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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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밀알교회)

 라이스 교수의 글로 마치는 말을 대신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공적 수단를 미국 샌프란시스코 신학교 실천신학 교수 하워드 라이스(Howard L. Rice)는 그가 쓴 『개혁주의 영성(Reformed Spirituality)』에서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말하고 있다.

 첫째,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 친밀감을 가지는 것이다. 모든 자연현상은 친밀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생육하고 번성하는 생명활동이나 친밀감에서 이루어진다. 인간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유통구조도 친밀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영적관계 또한 친밀감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성도가 하나님과 친밀감을 가지기 위해서 끊임없이 엎드려 기도해야 한다. 그때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을 이루게 된다.

 둘째, 성경 읽기를 통한 영적 내면화 작업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성을 우리의 심령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이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 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의 조명 아래서 하나님의 감동을 받게 되어 우리의 심성이 거룩해진다.

 셋째, 다른 사람과의 교제를 통한 교회 공동체의 하나 됨이다. 주님은 우리를 구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드려 이 땅에 교회를 세웠다. 교회는 지상에서 세운 가장 거룩한 공동체이다.우리가 비록 가문과 지역과 문화가 다른 환경에서 자랐을 지라도 예수 안에서 하나 될 수 있다. 그래서 복음으로 하나 되도록 교제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상을 향한 윤리적인 실천행위이다. 이를 위해 소금과 빛으로 이웃과 사회를 섬기는 일이다. 섬김은 봉사와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주님은 인자로 오셔서 섬김으로 자신의 몸을 드렸다.

 그는 이 같은 은혜를 지속적으로 누리기 위해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고 했다. 개혁주의 신앙전통은 말씀 묵상인 성경 읽기를 강조한다. 개인이 성경을 읽고 공동체가 예배를 통해서 받은 말씀을 묵상하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게 된다. 말씀을 묵상하는 데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첫째, 옥토화 작업이다. 주님의 씨 뿌리는 비유에 보면 “좋은 땅에 떨어지매”(마 13:8) 백배, 육십 배, 삼십 배로 결실했다고 한다. 씨를 뿌리기 이전에 밭을 기경하여 옥토를 만들어야한다. 이와 같이 말씀을 읽기 전에 자신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하다. 말씀에 대한 수용적 태도를 위한 준비 작업이다. 우리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환경적인 요인으로부터 자유 해야 한다. 거룩한 마음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 순종의 자세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말씀을 읽기 전에 침묵을 통한 영적 워밍 업(warming up)을 가져야 한다.

 둘째, 집중화 작업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들어갈 때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만났다. 그때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행 3:4)고 했다. 앉은뱅이는 동전 한 푼으로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예수 이름으로 그를 일으켜 세웠다. 돋보기로 에너지를 집중시키는 것처럼 말씀을 집중해서 읽는 것이다.

 셋째, 묵상화 작업이다. 소가 풀을 먹고 되새김질을 하는 것처럼 우리가 읽은 말씀을 묵상해야 말씀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다. 다윗의 위대한 능력은 날마다 말씀을 묵상했기 때문이다.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고 했다. 그때 하나님은 시절을 쫓아 열매 맺는 은총을 입게 하신다.

 넷째, 청종화 작업이다. 묵상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청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된 자에게 친히 말씀하신다.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삼상 2:18). 우리가 날마다 말씀의 에봇을 입고 하나님의 성소에서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은 순간순간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마지막으로 실천화 작업이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간구하게 된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단 1:8)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는 이방의 바벨론왕궁에서도 하나님은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했더니 하나님이 신실한 동역자들을 붙여 주셨다.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여 기도할 때 환경을 극복할 담력을 주신다. 말씀과 기도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아서 우리의 삶을 미지의 세계로 담대하게 인도해 간다. 오늘도 큐티를 통해 승리하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이제 열두 제자에 관한 연구를 마치면서 독자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드리고자 한다.

 첫째, 정경 외의 문헌은 참고적인 견해로 보아 주기를 바란다. 사도들의 발자취를 살피려고 하면 고대 문헌들을 살펴야 하는데 정경에 기록이 없는 대부분의 것이 외경이나 위경에 속한 책이며 교부들의 문헌들이다. 이 같은 것에서 정경과 비교하여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것이 정경을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어야지 정경을 파괴하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둘째, AD 397년 칼타고 회의에서 정경화 작업은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는다. 사도와 교부들의 사역이 마무리 되는 시점에 이 같은 작업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 세대가 진리의 규범이 없는 사상의 대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필자는 이 같은 교부시대 역사를 통해 오늘날 우리들이 받은 복음을 다음세대에 바르게 전수하기 위해 【고려파교회연구소】를 세우게 됨을 너무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다시 한 번 사명을 재인식하게 되었다.

 셋째, 열두 사도의 행적을 빠짐없이 언급해 보고자 노력했다. 베드로 같이 복음서와 서신서에서 많은 사역을 행한 흔적과 자국을 남긴 자가 있는가 하면 가나안인 시몬은 한 마디의 말도 남기지 않은 침묵의 사도였다. 그러나 이들은 각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주님의 부름을 받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 다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복음의 소리는 외치는 소리로 전파되기도 하나 때로는 들리지 않는 메아리 같은 여운을 통해 더욱 더 우리의 가슴에 새겨지기도 한다. 문헌과 흔적과 자국이 없는 사도들을 위해서는 더욱 많이 기도하고 성령의 도움을 구하기도 했다.

  이제 이 연구를 마치고자 한다. 모든 영역에서 부족하고 모자라는 부분이 많아 한계상황에 이르렀기에 이 부분은 여기에서 필을 놓으려고 한다. 비록 졸고이기는 하나, 큐티를 하는 언약 백성들에게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더욱 풍성한 깨달음이 있기를 기도하면서 열두 사도의 연구를 여기서 마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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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권철 목사] 열두 사도 연구를 마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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