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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교회와 성도의 정치참여에 대하여
- 들어가며 필자의 고향은 진주시 정촌면 관봉리에 있는 진주 강씨의 집성촌이며, 우리 가정이 복음화된 것은 1932년경으로 추정된다. 할머니가 가장 먼저 결신 하신 후 증조할머니를 설복하셨으며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주일 옥봉리교회(현 진주교회)로 발걸음을 옮기시면서 우리 가정에 복음의 역사가 시작하였다. 할머니는 주변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하셨고 그 와중에 불치의 병을 갖고 있던 어린 시조카가 계셨는데 그분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며 복음을 전하셨다. 그분은 저에게는 3종 숙이 되시며 후일 저명한 목사님이 되셨다. 두 분이 함께 고향 동네의 뒤편 작은 골짜기의 굴에서 함께 기도하면서 당시 치유가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병이 치유되었다. 이로 인하여 그 가정이 복음화되었으며 또 믿는 친척이 늘어 갔다. 할머니는 우리 집 텃밭에 교회당을 세웠는데 그 교회가 지금 정촌면 관봉리에 있는 관봉교회로 1934년에 세워졌다. 그 교회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친척들과 함께 옥봉리교회당에서 나오신 조사(?)의 인도로 예배를 드렸는데 누군지 알고 싶어서 확인하였더니 진주교회의 초기기록이 6.25 전쟁으로 불타 누군지 밝힐 수 없었다. 그런데 방해자가 생겼다. 집안의 촌수가 머지않은 친척 어른 세 분이 예수 믿는다고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교회당을 파손하기도 하고 집에 와서 그들에게 집안 형님이 되시는 저의 할아버지에게 폭언하는 일을 여러 차례 되풀이하였다. 문제는 이들이 나중 알고 보니 공산주의자들(속칭 지방빨갱이)이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몰라도 보도연맹 사건 때 몸을 피해 숨어있다가 동네를 인민군이 점령한 후 붉은 완장을 차고 나타났다. 인민군 치하에서 할머니는 교회에서 혼자 기도하고 찬송을 부르며 성경을 읽고 계셨고, 아버지는 현재의 이장 격인 구장을 하시면서 젊은이가 피난을 가고 남은 가정 - 집성촌이니 결국 집안사람들 - 을 돌보고 계셨다.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1950년 가을 추석 직전에 인민군들이 도주하였는데 이때 이들도 함께 도주하였으며 곧이어 국군과 경찰이 진주해 들어 왔다. 어떤 연유인지 국군과 경찰은 교회를 지키고 계셨던 할머니와 구장을 하던 아버지를 부역 혐의자로 체포하였고 추석 후 즉결 처형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인민군들이 급히 도주하면서 남겨 놓고 간 문서 중에 할머니와 아버지를 추석 후에 인민재판을 통하여 처형하기로 한 내용의 인민재판 문서가 발견되어 할머니와 아버지는 국군 지휘관의 사과와 함께 석방되었다. 놀랍게도 그 고발자들은 할머니가 예수 믿는다고 우리 집과 관봉교회에 와서 행패를 부리던 그들 3인이었다. 아버지는 촌수가 머지않은 친족으로부터 배신당했다는 충격으로 고향을 떠나기로 하고 우리 가정은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마산으로 거주를 옮겼다. 지금의 마산합포구 성호동 산비탈에 주거를 정하였는데 출석할 수 있는 교회는 문창교회였다. 당시 문창교회는 총회파와 고려파가 교회당 소유권을 갖기 위하여 소송이 시작된 교회였다. 총회파는 김석찬 목사님이셨고 고려파는 송상석 목사님이셨는데 피난민으로 문창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은 대부분 총회파를 지지하였으나, 할머니는 일제 하의 경험으로 신사참배는 철저히 회개해야 한다는 현재의 고신 교회인 고려파 신앙을 택하셨고 우리 가정은 고려파의 교인이 되었다. 따라서 나는 태어나면서 고려파 교인이었고 지금까지 한 번도 고려파 교인이 아닌 적이 없었으며, 고려파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고려파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로부터 핍박받은 간접 경험자, 또 해방 후 6.25 전쟁이 마칠 때까지 공산주의가 나라 전체뿐만 아니라 교회에 어떤 핍박을 하였는지 역사와 교회사를 통하여 알고 있으므로 필자는 분명히 반공주의자이다. 이렇게 나 자신을 밝히는 것은 이 글에 따른 불필요한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함이다. 보수개혁주의 신앙인으로 드리는 질문 나는 고신 교회의 보수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신봉함을 다시 한번 밝히면서 최근 고신 교회 내부에서 이른바 교회의 정치참여에 관한 논쟁에 관하여 필자의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이 논쟁의 시발점이 어디서부터인가 하는 것은 관점에 따라 다르다. 