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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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기총 · 경남성시화, 2020년 신년감사예배 및 하례회
    사단법인 경남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박정곤 목사, 이하 경남기총)와 경남성시화운동본부(대표회장 오승균 목사, 이하 경남성시화)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2020년 신년감사예배 및 하례회’가 지난 1월 9일(목) 오전 11시 창원시 ‘그랜드 머큐어 앰배서더 창원’ 퍼스트 하우스에서 열렸다. 1부 예배는 경남기총 수석부회장 박종희 목사(창원반석교회)의 인도로 시작해 장로부회장 하성암 장로(마산재건교회)가 대표로 기도하고 경남도의원 윤성미 권사(새누리교회)가 성경봉독(대상29:10-13)한 후 고현교회 가온누리미션콰이어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어 경남기총 명예회장 황봉린 목사(진해중부교회)가 ‘성공적인 지도자의 삶’이라는 제하의 말씀을 전하고 명예회장 이종승 목사(임마누엘교회)의 축도하심으로 예배를 마쳤다. 2부 신년하례식은 경남성시화 사무총장 김종준 목사(홍대교회)의 사회로 경남기총 총무 이상택 목사(회원동부교회)가 내빈을 소개하고 경남기총 대표회장 박정곤 목사(고현교회)와 경남성시화 대표회장 오승균 목사(마산성산교회)가 신년사를 전했다. 이어 박성오 행정부지사와 경남도의회 김지수 의장, 허성무 창원시장이 축사를 전했다. 특별히 이번 하례식에서 경남기총 직전회장 홍근성 목사(한샘교회)에게 공로패를 전달하고 직전 사무총장 이범석 목사(시온감리교회)에게 감사패를 증정했다. 증정식 후 사무총장 신진수 목사(한빛교회)가 광고를 하고 홍근성 목사 오찬기도 한 후 서로 교재하고 식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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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 [오성한 목사] 치유와 기적의 삶
    나는 믿는 자에게 주신 기적의 능력을 믿고 이미 주신 권세를 인정하고 환영하는 기도를 많이 한다. 신바람이 나기도 한다. 뜨겁게 말씀을 인정하는 기도를 할 때, 나에게 주신 능력이 믿어지고 생생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요5:19)고 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일을 보시고 그 일을 따라 하셨다는 말이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은 분명히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보았다. 우리도 먼저 보아야 한다. 본 사람은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따라 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뜻들을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신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도 믿음의 눈으로 예수님께서 보셨던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쉽게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먼저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시고, 아들도 그것을 행하셨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면 아버지께서 하신 일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곧 아버지께서 행하신 일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보기 위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열심히 성령의 도우심으로 보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 성경을 펴놓고 읽으면서 기도를 자주 한다. 특히 마가복음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 생동감이 넘치는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 마가복음을 행동 복음이라고 별명을 붙었다. 마가복음의 저자인 마가는 성격이 직설적이고 적극적인 사람으로 평가되어진다. 왜냐하면 다른 복음서보다 “즉시”, “곧” 등의 단어들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가 마가복음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기록한 성경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가복음을 참고해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기록했다고 본다. 제일 먼저 원천적인 강렬함이 보이기 때문에 기도할 때는 마가복음을 보면서 기도하면 더 강렬한 믿음이 생기는 것 같다. 물론 다른 성경들도 나의 기도목록들이다. 마가복음 1장에서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 4명을 부르셨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형제였다. 야고보와 요한도 형제였다. 이 두 형제들을 부르실 때 그들은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따름을 볼 수 있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셨는데 기사와 표적이 연속적으로 일어남을 기록하고 있다. 마가복음 1장 안에 기사와 표적이 연속적으로 다섯 가지나 일어남을 볼 수 있다. 나는 마가복음 1장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면서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이 기사와 표적이 함께 했음을 분명히 보았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심의 권세에 사람들이 놀랐다. 그뿐만 아니었다. 능력 있는 가르침으로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르칠 때 더러운 귀신들인 사람이 있어 소리를 질렀다. 예수님께서는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경련을 일으키며 큰 소리를 지르며 나왔다(막1:26). 회당에서 나와 시몬의 장모가 집에서 열병이 들어 누워있었는데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을 즉석에서 들었다(막1:31). 저물게 되었을 때 소문을 듣고 몰려든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셨다”고 기록한다(막1:34). 밤이 되어 주무신 다음 새벽 일찍 기도하시러 한적한 곳을 찾으셨다고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그들의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쫓아내셨다(막1:39). 연이어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끓어 엎드려 “원하시면 깨끗하게 하실 수 있으시다”고 간청을 할 때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라고 기록한다((막1:41-42). 이렇게 짧은 기록 속에 다섯 번이나 생동감 있는 표적과 기사와 함께 가르치시고 전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신 것”이다(요5:19).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면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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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 [아침묵상] 마무리를 잘 합시다.
