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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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다. 우리는 하나님께 얼마나 귀중하고, 중요한 존재인지 모른다. 하나님은 우리가 없이 못살겠다고 지신 것이 십자가 죽음이다. 우리 대신 죽을 만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다. “나는 죽도록 이 여인을 사랑한다. 나는 이 여인이 없이는 살 가치가 없다”고 만방에 공포한 것이 십자가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이다. 온 천하에 나는 이 여인을 사랑하여 하나가 되었다고 공포하는 것이 성찬이다. 성찬은 사랑의 고백이다. 첫 성찬은 사랑하심을 만방에 공포하신 시간이었다. 스스로 하나 되신 시간이다. 우리가 분명한 정체성이 없는 것은 새 언약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진 정체성은 우리 스스로가 만든 정체성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사랑하셔서 주신 정체성을 가져라. 만왕의 왕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단다. 목숨을 걸고 구출하셔야 했다. 성찬은 사랑의 고백이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 되어 주님의 품에 안겨있다. 사랑하여 목숨을 내어주신 신랑을 얻었다. 신랑은 그 날을 잊지 말자고 한다.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전11:25)고 부탁하셨다. 사랑을 기억하는 것이 성찬이다. 우리는 날마다 성찬 속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날마다 성찬을 하라. 성찬을 깨닫는 것은 주님의 사랑에 빠져들 수밖에 없게 한다.

 

신랑과 신부에겐 비밀이 있다. 우리는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놀라운 창조주와 결혼을 했다. 결혼 서약인 새 언약은 최고의 언약이다. 나를 사랑해서 당신이 스스로 하나 되심을 선포하셨다. 놀라운 비밀이다. 주님이 우리의 신랑이 되었다. 사랑하는 신랑은 언제나 우리와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함께 한다. 우리가 신랑과 하나 됨으로 신랑이 우리의 죄로 심판받으실 때 우리도 심판을 받았다. 신랑이 부활하실 때 우리도 부활 한 것이다. 신랑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은 나와 하나가 되어 하신 일이다. 예수님과 하나 됨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셨다. 또 우리는 신랑과 함께 일으켜 졌다. 나아가 우리는 신랑과 함께 하늘에까지 함께 앉혔다(엡2:6). 이것은 세상이 모르는 비밀이다.

이제 신랑 되신 예수님이 계신 곳에 우리가 있게 된 놀라운 비밀이다. 얼마나 놀랍고 놀라운 일인가! 이것이 하나 됨의 비밀이다. 이것이 임마누엘의 비밀이다. 우리는 “예수님 함께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 그러나 그 이상의 복이 이미 주어졌다는 것을 알겠는가?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내가 있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었기에 떨어 질 수 없게 해 주셨다. 그분이 찾아 오셨기에 예수님이 계신 곳에 내가 있다. 놀라운 비밀이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수용하지 못하고 수용할 수도 없는 비밀이다. 예수님이 하늘 우편에 앉아 계시므로 나도 하늘 우편에 앉아 있다. 성경은 이 정도로 우리의 정체성의 회복을 완벽함으로 말한다. 성경이 이렇게 말하고 있음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비밀은 알려 줘야 알 수 있다. 신랑은 말씀을 통해 비밀을 알려 주시고 계신다. 듣기만 하면 된다. 들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14:20)하시지 않는가! 우리가 지금 여기 있는 것은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여기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있다. 우리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는 것에 만족하시지 않으시고 ‘함께’를 넘어 하나 되기를 원하셨다. 그저 단순하게 ‘함께’를 뛰어 넘어 새 언약을 맺으셔서 임마누엘로 우리와 하나가 되셨다. 우리에게 임마누엘의 엄청난 복이 임한 것이다.

 

우리에게 보여 지고, 깨달아 지고, 다가 올 때 죄에서 벗어난 확신을 갖게 되고,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요한일서 3장9절의 거듭난 사람은 죄에 있지 않는다는 말씀이 이해가 되고 믿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는 말씀 앞에 우리는 담대히 “아멘” 할 수 있다.

복음의 완전한 이해가 없으면 이 성경구절이 많이 혼란스럽다. 비밀이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죄인인데, 죄를 짓고 있는데, 죄를 짓지 않는다.”고 성경이 말하니 어렵다. 육으로 생각하니 어려운 것이다. 로마서 6장만 잘 읽어 봐도 우리는 죄에서 분리 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완전히 청산하셨다.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도 청산하셨다. 만약 미래는 “네가 잘 살아서 해결하라”고 하셨다면 우리는 가망이 없는 사람이다. 누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는 도를 닦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는 도를 깨달아 이미 이루어 졌음을 수용하고, 주님과 하나 됨을 인정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임마누엘이다.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것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이 기독교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이것이 기독교의 비밀이다.

우리가 가는 곳에 예수님이 계신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우리가 있다. 예수님과 우리는 하나다. 하나이기에 예수님께서 계신 하늘에도 함께 앉아 있다(엡2:6, 사6:1). 우리는 주님과 하나 된 존재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혔다”(엡2:5-6)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고 죄가 되셨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죄가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청산하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다(롬6:23). 그런데 예수님은 죄가 없으셔서 죽으실 수가 없는 분이시다. 당신께서 스스로 새 언약을 맺으시고 우리와 하나가 되심으로 우리의 죄가 되신 것이다. 예수님은 죄 없으신 분으로 죄가 되셔서 죽으셨다. 우리는 주님과 하나가 되어 죽었고 부활했고 승천했다. 우리는 주님과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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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한 목사] 성찬과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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