먼저 ‘포괄적차별금지법’이 대두되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분이 계신다. 포괄적차별금지법의 일부 내용은 성경의 가르침을 직접적으로 위배하였으므로 기독교계가 함께 거부해야 할 법안임은 틀림없다. 물론 그 법안의 내용 중 당연하고 긍정적인 내용이 함께 들어 있기는 하지만, 그 법안의 목표는 동성애를 묵인하고 오히려 보호하기 위하여 이해하기 어렵고 생소한 단어인 ‘성적지향’을 보호하는 해괴한 내용을 넣는 것이 주목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논의되고 있는 교회의 정치참여 문제는 직접적으로는 지난해 10월 27일 한국교회 연합예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 집회는 ‘예배’라는 이름을 붙이기는 하였으나 자타가 정치적 목적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어진 대통령의 탄핵 과정,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한국교회와 고신 교회의 일부 목회자와 교회가 국힘의 김문수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후로도 많은 교회 지도자가 보수 정치세력을 지지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실정법 위반이 문제 되었으며 그 중 손현보 목사님이 구속되어 지금 재판에 계류되어 있다. 그리고 이 문제가 주제가 되어 제19회 미래교회포럼에서는 ‘설교와 정치참여’란 주제로 포럼이 개최되었다. 백석대 김윤태 교수는 [정치참여적 설교의 긍정성과 부정성]이란 제목의 글에서 ‘정치나 정부정책과 관련된 어떤 현실 이슈가 언급될 때마다 지역적 이념적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정교분리의 원칙이 편파적이고 선택적으로 적용됨으로 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현재 ‘진영논리’라고 부르는 우리나라의 극단적인 분열이 교회 내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국가나 정치의 목적은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유지 보존 증진시키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질서와 문화를 조장 보호하고 법과 제도를 통하여 사회적 국가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이 국가와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목적이다’라고 국가와 정치의 사명과 목적을 정의하였다. 또 교회의 사회적 사명에 대하여는 ‘교회 또한 하나님의 뜻이 교회와 국가를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짐을 믿으며 하나님의 의의 통치의 실현을 위해 이 땅에 평화와 공의의 증진을 위해 노력한다. 교회는 이를 위해 신자들에게 이런 기독교 시민의식을 가르치고 실천하도록 장려한다’라고 정의하였다. 따라서 목사의 설교는 ‘당연히 이러한 부분을 포함하여야 하며 이는 교회의 대 사회적 활동의 주요한 목적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교회는 사회적 공공성의 의미를 가지며 사회적 순기능을 담당해야 한다.’고 신자의 삶을 통한 설교의 대 사회적 기능을 밝혔다. 그리고 교회의 정치참여에 대하여는 ‘교회와 목사는 정당들 간의 투쟁과 경쟁에 대해서는 중립을 지켜야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목사는 선거철을 맞아 신자들에게 정부와 정치의 기독교적 관점에서의 의미를 알게 하고 그럼으로 시민으로서 신자들이 바른 정치참여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정의하였다. 따라서 ‘공의롭고 질서 있는 사회를 위해 바른 정책을 추구할 수 있는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목사는 성경적 가치와 기준을 가르쳐 줌으로 신자들이 바른 선택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설교의 기준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종교의 자유에 관하여 ‘국가권력이나 정치세력은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서 행하는 정당한 비판을 제한하거나 금해서는 안 된다. 목사가 기독 신자에게 시민으로서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의 가르침을 따라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행해야 할 것을 설교하는 것은 목사의 권리이며 이를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것은 종교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라고 설교와 종교의 자유와의 관계를 결론하고 있다. 김 교수는 국가와 정치, 교회의 사명, 정치에 관한 목사의 설교 한계, 교회의 정치참여, 설교와 종교의 자유에 관한 탁월한 의견을 제시해 주셨다. 