    영국에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2019년이 끝나갑니다. 나는 오늘(28일) 올해의 마무리를 위하여 오늘 함양, 산청, 고령을 다녀왔습니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있어 아침 8시에 집에서 출발하였다가 밤 11시에 돌아왔습니다. 피곤하지만 미루고 미루어 두었던 일의 마무리로 다녀오니 마음이 개운합니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2019년이기에 나머지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정리하는 데에 하루하루를 보내려 합니다. 인생살이 마지막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아지게 됩니다. 젊은 날들은 실수도 많았고 허물도 많이 범하였습니다. 그럴수록 나이 들어가면서 마무리를 잘 하게 되면 지난날의 모든 허물도 시행착오도 오히려 보석같이 빛나게 됩니다. 야구 경기에 9회 말 홈런으로 지고 있던 경기를 역전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들 인생살이를 그와 같이 9회 말 홈런으로 멋진 마무리로 마칠 수 있다면 얼마나 귀한 일이겠습니까! 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너그러움’의 소중함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너그러움이 인간관계에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너그러움에 인색한 사회입니다. 그래서 서로 부딪히고 서로 상처 받으며 스트레스를 쌓아 갑니다. 한 해를 너그러움으로 마무리하도록 힘써 봅시다.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하여도 너그러워집시다. 자신이 지난날 멍청하게 살아왔던 일들에도 너그러워집시다. 그래서 자기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줍시다. 그러면 인생 마무리를 훨씬 더 평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일입니다. 지난날들에는 그렇게 멍청한 일들을 하였으니, 이제 나이 들어 마무리를 잘하자. 내 인생 9회 말 홈런으로 마무리하자. 이런 식으로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한 해의 마무리를 깔끔하게, 멋있게 마무리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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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 [배효전 목사] 사명
    은 나팔 뿔 나팔을불고 또 불지어다 언젠가 귀가 열려들릴 때가 있으리라 나팔수낙심 마라라 저 바다가쉼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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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 [신앙과 삶] 진짜 최선을 다했습니까?
