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6-2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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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서머나교회)

  성경 누가복음 9장을 읽으면 예수님의 권능의 사역 정점을 보는듯하다. 열두 제자를 파송하면서 귀신 병자를 고치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시고 제자들과 함께 변화산 광채를 보이시기도 했다. 간간이 인자의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과 얘기했으며 귀신들린 어린아이를 고치시고 제자들이 누가 크냐를 논쟁할 때 어린아이를 세우시고 누구든 내 이름으로 어린아이를 영접하면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고 설파했다.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자가 큰 자라라는 예수의 역설적 은혜의 유명한 말씀을 남겼다.

 

  이때 제자 요한이 난데없는 고백을 한다. 누가복음 9장 49절의 말씀이다.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는 것을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않으므로 금하게 했나이다. 예수님으로부터 제자훈련을 받는 중에 제자들 집단이 보인 요즘세상말로 진영논리다. 우리 제자들이 아니고 누가 귀신을 내어 쫓는다 말입니까. 말씀을 묵상하면서 역시 제자들도 사람들이고 세속 된 이기적 진영의 이해에 머물러 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다가왔다. 다음 예수님은 유명한 말을 던진다. 금하지 말라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너희를 위하는 자니라.

 

  요즘 세상의 집단 세계를 보면 너무나 진영논리 내로남불의 원리가 날로 굳어져 가고 있다. 정치판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쓰는 용어 중 가장 많이 쓰는 단어 중 하나가 진영논리 ‘내로남불’이라고 한다. 갈등과 대립이 없을 수 없는 사회 기능과 구조가 복잡해져가는 세상에 소통과 타협의 지혜를 찾을 수 없는 경직된 세상으로 치닫고 있다. 성숙한 사회로의 기대 속에 필연적인 과정의 공간으로 이해하려 해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국가 사회에 대한 정당정치 진영의 이해다툼이 국가 경제력을 따르지 못하면 사회 공동체는 균형을 잃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세상의 정치판에만 그렇다면 좀 나을 텐데 여호와 하나님의 지혜로 살고자 하는 교회를 둘러싼 교단과 노회의 정치판에도 진영논리 내로남불의 원리가 더 크게 퍼져있는 듯하다. 교회가 수시로 갈라지고 노회가 깨지고 교단 총회마저 갈기갈기 갈라져 있다. 우리가 함께 섬기는 기독교 교계, 은혜로 살고자 하는 주의 종들의 세계도 이러하니 언제 우리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될까. 하나님이 일손을 놓아버리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다. 누가복음 9장을 묵상해 보면 제자들은 이때 성화되고 훈련되어가는 과정이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을 입은 제자들은 각자 사명의 길을 떠나 복음을 위한 순교의 길을 찾아갔다. 오늘날의 주님의 종들도 다를 바가 있겠는가. 세상에서 판치는 세상의 승리와 성공을 위한 세속 된 게임의 룰에서 교회는 벗어나야 할 것이다.

 

  교회와 세상이 공히 지향하는 다음의 세계는 유토피아(Utopia)다. 우리는 오직 천국의 소망에 마음을 다하는 제자들이다. 그래서 온 땅에 예수 복음만이 유토피아를 소망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유토피아에 반론한 디스토피아(Dystopia)의 지배적 예언을 설파하는 많은 서적들이 나오고 있다. 컴퓨터가 발달하고 환경이 파괴되고 동성애가 횡행하고 핵 전쟁의 위험이 커져가는 세상의 변화에 진영논리에 갇힌 군상들이 사회를 통제할 때 세상은 유토피아는커녕 암흑의 세상에 들어가고 만다는 예측의 메시지이다. 조지 오웰의 1984년이 소설로서 이러한 메시지를 던졌다. 최근에 같은 메시지의 서적들이 출간되고 있다. 뭣보다 무서운 것은 진영논리의 세력들이 합리적 과학기술 세상을 통제하지 못하면 선악(善惡)이 구분 안되는 캄캄한 세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디스토피아다.

 

  교회가 다시 회심하고 세상을 이끌어야 할 때이다. 선악의 분별을 배우는 교회마저 타락하여 디스토피아의 공간이 될까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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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철회

참 의미있는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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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철 장로] 진영논리 내로남불 디스토피아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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