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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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서머나교회)

부활절 묵상(1)

  

목사님 두 분이 토론을 하고 있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하여 태어날 때와 부활 탄신할 때 당신에게 어떤 고통이었을까? 그 힘든 정도가 어떤 차이가 날까? 예수가 이 땅에서 오래 살지 않았지만 두 번 태어나는 기이한 삶을 살았다. 이런 논쟁이 부질없는 담론일까?

아니다. 예수가 인류 구원을 위해 이 땅에 오심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예수가 우리의 억만 죄를 청산하기위해 이 땅에 오시고 죽었다 부활하신 것은 우리들에게는 영광일지라도 당신에게는 엄청난 고난임에 틀림이 없다. 십자가에 매달리기까지 고통보다 다시 이 땅에 부활함이 더 고통일 수 있다. 성경 말씀에는 기록이 없지만. 하나님의 그 위대한 보좌에서 낮고 천한 신분으로 태어남이 얼마나 큰 고통일까. 사람이 파충류나 하등동물로 다시 태어난다면 얼마나 고통일까. 비교해 볼 수 있다. 이래서 우리는 성탄절을 기뻐하고 찬양한다. 세상 사람들도 예수 오심을 기뻐한다. 그래서 성탄의 문화는 다양하다. 거리에는 캐럴이 울리고 다소 세상 사람들의 무지한 문화도 섞여있지만 예수탄생의 기쁨이 온누리에 흐르게 한다.

그러나 성탄절보다 더욱 큰 복음을 알리는 예수가 다시 사신 부활절에는 문화가 없다. 초대교회 시절 흰옷을 입고 정성으로 새벽 기도회를 가져왔던 문화가 사라지고 기껏 삶은 계란을 나누는 하루가 전부로 부활 의미가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문헌을 찾아봐도 부활절 삶은 계란은 고대에서부터 의미 없이 전해 내려오는 풍속이다. 예수 부활을 알리는 고난주간 종려주일이다. 깊은 묵상의 시간이 가슴을 누른다. 예수 부활의 메시지는 강하고 크다. 예수 부활의 뜻을 더욱 절절히 느껴져야 한다.

 

 예수님은 왜 다시 부활했을까? 성경 말씀을 찾아갈 필요가 있다. 로마서 6장 5절에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함께 연합한자 되었으면 그의 부활하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 되리라”고 했다. 부활과 함께 연합의 표현으로 거듭난다는 원리다. 다시 말해 예수부활로 우리는 신령한 신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바로 부활의 복음인 것이다. 예수 부활과 우리의 부활을 잘 설명한 고린도전서 15장 말씀을 보면 22절에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했다. 17절에“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라고 확실한 방점을 찍고 있다. 예수 부활이 얼마나 우리에게 예수 믿음을 주게 되고 그 믿음으로 우리가 천국 백성으로 확증되고 복음의 사명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기독교 신앙의 원리가 녹아있는 말씀인가. 예수가 다시 이 땅에 재림하실 때 우리의 육신도 부활하여 심판받게 되는 하나님의 무겁고 무거운 말씀도 예수 부활에서 들려주고 있다. 16절에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을 터이요”라고 했고, 44절에는“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 했다. 예수가 부활함으로써 영적으로 거듭나서 예수의 사람이 되고 또 훗날 다시 오실 때 육신 모두가 부활하여 예수 앞에 서게 된다는 길을 알려주고 있다. 얼마나 위대한 복음인가. 당신의 피와 처절한 희생으로 그리고 부활함으로써 인류를 천국 백성 삼으려는 강력한 마중물이 되신 예수, 이것이 복음인 것이다. 

 

  이 위대한 부활절을 그냥 조용히 보냄이 아쉽다. 고난주간 특별 새벽 기도로 묵상을 가짐도 중요하다. 부활 문화의 기념비적 역사가 교회마다 아니 세상가운데 펼쳐져 나가야한다. 이게 우리가 복음의 사명에 행하는 신앙이 아닐까한다. 날로 복음 앞에 귀찮은 일을 싫어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초대 사도 시대부터 부활을 최고의 축일로 기념했다. 이스라엘 최대 명절 유월절 니산월(히브리력 제1월)의 14일에 예수부활을 축복했다. 한국교회는 4월 중순 주일을 부활절로 지키고 있다. 온누리에 생명이 약동하는 계절에 시내 거리에서 십자가를 지고 거리행진하면서 예수 부활의 의미를 전하는 퍼포먼스라도 해봤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올해 부활절이다. 다음 세대에게 부활 복음의 문화를 전해야한다. 복음의 위대함이 문화의 옷을 입을 때 복음은 더욱 강하게 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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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 삶은 계란 왜 먹습니까? : 예수부활문화 없는 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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