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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SFC 폐지(2), 당랑재후(螳螂在後)
    2007년부터 2020년까지 13년 동안 인구가 1.5% 증가한 반면, 고신교단은 17%정도 감소했습니다.(총회 촬요 참조) 특히 청소년 인구는 13년 동안 27% 감소했는데, 교신교단은 50% 감소했습니다. 13년 동안 감소한 것과 통계청에서 내놓은 미래 예측치를 대비해 보면 2020년을 기준으로 2030년이 되면 고신교단의 청소년이 71% 감소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2035년이 되면 통계적으로는 제로가 됩니다. 13년이 지나면 고신교단에서 청소년이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통계상 수치입니다. 총회 미래정책위원회가 SFC에 요청하여 받은 자료에 의하면 전도에 대해서는가장 전도를 많이 한 해에 운동원 1인당 0.03명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권역과 대학에서 전도한 결과는 0명입니다. 재정과 관련해서는10년 동안 SFC에 100억 이상이 투입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총회, 노회, 기관, 개채 교회, 개인적으로 후원하는 것 등을 다 하면 최대 200억까지 추산한다는 기사가 났습니다.더 심각한 것은 SFC의 근본정신이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인데 교회 중심이 되지 않으니 SFC 간사들이 강정마을에 가서 데모를 하는 것을 넘어 성경과 고신 신학에 위배 되는 주장을 하는 강사들을 초청하여 수련회나 세미나를 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청소년의 수가 감소한 것이 SFC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SFC의 사역을 재정으로만 평가해서도 안 됩니다. 문제는 교회 중심이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SFC 폐지라는 안건이 상정되기 전에, 총회 SFC 상임위원회에서 전국 35개 노회별 SFC 담당자들을 모아 SFC 발전을 위해서 연석회의를 하는 자리에 총회 미래정책위원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그때 모두 함께 머리를 맞대고 SFC의 변화와 혁신을 위하여 피터지게 토론하고 대안을 마련했더라면 SFC폐지라는 안건은 상정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날 회의는 본질과는 다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순수한 SFC 위원들은 모르는 물밑 의도와 충동질이 있었음을 충분히 예상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본질적인 문제를 제쳐두고 누군가 ‘감정’을 부추키는 발언을 했고, “70년이 된 SFC를 폐지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우리 모두가 SFC인데 폐지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 총회미래정책위원이 점령군이냐?”등의 고성이 오갔습니다. 회의의 본질을 흐리고 ‘감정’을 부추키는 발언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모임은 오히려 SFC 폐지를 상정하도록 충동질하는 결과가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총회 미래정책위원회에서 2022년 7월 SFC 폐지 청원 건을 총회에 상정했습니다. 정말 SFC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그렇게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겠습니까? 내 자식이 죽을 것 같은 상황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현재 고신대와 복음병원의 위기와 똑같습니다. 어쩌면 SFC는 고신의 정체성의 문제요, 미래에 대한 문제이기에 훨씬 더 심각한 것입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SFC를 위해 총회상임위 두 기관과 35개 노회 SFC 담당자들이 함께 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런 자리를 마련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논리적인 대화나 토론은커녕 선입견을 가지고 집중적인 성토의 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SFC간사 중에서도 전도 및 학원복음화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 SFC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지 않느냐는 총회의 질문에 끝까지 차별금지법 반대할 것이라고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습니다. 총회석상에서의 대답은 오늘날 SFC 정서는 대표간사의 말도 안 듣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탈교회의 극단적인 모습입니다. 수도권 SFC는 지방 SFC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다르다고 하는 대답이었습니다.(이 부분은 오히려 수도권 목회자들이 더 분개하는 부분입니다.) 일반 사회적 흐름에 반대되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을 반대할 수 없다는 겁니다.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면 전도가 안 된다는 겁니다.(총회 회의록 참조) 학원복음화를 입에 대지도 않는 자들이 진리의 문제를 제기하니 전도를 핑계 삼습니다. 이것이 바로 탈교회의 결과입니다. 이것이 교회중심이 되지 않는 조직은 불신앙으로 변질된다는 증거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학원 SFC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시작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그리고는 보란 듯이 총회임원선거를 앞두고 ‘김경헌 = 손현보 = SFC 폐지’라는 등식을 만들어 총대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모습들이 정말 SFC를 사랑하는 사람의 행보입니까? SFC를 위하여 순수하게 헌신하는 분들을 돼지 떼에 넣어 비탈길을 달리게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미래요, 우리의 고향인 SFC를 인질로 잡아 사욕을 탐하는 짓을 더 이상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더 가관인 것은 2023년 8월 중순에 SFC 출판부에 큰 재정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출판부 간사 중 한 사람이 수 천 만원의 재정 사고를 낸 것입니다.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출판부 정상화와 쇄신을 위한 전권위원회’가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이 일로 애매하게 어려움을 당할 위기에 처했던 출판부의 다른 간사의 SFC지도부를 향한 애절한 호소가 항간에 회자되고 있습니다. 개체교회에서 재정 비리사고가 나면 관련자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SFC는 지금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불과 얼마 전 KPM에서 있었던 재정 사고가 불현 듯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요? 은급재단은 어떤지 묻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당랑재후(螳螂在後)’란 말이 있습니다. 매미를 덮치려는 사마귀가 뒤에 참새가 노리고 있음을 몰랐다는 뜻으로, 눈앞의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뒤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을 모름을 탄식하는 말입니다. 이미 참새의 부리가 쪼아버린 것 같은 먹먹한 심정이 저만의 느낌이 아니기를 바라며, SFC를 사랑하는 동지들이여 지금이라도 당랑재후(螳螂在後)하지 않기를 간곡히 부탁합니다. ※ 독자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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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3-01
  • [기고] 아무리 급해도(2)
    아무리 급해도(3) : 논문표절 최근 몇 년 사이 대학 총장과 총장 후보의 논문표절 문제가 자주 불거졌습니다. 인터넷에 “대학 총장 논문표절”이라고 검색하면, 국내외 많은 대학의 논란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경우 사퇴라는 절차를 밟았고,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이와 같은 많은 논란 때문인지 교육부 역시 최근 연구 부정행위에 대해 아주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로 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한, 학교마다 ‘연구 윤리 진실성 위원회’ 같은 기구를 통해 특히 총장 후보에 관한 엄격한 자격 검증을 거치도록 합니다. 대학 총장은 교수들과 연구자들을 이끕니다. 연구에 부정행위가 있다면 한평생 연구로 씨름해 온 분들을 이끌 수 없는 것이 자명한 일입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신임 총장의 2004, 2005, 2007, 2008년 출판 논문들은 각각 심각한 수준의 표절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중 게재, 자기표절, 논문 쪼개기, 덧붙이기 출판 등의 연구 부정행위가 있었다고 이미 알려졌습니다. 고려학원 이사회 역시 이 사실을 분명 알았으며, 그 심각성을 인지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총회 운영위에서도 논문표절에 관한 우려로 인해 반대의견이 나왔지만, 이사장은 “연구 윤리규정이 제정되기 전인 2017-18년 전에 자신의 논문을 표절한 것으로, 대법원은 이를 표절이라 보지 않는 판례가 있다”라며 설득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표절은 인정하는데 대법원이 표절이라 보지 않으니 괜찮다는 겁니까? 이런 내용이 공개된 상황에서 기독교 대학을 자부하며, 개혁주의 신학을 주장하는 고신대학교를 비롯한 고려학원이 이런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까? 낯 뜨거워서 기도회를 어떻게 합니까? 