김 교수가 제시한 이러한 몇 가지 원칙에 관하여 아무도 달리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원칙에 따라 최근 기독교의 정치참여에 관한 부분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지금 상당수 교회는 보수적인 정치세력 – 지난 대선 때는 김문수 후보를, 이후 사실상 보수 정치세력인 국민의 힘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교회와 성도들이 보수정치를 지지하기 때문에 김문수 후보를 지지하였고 국민의 힘이 보수 정치세력이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의 정치지향점이나 정책이 이 나라에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데 상대적으로 가깝거나 적합하기 때문인지 묻고 싶다. 이 질문은 비슷한 것 같지만 출발점을 완전히 달리한다. 아마도 이 질문에 백이면 백 모두 후자의 이유로 보수 정치세력을 지지한다고 할 것이다. 즉, 보수정당이 또는 보수 정치세력이 하나님의 공의를 이 땅에 세우고 교회의 사명을 이루는데 상대적으로 적합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힘 핵심 인사들이 이단 세력인 통**와 교류하고 그들로부터 정치자금이 아니라 뇌물로 보이는 물품을 건네받은 것에 대하여 왜 침묵하고 있는가?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해도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그들은 종교를 표방하는 집단이기 때문이다. 기존 교회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고 대다수 국민이 그렇게 알고 있는 집단에서 불의한 것을 매개체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치세력의 핵심에 접근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지금 이 문제는 여야 양측 모두에게 위법한 사실이 나타나 언론에 집중하여 보도되고 있으며 날이 갈수록 점차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아마도 이 문제가 어쩌면 현재의 정치구조에도 큰 타격을 입힐 공산이 크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는데 상대적으로 적합하다고 믿은 정치세력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고 오용하는 자들과 불법적인 거래가 있었다면 마땅히 비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에 대하여 보수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교회와 단체는 왜 침묵하고 있는가? 마 5:37은 이렇게 말씀한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반공주의자로서 드리는 말씀 – 오세택 목사님의 인공기 발언에 대해 필자는 또 반공주의자로서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앞서 말씀드린 제19차 고신미래포럼에서 오 모 목사님의 놀라운 발언을 지상을 통하여 보았다. 오 목사님의 발언은 위 포럼에서 자료로 배포한 발제문 ‘설교와 정치참여’에 있는 내용과는 결을 달리하는 다른 내용이다. 왜 발제문과 전혀 관계없는 내용을 말씀하셨는지 내가 직접 포럼에 참석하지 못하여 오 목사님의 발언을 전체적으로 듣지 못하였으므로 깊은 뜻을 알지 못한다. 따라서 ‘크리스찬투데이’에 보도된 그대로를 몇 개 인용한다. 당시 사랑의교회가 태극기를 내건 모습을 언급하면서 “개혁주의 입장에서 교단 정신으로 보면 그게 정당한가? 민족주의인가, 국수주의인가? 하나님 나라는 민족주의를 넘어서는 것” “모든 지상의 국가를 섬기고 복음을 전하고 구원한다는 의미에서, 달려면 만국기를 붙여야 할 것 아닌가? 성조기를 붙이면 美 문화원인가 할 것이고, 일장기를 붙이면 더 이상할 것” “공간이 부족하면 하나님 나라를 지향한다는 상징으로 붙일 한 국가 깃발이 있다. ‘북한 인공기’다. 붙이려면 그걸 붙여야 한다”며 “그럼, 사람들이 ‘저게 뭐냐’라고 할 것 아닌가? 그때 얼마나 (설명할) 기회가 좋은가? 복음은 좌우를 넘어, 위에서 내려다봐야 한다. 좌우의 관점을 가지고 보면 교회는 분열할 수밖에 없다”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태극기는 비록 음양과 팔괘의 사상이 들어 있지만 조선 말 고종황제 때 기본이 만들어지고 이후 조금씩 변화하면서 항일 독립투쟁 때부터 우리의 상징으로 여겨졌으며 자연스럽게 우리의 국기가 되었고 이에 대하여 아무도 거부하지 않는다. 사랑의 교회가 태극기를 게양한 것은 나라 사랑의 의미가 아닌가? 