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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담대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두려움은 관계의 장애물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자는 사람을 피하고 해야 할 말을 못합니다. 해야 할 말을 너무 못하면 얻을 것이 없고 피해를 보기도 합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사람들 앞에 담대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비방이나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의 죄성은 남을 비난합니다. 남의 말을 듣고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아야 합니다. 인간은 무슨 말을 하고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묵상해야 하고 인간의 말은 묵상하지 않아야 합니다. 두려움은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전화하고 부탁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합니다. 죄를 짓고 약점이 잡히면 두려움이 있습니다. 죄를 멀리하고 약점 잡히지 않아야 합니다. 목회자는 언제나 담대해야 합니다. 담대히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사람을 의식하거나 사람의 눈치를 살피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때는 담대히 무엇인가 부탁하면 해결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거절당할까 하는 두려움을 멀리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오해할 때 담대히 말해야 합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언제나 담대해야 합니다. 담대함이 목회와 관계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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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다윗의 인간관계
인간관계를 잘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만큼 중요합니다.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잘한 인물입니다. 다윗의 성공비결은 관계에 있습니다. 다윗의 예배, 찬송, 기도, 헌신, 회개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잘되면 인간관계가 잘됩니다. 다윗은 인간미가 있고 사랑의 마음으로 가득했고 인간관계에 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인간관계를 잘할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무엘상 22:1-2) 그러므로 다윗이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명 가량이었더라 아둘람 굴에서의 다윗의 인간관계는 큰 감동을 줍니다. 다윗이 핍박과 공격을 피해 아둘람 굴에 숨어 있으면서 인간관계를 잘해서 리더가 됩니다. 자신이 리더가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다윗에게 리더가 되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인간관계를 잘하면 성공하게 됩니다. 아둘람 굴에서 다윗이 만난 사람들은 환난당한 자, 빚진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입니다.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상처받고 고난당하는 400여명의 사람들을 멸시하지 않고 인간관계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누구나 섬기고 사랑하는 다윗은 인간관계를 너무나 잘했습니다. 다윗은 인간이면 누구나 멸시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며 격려해 주고 사랑했습니다. 다윗의 사랑과 격려, 따뜻한 보살핌을 받은 400명의 고통당하는 인생들이 용기와 힘을 얻게 됩니다. 다윗의 인간관계의 비결은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섬긴 것입니다. 다윗의 사랑을 받은 400여명의 고통당하는 자들이 다윗과 인간관계가 좋으니 다윗이 왕이 되고 리더가 될 때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인간관계가 성공의 비결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모함하고 죽이려는 사울과 수많은 악인들을 미워하지 않고 보복하지 않았습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다윗은 어느 누구와도 막힌 담이 없고 적이 없었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원수들과 악인들을 용서해 주고 불쌍히 여겨 주었습니다. 용서하고 보복하지 않아야 관계가 잘됩니다.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보복하면 관계가 깨집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다윗의 인간관계의 비결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관계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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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
다윗과 요나단의 인간관계는 의리가 있는 관계입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는 것을 알면서도 사울의 편에 서지 않고 끝까지 다윗의 편에 서서 다윗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사울의 잘못된 행동을 알기에 불의의 편에 서지 않는 요나단의 인격 때문에 다윗과의 관계가 지속되었습니다. 신실한 관계, 의리가 있는 관계, 공의의 관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양심에 부끄럽지 않은 인간관계입니다. 사무엘상 18:1-4 1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2 그 날에 사울은 다윗을 머무르게 하고 그의아버지의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였고 3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4 요나단이 자기의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사랑으로 맺는 관계요 생명적 관계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한번 맺은 관계는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관계입니다. 서로에게 유익이 되는 관계입니다. 사람을 이용하지 않고 유익을 주는 관계입니다. 변함이 없는 우정의 관계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 요나단의 도움으로 죽지 아니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의 도움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았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장애우 므비보셋을 다윗이 집에 데려다가 함께 살며 보살피고 먹이고 입혔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받은 은혜를 알고 갚으려 하는 다윗이 인격 이것이 인간관계의 비결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으면 감사하고 보답하려는 자세가 관계에 필요한 것입니다. 배은망덕하고 의리가 없어 배신하면 상처를 주고 관계가 깨집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관계는 신실한 관계 의리를 지키는 인간관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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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나쁜 관계
관계가 나쁘고 관계가 깨지면 고통이요, 비극이고 불행입니다. 사탄은 관계를 깨뜨리고 좋았던 관계를 나쁜 관계가 되게 됩니다. 관계가 나쁘면 슬프고 외롭고 비극이며 불행입니다. 나쁜 사람과의 만남은 관계가 나빠집니다. 나쁜 사람 악인과 동행하지 않아야 합니다. 나쁜 만남의 장소는 피해야 합니다. 나쁜 사람 악인들은 미워하지는 말아야 하나 깊이 교제하거나 가까이하면 물들게 되고 상처받기도 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 누구와 관계 맺느냐가 중요합니다. 나쁜 관계는 사탄의 역사입니다. 사탄의 시험에 넘어지면 관계가 나빠지고 나쁜 관계가 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다스려야 합니다. 나의 마음이 나쁘고 악하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어 나쁜 관계를 맺게 됩니다. 나쁜 관계는 사소한 것 가지고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해 관계 맺고 유익이 없으면 배신하는 관계는 나쁜 관계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해야 합니다. 사람을 이용하지 말고 사람에게 유익을 주어야 합니다. 나쁜 관계는 목회를 실패로 이끌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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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기도와 관계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기도는 영적 전쟁 승리의 열쇠입니다. 새벽기도는 하루의 승리, 삶의 승리로 인도합니다. 다윗은 고난의 때를 지날때 새벽에 기도했고, 새벽을 깨웠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이 실패입니다. 기도해야 관계가 깨지지 않고 관계가 잘됩니다. 좋은 관계를 위해 기도해야 하고, 깨어진 관계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나니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정신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잠자는 제자들에게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었냐고, 책망했습니다. 한시는 한 시간입니다. 매일 한 시간만 기도해도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시험에 들지 않게 됩니다. 마귀, 사탄이 있습니다. 마귀는 시험하는 자, 대적자, 참소자, 거짓말쟁이입니다. 이단은 사탄에게 조종당하는 자이며, 거짓으로 속이는 자들입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종의 특징은 신실하고, 거짓이 없는 자입니다. 사탄은 관계를 무너뜨립니다. 관계가 깨지는 것은 사탄의 역사입니다. 사탄은 이간 자, 참소자인데, 인간관계에서 참소하고 이간시켜, 관계를 깨뜨립니다. 관계가 깨지면, 불행해지고, 믿음이 파괴되고, 교회 생활에 큰 지장을 줍니다. 사탄은 영적 리더와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관계가 잘 되면 행복하고, 믿음이 성장하고, 교회 생활이 행복합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고,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사탄이 역사하여, 관계가 깨지지 않도록 좋은 관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인간관계가 되도록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관계가 전부이고 나머지는 사소합니다. 관계의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관계가 세워지는 데는 오래 걸리나 깨지는 것은 한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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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교회와의 관계
