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최호숙 목사님(230410).jpg
최호숙 목사(인평교회)

 인생의 삶 과정에는 육적인 권태(倦怠)뿐만 아니라 영적 권태기가 있다. 권태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관심이 없어지고 시들해져서 생기는 싫증이나 게으름” 뜻하는 말이다.

<군주론>을 쓴 이탈리아의 정치 사상가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가난도, 걱정도, 병도 비애(悲哀)도 아니다. 그것은 권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는 이렇게 말했다.

“권태 보다는 죽음을...”

인생에 권태를 느끼며 하품만 하고 따분하다고 불평만 하는 사람처럼 세상에 비참한 사람은 없다.

코로나 이후 교회 내 세 부류의 사람이 형성되게 되었다. 첫째 부류는 코로나로 인해서 오히려 신앙이 성장한 성도들이 있고, 둘째 부류는 신앙이 떨어진 성도들이고, 셋째 부류는 평상유지하며 사는 성도들이 있다. 코로나로 인하여 오히려 신앙이 성장한 사람이라고 하면 유의하여 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욥에 대하여 사탄에서 자신 있게 변호하기를 “네가 내 종 욥을 유의(留意)하여 보았느냐?”

시인 나태주 씨가 <풀꽃>이라는 시를 발표하면서 풀꽃의 가치에 대해서 변호하며 이렇게 시(詩)를 지었다.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하나님께서도 욥의 신앙의 가치를 칭찬할 때에 욥을 그냥 흘려보아서는 안 되고 자세히 집중하여 보면 그가 가진 신앙은 어떤 역경 속에서도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보석 같은 존재라고 하였다.

우리의 신앙은 환경에 지배를 받아 무너지는 신앙, 무기력한 신앙의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신앙을 세우기 위한 활기찬 전진이 있어야 한다. 노력의 나무에는 반드시 충실의 향기가 있고, 향상의 꽃이 피고, 행복의 열매가 열린다. 우리는 땀의 배려로 노력의 나무를 가꾼다.

권태의 나무에는 반드시 허무의 악취가 나고, 불만의 벌레가 먹고, 불행의 낙엽이 떨어지고, 실패의 병이 들게 된다. 지혜로운 시작과 보람된 출발을 계획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노력의 땀을 흘릴 각오를 해야 한다.

현대 기독교 지도자 존 맥스웰(John Maxwell)은 모세의 새로운 도약을 이렇게 표현한다. “그는 안전지대를 벗어나 믿음의 지대에서 살았다: He lived in the faith zone out of the safe zone.” 의미 있는 말이다. 우리가 제 2 의 인생을 살고자 도약하려면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하고 신앙의 나태함, 권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것이 벤처 신앙이다. 인생이란 과감한 모험을 하지 않고는 진정 위대한 일을 이루어낼 수가 없다.

초대교회 시절 사탄의 전술 전략은 환란과 핍박이었으나 실패하였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사탄은 환난 핍박 보다는 게으름과 나태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잠 6:9~11).

 

 

 

 

  말씀으로 재 무장하고 새롭게 도약하는 신앙이 되기를 기대한다.

태그

전체댓글 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최호숙 목사] 권태(倦怠)를 극복하는 신앙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