 이빨 자국이 비누에서 보인다. ‘에잇!’ 짜증 섞인 소리를 내어보지만 아까워서 음식처럼 버리지는 못한다. 물로 대강 씻어내고 거품을 낸 후 찝찝한 세수를 마무리한다. 흔적만 있고 대면한 적 없던 그 원수가 드디어 나타났다.

 

 

 

내 키보다 작은 방문을 조용히 밀어 주방을 내다본다. 작은 쥐색의 생물. 생쥐다. 그간 얽힌 악연이 아니라면 뒤태가 귀엽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적’이다. 취향도 독특하지. 얼마나 맛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비누를 정신없이 갉아대고 있다. 군대용어로 기도비닉(企圖秘匿)이라 했던가. ‘살금살금’ 최선을 다해 은밀히 접근하다. 계획은 없다. 그냥 복수의 열망으로 다가간다. 나는 재빠르게 손을 뻗어 그 아이의 몸체를 집어 들었다. ‘아차!’ 잡힌 녀석은 급박한 상황에 고개를 돌려대며 내 손을 물려고 한다. 물리면 내가 더 타격이 클 수 있다는 생각에 더 큰 힘으로 움켜쥐었다. ‘찌~익’ 쥐가 고통스러운지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지른다. 막상 원수를 포획하고 나니 어찌할 줄 모르겠다. ‘묶어서 쓰레기통에 버려? 땅에 묻어?’ 길게 고민할 상황은 아니었기에 일단 밖으로 나왔다. 눈앞에 공터가 보인다. 팔을 크게 몇 바퀴 돌려 빈 공터에 던져버렸다. 땅에 내동댕이쳐진 원수는 기절했는지 잠시 움직임이 없다가 벌떡 일어나 잽싸게 도망가버린다. 살려 보낸 것이 유효했을까? 동네 쥐들에게 나의 흉폭함이 전해졌는지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나의 식품에 손대는 불청객은 나타나지 않았다. 비누도 매끈함을 유지하게 되었다. 한낮의 소동은 그렇게 나의 승리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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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작가 김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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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생쥐와 사투 : 내 거 먹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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