교회와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이시고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의 신앙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개혁주의 신앙의 핵심입니다. 마태복음 16:18 또 내가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교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를 섬기고 교회 중심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교회를 무시하는 것은 예수님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무교회주의는 비성경적입니다. 교회 중심의 성경공부를 해야 합니다. 교회를 무시하고 교회 밖 성경 공부하다가 탈선하고 이단에 빠지고 교회와의 관계가 깨집니다. 자신이 다니고 섬기는 교회를 귀히 여기고 교회와의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교회 질서에 순종해야 합니다. 교회와의 관계가 좋으면 교회 생활이 행복합니다. 사탄은 교회와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교회를 섬기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교회의 평안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와의 관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교회를 축복해야 합니다. 교회와의 관계가 좋으면 영적 리더에게 순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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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 회복
- 관계가 깨져서 스트레스받는 자가 많습니다. 사탄은 관계를 깨뜨립니다. 관계는 세우기보다는 깨지기가 쉽습니다. 사소한 것 때문에 관계가 깨집니다. 깨진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깨진 관계를 회복시킵니다. 관계가 깨지면 고통이요 불행입니다. 깨진 관계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왜 관계가 깨졌는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면서 관계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 들으시고 회복시킵니다. 관계 회복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관계 회복이 부흥이요 복입니다. 원수 맺고 사는 자가 회복되어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막힌 관계의 담이 무너져야 합니다. 깨진 관계의 회복은 부흥이요 축복입니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함으로 인간관계가 회복됩니다. 깨진 관계가 회복되지 않고 서로 미워하며 사는 것은 저주요 불행입니다. 관계 회복이 기회요 은혜입니다. 서로 막히면 기도 응답이 없습니다. 가능하면 관계가 회복되어 행복하게 후회가 없이 살아야 합니다. 관계를 회복시키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관계 회복의 소망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관계를 회복시킬 수 없으나 하나님은 회복시키십니다. 관계 회복의 의지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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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 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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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 전도
- 전도는 주님의 지상명령입니다.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됩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관계전도가 있습니다. 관계전도는 좋은 관계를 통해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웃과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가 좋아야 전도할 때 효과가 나타납니다. 입으로 만의 전도가 아니고 삶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소금과 빛이 되고 선행의 실천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삶이 나쁘고 태도가 나쁘면 관계전도가 안 되고 전도가 방해됩니다. 전도하는 자는 세상에서 향기가 되어 좋은 냄새를 내고 좋은 소문이 나야 합니다.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전도한 것은 가까운 관계에서의 관계전도이고 예수님께서 우물가의 여인 죄 많은 여인 고독한 여인을 전도한 것은 따뜻한 사랑과 섬김 대화로 관계를 맺고 전도한 관계전도입니다. 관계전도의 비결은 사랑의 마음과 따뜻한 마음입니다. 사람에 대해 정죄하거나 비판하는 마음이 있으면 관계전도가 될 수 없습니다. 누구를 대하든지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대해 주어야 합니다. 사랑과 섬김으로 인간관계 맺고 인간관계가 잘되어 전도할 때 전도의 효과가 큽니다. 덕을 세우지 못하고 나쁜 이미지를 주면 관계가 안 되고 관계가 나쁘면 전도가 안 되고 전도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관계전도는 선행의 삶을 실천하면서 전도하는 전도의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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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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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의 두려움
- 관계가 중요한 것은 아는데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상처가 많고 소심한 자가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사나우면 안 되나 담대해야 합니다. 사람을 피하는 자가 있습니다. 사람을 피하는 자는 관계 맺기 힘이 듭니다. 관계 맺는 데는 소극적이지 말고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약하고 두려움이 있고 병들고 쉽게 낙심하는 존재이기에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은 잘 되고 성공해서 대단한 것 같이 보이나 가까이서 보면 약점이 보이고 고난이 있고 고민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유한하고 약하고 내일을 모르는 인생이요 나그네요 안개 같은 인생입니다.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긍휼히 여겨야 할 대상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해야 할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고 실수했으면 ‘죄송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해야 할 말을 해야 무엇인가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도 기도하고 구해야 얻을 수 있듯이 사람에게도 도움을 구하는 것도 두려워 말고 담대해야 합니다. 관계의 두려움을 물리치고 인간관계 맺을 때 담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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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의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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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베스트 관계 목회(5)
- 격려와 관계 인간은 누구나 격려가 필요합니다. 격려해 주고 격려 받으면서 새 힘을 얻게 됩니다. 격려는 관계의 열쇠입니다. 관계 목회는 ‘격려’ 목회입니다. 격려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인생을 격려해 주십니다. 말씀으로 격려해 주십니다.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은 격려의 말씀입니다. 격려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목회자는 격려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히10:24-25)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격려는 식어 냉한 가슴에 불을 붙여줍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낙심했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인간은 약하고 병들고 고난이 있고 낙심하는 자이기에 격려가 필요합니다. 힘들고 지친 인생들을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따뜻한 말로 격려하고 섬겨주면서 격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리더’는 격려자입니다. 교회는 격려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격려는 관계의 열쇠이고 서로 격려해 주는 교회가 성장합니다. ‘성령’은 ‘격려의 영’입니다. 편지로 이메일로 전화나 문자로 격려해야 합니다. 서로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격려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격려가 없고, 서로 비난하는 교회는 침체 됩니다. 격려를 연습해야 합니다. 목회하면서 격려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관계 목회는 격려 목회입니다. 