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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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진해영광교회)

 I. 서언(序言)

 


‘어떤 말이 바른 말일까?‘우리 기독교인들이 사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들은 어떤 것일까?’ 또 ‘잘못사용하고 있는 말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본지에서 이를 계속 연제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이런 질문 앞에 항상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하는 마음을 가져본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은 우리가 가장 흔히 사용하고 있는 ‘중보기도(仲保祈禱)’란 말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II.“중보기도(仲保祈禱)”,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밝혀두고 싶은 것은 이 용어에 대해 논하는 것은 필자 나름대로는 많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이 용어의 어원의 뜻으로 본다면 분명히 잘못된 표현이기 때문이다. 또한 국어사전에도 등제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아닌 교인의 입장에서 이 용어의 사용은 분명히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말은 교계에서 이미 널리 통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문제점을 지적하는 필자 자신도 무의식적으로 이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할 때가 많다. 그 많 큼 이 말은 보편화 되어 있기 때문에 차라리 의미는 맞지 않을지라도 아예 기독교적 전문용어로 사용해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할지라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는 바로 알고 사용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고 생각되어 다소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 용어를 논하고자 한다.

먼저 중보자(仲保者)란 용어는 예수님에 대한 또 다른 이름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시어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의미에서 중보자로 호칭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절대적인 의인으로서 죄인인 인간을 위해서 절대적 사랑을 베푸시어 하나님과 가까워지도록 중보자의 역할을 담당하신 것이다. 또한 디모데전서 2장 5절에는“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또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여 중보의 유일성을 말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중보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중보기도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닌 것이다. 다만 천주교에서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교황이나 사제가 중보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목회자나 교인이 중보자의 역할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일이다. 이런 이유로 합동 교단에서는 2002년 9월 총회에서 이 말을 쓰지 않도록 결의 한 바 있고, 여러 신학자들도 이 용어의 문제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중간 역할을 하거나 어떤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중보가 아닌 중재(仲裁)라는 말이 합당하다. 또한 이것이 기도로 연결될 때 그것은 “중재 기도”가 된다. 하지만 중재기도란 말이 한국교회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본다면 어떤 용어가 적합할까? 여기에 대한 성경적인 용어는 디모데전서 2장 1절에 나오는 “도고(禱告)”라는 말이다. 원어의 뜻은“다른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용어가 가장 적합할 수도 있다. 그 외에도“이웃을 위한 기도”, “도움 기도” 등도 적합한 좋은 말일 것이다.

 

 

 

III . 결 어(結語)

 

 

결론적으로 다시 한 번 필자의 고민을 피력하자면, 너무 국어 사전적인 어법과 신학적인 잣대로 용어를 구별하다 보니 말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마땅히 대안으로 내 놓을 말도 많이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면은 지금까지 논한‘중보기도’도 마찬가지다. 이미 한국교회 안에서 중요한 기독교적인 용어로 고착화 되어버린 말을 지금 와서 바로 고친다고 해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용어를 계속 지적하고 논하는 이유는, 어쩔 수 없이 습관적으로 이런 용어를 계속 사용한다 할지라도 무엇이 올바른 말인지는 분별하고 바로 알고 있어야 된다는 의미에서 이런 논의를 계속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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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 기독교 용어들에 대한 고찰 8 : “중보기도(仲保祈禱)”란 용어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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