    어느 집의 아이 하나가 큰 돌 하나를 마당 건너편으로 옮기느라고 진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그 아이의 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넌 왜 네가 가진 힘을 다 쓰지 않고 있니?” 아이는 낑낑대며 고생하는 자신을 보고 그런 말을 하는 아버지가 밉고 속이 상해서 말했습니다. “아빠, 지금 제가 온 힘을 다 쓰고 있잖아요. 제가 낑낑대고 땀을 흘리는 것을 보면서도 그렇게 말을 하세요.” 그 말을 듣고 아버지가 대답했습니다. “아니야, 너는 나보고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잖니. 그것이 힘을 다 쓰지 않은 것이야!” 그렇습니다. 아버지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는 아버지에게 전혀 도움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그것이 자기 힘을 다 쓰지 않은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께 제대로 기도도 해보지도 않고 나는 최선을 다했노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직 최선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노예 해방의 주역이었던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기도 외에 달리 의지할 것이 없다는 확신으로 인해 여러 번 무릎을 꿇곤 했다. 나 자신의 확신과 주변 사람들의 확신만 가지고는 하루를 살아가기에 부족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입니다. 그것이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늘 무릎을 꿇으며 산다는 것, 그것이 내가 내 삶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미국의 어느 직장에서 갑자기 퇴출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직장에 출근해 보니 아무런 설명도 없이 책상에 해고 통보서가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람은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직장과 자신의 상관들에 대한 복수심이 끓어올랐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와 함께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그는 며칠간 집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방황한 후에 집으로 왔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나는 죽고 싶소. 나는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했지만 그런데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고 사람들은 다 나를 배신하는 것 같소.”그 말을 듣던 그의 아내는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보, 당신은 열심히 했다고 말하지만 한 가지 시도를 해보지 않았어요. 당신은 당신이 처한 이 상황과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하나님과 대화해 본 적이 없잖아요?” 그 사람은 이상하게도 아내의 그 말이 가슴에 꽂혔습니다. “그래 맞아.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나는 이 일에 대해 하나님께 제대로 기도해 본 적이 없지!” 그렇게 생각하고 그는 아내와 함께 기도의 자리를 마련하고 집중적으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참 이상한 것은 그렇게 며칠 기도하는 동안 마음속에 있던 직장과 상사를 향한 미움과 복수의 감정이 먼저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그렇게 기도하는 가운데 자신 속의 미움과 복수의 감정이 사라지자 머리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 집을 담보로 은행 융자를 얻어 조그마한 건축업을 시작했습니다. 사업이 잘 되어 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5년 만에 작지만 자신의 기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기도에 재미를 붙여서 늘 기도하던 그는 어느 날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제가 건축을 하면서 여기 저기 여행을 하다 보니 좋은 호텔이 없습니다. 멋진 호텔은 있지만 너무 비싸고, 작은 호텔은 너무 분위기가 안 좋습니다. 그래서 제가 새로운 호텔을 지었으면 합니다. 아주 깨끗한 호텔, 그러면서도 적절한 가격에 쉼을 제공할 수 있는 호텔을 짓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그는 하나 둘 호텔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세계적인 체인이 된 홀리데이 인 호텔(Holiday In Hotel) 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은 홀리데이 인 호텔의 창업자인 케몬스 윌슨이라는 사람입니다. 제대로 기도해 보지도 않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 그리피스 조이너는 자신의 승리의 비결을 말하기를 “열심히 기도하고 그리고 열심히 노력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제대로 기도하고 나서야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새해에는 진짜 최선을 다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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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 [박성규 목사] 교우들에게 드리는 송년 인사
    주안에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를 최선의 길(the best way)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립시다. 하나님은 매우 좋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용납하시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게도 하셨습니다. 어떤 경우는 한계의 벽 앞에서 인내하는 믿음을 주기도 하셨습니다. 어찌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2019년도는 정치, 경제적으로 대단히 심각한 갈등이 우리 사회에 있었습니다. 한국인으로산다는 것이 스트레스 가운데 사는 것으로 느껴지셨을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매우 큰 어려움을 겪은 성도님들도 적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성도님들께서 하나님을 사랑하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헌금하여 주시므로 교회는 큰 힘을 얻었습니다. 