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2월 9일 경남기총 미스바대성회 설
서론
2023년 경남기총이 주관하는 2월 미스바 대성회를 맞이하여 하나님의 전에 나아와 예배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는 모든 성도들 위에 놀라운 은혜와 평강이 차고 넘치게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는 오늘 지금의 튀르키예 서쪽인 소아시아 지방에 흩어져 있었던 일곱 개의 교회 가운데 우리 주님으로부터 넘치는 칭찬을 받았던 빌라델비아교회의 아름다운 사역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지금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하는 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를 마지막 종말 시대라고 말합니다. 말세지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디모데후서 3장에서 증언하고 있는 것과 같이 종말시대의 많은 징조가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디모데후서3:1-5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교회 안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무관한 이기주의가 판을 치고 있으며 만몬이즘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예수 없는 인간 중심주의가 판을 치고 있으며 물량주의와 세속적인 의식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랑, 자기 과시가 판을 치고 있으며,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인 각종 현상들이 온 교계 속에 나타나고 있으며 끔찍한 사건과 사고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18세기 계몽주의의 각종 전통과 정신은 완전히 무시되고 인간중심의 포스트모던이즘이 판을 치며 뉴에이지운동이 만연한 가운데 있습니다. 유일신 사상이 거부되며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며 절대적 선을 거부하고 상황과 환경에 따라 행동할 것을 강조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만 할까요? 이 질문에 관해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13:11-14 속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다가 깰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할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어야 할 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새롭게 무장하여 시대적 사명을 바로 감당할 때입니다. 그래서 시대적 사명을 잘 감당했던 교회, 우리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교회, 소아시아 지방에 있었던 빌라델비아교회를 소개하면서 이 시간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주후 95년경에 소아시아 지방에는 일곱 개의 교회가 흩어져 있었습니다. 이 일곱 개의 교회 이름이 “에베소교회, 서머나교회, 버가모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빌라델비아교회, 라오디게아교회”입니다. 이들 일곱 개 교회가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일곱 개 교회 가운데 우리 주님의 책망이 전혀 없고 칭찬만을 받은 교회가 서머나교회와 빌라델비아교회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증거 하면서 주님께 전혀 책망이나 비판을 받지 않은 교회, 오직 칭찬만 있는 교회, 빌라델비아교회의 내면을 깊이 살펴보면서 이 시간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빌리델비아교회는 오늘날의 알라쉐히르라는 곳으로 사데지방에서 동남쪽으로 약 48Km 정도 떨어져 있는 지방에 위치한 교회로 상업이 성행한 도시요, 동방의 관문으로 불려진 도시에 위치한 교회로서 주변 산지는 포도농사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이런 도시와 농촌이 혼재한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던 빌라델비아교회의 내면을 살펴 보면 몇 가지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빌라델비아교회는 “열린 문을 가진 교회”입니다.
공산주의자로 삶을 살던 사람, 히틀러를 추종했던 사람, 하지만 이들의 사상과 이념에 대하여 염증을 느끼고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여 지지의 땅 뉴질랜드에 정착하고 난 이후, 우리 인류역사 속에 아주 중요한 책을 남긴 칼 포퍼(Karl. Popper.1902-1994), 그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The Open society and its Enemies)이라는 놀라운 책을 통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떤 주장이 과학적인 타당성을 지니려면 내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고의 개방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의미있는 주장인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폐쇄적인 사회가 아니라 개방적인 사회, 열린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폐쇄적인 사회가 아니라 열려 있는 사회공동체임을 들어내는 말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몇 가지를 살펴보면 KBS에서 진행하고 있는 열린 음악회를 비롯하여 교회 이름을 열린문 교회로 사용하는 교회들이 많고 교회안에 열린 예배, 열린 공간, 열린 교육, 열린 당회, 열린 학교, 심지어 몇 년 전에는 ‘열린 우리당’이 우리나라 정치의 중심에 서서 그 사명을 감당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열려 있다’고 하는 말은 ‘개방성’을 뜻하며, ‘소통’을 뜻하고 ‘긴밀한 교제와 대화’를 뜻하는 말씀으로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아주 좋게 평가하는 표현입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현대 사회에 아주 잘 맞는 모습을 취한 공동체로 앞서가고 있는 민주주의 공동체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말입니다.
