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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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 목사(진해 웅천교회)

 구약의 말씀을 바꾸어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다 지켜 행하라”를 “다 믿어라”로 바꾸어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믿으면 행하게 되어 있다.

백집사님께서 전도하러 갔다가 그분께 과실 수 네 그루를 얻어와 교회당 화단에 심었다. 어디서 생겼느냐고 했더니 전도하러 갔다가 얻은 것이란다. 농사하시는 분도 아닌데 어디서 생겼느냐고 했더니 구청에서 식목일을 맞아 과실수를 나누어 준다는 말을 듣고 구청에서 얻어 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구청에서 나무를 나누어 준다는 말을 듣고 믿음으로 구청에 갔다. 나무를 얻어 온 분은 들음에서 믿음이 생겨 구청으로 가서 나무를 얻어 온 것이다. 듣고 생긴 믿음은 행함을 가져왔다.

성경에 다 지켜 행하라는 말을 믿음의 음성으로 들어야 한다. 예수께서 해 놓으신 것을 다 믿으라는 말로 바꾸어 듣는 귀가 필요하다. 우리 힘으로 지켜야겠고 생각하면 실패와 좌절뿐이다. 예수께서 이미 이루셨음을 믿고 감사와 감격으로 받아들일 때 행함은 즐거움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3-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10:4)

“다 지켜 행하라”는 말씀을 “주님이 하신 것을 다 믿어라”는 뜻이다. "행하라"를 "믿어라"로 바꾸어 읽어야 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라고 하셨다.

 

구약도 복음의 소식이다. 구약에서 사람은 철저히 망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신약도 마찬가지지다. 신구약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인간이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신약적인 예수를 믿어야한다고 주장한다. 구약을 믿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똑 같다. 해석을 잘못해서 그렇다. 구약도 복음이다. 신약도 복음이다.

신구약 모두 예수님을 통해 이루신 회복의 약속을 믿으라는 것이다. 구약을 율법으로만 보면 안 된다. 율법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한다고 그랬다(롬3:20). 예를 든다면 요즘 식당에서 담배피우는 것이 죄다. 화장실에서 흡연을 하면 죄다. 옛날에 담배 연기 때문에 식당가기 힘들었다. 옛날에도 담배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줬다. 그러나 법이 없을 때는 흡연이 잘못인 줄 몰랐다. 따져 보면 법이 없을 때도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답배를 피우는 일은 죄였다. 다른 사람이 담배 연기를 마시도록 한 일은 잘 못된 것이다. 그러나 법이 없을 때는 그런 의식이 없었다. 법이 정해지니 죄인 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율법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행복하게 살길 원하신다. 마음을 알고 율법의 요구를 저절로 실행하려면 사랑해야 마음을 알게 되고 저절로 실행하게 된다. 율법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니다. 율법을 폐하겠느냐? 그럴 수 없다고 했다. 우리에게 신부 마인드가 생기면 신랑인 하나님의 마음인 율법이 우리에게 오기 때문에 율법을 지킬 수가 있다.

사랑하지 않고는 마음을 진정으로 알 수 없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마음을 읽고 따라하려고 애쓰는 것은 무엇인가 얻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얻지 못할 때는 즉각 그만 둘 수도 있고 원망하게 된다.

 

누가복음 15장의 첫째 아들이 그러했다. 수년 동안 아버지 옆에서 열심히 일했지만 염소 새끼 한 마리 잡아 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한다. 아버지의 마음을 전혀 알지 못하고 아버지 옆에서 열심히 일만 했다. 아버지가 함께 한다는 행복을 전혀 모르고 열심을 내었다. “아버지가 이르되 얘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눅15:31)라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사랑 없이 행하려고만 하는 것은 행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잘못된 지식의 열심히 되어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할 수 없게 된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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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 목사] “다 믿어라”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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