지금 이 심각한 문제가 교육부를 통해 신임 총장의 전 소속 학교인 백석대학교에 의해 조사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인간적인 관계로 인한 “눈 가리고 아웅”이 아닌 정확한 조사와 판단을 기대합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생활의 순결에 위배됩니다. 아무리 급해도(4) : 교단 가입의 부당성 고신총회 헌법 제57조 다른 교단 목사의 가입에 보면 “다른 교단 소속 목사가 본 교단 노회에 가입하고자 하면 반드시 시무교회와 함께 가입하여야 하며 다음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총회 어느 노회에선 이런 것을 살피지 않고 그냥 원래 출신이 지역의 교회니까 받자고 했다고 합니다. 타 교단 목사의 가입 절차가 총회 법에 어긋난다면 원인 무효입니다. 지금도 대다수의 노회에서는 타 교단 출신의 목사 가입을 엄격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전례가 되면 타 교단 목사 가입이 불법으로 노회마다 행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제가 적은 글에 대해 고신대의 모 교수가 글로컬 대학을 비판하면서 소위 고신 정체성 운운했는데 이런 부당한 방법으로 교단 가입한 것은 고신 정체성과 일관성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신앙의 정통에 위배됩니다. 총장은 도덕성에 흠이 없어야 교직원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가 있고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논문표절의 심각한 문제가 있는 총장이 다른 교수들, 직원들의 비도덕적인 면을 어떻게 지도할 것입니까? 정관개정의 절차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고려학원의 질서를 잘 세워 학교를 발전시킬 수 있겠습니까? 교단 가입 절차에 문제가 있는 목사가 교단의 정체성을 분명히 세울 수 있습니까? 대법원의 판례를 예로 들어 표절 문제를 넘어가려 한다면, 특정인을 선거에서 유리하도록 법을 개정하며 조치한 경우에 대해서 공직자 선거법 위반이 된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 총장의 선출과정에서 드러난 정관개정의 절차 문제나 교단 가입의 절차 문제를 사회법에서 다룬다면 원인 무효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런 도덕적 결함을 지닌 총장이 학생들 앞에서 교단의 핵심 정신인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외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식으로 선임한 이사회와 총회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훨씬 더 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신은 사람을 못 키운다는 말을 듣는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대로 세워야겠다면 불법을 계획하고, 눈감고, 시행한 사람들이 책임져야 합니다. 논문표절은 본인이, 정관개정의 절차적 문제는 고려학원 이사들이, 그리고 노회 가입은 그 노회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총회 임원회 역시 이 모든 일을 방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런 것을 알고도 묵인하고 강행했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래야 고려학원이 삽니다. 기워야 할 옷이 있다면, 그리고 좋은 옷을 만들고자 한다면 제대로 해야지 아무리 급해도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총장이 열심히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약점과 비합리적인 것과 비윤리 불법적인 모든 것을 덮기 위해서라도 더 열심히 할 것입니다. 고신대의 어려운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서는 교육부의 글로컬 대학 진입과 부산광역시의 라이즈(RISE) 사업을 수주해야 하는데,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할 총장이 장관이나 시장을 만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모두가 손뼉 치고 따라갈까요? 선임된 총장을 위해서 한 일들 같습니까? 얼마든지 일 잘 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는데 오히려 족쇄를 채워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아닙니까? 아니 족쇄를 채워 소신껏 일을 못 하게 하는 것을 넘어 사리사욕을 채우지는 않을지 심히 염려됩니다. 이런 사실들을 아는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요? 비웃지는 않을까요? 개인 어느 누구를 비웃는 것이 아니라 출옥 성도의 ‘코람데오’ 신앙을 저버린 고신을 말입니다. 아무리 급해도 이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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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09
  • [기고] 고신, 우이독경(牛耳讀經) 교단과 대학교
    지난 글에 대한 반론이 나왔습니다. 고신대학교 모 교수님이 쓴 글입니다. 반론이라는 말 자체는 없지만, 내용을 보면 반론이 확실합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을 것이라 짐작했던 터라 이 반론이 참 반갑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내용은 ‘우이독경(牛耳讀經)’,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지난 글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염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본질을 흐리는 말싸움, 감정싸움으로 비치지 않길 바랍니다.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에 나온 반론도 ‘위기’, ‘골든타임’을 표면적으로는 인정하는 듯 보이니까 말입니다.하지만 시간이 없습니다. 지난 글에서 지적하고자 했던 것은 간단합니다. “언제까지, 얼마가 필요한가?” 다시 설명해 드립니다. ‘골든타임’으로 접어든 ‘위기’의 고신대학교에 관한 교단 지도자들의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교단 지도자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작금의 이런저런 노력이 귀하지 않다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와 성도를 설득해 기부금을 받는 정도의 방법이 주요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법으로는 본질을 해결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고신 내부의 큰 소리를 들어달라는 겁니다. 지금까지 고신교단의 교회는 고신대학교를 위해 헌신해 왔습니다. 그런데 ‘위기’와 ‘골든타임’이라는 상황에 다시 더 큰 기부금을 요청하며 걷고 있습니다. 기도회를 하면서 말입니다. 저의 제안은 언제까지, 얼마를 기부해야 하며,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묻는 것입니다.그것이 어떤 것이든, 이제는 정확한 판단과 분석이라는 것을 보고 싶고, 봐야 할 때라서 그렇습니다. 저는 저의 이 제안이 간단명료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론을 보니 제 제안이 어려운 모양입니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장황하지도 않은 장황한 역사만늘어놓았습니다. 2003년, 2014년, 2015년의 이야기가 지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본질을 흐리고 있습니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73회 총회가 드디어 제대로 된 대책을 내며 일을 시작했다는 생색뿐입니다. 과거의 장황한 역사를 꼬집은 것은 이 ‘생색’을 돋보이게 하는 양념이었군요. 책임져야 할 자들은 따로 있는데, 왜 ‘우리’(?)에게 말하느냐는 마음이 행간에 엿보입니다. 설명이 어려운 듯하여 다시 설명해 드립니다. 과거에는 전혀 기부금이 없었습니까? 역대 최고 수준의 기부금을 언급하는데, 이것이 고신대학교를 살릴 수 있습니까? 이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대로 된 판단과 분석을 토대로 노력하자는 겁니다. 본질을 흐리지 마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고신대학교의 상황에 관한 미화뿐입니다. 과거에는 전혀 기부금이 없었고, 과거에는 교직원들의 헌신이 없었습니까? 교수의 81%, 직원의 42%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면, 교수의 19%와 직원의 58%와는 갈등이 없습니까? 내부적으로 나오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겁니까? 아니면 듣기 싫은 겁니까? 지금 모든 지방 사립 대학은 연합 대학을 통해서라도 글로컬 대학에 진입하는 일에 대학의 사활을 걸고 있는데(참고,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58472), 글로컬 대학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주장은 도대체 어떤 근거와 데이터를 가지고 하는 말입니까? 대학에 몸담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카테고리가 헷갈리거나, 아니면 호도(糊塗)하는 유희삼매(遊戱三昧)만있습니다. 교육부와 지자체가 발주하는 사업에 참여한 결과로 받은 금액이 64억 중 교직원 인건비, 학교 운영비로 지출된 금액이 1원이라도 있습니까? 이 금액은 그야말로 프로그램을 위한 비용입니다.혹시 64억을 받아 학교 살림이 나아졌는데도 ‘위기’와 ‘골든타임’에 동조하며 계속 모금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계시는 겁니까? 반론자도 고신대학교의 문제가 학령인구 감소와 그에 따른 재정위기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안으로 학생들이 공부와 자기 발전을 위해 열심히 하는 것을 제시하다니요? 또한, 구조조정을 언급하면서 실제적인 문제를 언급하는 일반적인 상식은 ‘세속적인 사고방식’으로 무시하면서 교직원 연봉의 십일조를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것을 언급하다니요? 도대체 구조조정과 연봉의 십일조 기부와 무슨 상관이 있으며, 이것이 어떻게 전체 고신대학교를 위한 상생이 되는지요? 수익 구조 다각화에 대한 노력과 5년 재정 구조에 대한 정밀 시뮬레이션 완성? 좋습니다. 바로 이런 대책을 내놓으라는 겁니다. 