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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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헌 목사(고신교회)

  지난 72회기 고신총회는 여성안수에 대한 연구 청원을 기각했다. 필자가 기억하기로 이 청원은 역대 두 번째 청원이다. 이 주제에 대한 관심이 높다. 우리 교단 역사 중 최고치에 이른 듯 보인다. 그래서 말들이 많다. 72회기 총회 때는 역대 어느 총회에서도 볼 수 없었던 여성 안수 허락에 대한 피케팅이 있었다. 여성임직 허락에 대한 청원도 아니고, 연구에 대한 청원인데 연구를 못하게 할 필요가 있냐는 말도 있다. 반대로 한국장로교회 내에서 고신이 가진 정체성과 영향력이 있는데 이런 결정은 파장이 크다는 의견도 있다.

 

여성 임직 문제는 그 자체로 첨예한 대립을 예고하며, 교회사적으로도 그래왔다. 어떤 신학적 패러다임을 배경으로 하던지 이미 양쪽은 성경적, 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며, 서로의 주장은 공격하며, 자신의 주장은 옹호한다. 토론과 논쟁에 비교적 열려 있다고 평가받는 서방에서도 이미 갈등과 반목은 불가피했다. 전 세계적으로 이미 여러 종류의 심각한 분열이 일어났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생채기 수준을 넘어선 상처로 아픔을 겪고 있다.

 

  우리 교단도 이런 과정으로 들어갈까 심히 염려된다. 어쩌면 문을 열고 이미 들어가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 가지를 꼭 염두에 두면 좋겠다. 우리 자매교회 중 하나인 남아 개혁교회는 공식적으로 분열 없이 수 십 년째 논쟁하고 있다. 갈등이 깊다는 말도 되지만, 교회 연합과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는 말도 된다. 또 다른 자매교회인 화란 해방파의 진행과정과 비교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도 이런 마음이 필요하다. 결정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다고 분노하지 말자. 이 덕목은 우선 여성 임직 찬성론자에게 요구될 것이다. 상대방의 주장이 비(혹은 반)성경적, 혹은 자유주의적 신학이라 화내지 말자. 이 덕목은 우선 여성 임직 반대론자에게 요구될 것이다. 성경과 신앙고백의 토대 위에서 치밀하게 연구하고, 치열하게 논쟁하되 주 안에서 서로를 온유한 심정으로 대하자. 그리고 끝까지 하나 됨을 지키자. 이런 각오와 결단이 없다면 연구와 논쟁을 그냥 포기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는가?

 

  필자는 개인적으로 목자 장로직 여성 임직 허용을 반대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여성 임직에 관한 논의에 다시금 신학적, 성경적 근거를 제시하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인다(이 말을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모두가 성경과 신학적 근거로 대립하기 때문이다. 여성 임직을 결정한 교회의 예를 보면 결국 지지하는 다수를 확보한 찬성 쪽의 성경과 신학적 근거가 채택되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 필자는, 앞서 언급한 덕목을 염두에 두면서 여성 임직 연구와 논쟁 시에 고려해야 할 교회연합 및 교회법적 관점에서 생각해 볼 문제를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다시 말하지만, 여성 임직을 반대하는 입장에서이다.

 

  첫째, 여성 임직 문제가 결코 교회 연합을 깨트릴 문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여성 임직 자체만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이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여러 결정으로 인해 세계의 많은 교회가 지역 교회 단위, 노회 단위, 총회 단위, 그리고 연합 기구 단위의 분열을 이미 겪었다. 최근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 있었던 국제 개혁교회 협의회(ICRC) 총회는 우리 자매 교회인 화란 해방파 교회의 ICRC 회원 자격을 박탈했다. 직전 총회(2017년, 캐나다)에서 정지되었던 회원권을 최종적으로 박탈한 것이다. 해방파 교회의 회원권 문제는 해방파 교회를 모교회로 삼는 캐나다 개혁교회의 발의(이들이 그만큼 심각하게 이 사안을 고려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한부선 선교사를 파송했던 미국 정통 장로교회의 동의로 채택된 안건이었는데, 이번 ICRC 총회의 주요 안건 중 하나였다. 우리 교단 대표로 참석했던 후배 목사에게 들은 바로는 이 논의는 아주 조용하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으며, 해방파 교회 대표의 여성 임직 문제에 대한 변호 발언과 이에 대한 회원교회들의 의견을 나눈 후 만장일치로 가결되었다. 가결에 대해 각 회원교회 대표가 의사 결정을 ‘Yes’라고 말하는 다수의 목소리에서는 심지어 떨림이 감지되기도 했으며, 해방파뿐 아니라 기타 회원교회의 모든 대표가 침울한 슬픔을 표현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스도의 몸이 나뉘고, 교회의 연합이 깨어진 셈이다.

 

  해방파는 자신들의 결정을 변호하는 발언 기회에 여성 임직 문제가 성경적으로, 신학적으로, 그리고 교회 연합적으로 ICRC에서 퇴출될 만큼의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논지의 발언을 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ICRC에 머무르고 싶다는 희망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결정을 지지했다. 마찬가지로 보수 신학 진영의 여성 임직 찬성론자들 역시 이 문제를 성경의 권위 및 진리 문제와는 별개로, 또한 교회를 혼란에 빠트리거나 분열을 야기할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을 표명한다. 하지만 결국 그동안 ‘이 작은 문제’를 교회의 분열보다 앞세운 셈이다. 다시 말하면, ‘이 작은 문제’가 교회를 찢어 놓은 것이다!

