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5-04-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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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헌 목사(고신교회)

 미리암은 자신의 선지자 직을 나타내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였습니다. 자신이 받은 선지자의 직분과 사명을 드러내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했습니다. 자신이 받은 직분과 사명이 하나님을 앞서는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직분과 사명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직분과 사명을 받고 나면 그것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목회자에게 교회를 위임하십니다. 처음에는 위치를 잘 잡는데 대부분 시간이 가면 착각을 합니다. 교회를 목회자 자신의 것처럼 생각합니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심을 망각합니다. 급기야 자신이 교회의 주인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주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이용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리암의 불신앙이요,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었습니다. 미리암은 여 선지자로서 모세가 오기 전까지는 출애굽을 위한 준비의 사명, 모세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이제 참 선지자인 모세가 와서 본격적으로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심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리암은 모세의 길을 예비한 자신의 사명에 감사 감격했어야 했습니다.

 

훗날 실제로 완전한 모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출애굽을 위해 오셨을 때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세례요한은 미리암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마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요3:30)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미리암의 전철을 밟지 않고 주님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친히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11:11)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만약 미리암이 세례요한처럼 이 사실을 잘 깨닫고 믿음으로 순종했더라면 이스라엘의 역사에 가장 위대한 여인으로 그 이름으로 남겨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성경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창5장에서부터 족보를 기록합니다.

 

(창5:4-5)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5:30-31)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죽었더라고 시작하는 족보의 마지막 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창5:32)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죽었더니 낳았더라”입니다.

 

아브라함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삭의 때엔 그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삭이 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야곱의 때엔 그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부름 받았습니다. 100세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140세에 아들 이삭이 결혼합니다. 175세에 죽었으니 그 후 35년 동안 한 장막에서 이삭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160세에 손자 에서와 야곱을 보았습니다. 175세에 죽었으니 15년 동안 한 장막에서 3대가 한 장막에 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함은 이삭 결혼 후 죽을 때까지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이삭에게 아브라함보다 훨씬 더 매정한 듯합니다.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에게 축복한 사건 이후 이삭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언제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25:7)아브라함의 향년이 백칠십오 세라

 

(창35:28)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이렇게 볼 때, 성경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향년을 기록한 이유도 분명해집니다. 성도가 얼마를 살았다는 기록조차도 우리에게 성도가 걸어가야 할 구원의 지표가 됩니다. 이처럼 성경의 기록은 여백조차도 구원을 향하여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사역이 죽었더니 이삭의 사역을 낳았더라!”입니다. “이삭의 사역이 죽었더니 야곱의 사역을 낳았더라!”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성경의 구절뿐만 아니라 여백 안에도 우리의 구원을 향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득 계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신앙을 이어받은 야곱은 이 사역을 구체적으로 실현합니다. 자신의 손자를 아들로 인정하고, 자신의 아들을 형제로, 형으로 인정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위대한 믿음의 영웅들을 열거하는 믿음장에서 야곱의 신앙을 다 한 줄로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11:21)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성도는 항상 “미리암이 되느냐? 세례요한이 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죽지 않으면 부활이 없습니다. “죽었더니 낳았습니다.” 모세가 죽었더니 여호수아를 낳았습니다.

 

교회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부에게는 해산의 고통이 가해집니다.

 

(창3:16)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여자가 죽어야 자식을 낳는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인 성도가 죽을 때 그리스도의 후사를 잉태하게 됩니다. 날마다, 예배 시간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죽으므로 우리 주님 재림하실 때까지 믿음의 후사를 낳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생토록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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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헌 목사]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13) (민12:1-3, 창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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