본질을 흐리지 말고, 그 방법을 고신대학교를 위한 더 큰 헌신과 헌금을 요구하는 고신 교회 앞에 설명해 주십시오. “모금하다가 안 되면 할 수 없고”라는 식의 미봉책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동참하지 않는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의 염려와 중심을 정확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분들의 ‘고신 사랑’을 폄하하지 마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가짜 뉴스라는 지적만있습니다. “재학생 등록률과 신입생 충원 결과를 보면 1년 100억 적자가 날 것이 분명한 사실인데”라는 표현이 가짜 뉴스인가요? 제 나름대로 정보를 통해 파악한 금액입니다. 저의 부족함 때문에 계산상 조금의 오류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주는 이가 없으니 그럴 수 있지요. 그런데 이게 가짜 뉴스라고 지적받을 표현인가요? 그렇다면 반론자는 자료를 다루는 교수 아닙니까? 병원의 적자는 어떻습니까? 학교법인 고려학원의 적자가 100억 이상 나는 것이 가짜 뉴스라면, 본질을 흐리지 말고, 진짜 뉴스로 ‘정확한 적자 금액’을 분명히 밝혀주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오히려 가짜 뉴스만 있을 뿐입니다. “혹자는 의대와 복음병원을 헐값에 인수하려는 사람들과 모의를 벌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동안 위기라고 말만 하면서 오히려 잘못된 과장 정보로 위기를 부풀리기만 했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면...”??? 신학교수인 반론자는 정말 신앙 양심에 화인을 맞았습니까? 십계명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동료를 향한 가짜 뉴스를 은근히 양산하는 말장난을 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잘못된 과장 정보로 위기를 부풀렸다면, 지금 반론자가 말하는 위기와 골든타임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이 정도 매너의 교수가 신학교수로 학교 강단에 있는 고신의 현실이 개탄스럽기까지 합니다. 본질을 흐리는 공격을 멈추십시오. 호기롭게 반론은 제시했지만,책임질 수도 없고, 책임질 생각도 없는 나팔수의 아부만 있을 뿐입니다. 도대체 교수님은 우리 고신교단과 고신대학교에서 어떤 책임 있는 자리에 있습니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개진하는 것은 신자 개인의 자유이나, 총회와 고신대학교를 대변하는 듯한 이런 주장으로 교단과 고신대학교를 갈라치기 하는 (파탄 내는) 논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나팔수의 아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이것이 극단적인 분리주의 사고방식인 것은 모르실 리 없겠지요. 본질을 흐린 채 말장난, 정중하고 정확한 논의를 촉구합니다. 정확한 사실을 제시하는 책임 질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 독자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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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1-27
  • [특별기고] 통합 기념 한마음교회 유감
    폭염입니다. 여름의 태양이 작열하는 계절! 이 여름에 우리 주님 다시 오신다면 태양처럼 뜨거운 신앙 열정을 가진 사람을 찾으실 것 같습니다. 사역의 현장마다 여름 태양보다 더 뜨거워서 주님의 칭찬을 받는 우리 교단 교회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듯이 우리는 성공적인 교단통합을 이었습니다. 그 통합기념으로 한마음교회를 설립한 것입니다. 전국 노회와 교회들이 마음과 기도와 물질을 모아 세운 기념비적 통합기념교회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통합기념 한마음교회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는지요? 통합기념 한마음교회는 고신교단의 여러 어른들과 선배 목사님들 그리고 총회 임원들 그리고 (구)고려의 선배들과 임원들이 힘들게 이루어낸 통합의 금자탑이며 결정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교회의 지 교회가 되어있습니다. 교단통합을 하면서 기념으로 교회를 설랍(립)하되 (구)고려측의 목회자를 세우기로 결의하고 설립한 교회가 바로 한마음교회입니다. 그런데 (구)고려측의 일대 한마음교회 전임목사는 당회장권 한번 갖지 못하고, 고초를 겪다가 사임하였습니다. 한마음교회 담임목사에게 이러저런 이유로 당회장권을 이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년 동안 무려 6번이나 당회장을 바꾸면서 힘들게 했습니다. 이런 상식 밖의 이상한 일이 통합기념 한마음교회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안양일심교회 부목사로 사역했던 이 모 목사가 담임으로 있습니다. 안양일심교회가 물심양면으로 많은 부분을 헌신한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전국 노회와 교회의 헌금으로 세운 통합기념교회를 일심교회 40주년 지교회로 삼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유감스럽게도 통합기념교회 설립을 위한 목적헌금이 한 교회의 지교회를 설립하는데 사용되는 어처구니 없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교단 전체가 바로 알고, 바로 잡아야 하겠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우리가 하나의 교단으로 통합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처음의 약속과 결의가 깨짐으로 아름다운 통합정신이 훼손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아픔이지만, 특히 (구)고려 측 형제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 아픔이 된 것입니다. 이런 사태로 인해 안양일심교회와 당회장은 (구)고려 측 형제들로부터 신뢰를 잃었고,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미안했던지, 무마하려고 (구)고려의 어려운 분들을 후원하겠다고 접촉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고려 목사들은 의도가 순수하지 못한 후원금을 받을 리 없지 않습니까? 지난해부터 제안하는 후원금을 거부해 왔습니다. 올해 들어와서 또다시 (구)고려 동문회에 7천만원 정도를 후원하겠다고 제의를 해왔지만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교회와 선교사들이 많이 있었지만 통합기념교회를 세우려는 큰 뜻이 있기에 거절했던 것입니다. 급기야는 비공식 채널을 통해 기어코 후원을 했습니다. 공식적으로 거부했는데도 비공식체널을 통해 기어코 다수의 교회에 상당한 후원을 감행한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저도 부교역자 약 10년, 한 교회 담임목회를 27년째 하니 37년 사역을 하며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은 사람입니다. 교회의 내부 사정이 있어 그렇겠거니, 일면 이해가 가지만, 그렇지만 한마음교회의 문제는 양 교단 통합기념 교회인만큼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국 노회와 교회의 헌금은 통합기념교회를 설립하기 위한 목적 헌금입니다. 그 목적대로 쓰이지 않았다면 바로 잡는 것이 마땅합니다. 따라서 교단 70주년을 맞아 통합기념교회를 다시 세우려는 계획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국 노회와 교회의 후원금 13억여원은 교단통합의 정신과 기념을 담는 명실공히 통합기념교회 설립을 위해 쓰여져야 할 것입니다. 안양일심교회는 고신교단의 대표적인 큰 교회 중의 하나입니다. 또한 당회장 김홍석목사님은 앞으로 총회에 큰 일을 감당해야할 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중대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고 교단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안양일심교회 김홍석목사는 통합기념 교회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는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여할 것입니다. 이것이 (구)고려측 대부분 형제들의 일치된 생각입니다. “순교자의 고장! 진리의 파숫군! 경건자의 훈련소, 예수의 제자들이 일어나는 산실!” 그 교단이 우리 고신 입니다. 저는 우리 교단의 일원이고 교단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고신의 목사로 함께 사역함이 늘 감사합니다. 저는 고신인이 된 것이 좋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뒤를 이어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 정신을 이어가는 우리 교단이 좋고 자랑스럽습니다. 그 어떤 일보다도 고신과 고려의 통합이 자랑스럽습니다. 통합 후 (구)고려 동문들이 연합하여 학원이사로, 고신세계선교회 이사로, 이단사이비연구소장으로, 동문회 임원으로. 각 상비부에서... 각처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운 하모니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통합입니다. 이렇게 배려해 주고, 사랑해주는 우리 ‘고신’이라는 이름이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따라서 통합기념교회가 다시 설립되어 통합정신이 훼손되지 않고 계승되어 아름다운 교단을 잘 보전하고, 또 더 아름답게 발전되기를 기원하는 바램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 통합기념교회 설립을 이행하라! * 전국 노회와 교회의 목적 헌금을 반환하라! 2022년 7월 중순 신앙 열정이 여름 태양처럼 뜨겁기를 기도하며... ※ 기고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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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2022-08-02
  • [신재철 목사] 안녕, 대전(大田) : “전학왔니더”
