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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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에반겔리아 대학교)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정말 놀라운 책입니다. 아무리 명작이라고 해도 세상의 명작이라는 책들은 한번 읽고 나면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별로 들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한국어로 번역된 ‘앵무새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라는 명작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명작입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뒤에는 더 이상 서재에 보관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많은 서적들은 인간의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해서 균형 잡힌 올바른 시각을 제공해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정말 다른 책입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어떻게 이런 문제까지 이렇게도 세밀하고 심오하며 균형 잡힌 가르침을 제공해 주고 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고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말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는 책입니다.

예를 들면, 일에 대한 관점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신약 시대의 다른 문화권의 관점과 비교해 보면 성경에 나타난 노동관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탁월합니다. 초대교회 당시 헬라 사상은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구분하여 영혼은 귀한 것이고 육체는 천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헬라 문화권에서는 몸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무엇인가를 하도록 강요받는 사람, 즉 먹고 사는 데 얽매여 있는 사람으로 경멸당했습니다. 노동자는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일종의 노예 같은 존재였으며, 실제로 거반 노예 취급을 받았습니다. 헬라의 엘리트들에게 가치 있는 유일한 삶은 우주의 이치를 논하며 여가(leisure)를 즐기는 활동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삶은 육체적인 노동에서 벗어나 정치와 철학 혹은 종교를 추구하는 삶이었습니다. 진정한 자유인은 일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러한 헬라의 엘리트주의적 관점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사도 바울은 참된 자유는 일에서 해방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 온다고 믿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철학이나 종교적 활동을 육체적인 일보다 ‘더 고상한 것’으로 보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에 대한 섬김으로서 신실하게 행하기만 한다면 인간 삶의 모든 측면은 다 똑같이 경건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는 바울의 가르침은 예수님의 재림에 강박적으로 심취해서 일하기를 거절했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한 말씀이었습니다. 이 당시 데살로니가 교인들 중에는 자신들이 너무나도 영적이어서 육체로 하는 시시하고 일시적이며 세상적인 일에는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은 사실 날카롭게 비꼬는 것입니다. 바울은 가르치기를 그들이 너무나도 영적이어서 일할 필요조차 없다고 한다면, 먹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영적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신랄하게 비꼬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일의 일 가운데서 그들의 손과 몸과 정신과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나 존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가들이 가르치고 전수하려고 했던 사상의 주요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이와 같은 성경적인 노동관을 재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종교개혁가들은 교회적 활동에만 몰두해 있거나 소위 ‘영적’ 영역에만 국한되는 삶을 훌륭한 기독교적 삶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중세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은 종종 다른 모든 종류의 삶보다 명상적인 삶을 더 높이 추켜올렸기 때문에, 수사들과 수녀들과 사제들이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우월한 일급 그리스도인이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열등한 이급 그리스도인으로 여겨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종교개혁가들은 모든 신자가 제사장 곧 사제임을 강조하였습니다. 만인이 제사장이라는 것은 우리가 모두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모든 봉사, 모든 종류의 일이 똑같이 하나님께 드리는 섬김이라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 모두는 ‘하나님 나라의 전담(full-time) 사역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형태의 일은 신앙에서 비롯될 수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에 대한 봉사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새 사람의 섬김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자기 손으로 정직하게 일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사람, 새로운 본성은 육신이 없는 영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 사람은 손을 가지고 있으며, 그 손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새 사람은 하나님의 세상 가운데서 일을 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새로운 본성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철저하게 ‘세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종교, 정치, 사업, 언론, 교육, 예술 등 어떤 영역이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터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장이며 선지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일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신실한 일꾼들로 양육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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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 하나님 나라의 전담 사역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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