여러분 모두의 눈물겨운 헌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새해에 여러분의 믿음 생활과 건강, 자녀들의 미래와 경제생활에 큰 은총을 베풀어 주시길 축복합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지키고 헌신해 오신 모든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는 한 가족입니다. 에베소서 2장에 나오는 이방인교회와 유대인교회가 하나라는 말씀처럼 하나입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지켜오신 올드 타이머(Old Timer)가 계시기에 오늘의 교회가 있습니다. 또한 새로이 뉴 커머(New Comer)가 오셨기에 내일의 교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러셨듯이 서로를 더욱 존중하면서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갑시다. 연말과 연시에 여러분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송구영신예배에 온 가족이함께 나오시길 바랍니다. 한 해를 보내며, 또 한 해를 맞이하는 시간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둘째는 신년 및 특별새벽부흥회 등에 온 가족이 꼭 참석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자녀들의 손을 잡고 모두가 힘써 나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우리와 자녀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는 한 해가 될 것입니다. 그 어두운 시대를 별처럼 밝혔던 에스더처럼 우리와 우리 자녀손들이 삶에서 당하는 어두운 환경을 극복하는 승리가 이번 신년 예배부터 시작될 것을 믿습니다. 아울러 가까운 성도 중에 차편이 없는 분들을 돌아보고 카풀로 섬기는 등 성도가 서로를 돌보는 아름다운 일들이 많기를 바랍니다. 새해에 하나님의 복이 여러분의 가정과 하시는 일에 가득하시길 빕니다. 또한 우리 기독교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복의 통로로 우리나라와 열방(列邦)을 위해 쓰임받기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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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 [바이블 큐티]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마 21:1-46)
    주님을 성전에 모셔라 주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성전은 어떠했는가? ① 매매하는 상거래 장이었다. 우리가 간혹 교회에서 바자회도 하고, 또 기관에서 이런 저런 물건을 팔기도 한다. 그 자체를 보면 상거래 같지만 그것은 선교와 전도를 위한 선한 동기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님이 지적한 것은 구원의 감격을 찬미하는 성전이 상거래 하는 이익의 도장으로 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② 돈 바꾸는 금고였다. 물론 이방 지역에 흩어져 있었던 디아스포라들이 본국에 왔을 때 돈을 바꾸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성전 밖에서 일어나야 한다. 성전 안에 들어온 모든 돈은 연보궤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연보궤 안에 들어가지 않은 돈이 교회 안에서 유통이 되고 실력행사를 하는 것은 타락한 중세 교회상이다. ③ 비둘기파는 새장이었다. 성전에 갈 때 양이나 비둘기를 가지고 간다. 그것은 놋제단에서 재물이 되어야 한다. 성전에서 울어대는 양이나 비둘기는 아직 제물이 되지 않았기에 죽어야 할 제물이 살아 있으니 소음 공해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죽어 제물이 되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자아가 살아서 소리를 지르니 온 교회가 소란한 것이다. 성전은 만민이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집이다. 성전에서 상거래 소리가 나서도 안되고, 성전에서 돈이 실력행사를 해서도 안 된다. 바울은 오늘 우리 시대에 참된 제사를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주님을 배불리 대접하라 시장했던 주님은 열매를 얻기 위해 무화과나무 곁으로 갔다. 그 날은 베다니에서 하루를 머물고 이튿날 아침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열매 없는 이 무화과나무가 당시 유대의 종교적 실상이요 오늘날 우리의 현주소이다. 이 무화과는 어떠한 존재인가? ① 길가에 심겨진 나무다. 유대지방에는 6월과 8, 9월 두 차례 열매를 거둔다. 그런데 지금은 4월 유월절 때이니 열매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마가는 무화과 때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에는 3-4월에 지극히 맛이 없는 빈민들이나 길 가는 나그네들이 식료로 사용되는「빠김이」라는 것이 있다. 주님이 찾으신 것은 바로 그 열매이다. 이 무화과나무는 그 사명을 저버린 것이다. ② 잎만 무성했던 나무이다. 잎은 열매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잎이 무성하면 반드시 열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열매가 없었다. 이는 당시 외식하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의 모습이었다. ③ 결국 말라서 죽어버린 나무가 되었다. 열매 맺지 못한 나무가 저주를 받은 것처럼 사명을 저버린 인생도 존재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열매 없는 나무는 살았으나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 없는 인생은 죽은 존재와 같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실 뿐만 아니라 창조질서의 모든 피조 세계를 다스리시는 주님이심을 가르쳐 주신다. 이 사건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책망하는 살아있는 설교였다. 외적으로 율법의 규례만 좇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내적으로는 잎사귀 속에 감춰진 열매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나 하등의 다를 바가 없었다. 그 흔한 빠김이 하나라도 맺지 않았으니 더 이상 땅만 허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주께로 돌아와 순종하라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다. ① 맏아들에게 얘야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니 그가 대답하기를 “가겠소이다”하고는 자기 할 일 다 하고 가지 않았다. 