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행연월일 2026-04-20(월)

전체기사보기

  • [특별기획] 기독문화유산을 지키자(6)
    창원특례시 합포구 진동 호주선교사 마산공원묘지에는 8분의 호주선교사 발자취가 있다. 이 중 경남지역에서 온몸으로 선교활동에 헌신하다 소천할 때 비석을 세우고 공덕을 기록한 세 분이 있다. 지난번에 다룬 맥피 선교사, 그리고 이번 호에 소개하고자 하는 선교사는 G. 네피아 선교사의 묘비이다. 그리고 한 분은 진주 성남교회를 설립한 목회자 아더 윌리엄 선교사의 묘비이다. 먼저 G. 네피아 선교사는 한국명 남성진(南性眞)으로, 1912년부터 1936년까지 주로 진주지역에서 기독교병원 배돈병원에서 헌신적으로 간호선교사로 활동했다. 네피아 선교사는 1872년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출생했다. 잠시 교사로 활동하다 에든버러 간호학교에서 간호학을 공부하고, 호주장로회 선교사로 1912년 12월 12일 내한했다. 입국 후 처음 마산지역에서 복음전도활동을 하면서 모자 건강을 위한 진료소를 운영했다. 이후 진주지역으로 옮겨 호주장로교 선교사가 세운 배돈병원 간호부장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배돈병원은 환자 진료뿐 아니라 간호사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당시 간호는 남성들이 중심이었고 여성 간호사는 천박한 직업으로 멸시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점차 시간이 지나 간호사 양성소를 거친 여성 간호사가 생겨났다. 여기에 흥미로운 이야기가 남아 있다. 1820년 가을 통영에 콜레라가 유행했다. 긴급히 예방을 위해 남자 간호사를 양성하여 이들이 주사를 놓게 되었는데,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주사 맞기를 거절했다고 한다. 이에 여성 간호사 양성의 시급함이 대두되어 많은 여성 간호사들이 양육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여성 간호사를 양성하는 데 네피아 선교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간호정신을 강조하면서 교육했다. 그리고 네피아 선교사는 백인의 여성으로서 한국인들에게 헌신적인 간호의 섬김을 실천했다. 네피아 선교사는 진주 배돈병원에서 간호부장으로 25년간 봉직하면서 유아복지사업에도 힘을 쏟았다. 모유가 부족한 산모들에게 콩가루, 미숫가루 등으로 모유 대체물을 개발하여 체계적으로 산모와 아기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다. 배돈병원에서의 이러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전국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조선일보에 ‘칭송 자자한 진주 培敦病院(배돈병원)’이라는 제목으로 돈이 없어 약을 못 먹는 환자를 무료로 입원시켜 치료하고, 의령군 가례면 대천리 백재관 씨가 중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했으나 개복수술로 소생했다는 미담이 기사로 실리기도 했다. 네피아 선교사는 마산과 주로 진주 등지에서 평생 독신으로 환자를 돌보다 1936년 8월 29일, 64세의 일기로 소천하여 진주시 평거동 묘지에 묻혔다. 그런데 이 묘지가 도시화로 멸실되면서 산청군 시천면 덕산교회 이호준 목사의 주도로 1992년 6월 9일 산청군 시천면으로 이장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일 호주선교 대표 존 브라운 목사 집례로 이장 추모예배를 드렸다. 네피아 선교사의 묘비는 소천 후 진주에서 장례를 치를 때 세워졌다. 당시 묘비에 새긴 글은 지금까지도 큰 울림을 준다. "호주 장로교 선교사로서 진주 배돈병원에서 사랑의 봉사를 하다 1936년에 천국에 가시어 이곳에 안장되다." 이 묘비는 지금부터 90년 전에 세워져 귀한 헌신을 새겨 두고 있다. 묘비 글자는 퇴색되었지만 우리에게 큰 울림이 되고 있다. 국가적 유산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후 2005년 창신대학 강병도 장로(창신대학장) 주도로 네피아 선교사를 비롯한 8명의 호주선교사 순교기념사업이 진행되었다. 네피아 선교사의 묘비와 유해는 2009년 9월 산청에서 마산 호주선교사 묘원으로 이장되어 안장되었다. (네피아 선교사의 묘비 자료는 기독역사학자 박시영 목사의 연구자료에 근거함) 글. 박동철 장로(서머나교회 은퇴) 자문 이상규 백석대 석좌교수 박시영 부경기독교역사연구회회장
    • 뉴스
    • 종합
    2026-03-25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