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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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열 목사(사천중앙교회)

  믿음의 사람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고 천만인이 에워싸진을 친다 해도(시3:6)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왜 그런가? 최종 승리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은 이원론적 삶과 대비되는 삶, 삶의 여러 가지 요인들이 통합하여 승리한다는 통합의 삶, 은혜의 삶이다.

이원론적 삶은 좋은 것과 나쁜 것,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좋은 환경과 나쁜 환경으로 분리하는 삶이다. 그래서 일희일비하며 나쁜 것은 감추려 하고 좋은 것만 드러내려 하는 위장된 삶을 살게 된다. 이러한 삶은 피곤한 삶이요, 헛된 삶이다. 하나님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은 이러한 삶을 살기에 삶 자체가 피곤하다. 솔로몬은 전도서 1:2절에 하나님 없는 인생의 삶을 “헛된 삶”이라 규정하면서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라고 반문하였다. 이는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고백이며 생각이다. 그리고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려고 한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

는 탕자처럼 인류의 불행은 하나님 없이 살려고 하는 데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회학자 A. Comte(1798-1857년)는 인간 정신발달을 세 단계로 구분하여 유아기의 신화적, 가상적 사고단계. 청소년기의 철학적, 추상적 사고단계. 성숙기의 과학적, 실증적 사고단계로 구분하여 종교란 인류가 유아기 단계에서 필요한 유물에 불과하기에 과학적 실증단계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는 神이 필요 없다고 하였다.

F. Nietzsche(1844-1900년)는 神에 대한 철저한 부정과 함께 神과 대립된 초인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사상과 함께 과학의 발달과 산업화는 현실적인 문제 해결과 영원한 내세보다. 현실적으로 잘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같은 시대적 사조는 합리주의, 개인주의, 물질적 부요로 인한 탈종교적, 탈윤리적으로 神으로부터의 해방과 자유를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살 수 없는 것이 세상살이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내 뜻대로 되고 안 되는데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최종 승리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실패조차 인생의 낭비가 아니다. 탕자가 도시에 나가서 젊음과 돈을 낭비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의 사랑과 가치를 깨닫게 되는 귀중한 경험을 하게 된다. 내가 실패한 것조차도 그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있음을 알게 된다.

작가가 영화나 드라마를 연출할 때, 주인공이 금수저를 물고 나와 호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내용을 연출하지 않는다. 한결같이 흙수저를 물고 나와서 어려운 고난과 시련, 위기를 넘어 최종 승리를 쟁취하는 내용을 연출한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의 연출가이시다. 요셉과 다윗, 욥의 일대기는 하나님께서 연출하신 한편의 드라마다. 이들과 같이 믿음의 사람들은 최종 승리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삶을 체험하게 된다.

여러분의 삶에 고난의 터널이 계속되고 눈에 눈물이 왜 그치지 않는가? 더 큰 축복과 승리의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고난은 내게 유익이라” 이 고백은 아무나 하는 고백이 아니다. 최종 승리와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을 믿고 확신하는 사람들만이 고백할 수 있다.

고난은 끝이 아니라 승리의 과정임을 믿고, 내년 한해도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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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열 목사] 최종 승리를 믿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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