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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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 목사(진해웅천교회)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현재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다”(히1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막11:23). 놀랍지 않은가?

“믿습니다.”와 “믿음”은 다른 것이다. “믿습니다.”라고 하면 믿음인 줄 아는데 어떤 면에서 소망이다. 진짜 믿음은 “믿습니다.”라는 말을 안 해도 믿는다. "믿습니다."라는 말을 안 해야 하느냐, 그 말은 아니다. 소망도 있어야 한다. 소망과 믿음이 같이 가야 한다. 믿는 것은 "믿습니다."라는 말보다 강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냥 믿는 것이다.

부부가 만날 때마다 믿는다고 하지 않아도 믿는다. 우리가 어머니를 믿는다고 하지 않아도 그냥 믿는 것이다. 우리가 깊은 신앙에 들어가면 어머니를 그냥 믿듯이 주님을 소망하고 믿게 된다. 믿음은 그냥 믿고 있다. 믿음으로 출발하고 마친다. “나는 치유 받을 것을 믿습니다.”라기 보다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고 “나는 지금 치유 받은 것을 인하여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믿음으로 나온다.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암송해 보자.

 

왜 못 믿는 것일까? 무지 때문이다. 영적 무지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을 공부해야 한다. 말씀을 암송하고 그대로 믿어야 한다. 말씀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호6:3). 모르면 알아야 한다. 아는 것이 믿음이다.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사람도 알아야 믿어진다. 여호와를 알면 주님이 나에게 임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오감과 경험을 통해 믿으려고 하기 때문 못 믿는다. 오감은 육이다. 육은 혼에서 나온다. 혼을 어떻게 훈련시켰냐가 육이 만들어 진다. 우리의 생각이 육을 움직인다. “학교 가야지”하는 생각이 몸을 움직이게 한다. 혼이 육을 움직인다. 그런데 혼의 생각이 새로운 피조물인 영에서 나온다면 영의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육적이면 육의 영향력이 나온다.

혼이 육을 움직이다. 그래서 육적인 오감을 통해서만 느끼는 것은 믿음이 아닐 수 있다. 말씀에서 나오는 오감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을 모르기 때문에 못 믿는다. 믿음의 사람으로 완전한 데로 나아가자. 완전해 질수 있을까, 없을까? 성경에 보면 온전한 사람이 있다고 했다 그 사람의 말이 온전하면 온전하다고 했다. 말이 완전하면 완전하다. 무슨 말 말인가? 착한 말과 선한 말이 아니다. 복음을 말하면 온전한 말이다. 믿음의 말을 하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이다. 야고보서는 혀가 온 몸을 움직인다고 그랬다. 혀가 중요하다. 물론 좋은 말을 해야 한다. 좋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것은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 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히6:1-2).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4:5)라고 했다.

말씀은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 듣고 읽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묵상해야 한다. 다섯 가지다. 묵상은 주장하는 것이다. 묵상은 마음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묵상은 읊조리는 것이다. 읊조리는 사람이 있다. 읊조리는 사람은 그 세계 속에 빠져 사는 사람이다. 영적인 세계에 대해 읊조리며 살아야 한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주님은 이 일에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심으로 나는 평안함이 있고 하나님의 보호와 지키심이 있다." "내가 불 가운데로 지날지라도 괜찮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날지라도 나를 안위하시고 보호하신다." "이 사망의 음침함이 나를 넘어뜨릴 수 없다." "어떤 어려움도 나를 넘어뜨릴 수 없다. 나는 주님 안에서 평강이 있다."고 계속 읊조린다.

말씀을 들으라. 읽으라. 공부하라. 암송하라. 묵상하라. 나는 이것을 다섯 손가락으로 비유한다. 성경책을 다섯 손가락으로 꽉 잡고 있다면 누가 쉽게 못 뺏을 것이다. 듣는 것만 하면 엄지손가락 한 개에 성경책을 올려놓으려는 것과 같습니다. 잘 올라가지도 않지만 올려놓는다고 해도 조금만 흔들리면 떨어집니다. 듣기만 하는 사람은 어쩌다 손가락에 올라가면 올라갔다고 좋아한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한다. 듣기만 하면 안 된다. 여러분이 듣기만 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면 아무리 믿음을 가져도 떨어지기 쉽다.

읽기까지 한다면 이제 손가락 두개로 성경책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야, 이제 들었다. 야, 좋다"그러는데 옆에서 쉽게 빼앗아 갈 수 있다. 공부한다는 것은 세 손가락으로 성경을 잡는다고 보면 된다. 힘이 좀 더 들어간다. 그래도 빼앗기기 쉽습니다. 암송을 한다. 암송을 하면 힘이 생긴다. 그래도 불안하다. 묵상까지 한다. 다섯 손가락으로 꽉 잡고 있는 것과 같다. 누가 쉽게 빼앗아 가지 못한다.

   우리가 믿음 생활하면서 말씀을 어떻게 먹어야하는가? 듣고 읽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묵상해야 한다. 서재를 만들어라. 책상을 만들어라. 공부도 하라. 암송도 하라. 자꾸 암송하고 묵상하고 주장하면 내 안에서 말씀의 역사가 나온다.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신6:6-9).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수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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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 목사] 말씀에 푹 빠진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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