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라의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은 인간의 본성이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요소, 즉 지성으로 식별되는 순수한 불멸의 영혼과 불순한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가정했다. 그래서 그는 구원이라는 것은 육체의 죽음과 더불어 ‘육체의 사슬에서 영혼이 해방’함으로서 온다고 믿었다. 인간 본성에 대한 현대적 관점, 즉 인간의 지성을 모든 진리의 중재자의 위치로 격상시키는 세속적 관점은 플라톤의 저술이 담고 있는 한 중요한 관점이다. 플라톤은 인간의 과업은 육체로부터 영혼을 순수하게 정화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플라톤을 따라서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도 인간의 지성을 ‘신성’(divine)한 것이라고 말하였다. 여기에 깊은 영향을 받은 기독교인들도 인간의 구원을 “천국을 위해 영혼을 구원”하는 관점에서 보았다. 육체와 관련된 것들에 저항하고, ‘진리’에 대한 지적인 명상에 전념함으로써 영혼의 구원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헬라의 이교적인 관점은 너무나도 매력적이어서 성경을이와 같은 이교적인 틀에 맞추어 해석하는 ‘기독교화’된 버전이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육신”과 관계되는 일을 피하고 개인적인 경건을 추구하는 데 전념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을 정화하는 생활을 강조하는 비 성경적인 가르침이 교회에 침투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플라톤은 아마도 우리가 때때로 이 땅의 것들을 멸시하고, 허무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며 진리에 대해 사색하며 영원한 것 만을 추구하는 노래를 부를 때 아주 만족해 할 것이다.
플라톤의 견해가 아직도 여전히 기독교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또 다른 증거는 사도 바울이 사용한 ‘‘육체’와 ‘영’이라는 용어를 우리가 오해하는 방식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바울은 이 용어들을육체와 영혼을 분리시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우리의 육신의 삶이 하나님의 영(성령)에 의해 지배와 영향을 받는 삶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등지는 우상의 거짓 영에 의해 지배와 영향을 받는 삶인지를 지칭하기 위해 이 용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심지어 어떤 영어 번역 성경까지도 로마서 8장에 나오는 “육체”와 “영”을 “높은 것”(Higher)과 “낮은 것”(Lower)으로 잘못 번역하고 있다. 성경신학자 레안드캑(Leander Keck)이 말했듯이 바울이 말하고자 한 것은 이것이 아니다. 실제로 성경에서 ‘영혼’이라는 용어는 ‘자아’(self)를 의미하는 시적 용어이다. 마리아가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누가복음 1:46)라고 말할 때, ‘나, 라는 의미는 자신의 온 존재로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뜻이다. 시편 기자가 “나의 영혼이 하나님 안에서만 안식을 찾나이다…”(시 62:1)라고 말할 때 그는 “나 곧 나의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쉼을 얻는다”는 의미다.
플라톤은 실제로 삶에 대한 현대의 분열된 관점을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그가 창안한 것은 아니다. 플라톤 당시에는 이미 삶에 대한 이와 같은 분열된 관점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었다. 그는 단지 여기에 철학적인 표현을 했을 뿐이다.
신약성경 신학자 조지 엘돈 래드(George Eldon Ladd)는 자신의 저서 <신약성서 진리의 패턴>(The Pattern of New Testament Truth)에서 플라톤이 오르페우스파 신학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기원전 6세기부터 이 신학은 그리스 세계와 이탈리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오르페우스 신학은 황소 자그레우스(Zagreus)의 종교 신화에 구현되어 있다. 자그레우스는 위대한 신 제우스의 아들이었다. 제우스의 사악한 적인 타이탄과의 전투에서 자그레우스는 황소로 변했다. 타이탄은 그를 갈가리 찢어서 먹었다. 분노한 제우스는 하늘에서 벼락을 내려 타이탄들을 쳐서 잿더미로 만들었는데, 바로 이 잿더미 속에서 인간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그레우스의 신성한 부분인 영혼과 타이탄의 사악한 부분인 육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결국, 플라톤의 사상에서 그 뿌리를 찾아볼 수 있고, 또한 우리 삶에 너무나도 만연해 있는 삶에 대한 분열된 관점은 종교적 신화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음이 참으로 놀랍기도 하다. 우리는 다음 호에서 이것이 갖는 중요한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김성수 목사 (탄자니아 아프리카연합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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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소식
경북 구미 은혜로운 교회 윤희원 목사의
이단설교에 대해 경북 서부노회는 대형교회 목사놈의 회유에 굴복하여
당사자의 핑계같은 사과(?)로 넘어갔습니다.
사과의 내용은 짦고 명료하네요.^^
열정이 과하여 이단 설교를 했다는 겁니다.
이것이 말인지 막걸리인지 신학을 공부했다는 인간의 입에서 나온 변명이라기에는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시끄럽고 말많은 경북 서부노회 정신 나간 목사는
발언권을 얻어, 앞으로는 더이상 언급도 하지 말자고 합니다.
제 식구 감싸기가 도를 넘어도 정치인보다 더 쓰레기지 싶습니다.
구미에 대형교회가 몇 안되니 추측하면 알 것 같습니다.
더 웃긴거는 총회는 먼저 나서서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과연 니들이 주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가 될 수 있는지
고액 연봉이나 쳐 받는 삯꾼인지 반성하시기 바랍니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에 불어라...”저도 좋아하는 복음송인데...
이 쓰레기들은 썩은 냄새만 풍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