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6-24(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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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밀알교회)

   그는 곧 바로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으며 얼마나 비겁한 자였는지를 통곡하며 회개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같이 회개할 수 있었던 것은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막 14:72) 했고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께 받은 말씀을 들어야 기억이 나고 깊이 생각할 때 회개할 수 있다. 그래서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연약함 가운데서 지도력이 개발되었다. 그가 물 위로 걸어간 사건이나(마 14:28),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메시야이심을 강조한 고백이나(마 16:16; 막 8:29; 눅 9:20), 그 외에 형제가 범죄 했을 때 몇 번 용서해 주리이까(마 18:21)라 하고 묻는 질문에서 베드로가 항상 제자들을 대변하는 대표자 같이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열두 사도의 중심인물을 언급할 때도 베드로는 항상 선임으로 언급되고 있다. 베드로의 우위성은 다른 여러 방식으로 나타난다. 주님은 제자들 중 가장 먼저 가버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집에 가셨으며(마 8:14; 막 1:29; 눅 4:38), 갈릴리에서 말씀을 전하실 때도 베드로의 배를 띄우게 하셨고(눅 5:3), 결정적인 중요한 때 예수 부활의 첫 목격자로서 베드로에게 보이셨다(눅 24:34; 고전 15:5). 이는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이후에도 그의 동료인 주님의 제자들을 다시 모으는 임무를 베드로가 맡게 되었다(눅 22:31-32).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랐으며, 또한 초대교회 중심적인 지도자였다. 베드로가 주님의 부활을 목격하기 전까지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 그러나 부활신앙으로 베드로와 모든 제자들은 사도적 사명을 감당하게 되었다. 이 같이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먼저 본 자가 사도 중에 으뜸이 되는 것과 부합한다.

 

베드로의 오순절 성령 체험

 

베드로의 인간적인 절망보다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더 크고 오묘하다. 다듬어지지 않은 바윗돌 베드로는 오순절 성령 체험 이후 새로운 믿음의 옷으로 단장되었으며 반석 같은 굳건한 믿음의 사도가 되었다. 그는 오순절에 임한 성령을 받고 하루에 오천 명을 회심케 하는 부흥을 일으켰다.오순절에 행한 설교는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일으켰다(행 2:14-36).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파한 빌립을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돕기도 했다(행 8:14-24). 백부장 고넬료 가정에 세례를 주었고 예루살렘 회의에서 야고보, 요한과 더불어 이방인 구원 문제를 옹호하였다(행 15:1-29).

베드로는 초대교회에서 최고의 실력자가 되었다.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활약한 반면에 베드로는 유대인의 사도로서 맹활약 했다. 그는 고린도와 로마에 교회를 세움으로서 초대교회 지도자로서 많은 일을 했다. 사도행전 전반부 12장에서 15년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탁월한 지도자였다. 다른 사도들은 별 언급이 없다. 세베대의 아들 요한이 성전에 갈 때도 베드로를 따라갔다(행 3:1). 요한은 주도권을 가지지 않은 둘째 인물이었다. 사도들 보다는 일곱 집사들을 언급하고 있다. 스데반의 설교와 그의 지도력은 탁월했다(행 6:8-8:1). 빌립은 핍박으로 인해 예루살렘에서 쫓겨났을 때 사마리아와 가사로 가는 도상에서 설교했다(행 8:4-8, 26-40).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선별하고자 할 때 제의한 사람도 베드로였다(행 1:15-22). 베드로는 오순절에 순례자들에게 설교할 기회를 얻었다. 이때 그의 설교를 들은 자들 중에 삼천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으며(행 2:14-41), 오후 3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기도 하러 갔다가 앉은뱅이를 고치는 역사도 일어났다(행 3:1-26).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행 4:1-31).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 소유를 판 얼마를 감추고 사도를 속였을 때 베드로는 그들의 위선을 책망하고 저주함으로 죽었다(행 5:1-11). 그는 사람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했다. 예루살렘에 박해가 일어났을 때 사도들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쫓겨났다(행 8:1). 베드로는 사방으로 두루 다녔다(행 9:32). 당시 그들은 아람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었으며 베드로는 룻다와 욥바에서도 사역했다(행 9:32-43). 그는 가이사랴 백부장 고넬료 집에서도 복음을 전했다(행 10:1-11:18). 이 같은 것을 볼 때 예루살렘과 그 부근에서 베드로의 지도력이 탁월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다른 곳으로 갔다(행 12:17).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디 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아내가 동행했음은 분명하다(고전 9:5). 아마 시리아 안디옥으로 간 것으로 짐작하지만 그는 확실히 그 성을 방문했다(갈 2:11). 고대 전승에 의하면 그가 안디옥에 첫 번째 감독을 했다고 한다. 그가 초기에 그 교회를 방문 했으리라는 것과 실제로 영향을 끼칠 만큼 오랫동안 그 곳에 머물렀다는 것을 암시해 준다. 그는 소아시아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곳 역시 방문했을 것이다. 고린도에 게바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 보아 고린도와 이웃 지역에도 갔을 것으로 본다(고전 1:12). 베드로의 로마 방문에 관한 것에 대한 많은 견해는 있으나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는 그 사실을 발견할 수 없다. “바벨론에 있는 교회”(벧전 5:13)에서 그 근거를 제시한다. 당시 로마를 은밀히 바벨론이라 불렀다. 베드로가 로마에서 활동했다는 것은 안디옥 감독 이그나티우스(Ignatius)도 로마로 가는 도상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고린도의 감독 디오니시우스도 그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했으며 로마에 가서 복음전하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이레니우스(Irenaeus)도 바울과 베드로는 로마에서 설교하면서 교회의 기초를 놓았다고 한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는 베드로 전서가 기록된 곳은 로마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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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베드로(Peter's Behind Stories)-열정의 사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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