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12-19(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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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에반겔리아대학)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The Christian Mind: How Should a Christian Think?)라는 저서를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헤리 블레마이어(Harry Blamires)는 영국의 지적 풍토를 염두에 두면서 “이제 기독교적 정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그는 정신(또는 지성, mind)이라는 용어를 “집단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관념과 태도의 경향”이라는 의미로 규정하면서, 세속적인 정신의 영향력과는 달리 기독교적 정신은 사회적, 정치적, 혹은 문화적 생활에 대하여 밀접하고도 현저한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세속적 정신에 굴복하거나 고갈되어 버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기독교적 정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블레마이어의 지적은 그리스도인들이 더 이상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거나 경건적인 삶의 실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아직도 기독교적 윤리와 기독교적인 영성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블레마이어도 인정하고 있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도덕적인 존재로서 비그리스도인과는 다른 법전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교회의 일원으로서 비그리스도인이 무시하는 책임과 의무들을 잘 감당하고 있으며, 영적인 존재로서 기도와 명상을 통해 비기독교인이 탐구하지 않은 삶의 차원을 계발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유하는 존재로서 삶에 대한 종교적 견해 즉, 모든 지상적 사건들을 종교적 맥락에서 해석하며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인 인간의 제 문제들을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생각하기를 거부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엄격하게 개인적인 행위만을 주로 다루는 매우 협소한 사고의 영역 이외에는 세속적 정신에 의하여 구성된 준거틀(frame of reference)과 세속적 가치 평가를 반영하는 판단의 틀을 수용하여 정신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기독교 신앙은 기껏해야 개인적 수준에서 영성과 도덕적 지침을 전달하는 도구 정도로 남아 있고, 공공의 수준에서는 감상에 빠진 연대 의식의 표현에 불과할 정도로 기독교 신앙의 지적 관련성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블레마이어는 기독교적 정신 또는 지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독교적 지성의 결여 문제는 본질상 기독교 신앙의 세속화(secularization)와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세속화란 사회와 문화에 인접한 영역들이 사회와 문화의 중심부로부터 점차로 그 외곽을 향해 종교로부터 나온 개념이나 제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세속화란 현대 사회의 중심 영역, 즉 과학이나 산업기술이나 정부조직 등과 같은 영역에서 종교가 미칠 수 있는 사회적 문화적 중요성을 희석시켜서 종교로부터 나온 개념이 삶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약화시키고 종교에 의해 형성된 제도들이 미치는 영향을 점점 작아지게 만드는 과정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 우리 한국사회의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점에서 세속화되어 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로 만나는 것은 예배하는 존재와 도덕적 존재로서 이지, 생각하는 존재로서가 아니다. 주님의 날인 주일을 주님의 집에서 보내는 것은 옳은 일이다. 또한 우리는 거짓말을 하거나 이웃을 비방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논쟁의 대상이 되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문제에 대하여 사고하는 그리스도인을 만나기는 무척 어렵다.

우리는 개인적인 도덕과 영성 이외의 문제에 대해서는 기독교적인 사유를 중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적 정치적인 영역과 활동 속으로 발을 들여 놓을 때에는 우리의 기독교적 신앙이라는 옷을 벗어 던지는 습관에 젖어 왔다. 그 주제가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미 잘 훈련되어지고 잘 기초가 다져져 있는 우리의 기독교적인 개념들은 뒤로 두고 세속주의의 어휘들을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기도하고 찬송하고 말씀을 듣고 예배를 드린다. 그런 후에 우리는 돌아가서 정치가와 정치를 이야기하고 사회 활동가들과 사회 복지를 이야기하고 노조원들과는 노동 관계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우리 머릿속에서 기독교적인 어휘와기독교적인 개념들을 비워버렸으며, 한 술 더 떠서 그 결과 우리가 그들과 완전히 접촉하게 되었다고 확신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정신적으로는 세속주의에 발을 깊숙하게 들여 놓고 있다. 우리는 세속적인 일들에 대해서는 세속적으로 생각하도록 우리 자신을 훈련시켰고, 심지어 단속하기까지 하였으며 또한 아이러니 중의 아이러니인 것은 이런 일들을 양보하며 다른 사람들의 정신적 상황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기독교적인 것 이상의 어떤 것이 있었다고 우리 스스로를 애써 설득시키고자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조우하는 제반 문제들에 대해서 기독교적으로 사고하는 기독교적 지성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기독교적 지성을 개발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지 않으면 기독교적 지성은 시들고 죽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지적관련성을 갖도록 만드는 일에 소홀히 하게 되면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단지 설교와 만 관계되는 것이고, 그런 종류의 단어는 교회의 거룩한 강단에서나 하는 것이 예의라는 요청을 더 공격적으로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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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 기독교적 지성과 세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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