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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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에반겔리아대학)

 오늘날 국내외 정세를 보면 우리 모두는 마음의 진정한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갈등과 긴장, 미움과 질투, 싸움과 전쟁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권력, 물질, 지식, 명예가 아니라 상처받은 마음을 다듬고 감싸주며, 우리의 존재 자체를 부요하게 해 주는 하늘의 평화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평화는 오직 평강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 제공해 줄 수 있다.

그런데 이 분이 주시는 평화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가? 단순히 긴장이 없고 전쟁이 없는 상태의 평화인가? 성경이 말하는 하늘의 평화는 무엇보다도 관계의 문제다. 평화는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동료 인간과의 관계에서, 자연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자신과의 관계에서 긴장과 갈등, 막힌 것이 없고 오직 ‘누림’(enjoy)이 넘쳐나는 삶이다. 성경이 말하는 평화 또는 평강은 단순히 긴장과 적대감, 전쟁이 없는 상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평화는 관계 속에서의 ‘즐김’(enjoyment)이다. 한 국가는 주변 다른 국가와 평화로울 수는 있지만 그 속에서 가난으로 비참할 수 있다. 평화 속에 거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사는 것을 즐기는 것이며, 물리적 환경 속에 사는 것을 즐기는 것이며, 인간 동료와 함께 거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며, 자신과의 삶을 즐기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막힌 것이 없다고 해서 우리가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이 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이 평안을 누리는 삶이다. 예배, 기도, 말씀, 선한 행위가 단순히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누릴 수 있을 때 하늘의 평강이 임하게 된다. 시편 기자의 표현과 같이 평화 안에는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하감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기며 사랑하는 삶이 평안을 누리는 삶이다. 평화는 또한 자연과의 올바르고 조화로운 관계와 물리적 환경 속에 거하는 기쁨을 포함한다. 평화는 우리가 노동으로 세계를 형성하고 그렇게 하는데서 성취감을 발견하고 그 결과에 기쁨을 발견할 때 찾아온다. 그래서 선지자는 평화의 날을 생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 백성들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종용히 쉬는 곳에 있을” 그 날(사32:18)에는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사25:6)라고 말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는 조화와 풍성한 이미지를 담은 평화-짐승들 사이의 조화, 인간과 짐승 사이의 조화(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을 인용했다. 그런데 그 구절은 다음 구절에 의해 도입된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에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 하시리니-”(사 11:1-2).

이새의 줄기란 천사가 탄생을 축하하여 노래한 “그분”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그는 스가랴가 말한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실”(눅1:79) 분이시다. 또 시므온이“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눅2:29)고 말한 분이시다. 베드로는 그를 통해서 하나님이 “화평의 복음”(행10:36)을 이스라엘에게 전파하신 분이라고 했다. 바울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에게 말하면서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신 분”(엡 2:17)이라고 말했다. 또 이사야가 “평강의 왕”(사 9:6)이라고 부른 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평화는 이 세상 속에 일하는 하나님의 이유이며 우리 인간의 소명이다. 평화가 역사 속에 완전히 도래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 선물이지 인간이 성취해 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 속에 이따금씩 찾아드는 평화도 또한 하나님의 선물의 차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역하고,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은 바로 이 평화의 성취다. 우리는 팔짱을 끼고 주위에 둘러서서 평화가 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일하시는 이유를 위한 사역자, 즉 평화를 위한 사역자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명은 우리의 사명이다. 이것이 함축하는 바는 우리의 사역은 인간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정의를 위한 헌신적 삶과, 세상을 지배하려는 계속적인 노력의 추구라는 두 가지 면을 가진다는 것이다. 평화가 더 가까이 다가오기를 원한다면 삶의 두 차원 모두가 함께 필요하다. 우리의 사명은 인류의 유익을 위해 세상을 정복하라는 문화적 명령과 함께 죄의 사슬에 결박된 하나님의 백성들을 자유케 함과 누리게 해 주는 사역을 함께 신실하게 감당하는 것이다.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의 줄을 꺽는 것….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사 58:6-7)사역이다.

 

  하늘의 평강을 누리게 하는 사역은 모든 그리스도의 궁극적 비전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가는 곳에는 분열보다는 화합이, 긴장보다는 편안함이, 억압보다는 풀어줌의 삶이 나타나야 한다. 구주 성탄을 맞아 축하하며 기뻐하는 계절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이시다. 평강의 왕으로 오신 그분의 오심을 축하하면서 우리 모두 평강의 사역자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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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총장] 평강의왕,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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