겸손과 관계 그리스도인은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이 인격이고, 최고의 덕목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겸손은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관계의 열쇠입니다. 교만하면 관계가 깨집니다. 목회자는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겸손한 자는 누구나 좋아합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배우고 묵상해야 합니다. 겸손한 자는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배우려 합니다. 모세는 수많은 연단을 받은 후에 겸손하고 온유해졌습니다. 사도바울도 모든 일에 겸손했고 겸손함으로 목회하고 선교했습니다. 겸손은 온유의 성품이고, 온유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다윗과 세례 요한은 겸손했습니다. 겸손이 인간관계, 관계 목회의 열쇠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와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베드로 사도도 겸손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벧전5:5-6)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겸손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합니다. 겸손히 목회해야 목회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겸손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겸손해야 인내하고,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이깁니다. 겸손한 자는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존경합니다. 겸손한 자는 비난이나 정죄하는 것, 비판하지 않습니다. 교만을 버리고 겸손을 선택해야 합니다. 겸손히 섬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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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베스트 관계 목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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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리더에 대하여(8)
-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한다 리더는 가정생활에서 본이 되어야 합니다.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합니다. 성경은 일부다처제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리더는 가정이 건전해야 합니다. 가정생활이 편하지 않거나 가정이 견고하지 않으면 리더로써 인정받기 힘듭니다. 가정이 깨어지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없 습니다. 가정이 순결하고 하나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가정이 어떤가, 가정 생활에 충실한 가를 살펴보고 평가하게 됩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리더십이 무너집니다. 리더는 가정을 귀히 여기고 가정생활에 충실해야 합니다. 한 아내의 남편, 한 남편의 아내여야 합니다. 가정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입니다. 리더는 가정에서 인정받아야 하고 가정생활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가정사역을 귀히 여겨야 하고 자녀들을 신앙으로 잘 양육해야 합니다. 가정에서 성공해야 삶의 성공자가 됩니다. 가정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단은 가정을 깨뜨리나 성령님은 가정을 하나 되게 하십니다. 리더의 가정은 온 가족이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리더는 하나님이 주신 가정을 귀히 여기고 가정생활에 성실해야 합니다. 가정생활이 복잡하고 가정이 무너지면 좋은 리더가 되지 못하고 리더십이 무너집니다. 가정의 리더, 영적인 리더로써 성적인 순결을 지켜야 합니다. 성적인 순결이 무너지고 음란하여 음행하면 가정이 무너지기도 합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리더로써 인정받지 못합니다. 가정을 지키는 자가 리더입니다.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담대하라 인간은 담대하지 못하고 두려움이 많습니다. 성경은 두려워하지 말라, 담대해야 한다고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부드러우시면서 어떤 때는 담대하셨습니다. 담대해야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고 리더십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담대하지 못하고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으면 관계가 잘 안되고 깨지기도 하여 관계 리더가 되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강하고 담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두려움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향해 담대히 죄를 회개하라고 외치셨습니다. 오늘날 담대해야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을 향해서 독사의 새끼라고 담대히 꾸짖고 책망하셨습니다.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합니다. 죄가 있고 약점이 잡히면 담대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이 담대함입니다. 담대하지 못하면 십자가의 죽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담대하게 가르치시고, 전도하시고, 설교하셨습니다. 리더는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담대히 사단마귀를 내어 쫓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사단마귀를 두려워합니다. 예수님은 사단마귀 앞에서 담대히 꾸짖고 명령하셨습니다. 담대해야 사단마귀를 이깁니다. 사단마귀도 자기를 두려워 하는 소심한 자를 비웃고 우습게 여깁니다. 성령 충만하고 기도하는 자, 의롭게 말씀대로 사는 자가 담대할 수 있습니다. 담대해야 리더가 되고 관계가 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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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리더에 대하여(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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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6)
- 로마서 8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가르쳐 주십니다. 인간은 어리석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한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천국을 준비하시고, 재림하십니다. 우리의 편이 되시어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자신을 위하지 않으시고 나를 위하여 모든 것 행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의 죄성, 이기심은 나를 위하여 사는 이기주의적인 삶입니다.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아낌없이 주게 됩니다.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가장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시고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정죄하지 않으시고 죄인을 의롭다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심판하거나 정죄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를 사랑해서 다시 사신 예수님입니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동기가 사랑이십니다.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마무리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힘입어 넉넉히 이기게 됩니다. 사랑으로 이깁니다. 사랑은 승리의 열쇠입니다. 어떤 것도, 어느 누구도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해서 부르시고 선택하신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과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약하여 범죄 했을 때 사단 마귀가 하나님께 참소한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자녀의 사랑의 관계를 누구도 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원한 사랑, 변하지 않으시는 신실한 사랑입니다.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안전하고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의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이 제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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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사랑의 리더십에 대하여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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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의 위기