    “푸를 청(靑), 소나무 송(松). 청송에서 대전으로 전학왔니더.” 전학 수속이 끝나고 들어간 교실. 담임 선생님께서 친구들에게 자기소개를 해보라 말씀하셨다. 나는 큰 소리로 나의 고향 이름을 소개하며 인사했다. 아이들이 나의 인사보다 더 크게 웃는다. 왜 웃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 정해주신 빈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와 다르게 아이들 얼굴이 뽀얗다. 우리 엄마가 읍내에서 사준 이랜드 옷이 촌스럽게 느껴졌다. 어쩐지 다들 공부도 잘 할 것 같다. 주눅과 함께 찾아든 두려움도 잠시. 쉬는 시간에 몰려든 아이들의 질문 세례에 정신이 없었다. 자꾸 말을 시킨다. 그리고 아이들은 더 크게 웃는다. 아마도 나의 사투리가 재미있고 신기했던 것 같다. 대놓고 놀리는 것은 아닌데 뭔가 찝찝하다. 촌놈 하나 전학 오니 신기해서 구경하러 온 느낌이다. “뭐여~ 내가 언제~” “니가 그랬잖여~ 왜그랴~” 나를 구경하러온 친구 무리와 떨어진 곳에서 조금 큰 소리가 난다. 제법 덩치 큰 남자 아이 둘이서 대화를 하고 있다. 내게 몰려든 아이들이 이제 그쪽으로 몰려간다. 아직은 인사도 제대로 못한 옆 짝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큰소리로 대화하는 두 명의 친구, 그곳으로 몰려드는 아이들.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첫인상이 좋았던 짝은 웃으며 답한다. “응, 쟤들 싸우는 거야. 그래서 구경 간거지모.” 응? 싸우는 것이라고? 저렇게 느린 말로, 저렇게 너그러운 톤으로 싸움이 가능하단 말인가? 내가 있던 경상도에서는 싸움이 나면 일단 말로 여럿 죽인다. 목소리도 얼마나 큰지 말한 대로 곧 실천할 것 같은 위협이 느껴진다. 경상도 말은 나름 살가운 인사도 종종 살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해를 받기도;; 뭔가 대전 친구들은 푸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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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1
  • 마음을 여는 시 [신광열 목사] 걱정
    사람이 없어 걱정이다 강 같은 어머니가 없고 산 같은 아버지도 없다 길 같은 선생님도 별 같은 지도자도 흙 같은 목회자가 없어 참으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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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을 여는 시
    2021-03-24

실시간 기고 기사

  • [특별기고] ‘통합기념 한마음교회 유감’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
    ※ 본지는 반론권 보장을 사유로 김동식 목사의 반론문 게재를 수용하여 13일(토)에 기고문을 게재할 것을 약속하였으나 김동식 목사는 본지 편집인의 개인 휴대전화로 협박성 문자를 보내왔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속히(2022년 8월 12일 18시까지) 반론을 게재해 줄 것을 촉구하며, 반론이 게재되지 않을 경우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는 물론, 명예훼손과 정신적피해에 대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반드시 물을 것임을..." 또한 타 기독 언론 매체를 통하여 본인의 기고글을 게재하는 과정에서 본지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악의적인 글을 실었다. 뿐만 아니라 타 기독 언론 매체 기사 입력 시간이 '2022년 8월 12일 12시 56분' 으로 김동식 목사가 본지에 게재를 요구하며 커트라인으로 제시한 '2022년 8월 12일 18시까지' 에 대한 약속은 스스로 지키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따라서 본지 경남기독신문은 향후 합당한 절차를 통하여 엄중히 대처할 것이다. 그러나 구독자의 알 권리와 정당한 논쟁을 보장해야 할 언론의 사명을 다하고자 요청한 반론문은 게제하는 바이다. <경남기독신문 편집인> 경남기독신문 2022년 8월 2일자 <[특별기고] 통합기념 한마음교회 유감>의 글은 행정적 근거와 사실과도 전혀 다른 사실입니다. 마치 ‘시뮬라크르-Simulacre’와 같이 본질을 복제한 가짜로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한 허상의 글이기에 그 당시 직접 경험하고 개입된 일이기에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어 경기중부노회 임원들의 의견도 듣고 이 글을 씁니다. 아울러 고신 총회 경기중부노회는 행정적 오류가 없음을 밝힘과 동시에 특별기고자는 한번도 노회나 한마음교회를 수습한 당시 임시당회장들에게 서류나 사실 확인을 위해 요청한 바가 없음은 일방적 생각과 주장으로 글을 기고하였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1. 한마음교회는 유일무이한 ‘통합기념교회’입니다. 한마음교회가 세워지는데는 안양일심교회 J 안수집사의 13억 상당의 종교부지를 헌물한데서 시작됩니다. 2017년 12월 ‘총회통합기념교회 설립추진위원회-위원장 김성복 부총회장’의 요청으로 안양일심교회 당회는 기꺼이 통합기념교회로 드리기로 하여 세워졌고, 2019년 12월 22일 설립예배를 드려졌습니다. 지금도 현관 현판에 개인, 교회, 단체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교회 홈페이지에서도 확인되고 교회 주부에 ‘통합기념교회’에 기록되어 성도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 한마음교회는 안양일심교회의 40주년 기념교회나 지교회가 아닙니다. 안양일심교회 40주년 기념교회나 지교회라는 말은 말도 되지 않는 일입니다. 물론 종교부지 헌물하였고, 성도들이 10억 헌금 하였지만 안양일심교회 주보, 교회요람, 교회연혁 등 어디에도 ‘40주년 기념교회’나 ‘지교회’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전혀 없습니다. 더구나 2018년에 설립되었고, 40주년은 2020년이기 때문에 전혀 맞지 않습니다. 더구나 분명한 것은 노회에서도 한마음교회는 통합기념교회로 되어 있습니다. 3. 당회장권을 한번도 준 적이 없다는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1) 한마음교회 1대 담임 목사가 선정되고 안양일심교회는 장로 2인과 성도들을 보내기로 하고 노력하였으나, 1대 담임 목사는 이를 거절하였습니다. 장로 2인이 가고 성도들이 함께 하였다면 당회장이 아니라 위임목사로 세워졌을 것입니다. 그렇지 몫해서 전도 목사로 파송되어 당회장을 맡지 못한 것입니다. 2) 첫 번째 당회장이었던 김홍석 목사는 한마음교회 1대 담임 목사에게 모든 권한을 일임하였습니다. 2018년 12월 30일 첫 공동의회에서 당회장이 담임 목사에게 위임한 내용이 회의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성례권(학습, 세례, 입교, 유아세례)을 담임 목사에게 위임한다. (2) 제직회 일반 사무를 담임 목사에게 위임한다.(예산 편성권, 추가경정 예산 편성권, 예산에 관한 지출, 제직회를 경유한 각종 특별회계 지출) (3) 부목사 청빙을 제외한 교역자 및 임시직원(서리집사)의 임명을 담임 목사에게 위임한다. (4) 경기중부노회 및 총회를 제외하고 대외적으로 교회를 대표할 수 있도록 위임한다. (5) 본 교단 소속목사에 한하여 강도권을 담임 목사에게 위임한다. (6) 정직이하의 치리권을 담임 목사에게 위임한다 로 결의 명시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당회장과 같이 위임하여 준 것입니다. 3) 시찰회와 노회는 당회장권을 주려고 하였으나 담임 목사 사역 중 전임 사역교회에서 재정문제 등 여러 문제를 노회에 제기하게 되어 당회장권이 재론 되었습니다. 4. 옛 고려 측 목회자가 담임하지 못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1) 1대 목사의 과오 때문입니다. 누구도 한마음교회 1대 담임 목사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목회 사역 과정에서 심각한 성도와의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겨우 화해와 봉합이 되었지만 2020년 2월 16일 제직회와 공동의회에서 다시 격화되어 내분이 확산 되었습니다. 2차 문제의 해결방법으로 J 당회장의 중재로 3가지 합의를 하였지만 담임 목사의 일방적 합의 파기와 함께 교회 출입 금지 시키고 참으로 고통스런 자살소동까지 이어져 교회는 끝없는 파국으로 빠졌습니다. 총회 재판국의 중재와 임시 당회장과 협조 당회의 결단으로 재정지원으로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2) 2대는 청빙은 교회의 고유한 행정권한입니다. 청빙위원회가 구성되었고 2020년 8월 기독교보에 ‘한마음교회 청빙공고’를 통해 공개적 청빙절차를 밟았습니다. 총 21명이 청빙서류를 제출하였고 그 중에는 옛 고려 측의 목회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옛 고려 측의 목사가 제2대 한마음교회 담임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억지입니다. 21명의 지원자 중 2020년 9월 27일 청빙위원회에서 21명 중 4명으로 압축하고 면접자 2명을 최종 선정하였고 최종 결적을 내리지 못하고 1주일 기도 후 9월 26일 낮 12시 무기명 투표로 2대 담임 목사를 선정하였습니다. 3) 현재 한마음교회는 2대 담임 목사를 중심으로 회복되어 출석교인 130여 명에 이르는 은혜로 무너진 교회가 회복되어 있습니다. 5. 교단 70주년을 맞아 통합기념교회를 다시 세운다는 것은 역사의 역행입니다. 전국 노회와 교회의 후원금 13억을 말하는데 내야 할 분은 따로 있습니다. 1대 담임 목사를 잘못 세운 책임과 관계된 교회들과 우리 모두의 책임임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경기중부노회 소속 안양일심교회 김홍석 목사와 당회 그리고 성도들은 통합기념교회를 위해 종교부지 헌납, 10억 헌금, 1차 성도 파송, 2차 성도 파송하여 한마음교회를 살린 교회입니다. 이런 상황을 인식하지 못하고 정치적 이슈화하여 거론하는 것은 목회자의 일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6. 무엇보다 이 문제는 고신 총회 제 71회 총회-2021년 9월 28일(화) 오후 1시 ~ 30일(목)-에서 모두 화합 하에 이미 처리 된 일입니다. 이것을 다시 거롢는 것은 총회의 결의를 번복하는 처사이고, 고신총회와 역행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본인이 총회에서 화합과 통합을 발표한 사람입니다. 아울러 총회 선거를 앞둔 마당에 정당한 근거 없이 정치적 이슈화하여 유포하는 것은 총회를 어지럽히는 것이고, 도리어 통합 정신을 고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반하는 것이라 사료됩니다. 고신 총회는 한국교회의 보루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로 총회를 어지럽히고 여론을 조장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김동식 목사 약력 · 현)충훈교회 담임 · 목회학 박사 · 전임 경기중부노회 노회장 · 미주목회 13년 · 말씀회복연구소 소장 · 월간 광야 발행인 · 칼럼리스트 · CMF 전문가정사역자 ※ 기고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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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3