심지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수립 직후인 1946년 2월 16일부터 1948년 7월 10일까지 북한도 태극기를 사용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인공기는 다르다. [나무위키]의 해설에 따르면 인공기의 의미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인공기가 제작되었을 당시의 북조선인민위원회가 내세운 인공기의 의미는 “인공기 위와 아랫부분 파란색은 한반도 좌우에 있는 동해와 서해를 의미하고 빨간색 별은 공산주의, 그리고 빨간색 별을 둘러싼 흰색은 공산주의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당연히 태극기의 파란색, 빨간색과는 뜻이 다르다.” 다음은 김일성종합대학의 기사에서는 또 다르게 언급되는데 이는 북한 외무성에서 밝히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날 어버이 수령님께서는 국기의 색갈을 붉은색, 흰색, 푸른색으로 하니 좋다고, 국기의 붉은색은 항일 선렬들과 조선의 애국자들이 흘린 피와 공화국의 주위에 굳게 뭉친 우리 인민의 불패의 위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된다시며 국기의 흰색은 우리나라가 한 강토에서 하나의 혈통과 언어, 문화를 가지고 결백하게 살아온 단일민족국가라는 것을 상징하며 푸른색은 민주주의 새 사회건설을 위하여 투쟁하는 우리 인민의 씩씩한 모습과 세계의 평화와 진보를 위하여 투쟁하는 조선인민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할수 있다고 하시였다.” (공화국기에 드리는 경의 —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문학부 박사 부교수 박희순)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는다. [히스토리의 역사산책]이라는 다음(daum.net)의 블러그에서는 인공기는 북한공산주의와 김일성 주체사상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위와 아래에 파란색이 있고 그 사이에 넓은 빨간색이 있으며 그 안에 하얀 동그라미와 붉은 별이 있다. 빨간색은 공산주의와 혁명 그리고(김일성의 독재 이후에는) 주체사상을 상징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며 파란색은 평화에 대한 염원과 인민의 희망을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하얀색은 광명 및 음양사상을 상징한다. 하얀 원 안에 있는 붉은 별은 한반도 전체의 공산주의 건설을 뜻하는데 조선인민군의 상징으로도 통한다고 한다’ 위 세 가지 인공기의 의미 중 어느 것을 택하여도 인공기는 공산주의 이념과 주체사상을 상징하기 위해 또 한반도 전체를 공산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인공기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오 목사님은 하나님 나라를 지향함을 보이기 위해, 복음이 좌우를 넘어 위에서 보듯이 하기 위해 인공기를 게양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고, 제발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며 “사상과 이념을 넘어 사회주의·공산주의·자본주의·민주주의를 넘어 우주적 관점으로 사랑하자는 의미로 이해하면 된다”고 해명하였다고 한다. 그런 뜻이라고 하더라도 인공기를 게양하자는 말씀을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북한 공산주의자도 용서의 대상이며 복음이 전해져야 하며 구원의 대상인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들이 저지른 죄에 대하여 내려놓고 참회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는 죄의 고백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믿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오 목사님이 인공기를 붙이자고 하신 것은 자칫하면 공산주의자들이 우리의 현대사에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죄악들에 대하여 묵인하고 관용을 베풀자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북한 공산주의자에 대한 관용보다 그들로 인하여 고통받는 동포들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는 해방 후 분단의 공간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저질은 수많은 끔찍한 범죄 – 이른바 적색테러, 6.25 전쟁의 참화, 그 후의 각종 침략행위를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북한에는 공산정권에 의하여 수많은 동포가 삶의 고통을 겪고 있으며, 그들의 삶의 고통을 외면하고 엄청난 재원을 대량 학살 무기 등 군비를 갖춤에 사용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여순반란 사건 때 반란군들이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 동신과 동인을 모르고 죽였을까? 아니다. 