본문 7-8절에 보면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 말씀 속에서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가 누구일까요? 절대 다수의 신학자들은 인류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 인류의 구원을 위한 절대적 권한을 가진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구원의 예수님이 빌라델비아교회에 열린 문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라델비아교회에 들어가기만 하면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체험하게 되고, 기도의 응답을 받고 구원의 기회를 얻고 수많은 사람이 몰려와 부흥의 역사가 나타나고 성도들이 축복의 기회를 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가 열린 문을 가졌다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 중심에 모셨다는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되는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움직인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10:7-10속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교회의 주인이 되셔서 그 뜻대로 교회를 세워간다는 말씀입니다. 주님 중심의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의 주인이 주님이십니까? 사람입니까? 주님의 뜻대로 교회를 운영하고 있습니까? 힘있는 사람들의 뜻에 따라 교회가 움직이고 있습니까? 우리가 한국교회를 바르게 진단하면서 회개할 바를 회개하고 바르게 세워 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빌라델비아교회가 열린 문을 가졌다는 말씀은 기도하는 교회라는 말씀이요, 기도의 능력을 맛보는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성도들이 두손 모아 기도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이 나타나고 기적이 일어나고 성령의 기름부음이 나타나는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예레미야33:2-3속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성도들이 부르짖어 기도하는 교회요,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나며 크고 은밀한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7:7-11속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성도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고 있는 교회가 열린문을 가진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빌라델비아교회가 열린 문을 가졌다는 말씀은 새로운 성도들이 많이 찾아오는 교회라는 말씀이요, “활발하게 전도하며 선교하는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감당하신 세 가지 사역이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이요,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이요, 각종 병자와 연약한 사람을 고치시는 사역이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마태복음9:35속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 사역을 열심히 감당하신 것처럼 빌라델비아교회가 선교하고 전도함으로 구원받는 사람이 많이 교회로 몰려온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4:1-2속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했는데 이 말씀과 같이 열심히 전도함으로 구원받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교회, 날마다 생명구원을 위해 힘쓰고 애쓰는 노력하는 교회가 열린 문을 가진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이같은 교회가 시대적 사명을 바로 감당하는 교회입니다. 경남지역의 모든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경남지역 모든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모든 성도들이 간증하기를 “나는 교회에 출석하고 난 이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나는 우리교회에 출석하고 난 이후 각종 기도의 문제가 다 해결되었습니다.” “나는 우리교회에 출석하고 난 이후 인생을 사는 삶의 의미와 보람을 갖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간증이 넘쳐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 같은 놀라운 간증과 구원의 은총과 기도의 응답과 넘치는 축복이 교회를 출입하는 모든 성도들 위에 차고 넘치게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빌라델비아교회는 “주님의 칭찬을 받은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교회는 어떤 교회였기에 주님으로부터 책망할 것이 없는 교회였을까요? 넘치는 칭찬만 받게 된 근거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내용을 오늘 본문 속에서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확인해 보면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내용은
첫째, 작은 능력으로 우리 “주님의 말씀을 잘 지킨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속에서 말하고 있는 ‘작다’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 ‘미크란(micran)’이라는 말로서 영어로 표현하면 마이크로(micro)가 됩니다. 바로 ‘마이크로’라는 말은 “축소된 것, 아주 작은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어로 ‘마이크로 버스(micro bus)’라는 말은 '아주 작은 버스'를 나타내는 말이요, ‘마이크로 필름’이라는 말은 '아주 작게 축소 된 필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처럼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 즉 마이크로 파워(micro power)를 가지고 있었지만 놀라운 일, 원더풀 파워를 들어낸 교회라는 말입니다. 주어진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열심히 일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힘쓴 교회였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작은 능력이라는 말은 물리적 힘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 교회 구성원인 교인들의 신분이나 지위나 재산 등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모습을 통하여 자랑하거나 내 세울 만한 대단한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교회는 넘어지거나 실족하지 않고 우리 주님이 가르쳐 주신 사명을 잘 감당했다는 말씀입니다. 선교에 대한 사명과 사랑실천에 대한 명령을 잘 지켰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우리 주님은 이 세상을 떠나 승천하기 직전,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마태복음28:19-20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명령하신 이 선교의 명령을 그 어떤 교회보다 잘 감당했다는 말씀이요, 사명을 열심히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13:34-35에서 말씀하신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사랑실천의 말씀, 사랑실천의 명령을 잘 지켰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빌라델비아교회는 주님이 주신 말씀과 명령에 순종했던 것으로 주경학자들은 이해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들 신학자들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목사입니다.
사실 ‘빌라델비아교회’라는 명칭도 그래서 지어졌는지도 모릅니다. ‘빌라델비아’라는 말은 “형제 사랑”이라는 뜻으로 ‘필로스(philos)’라는 말과 ‘아델포스(adelpos)’라는 말이 하나로 합쳐진 합성어입니다. 바로 이름 값을 한 교회라는 말씀입니다.