  • [특별기고] 경남기독문화원 문화선교사 김태군 목사의 미주행전(1)
    여호와 샬롬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고백한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저 역시 무엇 하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루어 질 수 없었던 미주초청 찬양집회를 다녀오게 되었고 그 짧지 않은 여정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이렇게 글을 씁니다. 별빛교회가 어떤 모습으로든지 신곡리를 섬기고 또한 출석하는 15명의 청소년들의 꿈과 소망을 키워 나가기 위해 교회 1층을 영업허가를 내어서 갤러리 카페로 준비하는 과정 속에서 몇 해 전 하나님의 은혜로 만나게 된 아틀란타 선한사마리아인교회 협동목회를 하시는 김춘곤 목사님과 서경훈 목사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기도의 동역자들로 힘을 나누고 지내다가 그 교회에서 선교를 하는 과테말라 높은뜻우리교회(배형근 목사)와 인연이 닿았습니다. 그렇게 연결이 되면서 과테말라 현지 청년들을 밀양으로 농업교육과 취업을 위해 이런 저런 절차들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김춘곤 목사님의 밀양 방문을 통해서 밀양 시장님과 만나게 되고 좀 더 구체적인 일들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들이 점점 만들어 지는 가운데 과테말라 한인 청소년들이 아틀란타 선한사마리아인교회로 단기 선교를 오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아틀란타에서 연락이 오기를 저를 초청해서 부흥회와 문화선교에 관한 일들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일들로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지난 6월 10일 인천을 통해 아틀란타로 가게 되었습니다. 가기 전 갤러리 카페를 오픈 하려고 했던 저의 계획은 밀양에 큰 불이 나는 바람에 오픈식도 못하고 그냥 가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갑갑함을 가지고 출발을 하려니 정말 모든 것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기도와 찬양 준비로 마음을 가다듬고 출국길에 올랐습니다. 처음엔 아틀란타와 과테말라만 가려고 했지만 이런 기회가 또 오겠나 싶어서 일정을 한 주간 더 늘려서 나오는 길은 LA를 통해서 나오려고 했고 그 일정을 통해 주께서 인도하심을 느끼고 온 시간들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6월 10일(금) 아틀란타에 도착 후 기회가 주어지는 순간마다 예배 찬양으로 영광 올려 드리며 걸어갔습니다. 금요기도회, 새벽기도회, 주일 일정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아틀란타였기에 순간순간을 알차게 보내려고 맘 먹고 기도하며 순종하며 나아갔습니다. 도착 후 첫 주일, 한인교회인 주은혜교회(강윤구 목사)에서 1부 찬양과 2부 땐 미국인교회인 Lord of Life Lutheran Church에서 특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첫 사역이었습니다. 미국인 교회에서 “생명의 강물”을 부르게 되었는데, 한국말도 모르시는 미국인 성도님들께서 눈물을 흘리며 함께 찬양 속으로 빠져 드셔서 순간적으로 엄청 놀란 시간이었습니다. 예배가 마치고 난 뒤에도 다들 오셔서 눈시울을 붉히며 축복해 주셨습니다. 정말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루어 질 수 없는 순간을 누리게 되었으며 가기 전 준비한 USB음반이 있었는데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 미국인 성도님들께서 음반을 사주시고 축복의 시간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은혜의 시간을 누리고 15일 수요일 양로원 데이케어 사역이 진행 되었습니다. 이민 가신 어르신들께서 아침에 오셔서 오후까지 지내시는 센터에서 예배와 미니콘서트를 가졌습니다. 고국에서 왔다고 다들 너무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마치고 함께 식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어르신들과 짧은 만남의 시간도 나누게 되었는데 모두가 하시는 말씀이 한국에 가면 꼭 만나고 싶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은 정말 오시겠다는 말씀 이전에 고국을 그만큼 그리워하고 계신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고 저 또한 남은 시간들을 더욱 더 봉사하며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저 하늘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17일(금) 선한 사마리아인교회로 단기선교를 온 과테말라 한인 청소년들과 아틀란타 프라미스교회에서 금요기도회로 섬겼습니다. 과테말라 단기선교팀의 오카리나 연주와 저의 찬양간증집회를 은혜 가운데 마치게 되었습니다. 프라미스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안식월이라 뵙지는 못했지만 가족 같은 분위기의 프라미스교회는 참으로 따뜻한 교회임을 느끼고 왔습니다. 또한 프라미스교회를 섬기시는 집사님 부부를 만나서 고국의 청년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준비해 보라는 말씀도 나누게 되었습니다. 집사님부부는 미국으로 이민을 한 후 열심을 다해서 살아가시면서 청소년과 청년들을 향한 남다른 마음이 있으셔서 저에게 고마운 충고를 해주시고 물심양면으로 섬겨 주셨습니다.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고 별빛교회 청소년들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에 제대로 잘 준비해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도록 기도하고 준비하는 비전을 품고 돌아왔습니다. 18일(토) 선한 사마리아인교회에서 부흥집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토요일 오후 그리고 주일 오전과 오후 총 세 번의 집회 동안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씀의 주제를 가지고 은혜 가운데 모든 집회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로 펜데믹 때문에 성가대가 모이지도 못하고 주일 예배 시 한 번도 찬양의 시간을 못했는데 이 번에 제가 인도한 부흥회에 아름다운 하모니로 성가대가 2년여 만에 예배 때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하시더군요. 참 감사하고 은혜로운 시간을 함께 누리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집을 숙소로 준비해 주신 선한 사마리아인교회 이 장로님과 집사님, 잊지 못할 순간이었습니다. 장로님 댁에서 지내면서 주님은 머리 둘 곳 조차 없으셨다고 하셨는데 나 같은 죄인이 이렇게 편한 곳에서 지낼 수 있다는 것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 어떤 것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제 주일이 지나고 과테말라로 떠나기 전날 급작스럽게 또 다른 데이케어에서 섭외가 들어왔습니다. 기쁨으로 찾아뵙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르신들을 위해 찬양과 간증을 드리고 함께 은혜를 나누게 되었는데 마치고 그 어르신들께서 저에게 찾아 오셔서 두 손을 꼭 잡으시고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고국에 가게 되면 꼭 찾아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처음 갔던 센터처럼 그 어르신들의 마음엔 고국에 대한 간절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이 계셨는데 환하게 웃으시면서 다가오신 백발의 어머님은 눈시울을 붉히시면서 “실은 제가 목사 사모입니다. 그런데 은퇴하신 목사님께서 작년에 천국으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천국 갈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시면서 빌려오신 헌금을 봉투에 담으셔서 “고국에 돌아가면 꼭 좋은 곳에 사용해 주십시오” 하시는 겁니다. 가슴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그 사모님의 사랑의 마음을 신곡리 어르신들과 별빛 아이들에게 전하려고 굳게 맘을 먹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들에게 주어진 시간과 사람과 그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존재로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다음 호에 계속> 글. 김태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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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10
  • [특별기고] 통합 기념 한마음교회 유감