이는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모습이다. 대답은 속시원하게 ‘예’했으나 행위는 그와 정반대였다. ② 이제 둘째에게 가서 이같이 말하니 ‘싫소이다’하고는 곰곰히 생각해 보니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도 아프게 한 것이 마음에 걸려 뉘우치고 포도원으로 갔다. 이는 당시 세리와 창기들의 모습과 같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등지고 자기의 정욕대로 살았다. 그러나 후일에 뉘우치고 회개하고 돌아왔다. 이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을 행한 자인가?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 중심을 보신다. ※저자의 허락에 의해 일부 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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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 [쉴만한 물가] 일곱째 날을 복 되게 하시는 하나님
    하루하루의 날을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날이기에 하루하루가 귀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내일을 모릅니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일곱째 날을 복 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일곱째 날은 하나님께서 복 되게 하신 안식일, 주일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복 되게 하신 날이기에 귀한 날이고, 복된 날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한 날입니다. 주일을 귀하게 여기는 자는 주일을 복 되게 한 날로 정하신 하나님을 귀히 여기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주일을 통해 하나님을 예배하게 하시고 영육을 쉬게 하십니다. 주일을 통해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일주일에 하루 주일 쉬면서 예배드리는 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영육이 강건해 집니다. 쉬지 않고 일만 하면 지치게 되고, 병이 들기도 합니다. 주일날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리고, 은혜 받고 재충전하여 새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로 정한 날, 주일을 귀히 여기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로 지켜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라는 말씀은 십계명의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주일을 복 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주일을 지키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살 때에 믿음이 떨어지게 되고,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멀어지면서 죄 짓게 되고, 타락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주일을 지킬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주일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주일, 주의 날에 성령이 임하고 은혜 받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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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쉴만한 물가
    2020-01-01
  • [조희완 목사] 관리의 책임
    우리나라의 TV 방송 프로 가운데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가 있습니다. 그 프로에서 오래 전 <벼락부자, 그 후 - 부자라서 행복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방송을 했습니다. 한기수씨(가명)는 로또 복권 1등 170억 원에 당첨이 되어서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되고 인생 역전의 기회를 맞이하였습니다. 부부간에 유난히 금슬이 좋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거금(巨金)을 관리하는 문제를 가지고 부부가 서로 다투다가 9개월 만에 합의 이혼을 하고 가정에 쪼개지고 말았습니다. 충청도 한 시골 마을에서 3대째 농사를 짓고 살던 양만철씨(가명)의 경우 토지 보상금으로 120억 원의 거금을 받고 벼락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토지 보상을 받는 과정에 동네 이웃들과 관계가 멀어졌고, 그 일 때문에 우울해 하다가 어느 날 농약을 마시고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돈 때문에 자기 아버지를 잃고 좋은 이웃을 잃은 그의 아들이 말하기를 “지금보다 이전에 삶이 훨씬 더 행복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부자(富者)가 되고 싶은 욕망은 누구에게나 다 있습니다. 갑자기 큰돈이 생기고 큰 부자가 되는 것은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큰돈이 생겨서 부자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큰 돈을 어떻게 잘 다스리고 관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좋은 것이지만 그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다스리지 못하면 도리어 화(禍)가 되고 재앙(災殃)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돈 뿐만 아니라 너무나 귀한 것들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귀한 것들을 제대로 잘 관리하지 못하면 더 이상 귀한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귀하게 여기고 잘 관리해야 할 것들이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받은 은혜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갈1:6-7절) 둘째로, 주신 시간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엡5:16-18) 셋째로, 주신 물질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요6:11-12)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것을 잘 관리해서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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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 <정연철 목사의 행복 콘서트>비전의 사람 (6)