- 인생의 삶에 때때로 위기가 있습니다. 관계의 위기도 있습니다. 인간관계는 아슬아슬합니다. 사소한 것 때문에 관계가 깨집니다. 사탄이 관계를 깨뜨립니다. 관계의 위기를 관계의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관계의 위기가 오면 ‘왜’ 관계의 위기가 왔는가 자신을 돌아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관계의 위기 때 자존심 버리고 무엇 때문에 위기가 오고 관계가 깨지게 되는지 알아보고 인간관계에서 서로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합니다.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과감하게 고쳐야 합니다. 성실하지 못하고 거짓될 때 관계의 위기가 옵니다. 언제나 신실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잘못된 행동과 인간의 실수 때문에 관계의 위기가 옵니다. 관계의 위기가 올 때 기도해야 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사람을 골라서 사랑하거나 교제하지 말고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마음의 문을 열고 적극적으로 관계 맺어야 합니다. 사람이 싫어지고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고 싶은 것이 관계의 위기입니다. 소심하고 소극적인 태도가 관계의 위기입니다. 서로의 만남에서 악인들과 나쁜 사람들과의 만남이 관계의 위기입니다. 악하고 까다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약점을 잡히지 않아야 하고 끝까지 선하게 대하고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사랑의 부족이 인간관계의 위기입니다. 사랑이 관계의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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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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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의 두려움
- 관계가 중요한 것은 아는데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상처가 많고 소심한 자가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사나우면 안 되나 담대해야 합니다. 사람을 피하는 자가 있습니다. 사람을 피하는 자는 관계 맺기 힘이 듭니다. 관계 맺는 데는 소극적이지 말고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약하고 두려움이 있고 병들고 쉽게 낙심하는 존재이기에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은 잘 되고 성공해서 대단한 것 같이 보이나 가까이서 보면 약점이 보이고 고난이 있고 고민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유한하고 약하고 내일을 모르는 인생이요 나그네요 안개 같은 인생입니다.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긍휼히 여겨야 할 대상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해야 할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고 실수했으면 ‘죄송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해야 할 말을 해야 무엇인가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도 기도하고 구해야 얻을 수 있듯이 사람에게도 도움을 구하는 것도 두려워 말고 담대해야 합니다. 관계의 두려움을 물리치고 인간관계 맺을 때 담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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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피니언
- 논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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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의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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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의 두려움
- 관계가 중요한 것은 아는데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있습니다.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 상처가 많고 소심한 자가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사나우면 안 되나 담대해야 합니다. 사람을 피하는 자가 있습니다. 사람을 피하는 자는 관계 맺기 힘이 듭니다. 관계 맺는 데는 소극적이지 말고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약하고 두려움이 있고 병들고 쉽게 낙심하는 존재이기에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간은 잘 되고 성공해서 대단한 것 같이 보이나 가까이서 보면 약점이 보이고 고난이 있고 고민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간은 유한하고 약하고 내일을 모르는 인생이요 나그네요 안개 같은 인생입니다. 사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고 긍휼히 여겨야 할 대상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해야 할 말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면 ‘사랑한다’고 말해야 하고 실수했으면 ‘죄송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해야 할 말을 해야 무엇인가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도 기도하고 구해야 얻을 수 있듯이 사람에게도 도움을 구하는 것도 두려워 말고 담대해야 합니다. 관계의 두려움을 물리치고 인간관계 맺을 때 담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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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의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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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와 선물
-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인간관계의 비결입니다. 선물 주기가 쉽지 않은데, 선물을 주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선물을 주는 자가 기쁘고 받는 자가 기쁩니다. 선물을 주는데 인색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선물을 주는 것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선물을 주는데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때에 맞는 선물을 주어야 합니다. 선물을 받고도 마음 상하지 않아야 합니다. 선물과 뇌물은 다릅니다. 선물을 주는 목적이 순수하고, 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선물 주기를 기뻐하는 성품입니다. 성의 있고, 정성된 선물을 주어야 합니다. 선물은 감동을 줍니다. 어리석은 자는 선물을 주는 것의 중요성을 알지 못합니다. 잠언 18:16 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 잠언 19:6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선물 주고받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관계 목회는 교육 목회입니다. 선물을 받기만 하는 자는 관계를 못합니다. 나를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고 섬기는 것도, 선물을 주는 것입니다. 여러 종류의 선물이 있습니다. 상대편의 필요에 따라 돈을 줄 수 있고, 상품권을 줄 수 있습니다. 선물을 사서 줄 수 있습니다. 선물을 줄 때 사람의 마음을 얻게 됩니다. 선물을 너무 자주 주어도 효과가 없습니다. 상황에 맞게 지혜롭게 선물해야 합니다. 선물을 주는 것은 사랑과 친절의 표현입니다.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인간관계의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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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와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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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와 교회 성장
- 하나님의 교회는 성장해야 합니다. 교회 성장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교회에서 성도들과의 인간관계가 좋아야 교회가 성장합니다. 성경에 나온 초대교회는 성도의 교제가 좋았습니다. 관계가 좋았다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2: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욕심을 버리고 재산과 소유를 나누었습니다. 사랑의 관계입니다. 서로 교제했습니다. 관계가 건강한 교회가 부흥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과의 인간관계가 좋아야 교회가 성장합니다. 교회에서 성도들과 관계가 깨지면 교회 생활에 기쁨이 없고 교회가 침체 됩니다. 관계가 좋으면 교회에 가고 싶고 교회 생활이 행복하고 봉사하고 싶어집니다. 사탄이 역사하면 사소한 것 가지고 다투고 갈등이 생겨 교회에서 성도들끼리 관계가 깨집니다. 성령은 하나 되게 하고 관계가 잘되도록 역사합니다. 성령 충만 받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고 관계가 좋아졌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사랑의 열매가 맺힙니다. 사랑이 관계의 비결입니다. 사랑하면 시기 질투하지 않고 이해하며 모든 허물을 덮어줍니다. 약점이나 허물이 없는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사탄은 약점을 잡고 공격하나 사랑하면 사람의 장점만 보고 약점을 덮어줍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교회는 관계가 깨지지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품의 열매입니다. 온유, 절제, 인내, 화평은 성품과 관계됩니다. 성품이 부드럽고 겸손하고 온유하며 인내가 있으면 관계가 잘되고 깨지지 않습니다. 성령 받으면 성품의 변화가 생깁니다. 성품의 변화가 기적입니다. 성품이 나쁘고 강하고 과격하면 관계가 깨집니다. 좋은 성품은 관계의 열쇠입니다. 자신의 성품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은 사납고 잔인하나 하나님은 부드럽고 온유하십니다.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교회에서 서로 간에 관계가 좋은 교회가 성장합니다. 관계는 교회 성장의 열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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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와 교회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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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 설교
