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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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어떻게 이렇게까지 쓰레기가 쌓일 수 있지?’

 

전임자의 소홀한 관리로 아파트는 너무 지저분했다. 70대 어르신이 관리했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리수거장은 얼마나 묵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 쓰레기로 가득했다. 나는 관리소장이 된 후 며칠간 쓰레기만 치우고 있다. 처음에는 재활용품과 쓰레기를 분리하다가 포기하고 마대에 쑤셔 담기 시작한다. 쓰레기를 뒤적이다 갑자기 튀어나온 쥐새끼에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쥐와 눈이 마주친 것은 정말 오랜만이다. 몸살이 날 지경이었지만 ‘나는 군인이다.’를 속으로 되뇌며 3주를 그렇게 보냈다. 결국 1톤 트럭 두 대가 와서 폐기물을 실어나른 후 나는 비로써 쓰레기로부터 자유를 얻게 되었다.

 

땀과 먼지에 범벅이 되어 퇴근하면 더러운 몸을 소파에 잠시 기댄다. 먼저 씻어야 한다는 상식을 모른 체하며 호흡을 정리한다. 개척교회 목사인지, 노동자의 삶이 시작된 것인지 헷갈리며 머리가 더 복잡해졌다. ‘맞다! 오늘 수요일이지?’ 요일 지나는 것도 모르고 살아간다. 아직 개척 후 예배가 시작되지 않아 사임한 교회 수요집회 찬양 인도를 당분간 이어가기로 했다. 씻고 나서야 한다.

 

“여보, 나 수요예배 가기 싫어.”

 

목사가 할 말인가. 사실 평생 처음으로 해본 말이다. 가기 싫었던 적이 없지는 않지만 차마 입으로 꺼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미 통제력을 잃은 정신이 실언을 허락해 버렸다. 아내가 뭐라 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 수요일에 금요일에 교회에 나오는 분들은 대단한 헌신을 이미 드리는 것이었다. 퇴근 후 교회로 달려온다는 것만 해도 엄청난 믿음의 반응이고 신앙이라는 것이 체감되었다. 이제야 알게 되다니. 오늘 나의 투정은 큰 스승이 되었다.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치우고 나서야 관리소장의 일상 업무를 익히게 되었다. ‘행정, 관리비 정산, 협력업체 사장님들과 업무 조율, 세 층의 주차장 청소와 매일 분리수거장 정리.’ 기술이 크게 필요치 않았고 성실하게만 감당하면 될 일이다. 그러고 보니 중소형교회 부목사 업무와 상당히 닮았다. ‘소소한 건물 관리, 행정, 민원 정리.’ 목회활동을 제외한다면 거의 부자(父子) 관계처럼 많은 부분이 교회 업무와 닮아있다. 상대해야 할 사람이 교인이 아닌 입주민이라는 것 정도가 차이일 뿐? 하지만 이는 내 삶을 흔들어댈 정도로 엄청난 차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새로 오신 소장님인가 보죠? 안녕하세요. 저 벤츠 두 대입니다.”

 

싸늘하고 앙칼진 음성이 쓰레기를 처리하고 있는 내 뒤통수에 꽂혔다. 처음 보는 젊은 할머니 한 분이 서 있었고 호의적인 태도라고는 1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누구인가. 교회 밥이 얼마인데 이 정도 느낌에 미소를 잃을 수는 없다. “안녕하세요. 몇 호 입주민이세요?” 자신의 정체를 벤츠 두 대로 표현하는 사람에게 나는 지극히 기초적인 정보를 요구했다. 상대가 어느 세대 입주민인지를 알아야 했으니깐. 사실 벤츠 두 대는 내게 아무 감흥을 주지 못했다. 차량 정보를 밝힘으로 내가 더 겸손하기를 바랐던 것 같은데, 요즘 젊은 세대를 모르시는 듯하다. 상대가 벤츠를 타든 아우디를 타든 젊은 세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경차 스파크를 타도 상대의 외제 차에 기죽을 이유는 없다. ‘난 나니깐.’ 의도대로 내가 굽혀주지 못해서일까? 아주머니의 2차 공격이 이어진다.

 

“나 12층 살아요. 알죠? 복층 50평.”

 

그렇다. 40세대 중 가장 위층 네 집은 가장 큰 50평이다. 벤츠 공격에 이어 아파트 크기로 나를 압도하려 했으니 이 역시 유효타가 되지 못했다. 내게 50평 세대는 관리비를 더 내야 하는 입주민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 깨닫게 된다. 조금 숙여주는 척이라도 하는 것이 상대를 배려하는 것임을. 재산공개를 첫인사로 하는 사람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기에 미처 적절한 대처를 못 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것이 하나 더 있다. 이 아주머니가 우리 아파트의 빌런(villain)이며 나와의 악연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깊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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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작가 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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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안녕하세요. 벤츠 두 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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