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2(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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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진해영광교회)

 I. 서언(序言)

 

우리나라를 일컬어 옛날부터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칭하였다. 이는‘동쪽에 있는 예절의 나라’라는 뜻으로, 그 유래는 중국 공자의 7대손인 공빈이 쓴 ‘동이열전’에 기록됨으로서 유래된 말이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를 제후국 정도로 취급하던 중국에서 조차 우리의 예의범절을 아주 좋은 면으로 평가하는 자랑스러운 말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옛날부터 우리나라 언어의 고유한 특징 중의 하나인 높임말(경어)의 우수성과 사용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지난 호에서 밝힌바 있지만 높임말에 대한 사용은 심각할 정도로 잘못사용하거나 오염되어 있다.

필자 자신도 높임말을 해놓고 나중에 보면 잘못 사용했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에 본 호에서는 지난 호에 이어서 계속 높임말에 대한 올바른 사용을 논하고자 한다.

 

II. 높임말의 분류

 

높임말을 제대로 잘못 사용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높임말의 체계와 구조가 복잡하고 어려운 면도 있지만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학습이 없다보니 더욱 그러하다. 이에 본 호에서는 높임말의 일반적인 개념 중에서 혼돈하기 쉬운 높임법의 분류, 즉 주체높임법과 객체높임법, 상대 높임법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1. 주체높임법 : 이는 말하는 자가 서술하는 주체에 대하여 높여서 말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목사님의 말씀이 타당하십니다.’란 말을 한다고 하자. 여기에서의 주체는 ‘목사님’이다. 또한 주체인 목사님을 높이는 말은 선어말 어미(先語末語尾)인 ‘-시’와 높임접미사 ‘-님’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경우를 주체높임법이라고 한다.

2. 객체높임법 : ‘목사님’을 높이는 주체 높임법과는 달리 말의 목적어나 부사어가 지시하는 대상, 곧 객체에 대해서 높이는 경우를 말한다. 예를 들면 ‘나는 장로님을 모시고 교회로 왔다.’에서 말하는 주체는 나이다. 하지만 나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존경의 대상인 동시에 말의 목적어인 장로님을 높이는 경우이기 때문에 ‘모시다’란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경우를 객체 높임법이라 한다.

3. 상대높임법 : 이 경우는 국어의 높임법 가운데 가장 발달되어 있는 것으로서, 말하는 자가 상대방에 대해 높이거나 낮추어 말하는 경우이다. 주로 종결 표현에 많이 나오는데, 크게는 격식체와 비격식체로 나뉘고, 높임의 정도에 따라서 네 단계로 나누기도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격식체는 높임 표현에서는‘이 성경책을 읽으십시오.’의 아주 높임의 ‘합쇼체’와‘이 성경을 읽으세요.’의 예사 높임의 ‘하오체’가 있다. 또한 격식체의 낮춤 표현에서는‘이 성경책을 읽게’의 예사 낮춤의 ‘하게체’와 ‘이 책을 읽으라.’의 아주 낮춤의‘해라체’가 있다. 이런 경우 모두를 격식체라고 한다. 반면 비격식체에 대해서 논한다면, ‘이 성경책을 읽어요.’의 두루 높임의 ‘해요체’가 있고, ‘이 성경책을 읽어’의 두루 낮춤의 ‘해체’가 있다.

 

III. 결 어

 

높임말에 있어서는 이상과 같은 세 종류만 잘 구분해도 대부분의 높임말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위에서 논한 것만 해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들려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하여 앞에서 논한 대로 높임말 사용이 지금은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더군다나 상하관계나 기본질서 개념이 분명치 않는 ‘해체주의(포스터모더니즘)’시대 속에서 높임말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어떤 이의 말처럼 동방예의지국이 아닌 동방무례지국(東方無禮之國)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특히 이런 면으로 가장 먼저 선도해야 할 교회에서 조차 바른 높임말을 잘 하지 못하다보니 많은 우려가 된다. 예를 들어 예수님을 ‘예수’라 하고 성령님을 ‘성령’이라 하거나, 목사님, 장로님 등의 호칭에서 ‘-님’이란 존칭 접미사를 아예 무시하고, 바로 OOO 목사, OOO 장로 등으로 호칭하는 경우도 너무 많이 볼 수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의 올바른 언어 사용과 예의 있는 높임 말 사용은 또 다른 측면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아름다운 오고가는 따뜻한 말과 적절하게 서로 높이는 경의 사용으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좋은 언어문화를 형성하고 선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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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목사] 높임말(경어), 이대로 좋은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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