 

  이번 ICRC의 결정은 우리에게 몇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우리 교단은 WCC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그토록 경계하고 반대하지 않는가? (필자도 동일한 생각이다.) 그렇다면 WCC 대척점에 서 있는 ICRC 교회와의 연합에는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가? 우리 교단은 처음부터 WCC와 그에 준하는 국제기구에 가입된 교회와는 교류를 하지 않고 경계해 왔다. 비록 그 개념이 약했다고 할지라도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 때문이었다. WCC는 경계하면서, ICRC와의 연합은 고려하지 않는 입장은 우리 스스로를 모순 가운데 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ICRC 가입 교회들과의 교제와 연합을 충분히 고려하면서, 우리가 이끌고, 또 지켜온 같은 신앙고백 안에서의 하나 됨에 분열을 야기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이런 신학적 논의에 자매 교회들의 견해를 얼마나 열린 마음으로 듣고 있는가? 일반적으로 자매 관계에서는 총회의 회의록과 중요 결정사항을 교환한다. 정기적으로 각 교회 총회를 방문하여 서로 교제를 나눈다. 신앙고백이 일치하기 때문에 서로의 결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배우며, 또 권면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지어 서로의 목사를 청빙할 수도 있다. 가르치고 고백하는 내용이 같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고하신 고 허순길 교수가 우리 자매교회인 호주 자유 개혁교회의 목사로 청빙 된 아름다운 개혁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자매 교회들과 이런 교제를 가지지 못하는 것은 우리 교회가 여전히 성숙하지 못했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아닌가? 이번 총회에서 기각된 우리 신앙고백서 34-35장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전부 다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ICRC에 속한 대다수의 장로교회들은 34-35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이 문제에 대해 이견이 없을 정도이다. 아주 명쾌하다. 하지만, 우리 교단은 34-35장을 삽입할 때도, 그리고 이 문제를 다시 거론하고 있는 지금도 자매 교회들의 의견을 들은 적이 없다. 한때 우리 교단과 교제의 폭을 넓히고, 신학적 일치를 이루며, 합동까지 바라보고 있던 합신 교단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명확한데 말이다.

 

  만약 우리 교단이 여성 임직 연구와 논쟁의 문을 열고 들어간다면, 치밀하고 치열하게 시행하되 교회의 연합과 하나 됨을 우선적으로 고려하길 바란다. 자매 교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과의 논의도 확대하며, 함께 걸으려고 하는 유연한 교회 연합적 스탠스가 필요하다. 급하게 서두르지 말자!

 

  둘째, 또한 우리는 새로운 교회 질서(법, 규례)를 만드는 일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흔히들 교회의 권세 중 하나로 ‘입법권’을 말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성령으로 통치하시는 교회는 말씀과 신앙고백의 빛 아래에서 질서(혹은 법과 규례)를 만들 권세가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말씀의 지배 아래에서여야만 한다. 말씀의 원리를 따라 교회에 필요한 최소한의 질서, 최소한의 법과 규례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교회 질서’나 ‘교회법’이 ‘교회법전’화 되어 교회를 지배하자 종교개혁의 문이 열렸다. 교회에게 법과 질서가 필요한 것이지, 법과 질서에게 교회가 필요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물론 교회 질서와 법은 유동적이다. 하지만, 말씀의 원리를 무시한 채 시대사조나 요구에 따라 교회가 질서와 법을 적극적으로 만들고, 교회법적인 결정을 쉽게 내렸을 때 교회는 언제나 그 법이 가지고 오는 필연적인 무거운 멍에를 실제로 짊어져야 했다. 특히 여성 임직 문제는 직분의 문제이다. 공식적으로 온라인 예배(?)를 그토록 경계했던 우리 교단이 예배의 핵심과 직결된 직분의 문을 쉽게 여는 것에 대해 경계심이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화란 해방파의 예를 들어 보자. 현재 알려진 바에 따르면, 화란 해방파에서는 여성 임직을 결정한 후 동성애자를 교회에 허용하는 문제에 대한 연구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한다. 은퇴한 윤리학 교수 한 명은 동성애 허용 가능성을 지지하는 입장의 책을 지난 주간에 출판했고, 실제 지역 교회에서도 동성애 커플들에 대한 치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며 심지어 성찬에 참여 시키는 예도 있다고 한다. 비록 여성 임직 찬성론자들이 여성 임직-동성애 허용은 별개의 문제라 주장하지만 여러 많은 교회의 역사를 통해서도 우리는 이 두 문제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아왔다. 뿐만 아니라 해방파는 2020년 총회에서 WCC에 가입하기 위한 준비 위원회를 구성했다고 한다. 우리 관점으로는 2022년에 해방파는 ICRC에 머무르고 싶다는 희망을 피력하면서도 이미 2020년에는 반대편으로 가려는 다른 시도를 하고 있었던 셈이다. 새로운 질서(법과 규례)를 받아들이면, 이를 뒤따르는 무거운 멍에를 받아들이는 책임을 져야 한다. 누가 이 멍에를 맬 것인가? 가깝게는 화란 해방파의 예를 보면서도 동성애 관련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인가? 우리도 우리가 그토록 경계했던 WCC 편으로 이제 옮겨갈 것인가? 우리는 이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필자에게는 염려스러운 것이 하나 있다. 이런 글들이 오히려 연구와 논쟁을 가속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결국 이 연구와 논쟁을 피할 수 없다면 성경적, 신앙 고백적, 예배적, 교회 연합적, 교회법적 등, 모든 관계를 치밀하게 고려하고 치열하게 토론하여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앞에 제대로 정리된 보고서를 내어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경과 신앙고백을 따라 여성 임직을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늘의 지혜가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지길 희망한다. 무엇보다 열린 마음으로 자매 교회와 함께 의논하여 하나 됨에 상처를 내는 일이 없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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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교회 연합과 교회법적 관점에서 본 목사·장로직 여성 임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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