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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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진해영광교회)

 1. 서언(序言) 


  언젠가 어떤 교계 신문에서 “예수님 존함으로 기도합니다.”란 제목의 글이 게재되어 있는 내용을 흥미롭게 읽어본 적이 있었다. 국문학과 실천신학을 전공했고 신학교에서 국어학과 예배학, 비교종교학을 등의 언어학과 실천신학을 가르쳤던 필자로서는 아주 호기심이 가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가 예수님을 존칭어로 호칭한다면 그 뒷말도 ‘예수님 이름으로’가 아닌 ‘예수님 존함으로’라고 해야 경어 원리상 옳다.”는 논리였다. 여기에 대해서 이 말의 진위여부를 논하지는 않겠다. 왜냐하면 전자이든 후자이든 각자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기 때문에 어떤 말이 옳은지의 정답을 논하기는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2. 기고(起稿)의 동기 


   또한 이 용어 하나를 어떻게 사용 하느냐?를 읽고 보면서 필자 나름대로의 느낀 점이 아주 많았다. 그것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의외로 교회의 신앙적인 바른 용어를 잘 모를 뿐 아니라,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아주 허다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타 종교나 신앙적이지 않는 용어들, 심지어 타 종교의 교리적인 언어들까지 아무 분별없이 사용하고 있는 일들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이 일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세계의 어떤 언어든지 그 생성의 근원은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 종교적인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우리는 고조선 이래로 단일 민족의 역사로 이어져 왔고, 비교적 다 문화가 아닌 단일 문화권으로 이어져 왔기 때문에 사용언어의 고착화는 옛날부터 되어져 왔다. 또한 이러한 언어문화는 우리나라의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샤머니즘과 불교, 유교의 종교적인 전통 속에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쉽게 고쳐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또 그러한 용어들을 쓴다고 해서 그렇게 나쁠 것도 없다. 왜냐하면 타 종교권의 말이라 할지라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경남기독신문에서 이러한 필자의 작은 사명을 정리하여 발표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여 주었다. 그래서 7-8년 전에 근 3년여 동안 ‘기독교인의 생활용어 바로잡기’라는 코너의 지면을 통하여 나름대로의 소견을 발표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시리즈 형식으로 연재하게 될 것이지만, 용기를 주시는 몇분들의 요청과 다시 한 번 정리한다는 입장에서 감히 졸고를 수정 보완하여 다시 기고를 함과 동시에 책으로 출판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이런 면으로 나름대로의 전문성과 논리성을 갖춘 다수의 선행연구들과 서적들이 있었고, 또 이를 참고하였음을 먼저 밝혀둔다.
  ‘해아래 새것이 없다.’(전1:9)는 말씀대로 앞의 선행연구들과 내용이 비슷하거나 반복되는 내용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고를 내는 것은 용어란 계속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계속 생성하고 발전하는 생물체와 같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언어는 시대와 문화의 변화에 따라 그 부침(浮沈)을 계속하며 변화하기 마련이다. 특히 본 기고에서 논하고자 하는 것은 주로 기독교 용어를 중심으로 하고, 기타 타 종교권 용어들을 비교 분석하려는 일이다. 그렇게 함으로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사용하지 말아야 할 용어들과 사용해도 무방한 용어들을 구별하고자 한다. 그러다 보니 각 종교의 역사성과 전문성에 따른 용어들의 새로운 발견과 차이성을 계속 발견하게 되었다.
올바른 기독 언어문화 창달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대장정의 글을 시작하고자한다.

 


 3. 결어(結語)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란 말이 있다. 그 말 그대로 타 종교권의 용어를 알고 구분함으로서 바른 믿음을 지키고 우리의 용어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이에 필자는 이런 면으로 나름대로의 작은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기존의 선행연구들을 참고하면서 나름대로 발견한 작은 부분들을 첨가하여 현시대에 알맞은 용어연구를 하고자 한다. 물론 이러한 연구는 주관적인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은 연구의 기고가 오늘날의 올바른 기독 언어문화 창달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이 대장정의 글을 시작하고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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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 기독교인의 생활 용어 바로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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