    사람들은 거룩한 예배에 대해 많이 가르칩니다. 그런데 예배 중에 손뼉을 치지 않고 조용히 소곤소곤 기도하는 것이 거룩한 예배가 아닙니다. 우리 주님은 “사람은 외모를 보나 나는 그의 중심을 보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려고 할 때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아들들을 불러 놓고 그 앞을 지나가게 했습니다. 다윗만 빼고 모든 아들을 다 보여주었지만 사무엘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가 아버지 이새에게 “너의 아들 가운데 또 다른 아들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막내가 있는데 저 목장에서 양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면 빨리 올라오라 하라.” 다윗이 갑자기 부르심을 받고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데 머리에는 먼지가 뿌옇게 앉았습니다. 목동으로 일을 열심히 하다 보니 옷에서는 짐승들의 배설물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때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외모를 보지 말아라. 나는 중심을 본다. 다윗에게 기르믈 부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외적으로 옷 잘 입는 것을 보지 않고 마음의 태도와 중심을 보는 분이심을 성경은 증언합니다. 중심으로 하나님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의 제물이 될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시며 그런 예배자가 성공적인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 예배를 열납하십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 초청되어 말씀을 전하는데 성령이 이방 사람인 고넬료의 집에 임했습니다.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는 첫 사건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때 복음전파에도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에 서울의 모 교회에서 대형 버스를 타고 소록도를 갔습니다. 소록도 교회당에서는 나병 환자들만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주먹도 없고, 귀도 없고, 코도 없는 사람들이 “인애하신 구세주여..., 기쁘다 구주오셨네...”를 부르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갑자기 신사들이 들어오자 나병 환자들이 “병신들 왔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서울에서 오신 장로님, 권사님 등 쟁쟁한 분들이 들어가니 병신들이 왔다고 한 것입니다. 얼마나 기분이 상했겠습니까? 그래도 어떻게 합니까? 못 들은 체하고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눈썹도 뭉개지고, 코도 뭉개졌는데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송을 기뻐서 즐겁게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장로님들이 코가 납작해졌습니다. “맞아. 저분들이 환자가 아니라 우리들이 환자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무엇이 거룩인지 알아야 합니다. 어떤 예배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예배를 받으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제물은 산 것으로 드려야 하며 그 산 제물이 바로 우리의 몸이어야 합니다. 여기서 몸을 드린다는 것은 시간을 바친다는 뜻입니다. 목사님이 교회 일 좀 하라고 하면 “나는 못해요.”하고, 청소 좀 하라고 하면 “나는 바빠서 못해요. 교회 재정으로 청소부 쓰면 되잖아요.”라고 말하는 성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저는 토요일이 되면 모든 부교역자들에게 교회 청소를 시킵니다. 부교역자들에게 목회자로서 실천해야 하는 삶의 목표와 지침들을 확실하게 가르칩니다. 교인들은 일주일간 직장에서 수고하고 피곤한데 교역자들이 교회 청소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교회 청소를 한 후에 교역자 회의를 합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 앞에 돈만 드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돈만이 아니라 우리의 몸과 마음이 함께 드려지는 것이 때문입니다. 성도 각자의 수고와 땀과 눈물이 교회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어야 ‘이 교회가 우리 교회구나.’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간을 드리는 것이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땀을 흐리고 수고하는 것이 몸을 드리는 것입니다. 돈으로 때우거나 남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먼저 솔선하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많은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저는 장로님들에게 “장로님들이 먼저 솔선수범하세요. 종이를 주우시면서 같이 줍자고 하세요.”라고 권면합니다. 어느 날 선임 장로님이 그 무더운 여름에 땀을 흘려가면서 제 차를 세차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장로님, 체통이 있지요. 누가 보면 뭐라고 합니까? 빨리 치우고 들어가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장로님은 “체통이 뭐예요. 장로가 해야 될 일이 뭔데요. 목사님이 바빠서 세차할 시간도 없는데 제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하셨습니다. 선임 장로님이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니 그 다음 장로님들도 자연적으로 따라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몸을 드려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제물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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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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