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6-2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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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룡 장로(마산회원교회 원로)

 한 초등학생이 자기 어머니에게 순교가 옛날에 믿음이 좋은 어른이 자기 믿음을 지키려다 돌아가신 것이란 것을 알고 자기 엄마에게 대뜸 “엄마, 엄마도 순교자 처럼 순교할 수 있어?”라고 묻는다. 그 아이의 어머니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님을 말하고 대화를 마무리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도 요즘같이 실제 보기에 평화스러운 시대에는 순교자가 나타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먼저 잘 안다. 그러나

지금도 이슬람 국가에서 기독교인의 박해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놀랍게 일어나는 순교의 현장을 목도하고 그저 우리의 마음만 아파할 뿐 어떠한 조치도 취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순교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하여 죽임을 당하거나 말이나 행위로 자신 의 신앙을 부인하기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행위를 말하고 대의명분을 위해 순 교한 사람을 순교자라고 부른다. 역사적으로 오랜 박해를 받아온 유대교에서 순교 의 이상적 형태가 전승되어 왔었는데 기독교나 이슬람교에 영향을 크게 미친 것은 사실이다. 여러 종교들이 이를 교육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웃에 순교자의 삶을 살고 간 분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함안 부봉 교회의 이현속 전도사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분은 일제 강점기에 한상동 목사나 주남선 목사처럼 유명하진 못했으나 젊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신사참배를 거부 하고 생명을 버리기까지 일제에 맞섰던 것은 정말 존경할 만한 일이다. 일본 순사의 혹독한 고문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여 주님을 배반하지 않 은 것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심을 발휘한 최고의 순교자요 변치 않는 믿음의 훌륭 한 선배라 하겠다. 훌륭하고 이름 있는 목회자가 아니었지만 젊은 나이에 변절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순교한 것은 그 어떤 분보다 훌륭한 것이기에 재조명 받아야 마땅하다. 끝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억압에도 굽히지 않고 버티다가 평양 형 무소로 이송되어 간 뒤 해방을 불과 3개월 앞두고 순교하신 것은 슬프다. 지금은 평양 돌박산 기독교 공원묘지에 잠들어 계신다고 하니 정말 가슴이 아프다.

요즘은 부모도 교역자도 순교자의 값진 순교의 삶을 교육하기보다 늘 축복에만 치중하다 보니 회개와 순교란 말씀을 듣기 힘들다. 국가에서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분을 쉽게 애국자로 인정하지도 않는다. 최근에는 순교자들을 위한 순교지 성역화 작업은 놀라운 규모를 자랑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고신총회나 재건 총회 이외에는 개신교의 대부분이 신사에서 참배했으며 전쟁을 지지하고 배교했던 것은 지울 수 없는 부끄러운 사실이다. 그런 역사적 사실이 있음에도 참회는 고사 하고 신사 참배를 거부하여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당한 순교한 자들을 입으로만 높임으로써 마치 자신들이 후예인 양 자랑하는 모순을 연출하고 있는 것은 위선 이다. 특히 외국 선교사 묘지도 단장하고 그 역사를 소유하여 자기의 업적을 높이 거나 상술에 이용되는 것은 순교자를 다시 한 번 욕보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2000년이 되면서 교회가 쇠퇴하기 시작하자 경쟁하듯이 역사실과 박물관을 건립 하여 유적지 지정에 힘을 쓴다. 100년 넘는 교회들은 왜곡까지 하면서 자기 교회 역사를 거룩하게 미화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뼈를 탑에 넣고 모시는 것이 신앙이 아니라 선배의 순교신앙을 정기적으로 교육하여 그 정신을 이 어 받고 순교신앙을 이어받는 뼈대 있는 신앙을 가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야 몰락의 위기에 서있는 기독교의 쇠퇴기를 이길 수 있고 혼란기에 겪고 있는 죄악의 불감증을 치유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목회자와 부모는 함께 즐거운 하 루를 보내고 축복을 말하는 것도 좋지만 가까이 있는 순교지에 들러 순교자의 숭고 한 믿음을 이어가도록 학습지를 제공하거나 목회자는 정기적으로 순교에 관한 내용을 설교 하는 것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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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룡 장로] 순 교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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