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신재철 목사(부산 좋은나무교회).jpg
신재철 목사(부산 좋은나무교회)
「만화방 교회 이야기」 저자
「좋은인터뷰」 유튜브 채널 운영

 분리수거장 관리를 시작하면서 모으기보다는 버리기 시작했다. 폐지는 가능한 매일매일 수거할 만한 동네 어르신에게 맡겨 정리했다. 고철과 공병은 수집하는 어르신에게 드리거나 구청에서 수거하는 일자에 맞추어 내어 두었다. 몇만 원 수입을 내가 가지는 것보다 아파트의 청결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아파트는 정말 깨끗해졌다. 전(前) 관리인, 한 사람의 작은 욕심이 그동안 아파트를 그리 불결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른바 돈 되는 재활용품을 수거하시는 어른들과 관계이다. 나도 없이 살아보았기에 하루하루 폐지를 주워 용돈 벌이, 생계유지하는 분들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이 된다. 그래서 더 잘해드렸다. 음료라도 하나 챙기고, 명절에 들어오는 선물이 있으면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관계가 오래가지 못했다. 이유는 다양하다. 갑자기 소식이 끊어져서 알아보면 병환으로 일을 못 하시기도 하고, 불미스러운 어떤 일로 함께하기 어려워지기도 한다. 오래 함께하면 좋겠는데 쉽지 않았다.

 

지금은 폐기물 수거하는 어른이 없다. 수소문해 보니 병환으로 입원하셨다는데 아무래도 현장 복귀는 어렵지 싶다. 한동안 직접 폐기물을 정리하며 치우다가 인근 고물상의 소개로 새로운 어르신과 만나게 되었다. 비교적 건강해 보이고 말이 통해서 오래 같이 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 정식으로 인사도 드리고 안내도 할 겸 분리수거장에서 만났다. “폐지, 공병, 고철 돈이 될만한 것은 편히 가지고 가시면 되고 쓰레기는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그대로 두고 가시면 제가 치울게요.” 그리고 헌 옷 수거함은 다른 분 소유물이니 손대면 안 된다는 주의사항도 전한다. 새로운 거래처를 터서 만족스러우셨을까? 아무 대가 없이 가지고 가시라 해서 기분이 좋으셨을까? 반복되는 감사 인사에 내가 다 민망했다.

 

“소장, 여기 헌 옷이랑 내가 다 가지고 가면 안 됩니꺼?”

 

며칠 후 만난 어르신은 처음과 다른 당당함으로 분명 안 된다고 말씀드린 헌 옷을 요구하신다. 감정이 조금 상했지만 타이르듯 다시 주의하셔야 한다고 말씀드린다. 헌 옷 수거함은 고물상을 운영하는 아파트 입주민이 설치한 것이라 나도 무척 예민하다. 그렇게 수거하시는 어르신을 돌려보냈지만, 마음이 불안하다.

 

“소장님, CCTV 좀 돌려서 한번 찾아 보이소.”

 

헌 옷 수거함을 설치한 입주민의 전화가 왔다. 누군가 옷을 꺼내 갔다는 것이다. 수거함에서 옷 꺼내 가는 장면을 찾아내려면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지 알고 요청하는 것일까? 순간 짜증이 밀려왔다. 헌옷 값을 내가 주고 끝내고 싶었다. 찾아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답을 드리고는 관리실 CCTV를 돌려보기 시작한다. 무작정 찾으려면 너무 힘든 일이지만 약간의 힌트가 있다면 수고가 줄어든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 그 부분부터 검색한다. 하루 전 영상에서 고물 수집하는 어르신 모습이 나온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옷 수거함에 손을 넣고 옷을 꺼내어 챙기고 있다. 분명 내가 그렇게 주의 주었는데, 결국에는 이런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다. 어르신들과 이런 관계, 처음이 아니다. 벌써 몇 번째 반복되는 일인가.

 

「배신감」

 

어려운 분, 힘드신 분, 조금이라도 돕겠다는 생각으로 만났던 어른들이다. 그런데 매번 결과가 이렇다. 나도 가난하지만 가난한 사람이 착하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나도 나이 먹어 가지만 숫자의 쌓임이 어른스러움을 보장하지 못한다. 실망감에서 정신 차린 후 가능한 정중하게 문자를 보냈다. 정해진 물품만 가지고 가셔야 함을 분명하게 전달한다. 분명 불쾌하다고 느끼겠지? 오히려 속으로 화를 내고 있을지도. 어쩌면 수거하실 다른 어르신을 찾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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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작가 김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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