이 빌라델비아교회가 세워져 있는 지역은 버가모왕국에 속한 도시였습니다. 오래 전 버가모왕국을 다스린 유메네스 2세는 아주 호전적인 사람으로서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정치력과 행정력에 있어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던 자신의 친 동생이었던 앗탈로스 2세(Attalos Ⅱ, BC159-138)에게 국내정치를 다 맡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국민의 지지도가 높았고 인기가 많았던 그를 당시 로마정부가 이용할 목적으로 왕위에 오를 것을 충동질 했지만 앗탈로스 2세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자신의 형에게 충성을 다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르쳐 “앗탈로스의 형제애”라고 합니다. 이같은 아름다운 형제 사랑의 전통을 이어 오고 있었던 버가모 왕국의 국민들은 빌라델비아교회라는 이름을 지으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형제들로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아껴주고 서로 신뢰하며 서로 연합하면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 가고자 하는 아름다운 소망을 담은 교회로 발전해 나아가기 위하여 빌라델비아교회로 명명했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아주 의미 있는 해석인 것 같습니다.
바로 경남지역에 있는 모든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비록 세상적으로는 내 세울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고 대단한 재력가나 유명인도 없지만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고 연합하면서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고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세상 속에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편133:1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그랬는데 이 같은 감탄사가 경남지역 모든 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두고 하는 표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빌라델비아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교회”입니다. 오늘 본문 8절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말씀이 정말 대단한 말씀입니다.
그 당시 소아시아 지방은 로마의 식민지로서 로마황제의 통치를 받고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황제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황제숭배사상을 모든 점령국 백성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 기독교인들은 탄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고 핍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절대적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로마 정부는 황제숭배 사상을 내세워 기독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는데 그 기간이 장장 300년 정도 됩니다. 핍박과 박해가 계속되자 많은 성도들은 그 박해와 핍박이 두려워 교회를 등지기 시작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자리에서 떠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늘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은 전혀 흔들리지 아니하고 믿음을 굳게 지켜가면서 우리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모습이야말로 정말 숭고한 모습이요 대단한 모습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빌라델비아교회가 직면하고 있었던 것은 정치적인 탄압과 박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단들의 적극적인 도전과 유혹도 결코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9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교회 안에서 자칭 유대인이라고 하면서 유대인이 아닌 거짓된 이단들이 들어와서 교회를 어지럽히고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같은 도전과 유혹 속에서 빌라델비아교회는 전혀 흔들리지 아니하고 우리 주님이 주신 말씀과 사명을 감당하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믿음을 잘 지켰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같은 모습이 바로 존귀한 모습입니다.
♪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성도의 신앙 본받아 원수도 사랑 하겠네 인자한 언어 행실로
이 신앙 전파하리라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찬송가 336장1,3절-
경남지역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도 그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오늘 본문의 주인공이 되는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과 같은 아름다운 믿음으로 우리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믿음의 꽃을 피우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처럼 작은 능력으로 놀라운 일을 감당한 빌라델비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우리 주님은 세 가지를 약속하고 있는데, 그 세 가지 약속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첫째, “내가 너를 지켜 주겠다”고 하는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보면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시험의 때와 환란의 때에 너를 지켜 주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같은 약속은 구약성경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시편121:5-7에 보면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 큰 시험과 환란의 때에 주어진 말씀을 잘 지키고 우리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성도들에게는 우리 주님께서 모든 시험과 모든 환란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도록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기둥은 집을 떠 받치는 중심축입니다. 모든 건축물에서 기둥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없습니다. 바로 기둥과 같이 중요한 사람으로, 없어서는 안 될 사람으로, 꼭 필요한 사람으로 사용하겠다는 우리 주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이 경남지역의 모든 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약속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 “나의 새 이름을 그에게 써 주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에 보면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구원의 보증서를 써 준다는 말씀이요, 구원의 사람으로 인(印)을 쳐 준다는 말씀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천국시민으로 인정하고, 두 말도 하지 않고 하늘나라에 받아 주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결론
이제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이 소개하고 있는 빌라델비아교회는 우리 주님이 극찬을 하며 인정할 수밖에 없는 교회로서 두 가지 특징을 지닌 교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것은 첫째, “열린 문을 가진 교회”라고 말씀 드렸고, 둘째, “놀라운 칭찬을 받은 교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칭찬을 받을 수 있었던 사실은 첫째, “작은 능력으로 우리 주님의 말씀을 잘 지킨 교회”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둘째, “우리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교회”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같은 자랑스러운 교회였기에 교회사에서 길이 빛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 경남지역의 모든 교회도 이 빌라델비아교회처럼 작은 능력을 가지고 주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교회가 되고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는 교회가 되면서 구원의 주가 되시며 축복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칭찬을 받는 복된 교회가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