    폭염입니다. 여름의 태양이 작열하는 계절! 이 여름에 우리 주님 다시 오신다면 태양처럼 뜨거운 신앙 열정을 가진 사람을 찾으실 것 같습니다. 사역의 현장마다 여름 태양보다 더 뜨거워서 주님의 칭찬을 받는 우리 교단 교회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이미 알고 계시듯이 우리는 성공적인 교단통합을 이었습니다. 그 통합기념으로 한마음교회를 설립한 것입니다. 전국 노회와 교회들이 마음과 기도와 물질을 모아 세운 기념비적 통합기념교회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 통합기념 한마음교회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시는지요? 통합기념 한마음교회는 고신교단의 여러 어른들과 선배 목사님들 그리고 총회 임원들 그리고 (구)고려의 선배들과 임원들이 힘들게 이루어낸 통합의 금자탑이며 결정체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느 교회의 지 교회가 되어있습니다. 교단통합을 하면서 기념으로 교회를 설랍(립)하되 (구)고려측의 목회자를 세우기로 결의하고 설립한 교회가 바로 한마음교회입니다. 그런데 (구)고려측의 일대 한마음교회 전임목사는 당회장권 한번 갖지 못하고, 고초를 겪다가 사임하였습니다. 한마음교회 담임목사에게 이러저런 이유로 당회장권을 이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년 동안 무려 6번이나 당회장을 바꾸면서 힘들게 했습니다. 이런 상식 밖의 이상한 일이 통합기념 한마음교회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안양일심교회 부목사로 사역했던 이 모 목사가 담임으로 있습니다. 안양일심교회가 물심양면으로 많은 부분을 헌신한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전국 노회와 교회의 헌금으로 세운 통합기념교회를 일심교회 40주년 지교회로 삼은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합당하지 않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유감스럽게도 통합기념교회 설립을 위한 목적헌금이 한 교회의 지교회를 설립하는데 사용되는 어처구니 없는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사실을 교단 전체가 바로 알고, 바로 잡아야 하겠다는 결연한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우리가 하나의 교단으로 통합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처음의 약속과 결의가 깨짐으로 아름다운 통합정신이 훼손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의 아픔이지만, 특히 (구)고려 측 형제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 아픔이 된 것입니다. 이런 사태로 인해 안양일심교회와 당회장은 (구)고려 측 형제들로부터 신뢰를 잃었고,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미안했던지, 무마하려고 (구)고려의 어려운 분들을 후원하겠다고 접촉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고려 목사들은 의도가 순수하지 못한 후원금을 받을 리 없지 않습니까? 지난해부터 제안하는 후원금을 거부해 왔습니다. 올해 들어와서 또다시 (구)고려 동문회에 7천만원 정도를 후원하겠다고 제의를 해왔지만 코로나로 인해 어려운 교회와 선교사들이 많이 있었지만 통합기념교회를 세우려는 큰 뜻이 있기에 거절했던 것입니다. 급기야는 비공식 채널을 통해 기어코 후원을 했습니다. 공식적으로 거부했는데도 비공식체널을 통해 기어코 다수의 교회에 상당한 후원을 감행한 저의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저도 부교역자 약 10년, 한 교회 담임목회를 27년째 하니 37년 사역을 하며 산전수전공중전까지 다 겪은 사람입니다. 교회의 내부 사정이 있어 그렇겠거니, 일면 이해가 가지만, 그렇지만 한마음교회의 문제는 양 교단 통합기념 교회인만큼 그냥 넘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전국 노회와 교회의 헌금은 통합기념교회를 설립하기 위한 목적 헌금입니다. 그 목적대로 쓰이지 않았다면 바로 잡는 것이 마땅합니다. 따라서 교단 70주년을 맞아 통합기념교회를 다시 세우려는 계획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국 노회와 교회의 후원금 13억여원은 교단통합의 정신과 기념을 담는 명실공히 통합기념교회 설립을 위해 쓰여져야 할 것입니다. 안양일심교회는 고신교단의 대표적인 큰 교회 중의 하나입니다. 또한 당회장 김홍석목사님은 앞으로 총회에 큰 일을 감당해야할 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중대한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지 않고 교단의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안양일심교회 김홍석목사는 통합기념 교회 문제를 책임지고 해결하는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보여할 것입니다. 이것이 (구)고려측 대부분 형제들의 일치된 생각입니다. “순교자의 고장! 진리의 파숫군! 경건자의 훈련소, 예수의 제자들이 일어나는 산실!” 그 교단이 우리 고신 입니다. 저는 우리 교단의 일원이고 교단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고신의 목사로 함께 사역함이 늘 감사합니다. 저는 고신인이 된 것이 좋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의 뒤를 이어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 정신을 이어가는 우리 교단이 좋고 자랑스럽습니다. 그 어떤 일보다도 고신과 고려의 통합이 자랑스럽습니다. 통합 후 (구)고려 동문들이 연합하여 학원이사로, 고신세계선교회 이사로, 이단사이비연구소장으로, 동문회 임원으로. 각 상비부에서... 각처에서 활약하는 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운 하모니입니다. 정말 아름다운 통합입니다. 이렇게 배려해 주고, 사랑해주는 우리 ‘고신’이라는 이름이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따라서 통합기념교회가 다시 설립되어 통합정신이 훼손되지 않고 계승되어 아름다운 교단을 잘 보전하고, 또 더 아름답게 발전되기를 기원하는 바램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 통합기념교회 설립을 이행하라! * 전국 노회와 교회의 목적 헌금을 반환하라! 2022년 7월 중순 신앙 열정이 여름 태양처럼 뜨겁기를 기도하며... ※ 기고 글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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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02
  • [기자의 눈] 그리스도인의 '격' 있는 정치참여
    현재 우리나라는 아주 뜨거운 정치 쟁점 가운데 서 있다. 바로 대선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몇 사람이 모이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가장 바람직하고 행복한 삶을 위하여 정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질서, 협의, 상호존중을 위하여 정치라는 단어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다. 정치라는 말은 오늘날 많은 사람이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원래 지니는 의미는 상당히 의미 있는 것이다. 정치의 사전적 의미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국민이 권력을 가지고 그 권력을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 또는 그런 정치를 지향하는 사상. 기본적 인권, 자유권, 평등권, 다수결의 원리, 법치주의 따위를 그 기본 원리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국가권력의 차원만 아니라 인간이 속한 모든 영역에는 정치가 없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도 많은 국민이 혐오감을 가질 정도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정치임에도 떠나서 살 수 없는 현실적인 구조에 놓여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 역시 한 국가나 단체의 일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치에 관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당연히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며 분별력을 발휘하여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의무 중의 하나이다. 특히 성경은 통치 권력에 대하여 하나님이 부여하신 것이라고 말한다(롬13:1-2). 이 말은 하나님께서 모든 통치 권위를 인정하신다는 의미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정부가 생기도록 허용하셨다. 하나님은 세상이 하나님의 정의로 가득 채워지기를 원하신다(시146:7-9). 그리스도인으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는 책임을 수행하는 일이 바로 ‘정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정치를 바르게 세우는 사명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정치에 관여할 때는 반드시 몇 가지 기준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첫째는 기독교인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지나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날에는 명목상 기독교인, 득표를 위한 형식적인 기독교인이라 이름 하는 이들 역시 적지 않다. 때로는 진실한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비전과 국가경영에 관한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를, 기독교인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적인 면에서 성경에 등장하는 많은 이방인도 훌륭하게 쓰임을 받은 경우가 있다. 다만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를 억지로 거역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며, 인간을 뻔히 보이는 파멸의 길로 인도할 가능성이 있는 자를 선택하는 무분별한 정치 행위는 금물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정치에 참여하되 성경 말씀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하며,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드러내어 자기가 지지하는 자를 드러내놓고 강요하는 행위는 금지되어야 마땅하다. 더욱이 성경을 이용하여 자기 배만 채웠던 이단자들과 같이, 자신의 억지 주장을 반증하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반 기독교적인 성향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신대원 모 교수가 작성한 SNS의 글은 성경을 빗대어 특정한 후보를 마치 하나님께서 구별한 자라는 이미지를 주므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안이며, 성경과 하나님의 권위를 모독하는 심각한 범죄 행위이다. 필자는 신학대학원의 교수라도 정치적 성향이 얼마든지 다를 수 있고, 평소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내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개인적인 성향이나 견해이므로 한편으로 이해하고 넘겼지만, 최근 SNS에 게재한 그의 성경을 빗댄 해석(?)