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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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룡 장로(마산회원교회)

 인류의 조상 아담이 태어난 시기에는 옷은 물론 신을 신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신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전 1700년경 이집트에서 발견된 끈 달린 샌들이다. 아마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에게서 소명을 받을 때와 비슷한 시기라 역사적으로도 증명되는 내용이다. 이집트를 비롯한 그리스시대에도 사람들은 짐승의 가죽이나 나무, 풀잎에다 끈을 달아 발에 걸었다.
  고대에 샌들을 신었던 사람들은 주로 사제나 귀족층이었고 서민들은 식물의 줄기로 만든 신발을 신거나 맨발로 다녔다. 예수님이 오신 당시에도 샌들은 질긴 가죽으로 바닥을 만들어 가죽 끈을 고정시켰고 유대인들은 우리의 풍습과 마찬가지로 집안에서는 신을 신지 않았다. 이동할 때만 신발을 사용한 한 것이다 신발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오늘에서 내일로,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움직여 변화해 주길 원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신발을 만들어 신는 동물은 인간뿐이다. 분명한 것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어떤 좋은 신발도 인생의 죽음에서 다 끝이 나고 만다는 사실이다. 신발은 인간의 몸을 땅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최초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발을 신고 다닐 때 값진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신발을 벗는 것은 잘못 살아온 과거에서부터 탈출한다는 의미가 있고 곧 옛사람을 버린다는 뜻이 있다. 그러므로 죽음인생은 하나님 앞에서 때 묻은 신발을 꼭 벗어야 할 때에는 오직 순종으로 그 분의 뜻을 겸손하게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모세에게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구절에 신발을 벗는 행위는 하나님의 소명에 부응하여 예의를 갖추어 하나님에 대한 절대 경외심을 표시한 것이다. 또한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와에게 신을 벗으라고 했을 때 선 곳이 전능자의 거룩하심을 나타나는 장소라 생각하여 말씀에 순종하고 따른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의 표현이다. 돌아온 탕자에게 종을 시켜 가장 좋은 옷과 신발을 신기라는 부친의 명에서 아들이 새롭게 태어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간절한 마음이 포함되어있다.
  신발을 신는다는 것은 신체를 보호하는 의미 외에도 변화를 바라고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의 기원이나 거듭난 삶을 살라는 깊은 뜻이 있다. 반면 신을 벗는다는 행위는 절대 순종하겠다는 의미나 경건한 자세로 상대방을 절대 존중하겠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신데렐라와 콩쥐의 이야기에서 신발 때문에 인생이 달라지는 것처럼 하나는 본인을 증명하는데 사용되고 다른 하나는 인생을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 인생으로 변화시키고 영원한 복을 누릴 수 있는 구원의 신발을 신겨주셨다. 인간은 평안의 신발을 신고 안락한 생활을 하는 탓에 현실에 안주하려는 속성이 있어 신발을 계속 신고 벗으려 하지 않는다.  다른 신발을 바꾸어 신어야 할 때가 되면 그에 따른 행동이 우선되는 것이 맞다. 거룩한 곳에서 부름이 있을 때에는 옛 신발을 벗고 그 분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오직 순종해야 하고, 우리에게 명하는 말씀이 임하면 사명의 신발을 신고 오로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수룡 목사(마산회원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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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룡 장로] 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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