- 설교가 중요합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선포하는 것입니다. 설교의 내용이 다양합니다. 목회자는 관계의 중요성을 알고 관계에 대해 설교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하나님은 설교자와 설교의 내용을 사용하십니다. 성경에서 관계에 대한 내용을 찾아서 관계 설교를 해야 합니다. 다양한 관계에 대해 설교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관계에 대해 설교해야 합니다. 목회자와 성도관계 친구관계 부부관계 등 다양한 관계에 대해 설교해야 합니다. 설교는 가르치는 교육이고 설득입니다. 관계 설교에 은혜 받으면 관계 잘 맺게 됩니다.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설교해야 합니다. 관계라는 렌즈를 끼고 성경을 보면 관계에 대해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목회자는 관계의 중요성을 알고 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가르치고 설교해야 합니다. 목회는 관계입니다. 관계만 잘되면 목회는 행복합니다. 사탄은 관계를 깨뜨립니다. 관계가 잘되는 교회가 건강하고 부흥합니다. 관계 설교에 관심을 가지고 관계에 대해 가끔 설교해야 합니다. 주일학교 부서에서도 관계에 대해 설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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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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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를 위해 창조된 인간
- 인간은 관계를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관계는 하나님이 만든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부터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인생의 삶은 관계입니다. 관계가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도 있으나 가장 중요합니다. 관계의 성공은 인생의 성공이고 관계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관계이기에 관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담을 지으시고 아담과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여인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혼자 사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고 돕는 배필을 주셨습니다. 부부관계가 중요합니다. 좋은 관계는 외로움을 이기게 합니다. 고독은 심각한 스트레스입니다. 고독사가 많습니다. 관계는 고독을 이기고 삶의 행복을 줍니다.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상처받는다 해도 피하지 말고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소극적인 태도입니다. 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 원인을 남에게서 찾으려 하지 말고 나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관계가 깨지는데 양쪽 다 책임이 있습니다. 관계가 전부이고 나머지는 사소합니다. 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인간은 관계를 위해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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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를 위해 창조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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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 설교
- 설교가 중요합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선포하는 것입니다. 설교의 내용이 다양합니다. 목회자는 관계의 중요성을 알고 관계에 대해 설교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하나님은 설교자와 설교의 내용을 사용하십니다. 성경에서 관계에 대한 내용을 찾아서 관계 설교를 해야 합니다. 다양한 관계에 대해 설교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인간관계에 대해 설교해야 합니다. 목회자와 성도관계 친구관계 부부관계 등 다양한 관계에 대해 설교해야 합니다. 설교는 가르치는 교육이고 설득입니다. 관계 설교에 은혜 받으면 관계 잘 맺게 됩니다. 관계에 관심을 가지고 설교해야 합니다. 관계라는 렌즈를 끼고 성경을 보면 관계에 대해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목회자는 관계의 중요성을 알고 관계에 대해 연구하고 가르치고 설교해야 합니다. 목회는 관계입니다. 관계만 잘되면 목회는 행복합니다. 사탄은 관계를 깨뜨립니다. 관계가 잘되는 교회가 건강하고 부흥합니다. 관계 설교에 관심을 가지고 관계에 대해 가끔 설교해야 합니다. 주일학교 부서에서도 관계에 대해 설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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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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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환 장로] 감사와 은혜를 잃어버린 세대
- (삿 2:1-10)“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 내가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와 함께 한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며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니 어찌하여 그리하였느냐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에 죽으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1. 들어가며 사사기의 무대가 되는 사사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께서 멸하라 하신 가나안 족속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 시대를 말한다. 오늘 성경 말씀은 그 사사시대가 시작되는 배경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우리는 위 말씀을 통하여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주변 가나안 족속처럼 살아가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이 일을 통하여 우리는 어떤 교훈을 받아야 하는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위 성경 말씀은 짧지만 세 세대에 대한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먼저 1절을 살펴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으로 올라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여’라고 말씀한다. 이 말씀은 더 설명할 것도 없이 출애굽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으며 이들을 편의상 ‘제1세대’ 또는 ‘출애굽 세대’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두 번째는 6절에서 나타난다.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들의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이 말씀은 출애굽 세대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하여 가나안 정복 전쟁에서 승리하고 가나안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를 세울 터전으로 삼은 ‘제2세대’, 즉 ‘가나안 정복 세대’이다. 세 번째는 10절의 말씀으로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제3세대’로서 ‘감사와 은혜를 잃어버린 세대’를 말한다. 2. 본문의 역사적 탐방 가. 출애굽 세대 이제 우리는 위 성경 말씀의 시간적 범위에서 본문의 기록을 역사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많은 성경학자들은 출애굽 사건을 애굽의 제18왕조 기간의 파라오인 아멘호텝 2세(B.C. 1448-1424년) 때에 있었으며 B.C 1446으로 추정한다.그리고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하기까지 약 2년 정도 걸렸다고 보고 있다. 채 2년이 걸리지 않은 기간을 통하여 가데스바네아에 도착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정벌하기 위하여 12명의 정탐꾼을 선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한다. 그 결과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믿음을 잃어버린 10명의 정탐꾼 말을 믿고 하나님을 원망하게 되는데,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가 애굽땅에서 죽었거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극언까지 하게 된다.(민 14:1-4) 출애굽 직전,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리신 10가지 재앙, 특히 10번째 재앙으로 신분을 가리지 않은 애굽의 모든 장자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였고(출 11:4-10), 애굽을 떠난 후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으며,(출 13:17-22)홍해가 마른 땅으로 변하여 건넜고,(출 14:21-25)뒤따라온 애굽 군대가 멸하여 짐을 보았으며,(출 14:26-31)만나와 메추라기를 통해 굶주리지 않았고,(출 16:12-24)목마를 때 반석에서 물을 얻었으며,(출 17:1-7)길을 가로막은 아말렉을 물리치게 하심(출 17:8-13), 또 금송아지를 통한 배신과 징벌(출 32장)을 직접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이었다. 특히 하나님께서 신분을 가리지 않은 애굽의 모든 장자를 생명을 취하신 것은 그들 모두의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장자는 그 가정의 내일의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바로가 9개의 재앙까지 버텼으나 장자가 죽임을 당하자 하나님의 권능 앞에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만났을 때 홍해는 마른 땅 같이 갈라졌다. 우리가 영화나 그림을 통해서는 홍해의 물결이 갈라선 물의 벽 사이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는 것으로 표현하지만 그 표현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라고 하였으니 실제 인구는 200만 명이 넘었을 것이다. 