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신재철 목사(부산 좋은나무교회).jpg
심재철 목사(좋은나무교회)
「만화방 교회 이야기」 저자
「좋은인터뷰」 유튜브 채널 운영

 아무리 날이 더워도 혼자 쓰는 에어컨은 불편하다. 눈치가 보인다. 그리고 아파트에서 그만큼 불편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반상회. 그 자리는 안건이 무엇이든지 늘 불편하다.

 

「‘고성, 갈등, 비난’ 이 셋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고성(高聲)이라.」

 

경상도 아지매와 아재의 소리는 기본적으로 데시벨이 높다. 본인은 화난 것이 아니라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화가 많이 났다. 의견을 낼 때도, 건의사항이 있을 때고, 심지어 부탁할 때도 화가 나 있다. 냉정하게 분노의 이유를 분석해보려 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다. 화를 낼 타이밍도 이유도 아닌데 소리는 점점 커지고 상대의 말을 부정하며 공격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이 반상회에 잘 참여하지 않는다. 불참에 따른 벌금이 있지만 참석하지 않는다. 어쩌면 불편한 자리에서 담임목사와 만나는 것이 더 불편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이런 자리에서 집사님들과 만난다면 편치는 않을 것 같다.

 

오늘 반상회도 여러 가지 논의할 부분이 있다. 분명 누군가 도화선이 될 것이고 전쟁은 시작될 것이다. 아파트 옆 공터에 버스 차고지가 들어온다. 그리고 배수관에 문제가 있어서 작은 공사가 추진되어야 한다. 역시나 난장(亂場)이다. 뭐라 하는지 들리지도 않고 시끄럽기만 하다. 반상회에서 관리소장은 3자의 입장이다. 입주민과 대표가 논의하고 결정된 것을 실행하는 위치이기에 격한 토론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 내 의견을 내봐야 내 목과 마음만 상한다. 잠시 먼 곳을 바라보며 심신의 평온을 유지하고 있을 때 갑작스러운 공격이 들어온다.

 

“관리소장이 누구요?”

 

얼마 전 이사 온 어르신이다. 나를 몰라서? 아니다. 관리소장이 관리실에서 자리를 지키지 않아 짜증이 난 것이다. 새로운 입주민이 생기다 보니 나의 근로 형태를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차근히 설명해드린다. “아파트에 필요한 일은 시간 가리지 않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만 경비처럼 자리를 지키며 근무하지 않기로 처음부터 계약이 되어 있습니다.” 이미 대부분 입주민이 알고 수긍하는 내용이었고 문제 될 부분이 아니었다. 그때.

 

“소장!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입주민들이 수군거려! 불편하다고!”

 

입주민이기도 한 전(前) 관리소장님이 갑자기 더 큰 소리를 내며 따져 묻기 시작한다. 하... 저 어른 있을 때 아파트 상태를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 더럽고, 노후 된 시설 방치되고, 미래 준비 따위는 없었고. 사실 지금 하는 고생의 절반은 저 어르신의 뒤처리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지금 아파트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나를 누구보다 가장 잘 알 사람이다. 그리고 전과 다르게 뭐가 좋아졌는지도 분명하게 알고 있을 텐데.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할 말을 해야 할 것 같다.

 

“제가 근무하면서 불편하신 부분이 많은데 말씀을 못 하셨나 봐요. 제 생계를 염려해서 그러셨다면 염려 마세요. 요즘 최저시급이 올라서 주 5일 편의점 가서 일해도 여기 일보다 덜 힘들고 급여도 낫습니다. 그러니 좋은 사람 생기시면 반상회에서 정식으로 해임안 올리셔서 관리소장을 바꾸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 괜찮습니다!”

 

정당하게 해임안을 올려서 결의하시라고 차분하게 말씀드렸다. 나는 고용된 사람이다. 고용주가 맘에 들지 않으면 해고하면 그만이다. 일도 못하면서 90만 원이나 받아갈 이유가 없다. 나를 위해 아파트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파트를 위해 관리인이 존재하는 것이니깐. 서운할 이유도 버틸 이유도 없다.

 

“우리 새로운 소장님 와서 아파트 많이 깨끗해지고, 일 처리도 빠르고 좋습니다.”

 

여기저기서 토닥이는 말씀이 이어진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상처는 이미 받았고 흔적은 남더라. 날이 덥다. 그리고 사람과 마주하기가 갑갑하다. 언제까지 나는 아파트에서 일하고 있을까? 벌써 만 3년이 지나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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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작가 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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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철 목사] 불편한 반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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