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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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서머나교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이야기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예상보다 흥행하며 전국에서 상영되고 있다. 필자는 설 명절에 가족과 함께 관람을 하고 청년인 아들과 우리의 근대 역사를 두고 토론을 잠시 한 적이 있다. 눈물겨운 우리의 역사에 이승만을 다시 보는 보람된 시간이 되었다.

필자는 보수적 시각과 좀은 복음의 욕심에서 바라봤다. 이승만의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바탕에 깔려있는 기독교의 건강한 사회이념을 영화가 설명 못 했음이 아쉬웠다. 그동안 이승만의 건국대통령에 대한 찬반의 국민정서가 심각의 도를 넘었다. 그리고 공()과 과()에 대한 평가 또한 세상의 담론에서 정리되지 못했다. 온통 이승만의 공은 과에 덮여져 있었다. 장기집권과 독재정치 6.25한국전쟁에서의 피난처신등이 과였다. 그리고 4.19라는 민주주의 정치의 헌법정신이 이승만의 공을 고개 들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번 영화가 많은 정치적 다른 견해에서 찬반이 있지만 대한민국 국가발전의 뼈대의 기초를 이승만이 확실히 세웠다는 입증을 분명히 한 많은 증거들이 있었다. 그것은 이승만의 피나는 항일 독립운동과 외교,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대한 강한 집착이었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세계 속의 경제 강국이 된 것은 1948815일 자유민주주의 정부수립의 헌법정신이 시장경제의 글로벌 경쟁을 뚫고 세계를 주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승만의 역사를 추적해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정사(正史)에도 나온다. 왕손 양영대군 16대손 전주 이씨로 한학을 하며 청년까지 성장한 이승만이다. 나라의 지도자 선각자가 될 수 있었던 계기는 190525살에 한성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면서이다. 이승만은 청년시절 대단한 진보적 사고를 가졌다. 대한제국 고종황제가 당시 일본 중국 러시아 열강 속에서 제대로 개혁정치를 하지 못할 때 만민공동회를 결성한다. 고종을 폐위시키는 목적이었다. 이로 인해 한성감옥에 추포되어 감옥에서 복음을 듣고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만난다. 이때부터 이승만은 향후 이 나라를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기독교 사회이념의 국가에 대한 큰 소망을 가지게 된다. 이승만이 천재적 재능을 가진 머리 좋은 인재이다. 그러나 이승만은 참 기독교인이 되고난 후 성령을 받고 모든 나라비전을 기독교 이념에 두었다. 일정시대 미국에서 유수한 대학에서 공부하고 항일독립운동을 하면서 온통 기독교 사회 이념 바탕에서 미래의 꿈을 꾸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온몸으로 대한민국 독립과 새로운 건국에 몰입했다.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의 아이콘이 된 것은 광복 후 건국과 함께 토지개혁과 여성해방 그리고 사학육성 등 나라의 백년대계가 되는 기초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날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 되는 설계도가 된 것을 어느 누가 부인하겠는가. 우리 믿는 자들이 눈여겨 봐야할 것은 기독교 사회이념을 국가발전 기초에 담고자하는 이승만의 일념이다. 우리 교회지도자들이 주장하는 기독교 입국론이다.

 

건국전쟁의 영화가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선 유·불리의 논쟁이 뜨겁다. 차치하고 건국전쟁 영화를 통해 이승만이 건국대통령 또는 국부(國父)라는 긍정과 부정의 국민시각이 갈려져있다. 다만 함께 모두가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중국 소련 등 주변 공산사회주의 국가들 속에서 자유민주 국가를 세웠다는 공적을 인정해야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시장경제의 근간이 되는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에 버금가는 이승만의 국부론(國富論)을 만든 주인공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그 공적을 먼저 인정해야함을 주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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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 이승만의 ‘건국전쟁’ 예수복음이 대한민국 國富論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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