또 그들과 함께 가는 가축의 수는 얼마나 되었을까? 이 엄청난 수의 사람과 짐승이 지나는 홍해의 갈라짐은 영화와 그림과는 달리 완전히 다른 어마어마한 모습으로 아마 갈라진 홍해는 끝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난 후 끝없이 갈라진 홍해를 보고 애굽의 군대가 아무런 의심 없이 추격하였다가 모두 수장된 것을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너무 엄청난 일이므로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가나안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 중 10명은 가나안의 높은 성벽, 무장을 잘 갖춘 군사들, 스스로 자신을 메뚜기로 여길 만큼 본 거인들을 보았다. 그리고 이를 보고 기겁을 한 10명의 보고를 듣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난 2년 동안 하나님께서 직접 보여주신 은혜를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반면 그들에게 지금까지 권능과 은혜로 인도하신 하나님을 믿고 가면 이길 수 있다는 여호수아와 갈렙의 간절한 호소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출애굽 세대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이치에 맞는 10명의 의견을 택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한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권능을 뒤로 하고 사람의 생각과 판단을 따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배은망덕한 출애굽 세대를 징벌하셔서 38년간 광야에서 헤매게 하셨으며, 그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성인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음을 맞게 되었으며 다음 세대인 가나안 정복 세대가 성장하여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애굽에서 힘든 노예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을 눈앞에 둔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려 가나안에 들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출애굽 세대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나. 가나안 정복 세대 모세가 호렙산에서 죽음을 맞고 모세의 지도력은 여호수아에게 계승되었다.(수 1:1-9)가나안 정복세대가 여호수아의 지도에 따라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 전쟁을 시작한 것이 B.C 1405년경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요단강을 지나 가나안에 들어갈 때 홍해가 갈라졌던 것처럼 요단강이 그들의 눈앞에서 갈라졌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찬양하며 기념하는 돌을 세운다.(수 4:9)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거대한 여리고성이 가로막았다.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여리고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무너졌다. 그다음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지파별로 나누고 본격적으로 가나안땅을 정복한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대부분을 정복하고 정착하기 시작한 것이 B.C 1390년으로 가나안 정복전쟁은 약 15년이 걸렸다. 그렇다면 출애굽으로부터 시작하여 가나안 정복전쟁을 마치기까지 약 60년이 걸렸다. 비록 아이성의 실패가 있기는 하였지만, 높은 성벽을 보호막으로 정착문화를 이루고 강한 병사를 가진 가나안 족속이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하나님과 함께 한 이스라엘 앞에서는 패하고 말았다. 그렇게 가나안을 정복한 가나안 정복세대에 대하여 성경은 여호수아가 사는 동안 또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이 사는 동안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다(삿 2:7)고 기록하고 있다. 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 그런데 반전이 일어난다. 오늘 본문 10절 후반부에는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란 가나안 정복전쟁을 마치고 정착한 후의 다음 세대라고 보아야 한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그들의 앞 세대인 가나안 정복세대가 경험했던 경험들, 어쩌면 그들의 어린 시절에 어렴풋이나마 보았던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로 앞 세대의 시대에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권능도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벌하신 일을 잊어버리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그 후에 일어난 다음 세대’에 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삿 2:11-13) 출애굽의 연대가 기원전 1446년, 가나안 정복전쟁의 끝이 기원전 1390년 계산해보면 불과 60년 정도이다. 여기에 여호수아와 함께 한 그 세대의 사람이 다 떠나간 기간을 보태면 80년 정도라고 보아도 될 것 같다. 이 짦은 시간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가 시작되었으며 그 결과 이스라엘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게 되었다. 참으로 무서운 결과가 일어났다. 3.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 그들은 왜 하나님을 잊었을까? 가. 가르치지 않고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저 앞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모세를 통하여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기억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신명기 32:7)말씀하셨지만 그 말씀은 외면되었다. 가나안을 정복했던 세대는 가나안을 정복하고 자신들은 하나님을 잘 섬겼으나 자신의 자녀 세대와 후에 일어날 세대에게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기간 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가르치지 않았다. 또 다음 세대는 앞선 세대로부터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무엇인지 배우거나 알려고 하지 않았다. 가르치지 않고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당연히 역사를 잃어버리고 깨닫지 못한다. ‘그 후에 일어난 다음세대’는 역사를 잃어버린 백성이 된 것이다. 나. 가치관이 바뀌었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지켜오던 귀중한 가치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의 노예 생활, 광야에서의 유랑생활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는 생활을 하였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재산은 천막, 개인 식기, 최소한의 의복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목생활은 겉옷을 이불로 사용했으니 침구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정복과정에서 가나안인들이 가지고 있던 물질의 부요함을 보고 노예 생활과 광야 생활 동안 가지고 있었던 말씀 중심의 가치관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즉, 눈에 보이는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등 뒤로 돌린 것이다. 가나안 정복전쟁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 다 몰아내고 그 새긴 석상과 부어만든 우상을 다 파멸하며 산당을 다 훼파하고 그 땅을 취하라’.(민 33:51-53) 또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 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 옆구리를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게 할 것이요’(민 33:55) 하시며 경고하셨다. 가나인들만 쫓아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신앙체계와 그 근원까지 다 일소하지 않으면, 즉 그들의 삶과 완전히 단절하지 않으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임을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 대표적 사례가 아이성 전투이다. 여리고를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조그만 아이성에서 패한 원인이 거기에 있었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 정벌을 앞두고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하였다. ‘이 성과 그 가운데 모든 물건은 여호와께 바치되 ---,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수 6:17-18)경고하셨다. 그런데 아간이 하나님께 바칠 물건을 탐하여 감추었다. 이로 인하여 아이성 전투는 패했고 여호수아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아간에게서 찾아 처벌하였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면 이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간 뿐만이 아닌 것 같다. 수 7:1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바친 물건을 인하여’라고 기록하고 있고, 7:11을 보면 ‘그들이바친 물건을 취하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이 ‘들’이란 접미사가 붙으면 복수를 의미한다. 이는 아간의 범죄를 이스라엘 전체의 책임으로 돌린 의미도 있지만 최소한 이스라엘 백성들 마음에라도 탐욕이 생겼거나 백성 중 일부가 규모의 차이가 있더라도 아간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음을 의미한다. 백성 중 아간의 가족만 변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노예 생활과 방랑 생활의 어려움 가운데 있다가 가나안의 부요함을 보고 말씀을 중시하였던 지금까지 가졌던 가치관이 변하였으며 이에 따라 여호수아의 경고를 외면하거나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4. 우리의 현대사는 어떠한가? 가. 