은 결코 좌시할 수 없는 것이다. 고도의 네거티브 전략이라면 무서운 사상이고, 실수라면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며, 평소의 사상이라면 교수직을 당장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그가 지지한 후보에 대해 문제를 삼는 것은 삼가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신학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직임을 생각할 때 정도를 벗어난 것이기에 누가 보더라도 심각한 상황이다. 이 사안에 대하여 본인도 그 심각성을 고려하여 현재는 SNS를 차단하고, 글도 내린 상황이지만 그 여파는 상당히 커져 버렸기 때문에 본인과 관계기관에서는 이해할 수 있는 조치나 해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 모 교수의 SNS에 상에 성경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한 정치적 행위는 단순한 해프닝이나 해학을 넘어 계명을 범한 처사이다. 십계명의 제3계명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되어 있다. “망령되이”는 히브리어 ‘샤베’로 ‘무익한, 헛된, 거짓된, 가벼운, 경솔한’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가볍게, 거짓되게 부르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대요리문답』 제 113문에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경우들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거나 오용하거나 왜곡시켜 세속적으로 농담거리를 만들거나, 쓸데없이 문제를 삼거나 헛되게 말다툼하며, 거짓된 교리를 주장하는 것(벧후 3:16, 엡 5:4, 딤전 6:4-5, 딤후 2:14, 17), 하나님의 이름 아래 포함되어있는 피조물이나 어떤 것을 악용하여 부적을 만들거나 정욕과 죄악된 행위에 이용하는 것(신 18:10-11)> 이는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거나 오용, 왜곡, 농담거리로 만들지 말 것을 적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교수는 분명히 제3 계명을 어겼다. 우리의 신앙고백서의 내용을 어겼다. 단순히 ‘독자들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했다.’라는 해명은 어불성설이며 한낱 핑계에 불과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는 신대원 교수로서 십계명 중 3계명을 정면으로 거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준엄한 조치가 반드시 따라야 할 것이다. 김현주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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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17
  • [기고] 고신 총회, 개회예배 성찬 예식 유감
    고신 총회가 지난 9월 28일부터 30일까지 김해중앙교회(강동명 목사)에서 제71회 정기총회를 개회했다. 코로나19 정국의 어려운 상황에서 총회 임원들과 김해중앙교회 강동명 목사와 당회원들이 김해시 지자체와의 코로나 방역지침 준수에 관한 어려운 협의과정을 거친 후 개최된 고신 총회는 복잡한 현안들을 처리하면서 심도있는 안건심의를 했다. 그 중 회무에 앞서 드린 개회예배에서 가진 성찬예식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성찬은 주님이 직접 제정하신 것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반드시 시행되어야 하고, 성도가 은혜받는 아주 중요한 방편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번 정기 총회 개회예배 시에 가진 성찬은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여, 소위 '성찬키트'라는 것을 나누어 각자가 개봉하여 먹고 마심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형식을 취했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을 준수하면서 성찬을 드릴 수 있는 방편으로 성찬키트를 선택한 것은 알지만, 성찬키트를 통한 성찬이 이래도 되는가라는 의문점을 남기기도 했다. 물론 부득이한 상황에서 이를 수용하는 것 까지는 그 고충이 충분히 이해된다지만, 그 성찬의 진행과정을 얼마든지 은혜롭게 할 수 있는데, 이번 성찬키트를 이용한 성찬식의 진행과정은 일반적인 성찬식의 경건함에 미치지 못했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었음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성찬을 나누는 과정에서 부목사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한 곳에서는 모자란다고 소리치면서 부르고, 조금 떨진 곳에는 손이 닿지 않는다고 키트를 던져 주기도 하고, 개봉하는 과정에서 개봉이 잘 되지 않는다고 옆사람이 개봉을 도와주기도하며 그러다 담긴 것이 엎질러지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이 어색한 총대들은 서로의 어색함이 표정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경건해야 할 성찬예식이,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깊이 묵상하고, 사죄의 은총에 눈물과 감격이 있어야 할 성찬이, 부끄러움과 하나님께 죄송함, 무례함에 가슴치며 눈물을 흘리며 성찬에 참여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가슴아팠다. 하지만 이러한 성찬 예식에 대해 어느 총대들은 깊은 한숨을 쉬고 속으로만 눈물을 삼키지, 나서서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없었다. 다만, 이를 안타깝게 여긴 김경헌 목사가 성찬에 참여한 회중 앞에서 "우리가 주님이 주신 이 거룩하고도 은혜로운 예식을 이렇게 웃움거리가 되도록 해서 됩니까? 부득이 키트를 사용해야 한다면 이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은혜롭게, 주님의 은혜가운데 시행할 수 았는데, 이렇게 소란스럽게, 장난스럽게 성찬을 해야만 합니까? 저는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라며 울분을 토했다. 우리 고신은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주장하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장로교단으로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왔음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런데 모든 회의에 앞서서 거행된 예배와 성찬은 이미, 사람들의 모임을 예시한 것은 아닌가라를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장 중요한 본질을 소홀히 여기면서, 그 다음을 은혜롭게 하겠다고 그 길을 추구하는 것은 아해하기 어려운 문제풀이가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깊은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더 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다짐하며 총회 유감의 한 모습이며, 누구나 바른 길을 추구하는 일에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개혁주의가 아닌가를 생각하며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독자의 기고는 본 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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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0-01
  • [신재철 목사] 빼빠, 맞거든요!
    유치원 다녀본 적 없고, 엄마와 한글도 익혀보지 못하고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나의 학업 성적은 부모님을 늘 만족시켰다. ‘왕년에 1등 못해본 사람 있나?’라는 말은 괜한 말이 아니다. 나도 그런 과거가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성격도 차분했으니 당시에 모든 친구들과 선생님은 나를 공부 잘하고 얌전한 모범생으로 보게 되었다. 즐거운 시험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자연’이라는 과목이다. 늘 그랬듯 대부분의 문제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의 충고대로 문제를 천천히 다시 읽었다. ‘아닌 것은’ ‘맞는 것은’ 이 두 가지를 덤벙대며 읽어서 늘 아쉽게 문제를 틀린다며 엄마는 속상해 하셨다. 그렇게 100점을 향해 천천히 연필을 눌러 정답을 적었다. 이번 시험에서도 나는 100점을 확신했다. 그런데! 채점된 시험지를 받아보니 망설임도, 고민도, 함정도 없었던 문제가 빨간색 막대기로 그어져 있다. 단 한 문제. 정말 눈이 튀어나올 지경이다. 다시 문제를 살피고, 상식을 동원해도 틀리지 않은 답이다. “아래 물체의 이름을 적으세요.” 너무 쉬운 문제였다. 그 물건은 우리 집에 널리고 널려 있었고 아버지의 현장에 늘 쓰이는 물건이다. 나무의 거친 면을 문질러서 곱게 만들고 그 위에 페인트를 칠하기도 했던 물건. “빼빠” 우리 가족은 모두 그것을 ‘빼빠’라고 불렀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사포’라는 이름을 붙이셨고 나로 하여금 가족을 불신하도록 만드셨다. 절대 인정 할 수 없다. 선생님께 수차례 항의했다. 잃어버린 100점이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 아버지가 부정당하는 느낌에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선생님께서는 어머님과 면담을 하셨고 부모님께서 건설 현장에서 일하시는 것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어머님은 그렇게 ‘50원 대출’ 사건 이후로 두 번째 선생님과 면담을 하셨다. 선생님의 이해에도 불구하고 내 점수는 정정되지 못한 95점. 그렇게 나는 가정의 울타리 밖을 조금씩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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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30
  • [신재철 목사] “50원만 빌려주세요.”
