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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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오늘 잠 자기는 틀렸네.”

 

태풍 소식에 긴장이 된다. 건물 관리가 안 된 아파트이기에 어디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태풍, 장마와 같은 가혹한 상황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잠을 포기하기로 했다. 물론 내가 자지 않는다고 해서 폭풍 중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그것을 알면서도 잠을 잘 수 없는 것은 관리소장의 책임감이랄까?

 

“순찰이나 한 번 돌아볼까?”

 

새벽 1시. 예보된 것보다 밖은 더 요란하다. 집 안에서도 태풍의 무서움이 느껴진다. 아파트 옥내 순찰이라도 돌아보자는 마음으로 몸을 일으킨다. 어차피 다 젖을 것 같아 가벼운 복장에 우의를 걸치고 슬리퍼를 끌며 밖을 나선다. 사람들이 오가는 유리 자동문은 뿌려지는 비를 맞으며 요란스럽게 흔들리고 있다. 이러다 부서지는 것 아닌가 싶은 불안감에 적당한 거리를 두며 살핀다.

 

“어? 장난이 아니네?”

 

밖이 보이는 주차장에 서서 태풍에 버티며 몸을 가눈다. 큰 도로 상황이 어떤지 보려는 것이다. 보통이 아니다. 왕복 6차선이 작은 수영장이 된 듯 가로등 불빛이 물에 일렁인다. 이사 와서 이 정도 상황을 본 적이 없었기에 잠시 물구경 하듯 살피다 갑자기 등골이 오싹함을 느낀다.

 

“지하 주차장! 괜찮을까?!”

헐거운 슬리퍼를 급하게 끌며 계단을 뛰듯 지하로 내려간다. ‘앗!’ 몸이 잠시 뜨더니 계단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슬리퍼가 물기 있는 계단에서 이렇게 위협적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본능적으로 팔을 내어주고 허리와 머리를 지켰다. 일어나기 힘든 고통에 잠시 웅크리고 앉아 있어 보지만 드라마에서처럼 누군가 나타나 위로하거나 돕는 일 따위는 없다. 몸을 일으킨다. 주차장 상황을 봐야만 했다.

 

“아... 이게 뭐야.”

 

내 생에 이런 광경은 처음이다. 지하주차장 진입로는 계곡이 되어 있었다. 물이 쏟아져 내려오고 주차장 바닥은 이미 발목까지 물이 차 올랐다. 배수펌프 한 개가 돌아가고 있었지만 역류되어 그마저도 주차장으로 다시 들어왔다. 얼어붙은 듯 서 있다가 주차된 차량 먼저 빼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급히 차주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차량 이동이 시작되었다. 마치 군사작전같이 긴박하다. 남자 입주민 몇이 함께 붙어 주차장 입구에 모래주머니를 쌓아보지만 역부족이다. 이미 통제할 수준을 넘었고 차오른 물로 인해 자칫 감전되지 않을까 두려움도 생겼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느끼고 일단 퇴각한다.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

 

황망한 상황에 차라리 여기가 군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중대, 소대 인력이 함께 한다면 수습이 빠를 텐데, 이걸 어떻게 나 혼자 정리를 한단 말인가? 이미 승강기 지하는 물이 가득하다. 배수펌프 고장으로 물을 뺄 방법도 없다. 119는 계속 먹통이다. 무력감에 기계적인 못 짓으로 떠다니는 쓰레기를 치우며 생각이 깊어진다. 인생 별 경험을 다한다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다행스럽게도 평소 친분이 있던 업체 사장님이 배수펌프를 가지고 와서 승강기부터 물을 퍼내며 진척이 보인다. 영화의 좀비처럼 생각 없는 몸놀림으로 계속해서 치우고 버리고 퍼낸다.

 

“아! 진짜!”

 

오늘은 주일이다. 벌써 시간은 10시. 갑자기 짜증이 난다. 대강 물은 뺐지만 일이 정리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목사가 예배 인도를 안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홀딱 젖은 옷에 누더기가 된 슬리퍼. 내 차림이 처량하다. 팔은 여전히 욱신거리고 몸은 천근만근이다. 그래도 예배는 가야지. 급하지만 느리게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 샤워를 한다. 개척하면 목사는 강단에서 많이 울어야 한다는데. 나는 왜 자꾸 엉뚱한 곳에서 눈물이 날까. 샤워기 물인지 눈물인지 자꾸 흘러내린다. 누구 들으라는 듯 혼자 중얼거려 본다.

 

 

‘나 부르신거 맞죠? 개척교회 잘 할 수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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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작가 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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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철 목사] 관리소장, 태풍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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