우리나라의 건국은 기도로 출발하였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일제의 강점에서 해방되었으며 지금이 그때로부터 80년이 된다.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은 1948년 8월 15일이다. 그때를 기준으로 하면 77년이 된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겪은 60여 년의 역사에 ‘그 후에 일어난 다음 세대’의 성장 기간을 더한다면, 1945년 해방된 우리의 80년 현대사와 비슷한 기간이 되면서 서로 닮은 역사의 흐름이 나타난다. 해방된 지 3년 후인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을 선출하였다. 그때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당시 많은 정치지도자가 바라보는 가운데 5월 31일 오전 10시 대한민국이 출발하는 제헌국회를 개회하였다. 국회가 개회하는 첫 시간,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은 의장석에 등단하여 이렇게 첫 발언을 한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우리가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당시 제헌국회의 의원 중에는 불교 승려도 있었고, 대종교, 천주교의 중심인물이 있었다. 그런데 국민의 첫 대표인 제헌국회의 임시의장 이승만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나라를 세우게 된 것이 오직 하나님의 은혜임을 선포하고 고백한 것이다. 이 요청을 받아 단상에 오른 이윤영 의원은 기도의 첫 서두를 이렇게 시작하였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선림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을 하나님의 선림이 세계만방에 정시하신 것으로 저희들은 믿나이다.” 1948년 7월 17일 헌법을 공포하였으며 8월 15일 대한민국이 국가의 요건을 갖추어 정식으로 출범한다. 새로이 국가가 출발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출발한 나라는 미국 외에는 대한민국이 처음일 것이다.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청교도에 의하여 독립하여 세운 기독교 국가였고 우리나라는 일제의 강점에서 해방되면서 새롭게 세운 나라이지만 신앙으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함에도 우리 대한민국이 법적으로 출발하는 날, 이 나라를 대표하는 모든 정치인이 함께 모여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기도하며 시작하였는데 이를 역사의 한순간으로만 치부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나. 지난 80년 동안 하나님은 우리나라에 어떤 은혜를 베푸셨을까? 큰 흐름으로 보면 먼저 1948년 비록 38선 이남에 한하지만 신앙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을 수립할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6.25 전쟁에서 지켜 주셨다.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당시 선조들이 나라 이름도 모르던 곳에서 군인이 파병되었다. 그 전쟁에서 한국군과 유엔군의 전사자만 175,801명이다. 민간인 사망, 학살, 행불자가 약 760,000여 명이다. 거의 100만이 생명을 잃은 전쟁이었다. 그 전쟁 기간 우리나라의 보잘 것 없던 기초산업시설은 물론 삶의 모든 터전이 철저히 파괴되었으며, 종교 특히 기독교는 엄청난 박해를 받았다. 단적인 예를 들면 지금의 마산이 도시였지만 전기를 가져올 발전시설이 없어 미군의 발전선이 전쟁 후에도 남아 전기를 공급했으며 그 발전선을 기초로 마산화력발전소가 세워졌다. 매립을 하여 옛 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지금 경남대학교 앞 교차로 부근이 발전선이 머문 장소이고 발전소가 있던 곳이다. 또 하나 예를 든다면 6.25 전쟁 당시 북한 공산주의 정권을 피하여 수많은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가 남쪽으로 내려왔고 지금도 그분들은 북한 땅에 있었던 지명으로 노회를 만들어 유지하고 있다. 합동 측 총회 자료에 따르면 순교자 72명 중 61명이 공산당 박해로 순교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해방 후 북한 땅에서 있었던 기독교에 대한 탄압의 구체적인 여러 부분은 여러 자료에 다 나타나 있다. 1953년 휴전이 되었으나 일제 침략으로 인한 수탈, 6.25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이 나라를 가난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척박한 광야를 다닌 것처럼 6.25 전쟁을 마친 후 우리는 오랜 기간 배고픔과 추위, 위생 상태의 부족으로 인한 콜레라 같은 전염병에 시달렸다. 이른바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여 각지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했다. 그 세대가 바로 우리의 윗세대이다. 우리나라의 자동차공업의 시초는 자동차의 외관을 고칠 때 드럼통을 잘라 두드려 평탄하게 한 다음 그것으로 차량의 외부 수리를 하고 비슷한 색의 페인트를 바르는 것에서 출발하였다. 필자가 어릴 때 본 모습이다. 1980년대 지금은 사용하지도 않는 녹음테이프의 재생을 위한 데크라는 부품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만들지 못해 일본의 전자회사에서 그것도 만들지 못하느냐는 비웃음을 받으며 울며 겨자 먹기로 필요 없는 부품까지 끼워서 수입해야 했다. 이를 수입하는 기업의 총수가 그 보고를 받으며 분함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지금 우리의 공업력, 기술력은 어떤가? 세계 최고의 조선기술, 반도체산업, 자동차, 정책에 의해 잠시 주춤했으나 최고의 원자로 기술,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몇 가지 군사 장비 등 남부러울 것 없이 발전해 가고 있다. 이미 순수 우리 기술에 의한 우주로켓이 발사되어 지구궤도를 돌고 있다. 특히 앞으로 우리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4차 산업혁명에서 핵심이 될 반도체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아까 이야기한 우리 기업인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던 일본의 기업, 지금은 수준이 떨어져 우리가 상대도 하지 않고 있다. 교회는 어떤가? 1876년 백홍준 등 네 사람의 청년이 만주에 가서 로스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받아들여 스스로 교회를 세운 지 140년이 지났다. 교회와 교인의 수는 현재 감소추세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전 세계 기독교 선교역사에 없는 기록이다. 가난하고 힘들 때 우리 앞선 세대는 땀 흘려 수고하였고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시어서 앞 세대들이 흘린 땀과 눈물의 열매를 주셔서 그 은혜로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다. 이제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그러나오늘날 이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이 나라의 백성들에게 제헌의회 때 고백한 감사의 정신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기독교인들도 이 나라의 현대사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얼마나 기억하고 그 감사가 남아있는지 엄격히 돌아보아야 할 때이다. 안타깝게도 이 나라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80년이 채워지는 동안 감사의 정신을 잃었다. 교회도 성도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못했던 이스라엘의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를 닮아 가고 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었던 잘못이 지금 우리에게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가나안을 정복했던 세대가 가나안을 정복하여 물질의 부요함을 물려주었으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임을 가르치지 않았다. 자신들의 믿음은 지켰지만 다음 세대에게 바른 신앙관, 가치관을 물려주지 못한 것처럼 우리의 기성세대도 같은 실수를 하고 있다. 지금 많은 젊은 세대들은 우리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선조들의 피땀 흘린 노력의 대가임을 알지 못하고 본래부터 있은 양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의 기성세대는 가난하고 힘들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릎 꿇고 기도하고 수고하고 땀을 흘렸다. 또 상당 부분 성공하고 자신들의 믿음을 잘 지켰다. 그러나 그 가운데 반드시 지켜야 할 귀중한 가치관과 신앙관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것을 놓쳤다. 가르치지 않고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당연히 역사를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 지금 이 세대가 역사를 잃어가고 있다. 라.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 지금 우리 사회는 신앙 이전에 사회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하여 바탕이 되어야 할 이해와 배려, 포용, 섬김이라는 가치관은 형편없이 무너졌고, 대신 우리 사회는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곳곳에 분열과 갈등, 탐욕과 이기심이 만연하다. 특히 진영논리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상처를 더 깊게 만들고 있다. 지난 국회의원 선거로부터 시작하여 최근 우리나라의 정치판을 흔든 탄핵까지 정치인들이 보인 모습을 따라 대부분 국민이 갈등의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아마 이러한 분열과 갈등은 쉽게 해결되지 않고 더욱 깊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어쩌면 이러한 분열과 갈등의 계속으로 어쩌면 이 나라의 내일을 가늠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이와 함께 모든 분야에서 도덕적 타락과 윤리의 무너짐도 심각하다. 이에 따라 지금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윤리 등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의 모습들이 점차 강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거대한 파도 앞에 교회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외면적으로는 반일과 반공의 이념이 대립하고, 경제적으로는 기회의 공정과 결과의 공평이 대립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 지역과 계층 간의 갈등이 함께 하고 있으며, 또 이 뒤편에서 정치지도자들은 통합보다 편 가름의 유리함을 취하여 왔다. 