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4(화)
 

 

신재철 목사(부산 좋은나무교회).jpg
신재철 목사(부산 좋은나무교회)
「만화방 교회 이야기」 저자
「좋은인터뷰」 유튜브 채널 운영

 급한 일이 없는 관리실은 평화롭다. 골치 아픈 민원이나 신경 써야 할 작업도 없다. 이럴 때면 작은 컨테이너 관리실에 앉아 소소한 업무를 진행한다. 그런데! 누군가 다가온다. 점점 거리가 좁혀지며 예상 이동 경로가 관리실로 보인다. 결국, 관리실 문이 열렸다.

 

“소장님 계시네? 우리 집 컴퓨터 한번 봐줄 수 있겠습니까?”

 

늘 이런 식이다. 관리실에서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져보려면 내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 입장한다. 카랑카랑한 경상도 할매의 음성, 집에 있는 컴퓨터가 이상하다는 말과 함께 도움을 요청한다. 집의 컴퓨터가 문제가 있는데 왜 관리소장에게 문의할까? 주로 어르신들이 계신 아파트. 자식들은 타지에서 바쁘게 살아간다. 자식들에게는 미안해서 연락을 못 하겠다 하시며 내게는 미안하지 않으신가 보다. 컴퓨터는 물론 소소한 살림살이에 관한 도움 요청이 많다. 이런 일에 엮이면 반나절 이상 소비되는 귀찮은 일이 된다.

 

“아, 그러세요? 컴퓨터 업체 전화번호 드릴까요?”

 

최대한 미소를 잃지 않고 여유롭게 응대한다. 내가 친절한 목사라는 것을 상대방이 인지하게 해야 한다. 그렇다고 일을 떠안을 수 없다. 이럴 때 가장 유용한 회피 기술은 전문 업체와 연결해 주는 것이다. 단순히 귀찮아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기술도 없는 사람이 종일 고생한 후 해결 못 하는 것보다 출장비를 지불하더라도 정확하고 빠르게 해결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비겁한 변명일까? 여하튼 지역에 소문난 컴퓨터 업체 사장님을 소개해 드렸다.

 

“어르신, 제가 고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한번 올라가서 봐드릴게요.”

 

10분이 못 되어 전화를 드린다. 얼마 전 홀로 되신 할머니를 돌려보내며 뒷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아이고, 소장님이 마음에 걸리셨구나.” 돌아설 때 무거운 표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전파를 타고 느껴진다. 나를 의지하며 찾아오셨는데 매몰차게 돌려보낸 것 같아 죄책감이 밀려왔다.

 

노인 냄새는 났지만 집은 깨끗하다. 안내받은 안방에 들어가 보니 구매할 때는 제법 비쌌을 것 같은 날씬한 본체의 대기업 컴퓨터가 있다. 그 옆에는 정사각형 비율을 통해 연로함을 자랑하는 작은 모니터가 자리했다. ‘지금까지 정상적으로 작동되었을까?’ 의구심이 든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 기다렸다. 오래, 오래, 아주 오래. 다행일까? 부팅이 된다. 맙소사. 부팅 화면에 나타난 화면. ‘윈도우 XP’ 호기심에 설정을 확인해 보니 ‘메모리 512MB’ 추억의 사양이다.

 

“가끔 인터넷 하고, 한글 프로그램만 돌아가면 됩니다.”

 

할머니가 요구한 조건은 이 녀석이 감당하기에 가혹하다. ‘인터넷은 될까?’ 혹시나 인터넷 사용은 가능할까 싶어 눌러보니 오랜 시간 후 연결은 되나 페이지가 열리지 않는다. 이건 답이 없다. 적당히 내가 만져서 살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뭐라도 살릴 수 있나 살펴보다가 항복을 선언했다.

 

“할머니, 이건 도저히 쓸 수 없겠어요. 차라리 ‘당근 마켓’에서 중고라도 사신다면 제가 도와드릴게요.”

 

내가 해드릴 수 있는 전부다. 본체와 모니터를 합쳐 10만 원만 줘도 지금 이 아이보다 나을 것이라는 조언을 해드리고 퇴장한다. 사실 내게 약간의 여유만 있어도 컴퓨터를 바꿔드리고 싶었지만 그럴 여력이 없다. 오래된 윈도우XP 보다 내가 더 무능한 것 같아서 할머니에게 괜스레 더 죄송스러워진다. 이번에는 내 잘못도 아닌데.

 

11_삽화작가 김주은 윈도운xp.jpg
삽화작가 김주은

 

태그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신재철 목사] 윈도우 XP, 너를 보게 될 줄이야.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