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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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헌 목사(고신교회)

(대상6:31-32)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다윗이 이 아래의 무리를 세워 여호와의 집에서 찬송하는 일을 맡게 하매 솔로몬이 예루살렘에서 여호와의 전을 세울 때까지 저희가 회막 앞에서 찬송하는 일을 행하되 그 반열대로 직무를 행하였더라

 

찬송에 대한 의미가 많이 퇴색된 시대인 것 같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찬송해서 힘을 얻습니다. 기도의 응답이 되고 일이 잘 풀릴 때 감사의 찬송을 합니다. 우리 성도의 입에서 찬송이 사라지지 않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상 문화가 우리의 입에 할 말을 너무 많이 넣어주고, 개인적으로 너무 똑똑해지고, 트로트가 너무 많이 들려 저절로 입속에서 흥얼거리는 지경까지 되어버렸습니다. 찬송인지 트로트인지 곡만 봐서는 구별도 잘 안 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오늘 성경은 찬송하는 일, 그 일이 직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었을 때,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하나님께서 평안을 얻으시기가 참 힘드셨던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쉬시기가 너무 어려우셨던 것 같습니다.

 

(마8:20)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이런 장면을 들어 “예수님께서 검소하게 사셨다, 소유욕이 없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는 요단강에도 제일 먼저 들어가야 했고, 전쟁터를 누벼야 했고, 포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진영 한복판에서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이스라엘 속으로 가만히 들어온 섞여 있는 가라지들 때문에 졸지도 주무시지도 못하셨습니다.

 

(시121:4)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었을 때,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이렇게만 보아도 이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께 너무 송구스럽고, 죄송스럽고, 가슴 아픈 말씀입니다.

 

동시에 이 말씀은 전쟁이 끝나고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임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집인 성전이 건축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쉬신다는 뜻이 아니라 그의 백성, 그의 자녀들에게 평강과 구원이 임했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소속된 교회는 우리에게 구원이 임했다는 상징이요, 약속입니다.

 

그런 뜻을 담은 성전이 건축되는 동안 찬송하는 직무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니 찬송은 우리가 쉽게 생각하는 것처럼 “은혜받았다, 감동받았다”의 차원을 넘어 구원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집, 성전을 향하여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라”하면 교회를 그리 오래 다니지 않으신 분들도 다 아실만한 사람입니다. 특히 주일을 성수하고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은 너무도 잘 아실 것 같습니다.

 

(민16:1-2)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라엘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 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서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 가운데에서 이름있는 지휘관 이백오십 명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르니라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반역의 깃발을 든 주동자가 “고라”입니다. 고라와 그 무리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부여하신 제사장직과 왕직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결정에 반기를 든 결과입니다.

 

세상 나라도 역린, 반역을 하면 9족을 멸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의 반역과 불신앙은 세상의 반역을 넘어 삼위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뻔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었을 때, 언약궤가 평안한 곳을 얻은 후에”,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구원이 임하였음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집, 성전건축을 알리는 찬송하는 직무에 헤만이 등장을 한다는 말입니까?

 

헤만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반역의 깃발을 든 고라(대상6:38)의 후손입니다. 시편 성경에도 고라의 찬송을 10편이나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찬송과 기도가 우리의 은혜, 우리의 감동이 목적이 되고, 그 선에서 머물러서야 되겠습니까? 우리의 입에 찬송과 기도가 있다는 사실은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여 있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찬송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어쩌면 우리는 고라의 후손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아니 고라일지도 모릅니다. 아니 바로 우리가 고라입니다. 내가 고라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나에게 찬송의 직무를 맡겨 주셨습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성도의 구원을 상징하고,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향한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9족을 멸하는 대신, 교회의 역사를 기록하는 장면에서 우리가 부르는 찬송의 고백을 10편이나 할애해 주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일을 성수하며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여 찬송할 때마다 내 입에서 나오는 찬송의 의미를 바르게 알아 삼위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가 풍성하시길 소망합니다. 죽는 그 날까지, 하나님 앞에 서는 그 순간까지 찬송이 끊어지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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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헌 목사] 헤만은 찬송하는 자라(대상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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