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총장] 인간 없는 세상
만약 인간이 지금 이 순간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이 행성은 어떤 표정을 되찾게 될까. 멈출 줄 모르는 기후의 극단화, 눈앞에 닥친 해수면 상승, 끝없이 반복되는 산불과 홍수는 이 질문을 더 이상 공상으로 남겨두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인간의 탐욕과 무절제한 개발이 만들어 낸 생태계 붕괴의 한복판에 서 있다. 어느 지역에서는 기록적인 폭염이, 또 다른 지역에서는 이례적인 한파와 폭설이 일상이 되었고, 가뭄과 집중호우는 계절의 질서를 무너뜨린 채 번갈아 지구를 강타한다. 숲은 불타고 강은 범람하며, 바다는 서서히 육지를 삼킨다. 태평양의 작은 섬나라들은 해마다 국토가 줄어드는 현실 앞에서 국가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산불과 홍수는 더 이상 예외적인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간 문명이 스스로 불러온 구조적 재앙이 되었다.
기후 재난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예측이 아니다. 바다 속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산호초, 남극에서 빠르게 녹아내리는 빙하, 해수면 상승으로 물속에 잠기고 있는 투발루와 몰디브 같은 섬나라들. 이들은 단지 생태계의 피해자가 아니다. 오히려 인류가 지금 이 순간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증언하는 현실의 경고장이다. 공장은 멈추지 않고, 플라스틱은 바다를 뒤덮으며, 벌목과 댐 건설은 야생 생물의 터전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의 이면에서, 창조 세계는 조용히 무너지고 있다.
이 모든 장면은 우리에게 하나의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지구가 이렇게 아픈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중심에 인간은 어떤 존재로 서 있는가.
앨런 와이즈먼(Alan Weisman)은 그의 책 『인간 없는 세상』에서 하나의 가정을 제시한다. “만약 인간이 지금 이 순간 지구에서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질문은 단순한 공상과학적 상상이 아니다. 인간의 손길이 끊긴 체르노빌 지역에서 자연이 놀라운 회복을 이루는 모습을 통해, 그는 역설적으로 말한다. “인간 없는 지구는 오히려 살아날 수 있다.” 이 문장은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인간이 존재하는 지구는 왜 이렇게 아픈가. 문제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대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인간이 창조 세계를 돌보는 청지기의 자리를 망각했기 때문이다. 성경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라”고 명령하셨고(창 1:28), 동시에 “에덴 동산을 경작하고 지키게”(창 2:15) 하셨다. ‘정복’은 파괴가 아니라 책임 있는 관리이며, ‘지킴’은 무제한적 개발이 아니라 보호를 전제로 한 사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명령을 오해했고, 오용했으며, 결국 외면해 버렸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이 병든 지구의 얼굴이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땅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다음 세대의 것이며, 피조물 전체의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만을 위해 지구를 창조하지 않으셨다. 시편 기자는 “주의 손으로 지으신 이 세계가 주의 영광을 선포한다”고 노래했다(시 19:1).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그 영광을 드러내는 자리에 서 있는가, 아니면 가리는 자리에 서 있는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이다. 플라스틱 컵 하나, 무심코 켜 둔 전등 하나, 소비 중심의 삶의 방식 하나하나가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조금씩 무너뜨리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 환경 운동은 ‘의식 있는 시민’만의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신앙적 응답이다. 생태계를 돌보는 일은 전문가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땅을 지키는 사람, 바다를 치유하는 사람, 동물과 나무를 아끼는 사람 모두가 하나님의 공동 청지기다.
지금은 우리가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할 때다. “땅이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았고”(창 3:17). 그러나 성경은 동시에 회복의 약속도 전한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계 21:1). 하나님은 파괴의 하나님이 아니라 회복의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그 회복의 동역자로 부르신다. 우리 모두 땀 흘려 땅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설교를 듣는 데서 멈추지 않고, 쓰레기를 줄이며, 나무를 심고, 에덴의 청지기로 다시 서야 한다. 창조는 하나님의 선물이고, 우리는 그 선물의 관리인이다.
병든 지구를 고치는 일은 거창한 정치 선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금 내 손에 들린 종이컵 하나를 내려놓는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회개는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증명될 때, 비로소 진짜가 된다. 이 준엄한 청지기적 소명에 내가 봉사하고 있는 탄자니아 아프리카연합대학교가 신실하게, 순종적으로 응답할 수 있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김성수 목사 (탄자니아 아프리카 연합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