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사회와 문화에는 육체와 영혼을 분리하고, 따라서 영적인 일과 육적인 일, 세상과 교회, 하나님의 일과 나의 일, 신앙과 이성, 종교와 과학의 영역을 잘못 분리하는 이원론적 사고가 팽배해 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배경으로 우리는 왜곡된 이원론이 어디에 연유해서 오늘 우리의 사회 문화 전반에 스며들어 있는지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대 철학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에이어(A.J. Ayer)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종교인들의 주장은 타당할 수도 없고, 타당하지 않을 수도 없다. 이들은 세상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이 설령 거짓된 말이나 근거가 부족한 말을 한다고 해서 정당하게 비난받을 수 없다.” 에이어는 신이 없다고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과학적 실험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를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그의 관점은 사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르네 데카르트(Rene Decartes) 역시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이원론적으로 구분하였다. 데카르트의 이원론은 또한 작가 칼 스턴(Karl Stern)이 ‘두려운 소외’(a fearful estrangement)라고 부르는 상황으로 이끌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마음, 또는 영혼은 비유하자면 마치 하나의 ‘기계와 같은 거대한 세계”에 내장되어 있는 어떤 것과 같다고 보았다. 인간의 영혼은 인간의 육체라는 기계 안에 집을 지어 둥지를 틀고 자리를 잡고 있는 어떤 것으로 보았다. 칼 스턴 역시 스스럼없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연을 실험적으로 분해하고, 수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고, 또 실행할 수 있지만 모든 통일성을 상실한 하나의 거대하고 확장된 영혼 없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해보라!”
칼 스턴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적 관점에 대해서 데카르트의 개인적인 성경과 생활이 어떤 영향을 미쳤다는 흥미 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 데카르트는 자신의 신체적인 조건, 자신의 감정, 그리고 특히 여성과의 관계가 전혀 편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지성에서 피난처를 찾도록 강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항상 감기 때문에 대해 고생을 하고 있었고 불평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려고 ‘난로 곁에 앉아’ 있는 동안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지적 발견을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실제로 데카르트는 여성과의 관계에서 결코 만족스럽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스웨덴의 크리스티나(Christina) 여왕에게 수학을 가르치던 중 폐렴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수업을 시작하기 위해 선생이 추운 아침 시간에도 일어나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오늘날 우리의 이원론적인 현대 과학의 세계관이 부분적으로 한 사람의 신경증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생각이다!
우리는 삶에 대한 분열된 관점이 기독교 세계와 비기독교 세계에 만연해 있음을 경험하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현상을 보다 더 완전하게 이해하려면 이러한 관점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 인용문이 핵심이다. “우리의 육체는 단지 음식이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에게 끝없는 문제를 야기한다. 우리의 육체는 또한 참된 존재를 추구하는 우리를 덮치고 방해하는 질병에도 걸리기 쉽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를 삶과 정욕, 두려움과 온갖 종류의 공상과 끝없는 어리석음으로 가득 채우고, 실제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에게서 사고의 능력 자체를 전혀 앗아 간다. 전쟁과 다툼과 파벌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이 육체와 육체의 정욕이 아니고 어디에서 나오겠는가? 전쟁은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발생하며, 돈은 육체를 위해, 그리고 육체의 정욕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서 획득해야 하는 어떤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장애물들 때문에 우리는 사고하는 ‘철학적 활동’에 전념할 시간이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여가 시간을 갖고 어떤 사고에 몰두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육체는 항상 우리에게 침입하여 우리의 탐구에 혼동과 혼란을 야기하고, 우리를 너무나도 놀라게 하여 진실을 볼 수 없게 만든다. 우리가 어떤 것에 대한 순수한 지식을 가지려면 육체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 경험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대신에 이제는 영혼이 그 자체로 모든 것을 보아야 한다.
김성수 목사 (탄자니아 아프리카연합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