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3(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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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 목사(진해웅천교회)

  우리의 영은 점점 더 새로워져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거하실 만큼 완전하다. 믿는 자의 영은 살았다. 완전한 영으로 예수와 함께 부활하여 창조 되었다. 우리의 영은 점점 성장하여 온전한 곳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온전한 영으로 사랑하는 예수님을 모시고 있다. 우리의 영은 죄가 없이 온전하다.

능력의 삶은 출발이 중요하다. 바른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은 언제나 담대하게 해 준다. 거듭난 사람이 가장 먼저 가져야 할 일은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영이다. 영이 혼을 가지고 육체 가운데 산다. 팔 다리가 없어도 온전한 사람인 것은 육이 사람이 아님을 증명한다. 사람이 가진 혼은 훈련되는 대로 형성된다. 어릴 때 늑대 소년 이야기가 있었다. 늑대에게 양육 받은 두 아이는 늑대의 모습으로 산다. 기록에 보니 1년 반 정도 살다가 죽었단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었단다. 침대를 갖다 놓으면 침대 밑에 구석에 들어간다. 음식을 먹는 교육이 안 된다. 그래도 사람이다. 그런데 혼이 어떻게 훈련 되었나? 사람일지라도 무슨 영향을 받느냐에 따라 혼이 형성된다. 한국말을 할 수 있는 것은 한국말을 어릴 때부터 배웠기 때문이다. 미국 아이가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영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혼은 훈련되는 대로형성 된다. 혼이 영적 훈련을 받으면 영적인 사람이 된다.

 

혼이 형성되면 형성 된 대로 행하며 산다. 그런데 진짜 나는 영이다. 영이 혼을 가지고 있고 영과 혼이 육을 입고 있다. 훈련되어 나타나는 혼이 내가 아니다. 진짜 나는 영이다. 진짜 나를 하나님은 온전하게 하셨다. 온전한 나의 영에 하나님이 계신다. 영은 육을 입고 있다. 그래서 육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혼에게 진짜 나를 인식 시켜야 한다. 혼이 영적인 생각으로 살게 되면 육은 따라 가게 되어 있다.

"나는 영이다." 우리의 영은 온전하다. 거듭난 영은 흠이 없다. 할렐루야! 흠도 없고 점도 없다. 당신의 영은 성령님과 하나가 되었다. 능력이 넘쳐난다. 혼이 훈련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온전한 능력을 모를 뿐이다. 영적인 생각을 하라는 말은 혼을 훈련하라는 말이다. 마음을 훈련하라는 말이다. 혼적인 훈련을 하라는 것이다.

거듭난 나를 바르게 아는 것이 정체성이다. 나는 영이다. 영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할 때 영으로 대한다. 사실은 안 보이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는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같은 공간에 공존하는 세계다. 영혼육도 분리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이다. 같다고 보아도 된다. 그러면서도 분리된다. 이것이 영적의 신비다. 영육으로 나누어 생각하면 혼은 육에 속하는 부분이다. 영이 진짜 우리이기 때문에 육에 진짜인 나를 인지시키고 말씀과 기도로 훈련 시켜야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실 때 우리의 육을 보시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보신다. 영이 진짜나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고후5:21). 육을 고치는 것은 영인 나를 인지시키는 것이다. 나의 진짜는 영이 나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이다. 새로운 피조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6-17).

 

내가 성령의 사람이라는 인식이 신앙생활의 첫 단추다. 당신 안에 잠자는 성령의 능력을 깨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당신이 성령의 사람이라는 100%의 믿음이 없다면 믿음으로 행할 수 없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6:63). "육은 무익하다"는 말은 우리의 육체, 고깃덩어리가 무익하다는 말이 아니다. 육적인 생각이 무익하다는 말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다. 주님의 말이 생명이다. 주님의 말이 영이고 생명이다. 그러기에 주님의 말을 생각하는 것이 영적인 생각이다.

 

영인 주님의 말이 나를 살린다. 생명의 삶을 살게 한다. 영의 생각이 믿음이다.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만이 자신이 성령의 사람임을 확신하게 된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롬8:5). 주님의 말이 아닌 다른 생각은 육의 생각이다. 육은 무익하다. 이 말을 잘 못 이해하면 육신을 자학하게 된다. 중세시대에는 이러한 현상이 강했다. 잘 믿으려면 수도를 해야 하는 것인 줄 착각했다. 먹는 것 참고, 잠도 참고, 스스로의 정욕을 죽이기 위해 육신을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수도사들은 자신의 육체를 학대했다.

육신의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다(롬8:7). 육신적인 사람과 자기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은 복음을 받을 때 거부반응이 온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며, 할 수 있게 된 것은 은혜다. 한없이 주신 은혜다. 감사 할 일이다.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고집 센 사람일지라도 주님 말씀하시면 "주님, 그렇습니까? 아멘입니다."라고 한다. 성경을 읽으면서 복음의 문이 열릴 때마다 감격하는 것은 정말 감사할 일이다. 성령의 기름부음으로 가르침을 받고 있는 성령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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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 목사] 정체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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