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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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부산 좋은나무교회)
「만화방 교회 이야기」 저자
「좋은인터뷰」 유튜브 채널 운영

 아파트 분리수거장. 정확히 표현하면 ‘분리수거용품 배출장’이 맞을 것이다. 이곳은 분리수거가 가능한 물품을 내어두는 공간이다. 그런데 여기를 쓰레기 버리는 곳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아니, 생각보다 많다. 관리하기 전에는 예상치 못했던 다양한 물품을 이곳에서 마주하게 된다.

 

회피 1순위는 위험한 물건이다. 칼, 쇠꼬챙이, 깨진 유리 등은 상당한 위협이 된다. 여러 물품에 섞여 있는 것을 모르고 치우다가는 큰일이 날 수 있다. 가볍게 몇 번 다친 적이 있어서 이제는 미지의 쓰레기 더미 속에 함부로 손을 넣거나 번쩍 들어 올리지 않는다. 왜 저런 흉기를 분리수거장에, 그것도 ‘꽁꽁’ 숨겨 두는지 모르겠다. 누구 하나 죽어보라는 걸까?

 

회피 2순위는 더러운 물건이다. 사용한 생리대, 사용한 기저귀, 변(똥), 배달음식 쓰레기 등 정말 토할 것 같은 녀석들이 나타난다. 불쾌하겠지만 이 글을 보시는 분도 상상을 해보시라. 아파트 공용공간에서 이런 흉물과 마주할 때 어떨 것 같은지. 다른 입주민 보기 전에 치워야 하는 사명이 내게 있지만 나 역시 회피 본능이 앞선다. 민망하게 구역질이 나오기도 한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분리수거장을 정리하다 보면 황당함에 어느 트로트 가수의 노랫말처럼 혼자 말이 터지기도 한다. 한 번은 지하 주차장 청소하다가 구석에서 발견된 변이 있었다. 사람의 것인지 동물의 것인지 모양으로는 애매했으나 발견된 위치가 구석진 것으로 봐서 사람의 소행이지 싶다. 동물이 굳이 저 장소에서 변을 누진 않을 것 같았다. 아무튼, 치우기 너무 싫고 구역질 나서 한참을 그냥 두었다. 자연적으로 말라 냄새도 줄고 말라 굳었을 때 치운 적이 있다. 열심히는 하고 있는데, 가끔은 모든 일에 주께 하듯 못하겠다. 비위가 너무 상해서.

 

계약된 근무는 주 5일이다. 주말에는 청소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분리수거장은 하루만 그냥 두어도 그 기능을 상실할 지경이기에 주말에도 잠시 나가 물건을 정리한다. 너무 하기 싫지만, 주일이면 오전 예배가 끝난 후 바로 아파트로 향한다. 양복바지에 작업화를 신고 3M 장갑을 낀 이상한 차림으로 신속히 정리한다.

 

‘아... 오늘 이건 또 뭐냐.’

 

한 봉투 안에 음식물과 잡쓰레기가 사이좋게 모여 있다. ‘그냥 치울까.’ 예배 끝난 후라 넉넉한 마음이 들다가 그냥 봉투를 까 보기로 한다. 뭔가 단서가 발견되면 주인에게 돌려줘야겠다는 더욱 선한 마음이 역사한 것이다. 큰 비닐을 주차장 바닥에 깔고 봉투 안의 쓰레기를 다 쏟아낸다. 오늘 주인공은 ‘회’다. 한때 싱싱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고약한 냄새가 난다. 주문하신 분은 채소를 싫어하나 보다. 함께 딸려 온 상추가 작은 비닐 안에 그대로 남겨져 있다. 섞여 있는 휴지와 플라스틱 용기를 뒤적거려 본다.

 

「초장을 많이 주세요.」

 

잔뜩 구겨진 주문서를 찾았다. 광어회 사이즈(size)와 초고추장을 추가 요청한 특이사항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심지어 주소와 연락처까지 남겨져 있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월급이 작은 관리소장은 용감하다. 입주민에게 전화를 걸어 그간 참아왔던 분노를 터뜨린다. 어물쩡 넘어가려던 입주민이 음식 종류와 크기까지 설명하며 따지니 부인할 수가 없다. 증거가 명백한 상황에 연신 죄송하다는 말 외에 변명조차 하지 못한다.

 

유사한 일이 자주 발생했다. 이번에는 다행스럽게도 사과를 받았지만,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주차장에 펼쳐둔 쓰레기 사진을 찍는다. 경고문을 만들 계획이다. 물론 이번에 식겁한 입주민의 신상은 드러내지 않고 공지할 계획이다. 까칠한 목사 관리소장이라는 말이 나와도 어쩔 수가 없다. 예쁜 글꼴을 골라 큼지막하게 문서를 만들어 출력한다.

 

 

 

 

「관리소장이 요즘 시간이 많습니다. 특이한 물건이 분리수거장에 나와 있으면 하루 종일 CCTV를 돌리거나 관련 증거를 수집해 공개할 계획입니다. 서로 어려운 일 없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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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작가 김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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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미안, 용서가 안 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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