    나는 유치원을 다녀보지 못했다. 아침에 노란 가방을 매고 내가 알지 못하는 곳을 향하던 소수의 친구들이 조금 부러웠다. 얼핏 구경을 해보니 유치원은 노래를 부르고, 놀이를 하고, 그림도 그리는 곳이었다. 나는 그 시간이 되면 동생과 함께 시장터를 누비고 다니거나 빈 땅에 구멍을 만들어 구슬을 던지고 놀았다. 하지만 나도 이제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당당히 가방을 매고 갈 곳이 생겼다. 어머님께서 일 나가시기 전에 왼쪽 가슴에 달아주신 손수건. 자그마한 플라스틱 통에 밥과 반찬 두세 가지를 넣어 챙겨주신 도시락. 나는 이제 자랑스러운 ‘청송국민학교’ 학생이 된 것이다. 유치원을 다녔던 친구도, 나와 함께 동네를 누비던 친구도, 같은 동네 살면서도 얼굴을 잘 몰랐던 친구도. 이제는 같은 공간에 모여 함께 공부하고 노래하고 공을 찼다. 오늘은 엄마가 아프다. 늘 힘든 일을 하시더니 병이 나신 것 같다. 학교를 오기는 했는데 오늘은 도시락을 준비하지 못했다. 점심을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즐기지는 않지만 오늘은 빵으로 한 끼를 해결할까 싶다. 나의 플라스틱 필통은 수납공간이 많다. 버튼을 누르면 여기저기 문이 열린다. 늘 지우개를 넣어두던 그곳을 열어보니 50원이 나온다. 우유는 학교에서 받은 것이 있고, 빵만 사면 되는데 50원이 부족하다. “선생님요, 50원만 빌려주면 안돼요?” 교탁 옆 개인책상에 앉아계신 담임 선생님께 당당하게 요구했다. 어떤 자신감이고 무슨 여유였을까? 분명한 것은 선생님이라는 분은 그 정도 재력은 있다고 믿었고 나에게 빌려주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뻔뻔함도 늘 누울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었으니깐. 선생님께서는 50원의 용처를 물으셨고 역시나 당당하게 내가 가진 50원에 보태어 빵을 사먹으려고 한다고 대답했다. 50원은 내 손에 쥐어졌다. 성공. “선생님, 내일 엄마한테 받아서 꼭 갚을게요.” 그렇게 빵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온 아들을 맞이하는 어머님 표정이 묘했다. 담임 선생님께서 집에 전화를 하셨단다. 어머님은 너무 부끄러웠다며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 타이르신다. 하지만 돈도 잘 갚고 내 배도 채운 아름다운 상황에서 나는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삽화작가 : 김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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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9-08
  • [신재철 목사] 선생님요, 청소 다했니더
    이제 익숙해진다. 등굣길, 학교 앞 문방구, 버스타고 30여분 가면 나오는 시내라는 곳. 그리고 아이들의 사투리까지도. 요즘 나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절대 사투리를 배우지 않겠다는 것. 물론 지금 내가 사용하는 경상도 말도 사투리다. 하지만 이곳에서 다시 배우는 말은 사투리가 아니면 좋겠다. 그래서 결심했다. 표준어를 배우기로. 대전생활이 시작되었지만 이곳 말을 배우지 않기 위해 나는 좋은 표준어 선생님을 모셨다. “텔레비전”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서울말을 쓴다. 유심히 살펴보며 조용히 따라해 본다. ‘에잇 닭살!’ 어색하고 좀 부끄럽다. 경상도 사투리가 익숙한 내가 표준어 연습을 하고 있으니 스스로가 용서가 안 되는 느낌이다. 고향을 배신한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내 삶을 바꿀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계속 텔레비전 앞에서 자리를 지킨다. “기여?” - “그래요?” 대전에서 아이들이 자주 쓰는 말을 일부러 표준어로 바꿔서 다시 연습해 본다. 절대 “기여?” 이 말은 안 쓸 것이다. 이 말을 쓰는 순간 나는 그냥 충청도 사람이 되는 것이다. 반드시 이 기회에 표준어를 배우리라. 제법 학교 적응도 잘되고 있고, 염려했던 것들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학업 성적도 1-2등을 유지할 수 있었고... 물론 내 성적이 발표될 때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이 많이 놀랐다. 조금 불쾌했다. 왜 놀라지? 나는 이제 ‘시골에서 전학 온 애’에서 ‘시골에서 전학 왔는데 공부 잘하는 애’가 되었다. 그리고 여자 아이들이 주번이라서 무거운 물주전자를 들고 오면 대신 들어주기도 하는 매너남이 되었다. 모든 아이들이 청소를 안 하고 도망가도 남아서 청소의 끝을 보는 성실남이 되어 있었다. 오늘도 함께 청소해야 하는 아이들은 도망갔고 기다란 학교 스탠드를 혼자 모두 쓸어냈다. 청소가 끝났으니 이제 교무실에 가서 검사를 받아야 한다. “선생님요~ 청소 다했니더.” 아, 나는 오늘도 말 한마디에 교무실 선생님들을 다 웃겨버렸다. 완벽한 표준어를 구사하셨던 텔레비전의 스승님들께 면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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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25
  • [신재철 목사] 안녕, 대전(大田) : “전학왔니더”
    “푸를 청(靑), 소나무 송(松). 청송에서 대전으로 전학왔니더.” 전학 수속이 끝나고 들어간 교실. 담임 선생님께서 친구들에게 자기소개를 해보라 말씀하셨다. 나는 큰 소리로 나의 고향 이름을 소개하며 인사했다. 아이들이 나의 인사보다 더 크게 웃는다. 왜 웃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 정해주신 빈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와 다르게 아이들 얼굴이 뽀얗다. 우리 엄마가 읍내에서 사준 이랜드 옷이 촌스럽게 느껴졌다. 어쩐지 다들 공부도 잘 할 것 같다. 주눅과 함께 찾아든 두려움도 잠시. 쉬는 시간에 몰려든 아이들의 질문 세례에 정신이 없었다. 자꾸 말을 시킨다. 그리고 아이들은 더 크게 웃는다. 아마도 나의 사투리가 재미있고 신기했던 것 같다. 대놓고 놀리는 것은 아닌데 뭔가 찝찝하다. 촌놈 하나 전학 오니 신기해서 구경하러 온 느낌이다. “뭐여~ 내가 언제~” “니가 그랬잖여~ 왜그랴~” 나를 구경하러온 친구 무리와 떨어진 곳에서 조금 큰 소리가 난다. 제법 덩치 큰 남자 아이 둘이서 대화를 하고 있다. 내게 몰려든 아이들이 이제 그쪽으로 몰려간다. 아직은 인사도 제대로 못한 옆 짝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큰소리로 대화하는 두 명의 친구, 그곳으로 몰려드는 아이들.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첫인상이 좋았던 짝은 웃으며 답한다. “응, 쟤들 싸우는 거야. 그래서 구경 간거지모.” 응? 싸우는 것이라고? 저렇게 느린 말로, 저렇게 너그러운 톤으로 싸움이 가능하단 말인가? 내가 있던 경상도에서는 싸움이 나면 일단 말로 여럿 죽인다. 목소리도 얼마나 큰지 말한 대로 곧 실천할 것 같은 위협이 느껴진다. 경상도 말은 나름 살가운 인사도 종종 살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해를 받기도;; 뭔가 대전 친구들은 푸근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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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1
  • [신재철 목사] 안녕, 청송(靑松) : 촌놈 유학을 떠나다
    1년에 한두 번, 외가댁에 갈 일이 아니면 지나지 않는 길이다.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 휘청휘청. 아스팔트와 푸른 산만 보이는 이 길은 여전하다. 여전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늘 그 지점이 되면 어머님이 아버지를 황급히 부르며 차를 세우신다. “차 좀 세워줘!” 참지 못하고 오늘도 엄마는 멀미의 끝을 보여주신다. 늘 같은 지점에서 그러는 엄마가 어린 내 눈에도 신기하다. 온 가족이 그런 엄마를 놀린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엄마가 차에 다시 타시고도 여전히 삼부자는 유일한 여성인 ‘한정혜’씨를 놀려먹는다. 차는 다시 그렇게 대전을 향해 출발한다. 나는 오늘 전학을 간다. 고향과 부모님과 이별을 하게 되었다. 두 살 어린 동생과 함께 대전이라는 낯선 곳에서 외할머니와 생활을 하게 되었다. 어머님은 그것을 유학이라고 하셨다. 입학 후 5학년까지 늘 최상위 학업성적을 유지하며 반장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아들이 시골에서 살기에는 아까우셨단다. “대전에서 동생과 같이 살 수 있겠어? 엄마, 아빠는 너희가 가서 공부도 잘하고 성공한 사람이 되면 좋겠어.” 우리 부모님은 인격적이시다. 우리에게 의견을 물어오셨고 나는 크게 망설임 없이 가겠다고 대답했다. 두렵지는 않았다. 가서도 공부 잘 할 자신이 있었고, 부모님이 보고 싶어서 징징거리지도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전교어린이회장을 못해보고 떠나는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렇게 1톤 트럭은 어느 때 보다 가볍게 우리 네 식구를 태우고 열심히 달린다. 카세트에는 구수한 ‘김란영 카페음악’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늘 나오던 노래였기에 나도 익숙함에 같이 흥얼거린다. ‘안녕, 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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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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