반일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은 반공을 경시하고 반공을 중시하는 측에서는 반일을 가벼이 여기고 있으며, 기회의 공정은 성장에, 결과의 공정은 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모두는 우리가 합리적으로 다듬어야 할 과제임이 틀림없다. 일제의 국권 찬탈과 억압은 다시 반복되지 않아야 할 부정적인 역사이지만 일제의 통치는 과거의 것이고 우리가 극복해야 할 역사이다. 물론 가해자인 일본이 이에 대하여 진심으로 뉘우치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국력과 군사력은 과거와 달리 일본이 우리를 좌지우지하던 시대가 지났으며 부분적으로 앞서나가고 있다. 오히려 우리가 당면한 현실적인 문제는 전쟁을 일으키고 이 나라 전체를 파괴하고 수많은 생명을 희생시킨 북한의 공산주의이다. 여기에 소련과 중국의 현대판 제국주의적 행태가 가세하고 있다. 지금도 북한은 무력을 통한 위협과 이 나라를 삼키려는 노력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있다. 특히 친북 이념을 가진 자들을 통한 이념의 공세도 늦추지 않고 있다. 지금도 이 땅에는 미군은 점령군, 소련군은 해방군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몰라도 해방군인지 점령군인지 딱 한 가지 결과만 보면 알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얼마만큼 법과 제도로 정착시켰는지 아닌지 살펴보면 된다. 앞서 순교자 통계를 제시했듯이 해방군이 박해하여 종교가 쫓겨나고 종교지도자를 순교자를 만드는 그런 해방군은 없다. 오히려 북한 공산주의의 위협 때문에 극복해야 할 일본과 군사적 협력을 하여야 하고 경제발전을 위해 일본과 교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불균형은 많은 사람, 특히 젊은이, 근로자들을 ‘공평’이란 주제로 내몰고 있다. 그러나 역사, 특히 맑스와 레닌 이후의 역사는 ‘공평’이란 주제를 목표로 삼아 사회주의를 택하여 몰락해간 여러 나라를 보면 답은 하나이다. 구소련, 현재의 중국, 남미의 여러 나라, 경제적 발전을 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남아의 여러 나라를 보면 ‘공평’이 정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이고 탐욕을 가진 존재임을 무시한 주제이기 때문이다. 마. 이 시대 교회의 사명 복음화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이 우리의 주변 사회 모든 영역에서 보편적 진리로 받아들일 때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교회의 선한 영향력이 주변 사회에 범위를 넓혀 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오히려 교회가 배척되고 말씀의 가르침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여기에는 교회의 잘못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불신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엄청난 교회의 분열, 이단들의 반사회적인 행태로 기성 교회까지 영향을 받는 것,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 성도들의 가치관이 변하여 삶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한 것 등 여러 이유가 있다. 여기에 교회마저 정치 앞에 분열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날 유신 치하에서, 전두환 군사정권 하에서 교회는 친정부와 반정부로 분열되었다. 최근의 탄핵 정국에서도 교파 간, 교회 간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이러한 분열 앞에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현 정국을 주도하고 있는 양 정당의 국회의원과 지도급 인사 가운데 분명 교회의 중직자들이 포진하고 있지만 그들은 자신이 속한 정당의 하수인이 되고 말았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죄인인 사람 사이에 화평을 세우고자 하셨던 예수님의 결단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이 땅에서 빛과 소금이 되지 못하고, 분열과 갈등의 치유를 위해 부족하였음과 이 사회의 윤리적 타락에 책임이 있음을 통회하고 자복하는 길이다.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점차 교회의 위축은 물론 그로 인하여 지금까지 지켜온 진리가 세상과 타협하여 진리가 왜곡되어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삿 2:13) 사태가 올지도 모른다. 5. 나가면서 우리의 앞선 세대가 힘든 과정을 헤쳐 나온 것에 대해서는 존경과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최고의 빈국을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시킴에는 그분들의 엄청난 땀과 수고가 필요로 했다. 그러나 최소한 기독교인이라도 이와 같은 발전이 사람의 뜻과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믿고 고백하고 감사해야 한다.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제헌의회 때 하나님께 함께 감사하며 기도드렸던 그 감사의 정신은 우리의 주변 사회 곳곳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범위가 교회 내부에서조차 줄어들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이 세대가, 바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한 세대가 되었기 때문이다.(삿 2:10) 지금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에 의한 초고도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80년 우리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나 부요를 이룬 것과는 차원이 다른 변화가 눈앞에 와 있다. 지금보다도 더 물질문명이 주도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물질문명의 강화는 과학적 사고와 합리성이라는 전제 앞에 다원주의의 철학과 사고가 지배하고 급기야 정신문명의 자리를 약하게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관은 물론 신앙도 지켜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은혜와 감사를 지켜내지 못하고 이어가지 못하는 순간 다음 세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듯 주변 세상이 섬기는 우상을 함께 섬기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정치지도자, 기업인, 교회, 모든 국민과 기독교인 모두가 지난날 우리의 앞 세대가 겪었던 고난과 좌절, 희생과 눈물을 기억하고 지금 우리의 위치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이를 우리의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도 이를 가르쳐야 한다. 지금 우리가 지난날을 버리고 바로 서지 않으면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는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을 가져야 한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여기에 앞장서야 한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지켜나간다면 우리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가 지켜지고 우리나라와 주변 사회가 변하고 회복되리라 믿는다. 특히 정치와 경제, 사회지도층에 있는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그곳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고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대한민국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하는 그런 세대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며, 주변 사회를 이끌어 이 나라를 변화시키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를 이어가시는 귀한 세대, 또 이를 후대에 물려주는 세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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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환 장로] 감사와 은혜를 잃어버린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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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를 위해 창조된 인간
- 인간은 관계를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관계는 하나님이 만든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서부터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갑니다. 인생의 삶은 관계입니다. 관계가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도 있으나 가장 중요합니다. 관계의 성공은 인생의 성공이고 관계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관계이기에 관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담을 지으시고 아담과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하는 여인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혼자 사는 것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고 돕는 배필을 주셨습니다. 부부관계가 중요합니다. 좋은 관계는 외로움을 이기게 합니다. 고독은 심각한 스트레스입니다. 고독사가 많습니다. 관계는 고독을 이기고 삶의 행복을 줍니다.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사람에게 상처받는다 해도 피하지 말고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소극적인 태도입니다. 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 원인을 남에게서 찾으려 하지 말고 나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관계가 깨지는데 양쪽 다 책임이 있습니다. 관계가 전부이고 나머지는 사소합니다. 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인간은 관계를 위해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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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식 목사] 관계를 위해 창조된 인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