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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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석 목사(마산중부교회)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제일 힘든 것은 더 이상 제가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먼저 천국에 보내신 한 목사님의 고백입니다. 무슨 말일까요? 어머니는 자신이 실수해도 괜찮은 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실수도 너그러이 받아 주신 유일한 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님의 고백을 들으면서 가장 좋은 관계가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실수해도 괜찮은 관계입니다. 내가 실수하는 것을 너그러이 용납해주는 사람과의 관계야말로 내게 가장 편안한 관계라 하겠습니다.

  성경 복음서를 보면 그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 같은 종교 지도자들은 죄인이라 취급받던 사람들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벌레를 대하듯 멀리하고 정죄했습니다. 그저 자신들이 인정하는 사람들과만 교제하였습니다. 그래서 정작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다른 사람이 터부시하고 정죄하는 죄인이라 낙인찍힌 사람들을 가까이 하셨고 더불어서 식사까지 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보고 그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정죄하고 수군거리자 예수님은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위대하신 용납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용납은 예수님의 특기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의 특기로 인해서 우리 같은 죄인도 예수님께로 올 수 있었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유일하게 옷 벗고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부부입니다. 서로의 치부를 다 드러내도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그런 서로를 안아주는 것이 부부입니다. 그런 면에서 부부는 최고의 용납의 관계입니다. 그러나 그 용납이 육체에만 머물면 안 됩니다. 다른 모든 면에서도 부부는 서로를 가장 깊게 용납하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혹 다른 사람 앞에서 실수하면 부끄러워도 배우자 앞에서는 부끄럽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배우자의 실수에 대해서 “그럴 수도 있지, 뭐 그것 갖고 그래요.”라고 용납할 수 있는 것이 부부입니다. 내 실수와 잘못을 용납해주고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변호해 줄 수 있는 부부라면 최고의 부부입니다.

  그처럼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최고의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실수해도 편안하게 말할 수 있고 그 실수를 감싸고 용납해 주는 교회가 최고의 교회입니다. 실수한 것 때문에 정죄 받는 교회라면 예수님을 닮은 예수님의 몸 된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 좋은 목회자는 무엇보다 성도의 실수를 용납하고 위로할 수 있는 목회자이고, 좋은 성도는 목회자의 실수를 덮어주고 용납하는 성도입니다. 실수 할 수 있는 인간들이 모인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해서 꼬투리를 잡고 정죄하기 시작하면 그 교회는 예수님 닮은 예수님의 몸 된 교회가 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사람을 힘들게 하고 사람을 떠나게 만드는 교회답지 못한 교회가 됩니다.

  교회 안에 완벽주의적인 성향의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이나 사람 앞에서 바른 삶을 사는 것은 참 좋은 것이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적용하여서 다른 사람을 정죄합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에 여백이 없이 글만 빽빽하게 적혀 있는 책은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읽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여백이 있고 삽화도 있는 책은 술술 잘 읽혀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사람에게도 여백이 필요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연약함과 부족함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서로를 용납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하여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용납하는 자세, 바로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여백의 신앙이라 하겠습니다. 성경 전도서 7장 16에서는 말씀합니다.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바로 이 말씀이 다른 사람을 향해서 용납할 줄 아는 여백의 신앙을 명하는 말씀입니다. 독자 여러분, 다른 사람에게 완벽을 강요하지 않고 실수를 용납할 줄 아는 여백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되어 보십시오. 그리할 때에 다른 성도가 편안히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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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석 목사] 용납 그리고 여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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