그들은 손양원 목사님이 누군지 알고 있었고, 동신과 동인을 손 목사님의 아들인 것을 알고 죽였다. 이 땅에서 가장 비천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목사님의 아들을 그들과 뜻을 함께할 수 없음을 알고, 그들의 뜻에 방해된다고 죽인 것이다. 6.25 전쟁 때에는 손양원 목사님 역시 공산군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한센병 환자와 함께 아무도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성자(聖者)와 같은 삶을 사시는 목사님을 역시 그들의 뜻에 방해되고 뜻을 함께할 수 없음을 알고 죽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6.25 전쟁 때 공산군들은 이 땅의 수많은 목사님 등 기독교인을 죽였고 교회당을 불태웠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 때보다 10배가 넘는 순교자의 이름이 합동 측에서 발간한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100년사』 2권 88면과 747면에 명시되어 있다. 교파별로 모두 조사하여 정리하면 엄청난 수가 될 것이다. 그들은 미군을 점령군, 소련군을 해방군이라고 한다. 그러나 전 세계 역사를 다 찾아봐도 목사를 학살하고 교회를 불태우는 해방군은 없다. 그 전쟁범죄자의 후계자들이 그들의 목표를 위하여 상징으로 내세우는 것이 인공기이다. 그런데도 인공기를 게시하는 것이 맞는 것일까? 과거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에도 있었지만, 최근의 노동운동 현장에서 북한 공산주의에 영합하는 듯한 구호와 주장들이 나타나고 있다. 백번 양보해서 민주화를 위한 학생운동도 좋고 노동자의 이익을 위한 노동운동도 좋으나 그 주장이 북한 공산주의를 이롭게 하는 구호와 주장은 결코 잘못된 것이다. 부패한 자들이 통치하는 사회주의는 부패한 자본주의보다 국민의 모든 삶을 훨씬 힘들게 한다. 중국과 북한, 남미의 여러 나라 사례를 우리는 보고 있지 않은가? 그들의 모습을 우리의 경험으로 여겨야 한다. 마치면서 필자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교회와 신자는 정치와 단절될 수 없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고 신자 역시 시민으로서 국가의 통치체제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교회와 국가를 통해 이 땅에 이루어짐을 믿으며, 신자는 하나님의 의의 통치의 실현을 위해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신자는 선거 때마다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투표로 나타내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교회와 목사님은 신자들이 바르게 정치참여를 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나 성경적 가치와 기준을 제시하고 가르쳐 줄 뿐이지 직접적으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 대한 찬반을 거론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국가의 정책 역시 그러하다. 분명히 성경적 가치관과 배치된다면 그 부분에 대하여 반대해야 하지만 국가의 정책은 대부분 항상 양면을 가지고 있으므로 전문적인 지식과 깊은 성찰이 없다면 쉽게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추구하는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한 정치를 이루는 것은 우리의 정치적 전략에 의하여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는 이유 하나로 가이사의 것을 쉽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롬 13:1에서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고 가르쳤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 말씀을 기록할 때 로마제국이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권력이 정당하고 타당해서 복종하라고 한 것은 아니다. 당시 로마제국의 악한 체제하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복종하라고 가르쳤다. 그것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교회와 목사님, 그리고 모든 성도가 교회와 성도의 정치참여에 대해 깊은 성찰이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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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교회와 성도의 정치참여에 대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