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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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에반겔리아대학) 

 요즘 각종 언론을 통한 보도 중에서도 참으로 안타깝고 가슴 아픈 것은 인간의 고귀한 생명이 너무도 무참하게 희생되는 사건과 사고들이다.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 무참하게 짓밟히고 희생되고 있는데도 역사상 최고의 문명을 자랑하는 현대인들이 인간 생명의 가치에 이처럼 무감각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동식물을 포함해서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 소중한 최고의 가치다.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생명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성경은 인간 생명의 가치를 특별히 강조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을 제물로 삼는 인신 제사를 철저히 금하고 벌하셨다.

대부분의 이방 종교는 역사상 어느 시점에서 인간 생명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종교 의식을 행했다. 켈트족(Celts)의 세 주요 신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신 제사를 요구했다. 타라니스(Taranis)는 사람의 두개골을 도끼로 쳐서 불태우는 제사, 에수스(Esus)는 사람의 목을졸라 죽이는 제사, 테우타테스(Teutates)는 사람을 물에 빠뜨려 죽이는 희생 제사를 요구했다. 이러한 제사를 관장했던 드루이드(Druids)는 전쟁 포로들을 나무의 잔가지로 엮어 만든 우리에 가두고 산 채로 불태워 신들에게 제물로 바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노르웨이인들 또한 당시 편만해 있던 인신 제사 의식에 참여했는데, 아마도 가장 잘 기록된 것은 스웨덴의 웁살라 신전(Uppsala temple)에서 일어났던 제사 의식일 것이다.

그리스인과 로마인들도 그들의 초기 역사에서 인간 희생 제사 의식에 참여했다. 그리스 전설은 미케네(Mycenaean)시대에 행해졌던 수많은 인신 제사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플루타르코스(Plutarch)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Salamis) 전투 직전인 페르시아 전쟁 당시 까지도 인간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제사 의식을 행했다. 로마인들은 일반적으로 인간을 신에게 제물로 바치지는 않았지만, 공화정 시대에는 망령(죽은 자의 영혼)에게 인간을 제물로 바쳤다. 고고학자들은 로마의 성벽에 산 채로 묻힌 사람들을 포함하여, 이러한 희생자들 중 일부의 무덤을 발견했다. 로마인들은 어떤 경우에는 한 쌍의 희생자들을 산채로 묻었는데, 특히 로마가 칸나(Cannae)에서 한니발 장군에게 패배한 이후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이 모든 경우에서 우리가 추론해 낼 수 있는 사실은 거의 동일하다. 신들(또는 망령)이 인간의 생명을 원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인간 생명을 바치는 것을 가치 있게 여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신들을 공경하거나 신의 비위를 맞추어 호의를 얻기 위해서 그 사회는 소모적일 수 있다고 간주되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완벽하게 적하고 정당한 행위였다는 사실이다.

로마 후기 공화정 제국 시대에 오면 이러한 관행은 대부분 사라지고, 로마인들은 켈트족을 계속해서 인간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야만인으로 여겼다. 그런데 로마인들이 더 이상 신이나 망령을 위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이 갑자기 인간의 생명을 중시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죽은 자를 장사하기 보다는 기리기 위해 사람들로 하여금 ‘경기 게임’에서 죽을 때까지 싸우게 하는 에트루리아 관습(Etruscan practice, 인신 제사의 또 다른 형태)을 채택하고 이것을 대중적인 오락의 한 형태로 바꾸었다. 검투사들의 시합(Gladiatorial matches)과 서커스의 광경은 경기장에서 싸우다 죽은 노예들의 피를 대가로 대중을 즐겁게 하고 후원자들의 명성을 높이는 인신 제사의 또 다른 형태였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로마 당국은 감히 자신의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도전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할 데 없이 잔인하게 행동했다.

고대의 사회 문화에서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는 가치를 혹 찾아 볼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본질적 가치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존재의 위계질서를 보는 관점 또는 세계관에 기초해 있다. 인간을 동물 위에 두는 것은 인간이 갖고 있는 합리성 곧 이성적 능력이었다. 합리성은 그들을 정신의 세계, 즉 사상과 형상(form)의 세계에 더 가깝게 가도록 인도해 주는 능력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만큼 합리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동일한 인간 사이에도 자연스러운 위계질서가 있다고 보았다. 노예는 본질적으로 자유인 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겨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를 동물보다 조금 나은 ‘살아있는 도구’(living tools)로 평가했다. 남성은 여성보다 본질적으로 더 합리적이며 육체적으로 “분명히” 우월하다고 믿었다. 남자들 중에도 어떤 사람들은 지적으로 더 유능하다고 인정을 받았고, 이 우월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회를 통제했다. 소위 철인-왕(Philosopher-kings) 계급은 플라톤의 이상 국가(Republic)에서 통치했고, 각 사람은 사회 질서 아래에 있는 계층 구조에서 자신의 능력에 따라 그 사회에서 적절한 위치를 부여 받았다. 부, 혈통, 권력이 누가 누구보다 우월한지를 결정하는 기준이었다. 실제로, 귀족(aristocracy)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최상의 사람들에 의한 통치”를 의미한다. 나머지 시민들은 사회의 최하층에 있는 노예와 함께 그들의 부와 교육의 정도에 따라 등급이 매겨 졌다. 이방 사회의 이와 같은 비성경적인 인간관에 비추어 보면 성경이 인간의 가치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고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김성수 목사 (전 고신대학교 총장, 현 미국Evangelia University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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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 인간 생명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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